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차성도를 바라보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를 달리 평가하게 되었다.하지만 양측이 이미 충돌이 일어난 이상 전쟁을 평화로 바꿀 가능성은 없었다.하현은 왼손을 뻗어 차성도의 얼굴을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자, 한번 맞춰 봐. 내가 감히 이 술병 조각으로 당신을 찌를 수 있을까 없을까?”“날 죽일 수 있겠어?”차성도가 희미한 냉소를 흘렸다.그의 눈빛을 차가운 얼음덩이를 삼킨 것처럼 매서웠다.“날 죽인다고 해도 당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야. 여전히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단 얘기지.”차성도는 이렇게 몰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당당하게 하현을 상대하고 있었다.과연 군대의 스승이라 할 만했다.그는 인도 두 번째 계급의 가문 출신이었다.그의 눈에는 오직 방현진이나 간석준 같은 5대 문벌이나 10대 최고 가문 정도 되어야 자신과 비견될 만했다.데릴사위인 하현은 애초부터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수도 있지만 당신을 죽일 수는 있겠지.”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심지어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나도 같이 죽는 건 아니거든.”“어디 한번 해 볼 테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고 날카로운 술병 조각이 차성도의 목을 찔렀다.차성도의 목에는 조그마한 핏자국이 피어나기 시작했다.마치 자욱한 죽음의 기운이 선명하게 정체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그러나 차성도는 웬만한 부잣집 도련님이 하는 것처럼 허둥대거나 당황하는 구석이 없었다.자신의 목구멍에서 흘러내리는 핏줄을 무시한 채 오히려 매섭게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하현을 노려보았다.“정말 한번 해 볼까?”“당신이 나를 죽인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당신 가족도 같이 죽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당신의 조상 무덤까지 파헤쳐져서 바다에 뿌려 버릴 거라고!”“아예 씨를 말려 버릴지도 몰라!”차성도는
차성도는 하현이 인도라는 나라의 신앙과 문화를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차성도의 자신감과 강경함에 하현의 얼굴은 더욱 의미심장한 빛으로 가득했다.사실 지금 하현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차성도는 완전히 죽게 된다.브라흐마 샤주와 요승들은 겁에 질려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혹시라도 함부로 움직였다가 차성도가 죽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정작 차성도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이봐, 하 씨. 내가 굴복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마.”차성도는 침착하게 하현을 바라보았다.“우리 인도인은 원래 이래. 피를 흘리고 머리가 깨질 수는 있지만 절대 인도를 욕되게 하지는 않아!”“우리 인도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에겐 성심성의껏 은혜를 베풀지.”“하지만 감히 우리 인도인을 모욕한다면 우린 절대 가만두지 않아!”“그러니 나 하나 죽인다고 우리 인도인이 멸하지 않아. 우리 인도인이 멸하지 않는 한 반드시 당신한테 복수할 거야!”“게다가 당신은 날 절대 죽이지 못해. 난 믿어.”“어쨌거나 난 인도 두 번째 계급이야. 당신 같은 하인이 무슨 자격으로 날 죽이겠어?”“퍽!”차성도가 입을 마음대로 놀리기 전에 하현은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쳤다.“인도인의 존엄?”“인도 두 번째 계급, 그게 그렇게 대단해?”“퍽!”“당신들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두 번째 계급이란 애초에 침략자에게 굴복한 지역의 귀족들일 뿐이야!”“자기 나라조차 버릴 수 있는, 침략자에게 바로 무릎 꿇은 자들이 첫 번째 계급이지!”“자국의 몇 천 년 역사와 강토와 문화를 넙죽 침략자들 손에 넘겨준 사람들이야!”“아직도 고개 빳빳이 들고 의기양양하다니?!”“퍽!”“수치스러워해야 마땅할 일을 자랑인 양 떠벌리고 다니는 인도인이라니!”“피를 흘리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인도는 욕되게 하지 않는다고?”“정말 그렇게 재주가 좋으면 당신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그 첫 번째 계급도 완전히 없애버리지 왜?”“아무리
대하 정부의 오랜 행정 스타일로 볼 때 무성에서 이 일이 밝혀지게 되면 인도파는 무성에서의 오랜 입지를 완전히 잃게 될지도 모른다.그만큼 대단한 사건이다.게다가 인도로서는 대하가 국경에 쉽게 진군할 수 있는 병력을 유치하는 데 핑곗거리를 제공하는 셈이다.어쨌거나 거리낌 없이 대하 경내를 드나들며 도박장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대하를 업신여겼다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이렇게 되면 우선 모든 것이 수면 위로 떠올라 탄로 날 것이고 앞으로 인도 측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차성도의 입장에선 차라리 하현이 든든한 뒷배를 데려오는 편이 훨씬 쉽다.하현이 전화 한 통으로 대하 정부를 건드린다면 정말로 그건 차성도에게 치명타를 안기는 일이다.하현이 천군만마를 몰고 오는 것보다 훨씬 차성도를 떨게 하는 일이었다.그리고 지금 차성도가 떨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현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하현은 일을 크게 만드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정말로 브레이크가 없는 미치광이 같았다.이때 브라흐마 샤주가 입을 열었다.“하 씨. 당신 남자 아니야?”“이 바닥 일은 이 바닥에서 있었던 걸로 처리해야지!”“정부의 힘을 동원하러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하현은 냉소를 지으며 눈을 흘겼다.“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있어?”“우리가 싸우는 동안 난 한여침에게 CCTV를 확인해 보라고 일렀지.”“지금 내 손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단 얘기라고.”“누가 옳고 그른지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거야.”“그런데도 당신네 인도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손님을 끝까지 억울하게 만들고 협박까지 일삼아 이 지경까지 몰고 왔어.”“내가 어떻게 관청에 신고하지 않을 수 있겠냐구?”“관청 사람도 오라고 하고 경찰서 사람도 오라고 하고 기자도 오라고 해서.”“무엇이 진실인지 함께 따져 보자구!”“인도인의 스타일도 좀 알려주고 말이야!”“파렴치한 소
