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이 넘어 보이는 한 중년 남자가 여유로운 자태로 손을 뒷짐지고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은 바로 김 씨 가문 문주 김우백이었다.김준걸의 친아버지이자 황금궁을 군림하는 자의 친형이었다.“만천우는 별것 아니야.”“그가 정말 무적의 신이라 해도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의 적수가 될 수 있겠어?”“하지만 그 뒤에 있는 전설적인 총교관은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야.”“그때 유라시아 대전, 그 후의 중동 대전까지 말할 필요도 없어.”“단순히 그의 존재만으로도 국내외 전신이 감히 대하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상황을 놓고만 봐도 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어.”“만천우가 이렇게 날뛸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설속의 그 총교관 때문이야.”“그러니 만천우가 그 전설적인 총교관과 어떤과 어떤 사이인지 그 사람을 데리고 와서 확인할 때까지 만 씨 가문을 건드리는 건 별로 현명한 처사가 아니야.”“하 씨 성을 가진 그놈 하나 보호하는 것이니 그냥 내버려둬.”“그놈 하나 때문에 만천우와 그 배후의 총교관을 건드려서야 되겠어?”김준걸을 바라보던 김우백은 책망하듯 조근조근 말했다.“앞으로 일을 할 때는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해. 그리고 머리를 좀 써!”“아버지, 제가 충동적이었습니다.”김준걸은 김우백을 보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런데 지금 그 자식들 때문에 우리 규민이가 경찰서에 잡혀 있습니다.”“브라흐마 아샴도 그놈 때문에 생사를 오가고 있고요.”“게다가 오늘 밤의 패배로 우리 집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이게 소문이 난다면 우리 가문이 어떻게 최고 가문으로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우리 때문에 황금궁의 체면까지 구겨질지도 모릅니다.”
외지인이 감히 김 씨 가문의 체면을 짓밟아 놓은 것을 생각하면 김준걸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무성에서 용 씨 가문의 세 아들들과 견줄 만한 귀족 반열에 있다고 생각했다.피가 멎고 머리는 깨질 수 있지만 절대 손상되어서는 안 될 것이 가문의 체면이었다!그래서 이틀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이 김준걸을 미치게 만들었다.김우백은 껄껄 웃으며 김준걸의 어깨를 툭툭 쳤다.“진정하려무나.”“만천우가 하 씨 그놈을 보호한다고 하니 우리도 그의 체면을 봐서 적당히 해야지.”“준걸아, 우린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야.”“그러나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야.”“브라흐마 아샴은 하현 그놈한테 다해서 식물인간이 된 상태야. 이건 선봉사의 자존심을 건드린 일이야.”“브라흐마 아샴이 잘못되면 완전히 목숨을 잃게 되겠지.”“그러면 하현에게 연달아 망신을 당한 인도인이 하현 그놈을 가만히 내버려두겠느냐?”김우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김준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진정한 고수는 일시적인 체면이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더 멀리, 더 오래 보아야만 진정으로 전략을 짜서 결국 승리의 깃발을 쟁취하는 것이다.“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도록 해.”김우백의 눈동자에 심오한 빛이 돌았다.“그리고 인도상회와 용 씨 가문에게 가서 말해.”“우리 김 씨 가문이 만 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하현을 건드리지 않는 거라고.”“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만 겉치레에도 신경을 써야 해.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씨 가문이니까 체면을 봐주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야.”
