북해 세 호랑이 중 왼쪽에 서 있던 남자는 사납게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김 씨 가문의 일에 오지랖 떠는 건 봐 줄 수가 없어!”만천우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순간 그는 한 걸음 내디디며 칼날을 휘둘렀다.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칼날은 번개처럼 날렵했다.그러자 옆에서 입을 열려던 남자는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칼날이 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그는 만천우가 휘두르는 칼이 그다지 빠르지 않다고 생각해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칼날이 만천우보다 훨씬 느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도대체 왜일까?만천우의 칼날은 실제로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빨랐다.간단히 말해 만천우의 칼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남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그가 이를 악물고 손을 흔들자 소매 속에서 화살이 날아갔다.사람들은 이제 만천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원래 같았으면 천지가 무너질 것 같은 광경이 펼쳐져야 했는데 갑자기 남자는 온몸을 움찔하더니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그의 가슴에서는 혈흔이 번지며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단칼에 격파한 것이다!이런 무시무시한 실력은 듣도 보지도 못했다.쓰러진 남자를 바라보던 만천우는 왼손 검지를 뻗어 당도의 칼끝을 쓱 그으며 말했다.“하현, 참 가소롭네요.”“은퇴 후 몇 년 동안이나 손을 쓰지 않았더니 이런 사람들 눈에는 내가 손쓸 능력조차 없어 보였나 봅니다.”“정말 집안 망신이 아닐 수 없어요.”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망신은 무슨 망신! 당신 칼끝은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 보이는구만 뭘. 보아하니 내가 몇 년 동안 가르친 것을 하나도 잊지 않은 것 같군.”“하현, 과찬이십니다.”만천우는 총교관의 칭찬 한마디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것은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개자식! 감히 내 형제를 건드리다니!
”뭐? 정체를 밝히라고?”“마치 내 정체를 밝히면 당신들이 복수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군.”“신분에 구애받지 않았다면 당신들은 벌써 몇 번이나 죽었을 거야.”만천우는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말했다.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만천우의 칼날에 남은 십여 명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희번덕이며 만천우를 노려보았다.그들의 손에는 모두 안전장치가 풀린 총이 들려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상하리만큼 총이 무겁게 느껴졌다.하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그가 은퇴했을 때 만천우도 은퇴를 선택했었는데 그때 만천우는 아직 전신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그런데 오늘 보니 만천우는 어느 정도 전신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분명 만천우는 은퇴 후에도 열심히 칼솜씨를 연마한 것이 틀림없었다.만천우의 현란한 칼솜씨를 보고 하현은 너무나 흡족했다.스스로 손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누가 이렇게 잘난 척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만 서장님이셨군!”분위기가 험악하게 흘러가자 김 집사는 마침내 사복 차림의 만천우를 알아보았다.“무성경찰서장이 된 만천우가 칼솜씨가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그런데 난 늘 그렇게 생각했지.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가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고.”“하지만 오늘 보니 과연 듣던 대로군!”김 집사의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다.비록 만천우를 알아보긴 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김 씨 가문이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대상은 강한 외지인들이었다.만천우 같은 사람은 실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의 가문은 무성에 있다.이런 상황에서 만천우는 절대로 김 씨 가문을 상대로 싸움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절대로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김 집사가 전면으로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그런데 만 서장, 당신이 이놈과 도대체 무슨 사이길래 이렇게 나서는 거야?”“당신이 비호할 만한 가치가 있어?”“이렇게 하면 우리 김 씨 가문과 당신 가문이 철저