”이걸로 됐어”“그렇지만 다른 건 아직 해명 안 했어.”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탕탕!”연이어 두 발.브라흐마 샤주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이번에는 두 다리에 총알이 박혔다.방금까지만 해도 꼿꼿이 서 있던 그가 그대로 주저앉아 뒹굴었다.“하 씨! 당신 절대 가만 안 둘 거야!”“죽을 때까지 당신이랑 싸울 거야!”이를 지켜보던 차성도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그는 오늘 자신이 충분히 양보하고 참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앞에 있는 하현이라는 대하인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자신이 그렇게 잘못을 인정했는데도 이런 짓을 하다니!이건 인도상회 전체의 체면을 발로 짓밟는 행동이었다.“개자식!”“끝까지 해 보자 이거야?”“넌 절대 나한테 안 돼!”하현은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차성도의 행커치프로 손가락 사이를 닦았다.깨끗이 닦은 뒤 다시 고이 접어 차성도의 양복에 꽂았다.“이렇게 하지. 특별히 내가 차성도 당신의 체면을 봐줄게.”“내일 이맘때 무성황금회사의 일을 당신이 나한테 만족스럽게 설명해 준다면 나도 이쯤에서 끝내지.”“하지만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면 인도파도 망하는 거고 인도상회도 망하는 거야.”“나 하현, 내가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야. 명심해!”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차성도를 발로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렸고 진주희와 함께 그 자리를 훌쩍 떠났다.하현 일행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차성도의 눈가에 폭풍 같은 경련이 일었다.차성도는 태어나서 이런 수모를 처음 겪었다.이번에 정말 제대로 체면이 구겨진 것이다!그는 땅바닥에서 온몸을 벌벌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브라흐마 샤주를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말해 봐. 무성황금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무슨 일을 한 거냐고?!”“나,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정말이야. 아무짓도 안 했다고...”브라흐마 샤주는 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용천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사람이 못생겼으면 책이라도 많이 읽어야 한다고!”“책을 읽어 봤다면 낚싯줄에 스스로 걸려든다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알 거야.”용천오는 말을 하면서 낚싯대를 내려놓고는 옆에 있는 대야에서 수건을 꺼내 두 손을 닦았다.그제야 그는 마하성에게 앉으라고 손짓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이렇게 급하게 날 만나러 오다니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거야?”마하성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큰일이 일어나긴 했어.”“설은아가 인도상회 샤르마 커한테 맞아서 입원했다는 소식 못 들었어?”“얼마 전에 하현이 진주희를 데리고 무성호텔로 쳐들어왔대.”“그들은 브라흐마 샤주한테서 오십억을 가져갔을 뿐만 아니라.”“차성도는 얼굴을 맞았고 브라흐마 샤주는 사지를 총에 맞았대.”마하성은 막힘없이 자초지종을 말했다.“용천오, 이 과정에서 차성도는 이미 당신을 언급했고 당신과 브라흐마 아부가 의형제라는 사실도 말했대.”“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언제 당신한테 불똥이 튈 줄 몰라서 이렇게 달려왔지.”“미리 준비를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아니면 그냥 바로 하현 그놈을 없애버릴까?”“인도상회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당했어?”용천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지난 몇 년 동안 우리 무성에서 순풍에 돛 단 듯이 다니더니 이제는 호랑이의 앞니가 많이 무뎌진 모양이군.”“브라흐마 샤주가 총을 맞고 차성도가 뺨을 맞았으니 브라흐마 아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앞으로 볼거리가 더 흥미진진하겠는데.”마하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용천오, 결국 하현을 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 앞길에 걸리적거릴 거야. 안 그래?”“왜 지금 손을 쓰지 않는 거야?”“사자는 토끼를 잡는데도 전력을 다한다고 하지 않았어?”용천오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아직 밖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지만 용문주 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나고 있을 거야.”“지금 당
용천오와 마하성이 신중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하현은 이미 도끼파 본거지로 돌아왔다.최희정과 설유아는 병원에서 설은아를 간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척이 없는 집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진주희는 하현에게 보이차 한 주전자를 우려 준 뒤 잠시 자리를 떠났다.그런데 얼마 후 한여침이 뭔가에 놀란 사람처럼 달려와 누군가 하현을 뵙기를 청한다고 전했다.하현은 누구인지도 묻지 않고 한여침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했다.그러나 들어오는 사람을 본 순간 하현은 멍한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어르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굳이 이렇게 오지 않고 전화로 하셔도 될 텐데 무슨 일이신지요?”한여침과 함께 들어온 사람은 무성 만 씨 가문 만진해였다.그는 말끔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용머리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보아하니 기운은 넘쳐 보였다.