저녁 9시, 무성 종합병원.하현은 자신이 고른 과일을 가지고 설은아의 병문안을 갔다.좀 복잡하긴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아내였고 부상을 입었으니 하현이 병문안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비록 최희정이 하현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하현은 최희정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매번 그가 올 때마다 거액의 수표를 건네면 어느덧 최희정의 불만스러운 입이 쏙 들어간다.그러면 좀 더 편안하게 며칠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최희정의 입은 거칠었다.하지만 그녀의 장점은 돈으로 구워삶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의 입을 돈으로 막으려고 할 때가 많았다.설은아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 하현은 그녀의 휴식을 방해할세라 얼른 과일 바구니를 놓고 그곳을 떠났다.최근 각지에서 유행하는 독감 때문에 하현은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착용한 뒤 독감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한 병실 밖을 나가지 말라고 설은아와 최희정에게 주의를 주었다.하현이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나오자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엘리베이터 안에는 하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육중한 남자가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한 채 바퀴 달린 손수레를 잡고 있었다.안경 뒤에 숨어 있던 남자의 눈이 하현과 마주쳤다가 하현의 눈빛을 피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하현이 가족의 병문안을 온 환자 가족임을 확인한 후 흰 가운 입은 남자는 날이 선 눈에 힘을 풀었다.하현은 의사와 시선을 마주친 뒤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러나 하현은 영 뒤가 찜찜했다.그도 그럴 것이 흰 가운을 입은 남자의 두 손에 두꺼운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보통 이런 굳은살은 무술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그리고 이 남자가 애써 숨기려 했지만 하현은 그에게서 옅은 살의를 느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아무 내색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을 때 하현의 시선은 그 남자에게로 떨어졌다.남자는 뭔가 의식한 듯 일부러 마스크
하지만 인도인의 물음에 의사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선생님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서류 다 있어요.”“한 번 보세요.”말을 하면서 의사는 손수레에서 노트를 한 권 꺼내 인도인에게 건넸다.자연스러운 그의 동작에 인도인들은 진짜 의사임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인도인들이 긴장을 푸는 순간 의사의 두 손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손수레에 있던 병들이 순식간에 폭발했다.‘쾅'하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무방비로 당하고 만 인도인들은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나머지 열 명 정도의 인도인들은 안색이 급변하며 몸에 지니고 있던 총을 얼른 꺼냈다.“움직이지 마!”“당신 도대체 누구야?”그러나 인도인들의 위협적인 행동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오히려 의사는 표정이 험악해졌고 두 손을 흔들자 숨겨져 있던 칼이 그대로 날아갔다.“앗!”처절한 비명이 난무했고 인도인들은 자신의 팔을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중상을 입은 인도인들을 뒤로한 채 의사는 특수 제작된 병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그대로 브라흐마 아샴 곁으로 다가갔다.“푹!”손에서 떨어진 칼이 그대로 브라흐마 아샴의 몸에 떨어졌고 그나마 숨이라도 붙어 있던 브라흐마 아샴은 완전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개자식!”“감히 브라흐마 아샴에게 손을 대다니!”이를 본 인도인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몸을 겨우 일으켜 왼손으로 엉거주춤 허리에 꽂은 칼을 하나둘씩 뽑았다.일단 브라흐마 아샴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대로 끝장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양측의 실랑이 속에 결국 의사의 얼굴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순간 인도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이 개자식!”“네놈이 감히 브라흐마 아샴을 죽이다니!”인도인들 중 몇몇은 전에 술집에서 하현을 본 적이 있었다.그래서 지금 눈앞의 하현을 알아보고 눈을 희번덕거린 것이다.“탕탕탕!”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그러나 의사가 운전석에 앉는 순간 갑자기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언제인지 모르게 수술용 메스 한 자루가 그의 목에 닿았기 때문이었다.“어이, 또 만났군!”하현이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의사는 하현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자신과 얼굴이 똑같은 하현을 여기서 또 만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의사는 얼른 오른손을 뻗어 콘솔박스 속에 있는 총을 잡으려고 했지만 하현은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았다.“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러모로...”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당신이 나인 척 위장하고 싶었다면 행동까지 꼭 빼닮았어야지. 난 함부로 총을 쏘지 않는데 말이야.”의사의 매서운 눈빛이 살의를 띠며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어.”“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미안하게 됐군.”“당신도 함께 보내줄 수밖에.”“뭐? 나도 함께 보내준다고?”하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이제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당신을 저세상으로 보내줄 수 있겠군, 안 그래?”“사실 당신이 브라흐마 아샴을 죽이든 뭘 하든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어.”“그런데 이렇게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 하면 안 되지? 응?”하현은 방금 의사가 행동하는 전 과정을 목격했지만 그를 막지 않았다.어쨌든 다른 사람이 개의 털을 물어뜯든 뽑든 그것은 그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의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하 씨,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날 생포할 건가? 설마 그러려고?”“왜? 내가 못 할 것 같아?”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주 입만 살았군! 지금 아무리 입을 놀려 봤자 당신은 내 손끝에 힘만 조금 들어가면 죽는 거야!”“아니면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 내가 당장에라도 당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나?”“그러기엔 당신이 좀 부족한 것 같군.”“안타깝게도 난 아직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거든.”말을 하면서 하현은 왼손을 뻗어 상대의 복부를 푹 쳤