한 시간 후 김 씨 가문 별채에서 양복을 입은 잘생긴 남자가 김 집사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만천우가 정말 그런 말을 했어?”“감히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무성 경찰서장이면 무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그의 아버지가 내 숙부에게 된통 당한 걸 그가 잊었단 말이야?”“무성 경찰서장이면 우리 김 씨 가문을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어림도 없는 소리!”잘생긴 남자는 연신 냉소를 연발하며 분노의 기운을 내뿜었다.이 사람은 바로 김 씨 가문 장손 김준걸이다.김규민은 그의 여동생이었다.그래서 어젯밤 일을 알게 된 후 김준걸은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자신의 동생을 도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자신의 가문이 이렇게 망신당하는 건 절대 두고 볼 수가 없었다.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도 있지만 어떻게든 인도인에게 자신의 가문이 제대로 해결하는 걸 보여줘야 했다.하지만 북해 세 호랑이가 모두 참패하고 김 집사도 얼굴을 얻어맞고 전투력을 잃었다.“쓸모없는 놈들! 당신들은 모두 쓸모없는 것들이야!”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넘어뜨린 뒤 김준걸은 이를 갈며 말했다.“평소 우리 가문에서 잘 먹고 잘 지낸 값이 이거야?”“결과가 이거냐고? 이런 중요한 순간에 당신들은 아무 쓸모도 없었어!”“기세가 좋은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걸 몰라!”“만 씨 가문의 실력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전설 속의 군신이라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당신들도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싸웠어야지?”“하나둘씩 픽픽 쓰러져 돌아오면 뭐 어쩌란 얘기야?”“만천우가 날 위협하도록 놔두겠다는 얘기야? 아니면 내가 일일이 당신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면서 보호해야 해?”“우리 김 씨 가문은 20년 전에 만 씨 가문을 이미 제압했어. 지금에 와서 만 씨 가문을 제압하지 못한다니 이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라고!”“도련님, 죄송합니다.”“이번 임무 수행에 실패한 것은
쉰 살이 넘어 보이는 한 중년 남자가 여유로운 자태로 손을 뒷짐지고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은 바로 김 씨 가문 문주 김우백이었다.김준걸의 친아버지이자 황금궁을 군림하는 자의 친형이었다.“만천우는 별것 아니야.”“그가 정말 무적의 신이라 해도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의 적수가 될 수 있겠어?”“하지만 그 뒤에 있는 전설적인 총교관은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야.”“그때 유라시아 대전, 그 후의 중동 대전까지 말할 필요도 없어.”“단순히 그의 존재만으로도 국내외 전신이 감히 대하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상황을 놓고만 봐도 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어.”“만천우가 이렇게 날뛸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설속의 그 총교관 때문이야.”“그러니 만천우가 그 전설적인 총교관과 어떤과 어떤 사이인지 그 사람을 데리고 와서 확인할 때까지 만 씨 가문을 건드리는 건 별로 현명한 처사가 아니야.”“하 씨 성을 가진 그놈 하나 보호하는 것이니 그냥 내버려둬.”“그놈 하나 때문에 만천우와 그 배후의 총교관을 건드려서야 되겠어?”김준걸을 바라보던 김우백은 책망하듯 조근조근 말했다.“앞으로 일을 할 때는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해. 그리고 머리를 좀 써!”“아버지, 제가 충동적이었습니다.”김준걸은 김우백을 보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런데 지금 그 자식들 때문에 우리 규민이가 경찰서에 잡혀 있습니다.”“브라흐마 아샴도 그놈 때문에 생사를 오가고 있고요.”“게다가 오늘 밤의 패배로 우리 집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이게 소문이 난다면 우리 가문이 어떻게 최고 가문으로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우리 때문에 황금궁의 체면까지 구겨질지도 모릅니다.”
외지인이 감히 김 씨 가문의 체면을 짓밟아 놓은 것을 생각하면 김준걸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무성에서 용 씨 가문의 세 아들들과 견줄 만한 귀족 반열에 있다고 생각했다.피가 멎고 머리는 깨질 수 있지만 절대 손상되어서는 안 될 것이 가문의 체면이었다!그래서 이틀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이 김준걸을 미치게 만들었다.김우백은 껄껄 웃으며 김준걸의 어깨를 툭툭 쳤다.“진정하려무나.”“만천우가 하 씨 그놈을 보호한다고 하니 우리도 그의 체면을 봐서 적당히 해야지.”“준걸아, 우린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야.”“그러나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야.”“브라흐마 아샴은 하현 그놈한테 다해서 식물인간이 된 상태야. 이건 선봉사의 자존심을 건드린 일이야.”“브라흐마 아샴이 잘못되면 완전히 목숨을 잃게 되겠지.”“그러면 하현에게 연달아 망신을 당한 인도인이 하현 그놈을 가만히 내버려두겠느냐?”김우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김준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진정한 고수는 일시적인 체면이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더 멀리, 더 오래 보아야만 진정으로 전략을 짜서 결국 승리의 깃발을 쟁취하는 것이다.“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도록 해.”김우백의 눈동자에 심오한 빛이 돌았다.“그리고 인도상회와 용 씨 가문에게 가서 말해.”“우리 김 씨 가문이 만 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하현을 건드리지 않는 거라고.”“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만 겉치레에도 신경을 써야 해.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씨 가문이니까 체면을 봐주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야.”