하현이 그의 고질병을 치료한 뒤 완전히 몸이 나아진 것임이 분명했다.만진해는 사양하지 않고 하현의 맞은편에 앉으며 미소를 띠었다.“하현, 우리 사이에 그렇게 예의 차릴 거 없어.”“내가 오늘 여기 온 건 두 가지 일 때문일세.”하현은 직접 찻주전자를 들어 공손하게 만진해의 잔을 채우며 미소로 답했다.“말씀하십시오.”“첫째, 우리 만 씨 가문의 골칫덩이 만천기 말이야.”“자네한테 성의를 표하기 위해 내가 내 손으로 그의 남은 손발을 부러뜨렸어. 아마 반 년 동안은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거야.”“또 다른 하나는 자선병원 지분 50% 말일세.”“간단히 말해 지금부터 자선병원은 자네 마음대로 처리하게.”만진해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주식양도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하현이 거절할 틈도 없이 만진해는 입가에 미소를 드리우며 말했다.“제발 거절하지 말아주시게. 이건 내 감사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사과의 표시이기도 하네.”“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네가 무성에서 자네 이름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걸세.”“그렇게 해야만 자네가 날 도와줄 수가 있
”아, 그렇게 된 거군요.”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만진해가 말한 용문대회에 그토록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줄은 몰랐다.말하자면 용문의 일인자를 가르는 무술 대회였던 것이다.그러나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어르신, 제가 어르신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가 명예를 거머쥐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그래서 이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하현이 참여하지 않을 뜻을 내비치자 만진해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했다.“하현, 사실 난 자네가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네.”“네?”하현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그런 자리는 자기 한 사람 더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자기 하나 빠진다고 해서 뭐 하나 모자라지 않는다.자기가 꼭 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자기 눈앞에 놓인 일도 이미 충분해서 하현은 정말로 그 일에 관심이 없었다.“제가 들은 바로는 지금 용문 문주, 용인서가 위독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더군.”“그가 죽으면 용문, 용 씨 가문은 혹독한 내홍을 겪을 거야.”“이럴 때는 대세를 장악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이 필요해.”“그렇지 않으면 대하에서 용문의 지위로 볼 때 용문이 혼란을 겪으면 대하도 큰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그렇게 되면 하현 자네도 용문 집법당 당주로서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하현은 자신이 집법당 당주라는 사실을 만진해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고 그저 걱정스러운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정말입니까?”“정말로 용인서가 위독합니까?”“그가 정말 위독하다구요? 농담하는 거 아니시구요?”만진해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농담이 아닐세. 루돌프 그놈이 정말로 무성까지 내 병을 돌보기 위해 온 줄 아는가?”“나는 핑계일 뿐이야.”“영지루가 루돌프를 데리고 무성에 온 것은 용인서 때문이었어.”“안타깝게도 용인서는 이미 고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거야. 그가 걸린
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저는 정말로 용문대회는 관심이 없습니다. 용문주 자리에도 관심 없구요.”“자네가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란 건 내가 잘 아네.”“하지만 대장부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용문이 어지러우면 이 바닥도 어지러워지고 나아가 나라도 어지러워진다네.”“소인배들이 우리 대하를 어지럽히는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는가?”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만진해의 말에 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잠시 후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어르신,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렵네요. 이렇게 된 이상 참가하지 않는 게 오히려 소인배의 짓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구체적으로 어디서 지원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그럴 필요없네.”만진해는 직접 지원서를 가져온 것이었다.하현은 그 위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만진해는 빙그레 웃으며 하현에게 지원서를 건넸다.“여기 서명만 하면 되네.”“참, 내일이 무성지구 시전이고 장소는 무성 체육관이야. 절대 놓쳐서는 안 되네.”하현은 만진해가 이미 준비해 온 지원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뭔가 함정에 빠진 기분이 되었다.하지만 이미 얘기가 끝난 것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서명을 마치며 하현은 마침 다른 일이 생각났다.“참, 어르신. 오늘 오후에 인도인을 좀 손봐 주었습니다.”“그게 이번 출전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겠죠?”만진해는 찻잔을 들려다가 손을 살짝 떨었다.“인도인? 어느 인도인?”무성에서 인도인의 위세는 작지 않았다.그만큼 무서운 인물도 많았다.그렇지 않았더라면 만진해가 이렇게 긴장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하현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무슨 차성도라고 하던 것 같던데요. 인도상회의 군사 스승이라고 했어요.”“그 외에도 브라흐마 샤주라는 놈도 있었구요.”“차성도의 뺨을 몇 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