하현이 한여침을 부르던 그때 김 씨 가문에서는 김우백이 덤덤한 표정으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하현에 관한 자료, 용천오에 관한 자료, 인도인에 관한 자료 등을 뒤적거리고 있었다.하현을 상대할 계획을 세운 후 그는 특별히 사람을 시켜 자료를 더 찾아보도록 했다.조사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까 조사를 하다 보니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김우백은 하현이 무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도인과 용천오의 얼굴에 연달아 먹칠을 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이렇게 놓고 보니 이번에 김 씨 가문이 그에게 체면을 구긴 것도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어쨌든 하현은 외지인이라 그 속내와 깊이를 당최 알 수가 없었다.김우백이 앞으로의 계획을 궁리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때 김준걸이 담배를 물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반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버지, 좋은 소식이에요!”“아주 좋은 소식이라고요!”김준걸의 얼굴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방금 병원에서 소식이 왔는데 브라흐마 아샴이 죽었다고 해요. 하현 그 자식이 죽였다는군요!”“그 자리에 있었던 인도인이 모두 증인이에요!”김준걸의 말에 김우백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고 눈동자에는 예리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사람이 죽은 것이 확실해?”“죽었어요.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니까요!”김준걸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무성은 우리 터전인데 확실하게 죽었는지 아닌지 그거 하나 파악하지 못하겠어요?”“그리고 방금 경찰서 사람들도 현장에 나타나 조사를 마쳤대요. 브라흐마 아샴은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다고 하더라고요!”“경찰서 사람들이 지금 사방팔방 하현 그놈을 찾고 있구요!”말을 마치며 김준걸은 브라흐마 아샴의 시신 사진을 꺼내 김우백에게 건넸다.김우백은 사진을 집어 들고 몇 번이나 자세히 살펴본 뒤 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탁자 위에 사진을 내려놓았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젠 돌이킬 수 없지.”“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일을 좀 더 퍼트려서 떠들
이 말을 들은 김준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건 다 준비되었어요!”김우백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눈을 치켜세웠다.“참, 우리가 보낸 킬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겠지?”“아버지, 염려 놓으세요. 제가 이미 그에게 모든 퇴로를 다 마련해 두었으니까요.”“일이 잘 성사되면 그는 백억을 가지고 대하를 떠나 국외에서 떵떵거리고 살 거예요!”김준걸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김우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다만 그곳을 떠나려는 순간 그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김준걸을 돌아보며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참, 내가 항상 말했었지?”“죽은 사람만이 모든 걸 껴안은 채 아무 말이 없다는 걸 말이야. 그래야 100% 신뢰할 수 있지.”김준걸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기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어버지, 걱정하지 마세요.”“벼락부자가 된 그는 곧 해외에서 의외의 사고로 죽게 될 거예요.”...김 씨 부자가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던 그 시각 하현은 한여침을 기다리고 있었다.한여침이 도착하자 그에게 사람을 맡기며 반드시 진술을 받아내라고 지시한 후 만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하현은 킬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동시에 하현은 당분간 경찰이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자백을 받아낼 시간이 필요한 데다 내일은 용문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만천우는 전화를 끊은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사람들의 증언과 물증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하현이 증발해 버리면 만천우의 스타일로 볼 때 하현을 체포해야 마땅한 일이었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잠시 다른 일은 제쳐두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택시를 타고 무성 체육관에 도착했다.체육관 입구에서 하현은 마침 구양연을 만났다.“어이, 왜 이렇게 늦었어?”구양연은 하현에게 더할 나위 없이 나긋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오늘도 좋은 모습 부탁하네. 1등 할 수 있도록 잘 해. 내가
무성 체육관에는 객석이 있어야 할 공간이 완전히 비어 있었다.대신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고 10제곱미터쯤 되는 링이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었다.링 가장자리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미늘창부터 단검에 이르기까지 칼날이 없는 무기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출전 선수들은 수험표를 들고 링 앞으로 다가왔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39번 번호 앞으로 걸어 올라갔다.그는 머리 위에 있는 CCTV에 눈길을 주었다가 40번 번호에 있는 김방아를 힐끗 쳐다본 뒤 버튼을 눌러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하현, 이젠 실전이야. 실전은 이론 시험과는 전혀 달라!”40번 번호에는 김방아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채 좁고 긴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쳐다보고 있었다.“당신은 중도에 출가한 사람이니 강한 상대를 만나도 절대 무리하면 안 돼.”“상대는 우리 용문 자제들이라 절대로 쉽지 않을 거야.”“만약 어떤 상대가 실수로 당신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해.”“링에 오르기 전에 다들 서명했잖아. 설사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지난번에 하현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일로 김방아는 하현에게 아직도 원망이 가득했다.게다가 하현이 이론 시험에서 1등을 한 것은 순전히 그가 책을 달달 외웠기 때문이지 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고 그녀는 믿고 싶었다.진정한 싸움은 실전이고 분명 용문 무성 지회의 제자인 그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그래서 김방아는 항상 자신이 하현 위에 군림할 수 있고 누구도 그녀를 무치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내 동창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체육관에는 이미 삼백 명의 용문 제자들이 들어섰고 그들은 무작위로 링을 선택해 접근했다.시합에 참가한 선수가 동의하기만 하면 쌍방은 바로 링 위에서 붙는 것이다.패배를 인정하거나 링에서 떨어진 사람은 진 것으로 간주된다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