저녁 9시, 무성 종합병원.하현은 자신이 고른 과일을 가지고 설은아의 병문안을 갔다.좀 복잡하긴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아내였고 부상을 입었으니 하현이 병문안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비록 최희정이 하현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하현은 최희정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매번 그가 올 때마다 거액의 수표를 건네면 어느덧 최희정의 불만스러운 입이 쏙 들어간다.그러면 좀 더 편안하게 며칠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최희정의 입은 거칠었다.하지만 그녀의 장점은 돈으로 구워삶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의 입을 돈으로 막으려고 할 때가 많았다.설은아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 하현은 그녀의 휴식을 방해할세라 얼른 과일 바구니를 놓고 그곳을 떠났다.최근 각지에서 유행하는 독감 때문에 하현은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착용한 뒤 독감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한 병실 밖을 나가지 말라고 설은아와 최희정에게 주의를 주었다.하현이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나오자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엘리베이터 안에는 하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육중한 남자가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한 채 바퀴 달린 손수레를 잡고 있었다.안경 뒤에 숨어 있던 남자의 눈이 하현과 마주쳤다가 하현의 눈빛을 피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하현이 가족의 병문안을 온 환자 가족임을 확인한 후 흰 가운 입은 남자는 날이 선 눈에 힘을 풀었다.하현은 의사와 시선을 마주친 뒤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러나 하현은 영 뒤가 찜찜했다.그도 그럴 것이 흰 가운을 입은 남자의 두 손에 두꺼운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보통 이런 굳은살은 무술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그리고 이 남자가 애써 숨기려 했지만 하현은 그에게서 옅은 살의를 느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아무 내색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을 때 하현의 시선은 그 남자에게로 떨어졌다.남자는 뭔가 의식한 듯 일부러 마스크
하지만 인도인의 물음에 의사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선생님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서류 다 있어요.”“한 번 보세요.”말을 하면서 의사는 손수레에서 노트를 한 권 꺼내 인도인에게 건넸다.자연스러운 그의 동작에 인도인들은 진짜 의사임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인도인들이 긴장을 푸는 순간 의사의 두 손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손수레에 있던 병들이 순식간에 폭발했다.‘쾅'하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무방비로 당하고 만 인도인들은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나머지 열 명 정도의 인도인들은 안색이 급변하며 몸에 지니고 있던 총을 얼른 꺼냈다.“움직이지 마!”“당신 도대체 누구야?”그러나 인도인들의 위협적인 행동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오히려 의사는 표정이 험악해졌고 두 손을 흔들자 숨겨져 있던 칼이 그대로 날아갔다.“앗!”처절한 비명이 난무했고 인도인들은 자신의 팔을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중상을 입은 인도인들을 뒤로한 채 의사는 특수 제작된 병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그대로 브라흐마 아샴 곁으로 다가갔다.“푹!”손에서 떨어진 칼이 그대로 브라흐마 아샴의 몸에 떨어졌고 그나마 숨이라도 붙어 있던 브라흐마 아샴은 완전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개자식!”“감히 브라흐마 아샴에게 손을 대다니!”이를 본 인도인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몸을 겨우 일으켜 왼손으로 엉거주춤 허리에 꽂은 칼을 하나둘씩 뽑았다.일단 브라흐마 아샴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대로 끝장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양측의 실랑이 속에 결국 의사의 얼굴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순간 인도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이 개자식!”“네놈이 감히 브라흐마 아샴을 죽이다니!”인도인들 중 몇몇은 전에 술집에서 하현을 본 적이 있었다.그래서 지금 눈앞의 하현을 알아보고 눈을 희번덕거린 것이다.“탕탕탕!”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그러나 의사가 운전석에 앉는 순간 갑자기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언제인지 모르게 수술용 메스 한 자루가 그의 목에 닿았기 때문이었다.“어이, 또 만났군!”하현이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의사는 하현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자신과 얼굴이 똑같은 하현을 여기서 또 만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의사는 얼른 오른손을 뻗어 콘솔박스 속에 있는 총을 잡으려고 했지만 하현은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았다.“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러모로...”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당신이 나인 척 위장하고 싶었다면 행동까지 꼭 빼닮았어야지. 난 함부로 총을 쏘지 않는데 말이야.”의사의 매서운 눈빛이 살의를 띠며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어.”“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미안하게 됐군.”“당신도 함께 보내줄 수밖에.”“뭐? 나도 함께 보내준다고?”하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이제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당신을 저세상으로 보내줄 수 있겠군, 안 그래?”“사실 당신이 브라흐마 아샴을 죽이든 뭘 하든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어.”“그런데 이렇게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 하면 안 되지? 응?”하현은 방금 의사가 행동하는 전 과정을 목격했지만 그를 막지 않았다.어쨌든 다른 사람이 개의 털을 물어뜯든 뽑든 그것은 그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의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하 씨,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날 생포할 건가? 설마 그러려고?”“왜? 내가 못 할 것 같아?”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주 입만 살았군! 지금 아무리 입을 놀려 봤자 당신은 내 손끝에 힘만 조금 들어가면 죽는 거야!”“아니면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 내가 당장에라도 당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나?”“그러기엔 당신이 좀 부족한 것 같군.”“안타깝게도 난 아직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거든.”말을 하면서 하현은 왼손을 뻗어 상대의 복부를 푹 쳤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
이 말을 듣고 하현은 돌아서서 형나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집에서 볼 때보다 밖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이 훨씬 성숙하고 듬직했기 때문이다.비록 아직 철없이 밀어붙이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럴 때는 노련한 기질이 더해져 함부로 나서지 않고 슬쩍 뒤로 빠지는 것이다.하현은 잠시 지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없어. 여기서 잠깐 봐 봐”“보고 나서 바로 가게 물색하러 가 봐야 해.”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버럭 소리를 지를 뻔했다.지금 자신이 얼마나 우아하게 참고 있는데 그게 할 소린가?그러나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온유하고 정숙한 척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며 했다.눈먼 장님에게 아무리 눈빛을 보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형나운은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천천히 자신의 코트를 벗고 하현이 보는 앞에서 앞 단추 두 개를 풀었다.그녀는 자신의 심장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오늘 아침 무술을 연마할 때 여기가 답답해져서 죽을 뻔했어요.”“한번 봐 보세요.”말을 하면서 형나운은 은근슬쩍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단추 풀지 않아도 돼.”“그러다가 험상궂은 당신 경호원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래?”“왜요? 무서워요?”형나운은 놀리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도 두려울 때가 있어요?”“내가 지금 누가 날 추행한다고 소리 지르면 내 경호원들이 쫓아와 당신을 쫓아내기라도 할까 봐요?”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도대체 나한테 봐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옷 입어.”“딱 3초 줄게. 내 말대로 하지 않고 계속 이런 식이면 난 그냥 갈 거야!”하현이 약간 화가 난 것을 보고 형나운은 비로소 다소곳해졌다.“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난 정말 이 거추장스러운 외투는 안 입고 싶은데요. 이
형나운의 말을 듣고 우다금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정말로 하현이 자신의 딸을 뒷문으로 들여보냈을 줄은 몰랐다.그러니까 하현이 없었다면 자신의 딸은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얘기다.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우다금은 갑자기 난처한 듯 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하지만 우소희는 하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깔보던 데릴사위의 도움을 받았다니!그걸 인정한다면 앞으로 설은아의 집에 가서 어떻게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어제 설은아 앞에서 얼마나 큰소리 떵떵 치고 나왔는데 이렇게 단번에 고개를 숙일 수 있겠는가?이런 생각이 스치자 우소희는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채 기세를 꺾지 않았다.“형 대표님, 인사팀 팀장님이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이 회사가 사람의 외모나 능력을 중시했기 때문 아니겠어요?”“데릴사위가 뒷문으로 들여보냈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우소희는 나름 상류사회에서 놀던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섞어가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몇몇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 경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이없어했다.그들은 우소희가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우소희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형나운, 이 사람이 데릴사위인 내 도움은 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 그럼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줘!”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홀연히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형나운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무 팀장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지시했다.“하현이 그렇게 말했으니 분부대로 해. 우소희 씨가 그렇게 능력이 출중하다고 자신하니 공정하게 원칙에 따라 채용하도록 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줘야지.”“누가 청탁을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어. 스스로의 능력이 가장 중요해.”형나운의 말을 듣고 무 팀장은 곧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우소희 씨. 스스로 능력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말했다.“선생님, 여기는 형 씨 가문 그룹입니다. 무엇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기업이죠.”“만약 당신이 여기서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운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이때 몇몇 경비원도 냉담한 표정으로 걸어왔다.하현은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힐끔 보며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2분 남았어요.”우소희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현, 그만해요. 센 척 좀 그만해요!”“당신이 그런다고 누가 내려올 줄 알아요?”“잘 들어요. 당신이 설령 간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해도, 혹은 김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할지라도 이럴 자격은 없어요. 알겠어요?”우다금도 하현을 한심스러운 듯 노려보며 냉소를 연발했다.“하현, 우리 앞에서 허풍 떠는 짓 그만해!”“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그래? 어?”“여기 대표님이 내려와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묻힐 곳도 없이 이승을 떠돌 거야!”“내가 한마디 충고할게.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썩 꺼져! 얼른!”“그리고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대표님한테 나쁜 인상을 주게 생겼다고!”“우리 딸은 앞으로 연봉 이억을 받을 인재야!”“당신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우다금은 하현이 자신들을 등에 업고 뭔가 이득을 볼 심산으로 여기 왔다고 확신했다.그런 목적이 들통났으니 이판사판으로 사람을 불러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데릴사위놈이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꼴이라니!고약한 놈!죽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1분 전.”하현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개의치 않았다.“내가 당신이라면 벌써 전화를 걸었을 거예요.”“일이 잘못된다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당신이 형나운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갈 텐데?”하현이 기세 좋게 몰아붙이자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잠시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하현, 이제 그만해. 충분히 했잖아!”
우다금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서더니 하현에게 달려왔다.“당신 여기 뭐 하러 왔어? 어?”“설마 당신 장모가 우릴 미행이라도 하라고 시켰어?”“떠도는 소문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당신 처가는 이제 파산이야!”“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우리 덕을 보려고 하는 거지!”우다금은 최희정 일가에 대한 미움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았다.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자기 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으니까 사위를 대동해 뭐라도 덕을 보려고 치근덕거리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썩 꺼져! 꺼지라고!”우다금은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자처럼 포효했다.“어쨌든 형 씨 가문 그룹에서 너 같은 놈을 경비로 부를 일은 없어!”“형 씨 가문 그룹이 어떤 곳인지나 알아?”“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으면 발도 들이지 못할 그룹이야!”“모두가 우리 딸처럼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하현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우다금의 억지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하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우소희는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말했다.“하 씨! 들었어?”“이곳은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빨리 꺼져! 안 꺼져?!”“어서 꺼지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사람을 안다는 걸 무 팀장님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품위가 완전히 떨어진다고!”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현을 밀치려고 했다.하현의 존재가 그녀들에게는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가 형 씨 가문 그룹에서 어떻게 잘생긴 갑부들을 낚을 수 있겠는가?하현이 한 발짝 물러서며 우소희의 손을 피했다.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러워서였다.그는 소위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과는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감히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우소희는 자존심이 확 상했다.뭔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두 모녀를 본 하현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예정대로라면 우소희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 보고를 하러 올라갔을 텐데 왜 로비에 이렇게 있는 것인가?결국 하현은 우다금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거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인사팀 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우소희 엄마, 우다금입니다.”“아, 맞아요. 맞아요. 바로 오늘 출근하려던 우소희예요! 좋은 연봉으로 입사하게 된 우소희요!”“사실은 어제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느라 우리 딸이 술을 너무 먹어서 오늘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쨌든 우리 소희는 인재잖아요!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주시면 어떨까 해서요.”하현은 어이가 없었다.정말로 가지가지 하는 진상 모녀였다.어렵게 형 씨 가문 그룹에 취직을 시켜줬더니 지각을 해?그러고도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우리 딸이 여기 입사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데 가지는 않을 거예요.”우다금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우리가 여기 로비에 있는데 팀장님이 좀 내려와서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아, 그리고 점심은 너무 오버할 필요없이 고위층 몇 명과 자리를 마련해서 인사시켜 주면 됩니다.”“참고로 우리 딸은 82년산 라피트만 마셔요. 피부가 상할까 봐 고급술만 마시죠.”“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친 우다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뒤 우소희를 쳐다보았다.“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도 아니잖아?”“우리 딸 같은 출중한 인재를 모셔가는 형 씨 가문 그룹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네가 이 회사에 오지 않는다면 형 씨 가문 그룹은 석 달도 안 되어서 문을 닫을 거야!”“아마 무 팀장이 곧 내려와서 우릴 맞이할 거야.”우다금의 말에 프런트 데스크의 예쁜 직원과 잘생긴 경비원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
한바탕 휘몰아치고 맞이한 밤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했다.최희정은 가끔 이를 악물었다가 화가 나서 헐떡거렸다가 도저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찌감치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민효와 풍수관 일을 상의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형나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기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맞고 싶어?”하현의 말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서운 기운을 감지한 형나운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있어요?”하현은 무심하게 내뱉었다.“시간 없어. 가게를 보러 가야 해. 바빠.”“당신이 원하는 가게, 나한테 없을 것 같아요?”형나운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내가 삼백 개는 더 보여줄 수 있어요.”“아니야. 필요없어. 내가 찾을 수 있어.”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할 말 없으면 끊어.”“아,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이 어제 나한테 부탁한 일 다 처리해 줬는데 이제 와서 입 싹 닦을 거예요?”형나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형나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말했다.“나의 주인님, 지금 하녀를 도와줄 시간이 좀 있을까요?”“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 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지금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식물인간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오늘 잠시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요? 주인님이라면 날 구해 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