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전 소주?”“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말자고?”하구천은 하현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하현, 당신 말하는 본새를 보니 우리가 서로 말이 통하긴 쉽지 않겠군.”“그렇지만 당신은 이번에 하구봉을 데리고 천 리를 넘어 섬나라로 갔어. 십 년 전 일의 주범을 찾으려는 문주를 도와주려고 그랬을 거야.”“그리고 나서 당신은 항성을 어지럽히려던 이걸윤을 처리했어...”“간단히 말해 하현 당신은 그동안 항성과 도성의 수많은 일에 관여해 왔어.”“당신이 한 모든 일은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했고 그 파장도 적지 않았어.”“그래서 난 방금 당신을 보고 나서 결정했어. 이 순간부터 이 구역의 모든 사람들은 당신을 귀빈으로 모시게 될 거야.”“아무도 당신을 귀찮게 하지 못할 거라고.”“당신이 24시간 안에...”하구천은 말을 하면서 손목의 시계를 가까이 들어 올리며 음산한 미소를 떠올렸다.“아, 내 정신 좀 봐. 이제 열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군.”“당신이 열두 시간 안에 출국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이 진행될 거야.”“나의 관대함에 감사할 필요는 없어. 난 항도 하 씨 가문 소주야. 이 정도 도량은 있어야지.”하구천은 말을 마치며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고 곧이어 누군가가 샴페인 두 잔을 들고 왔다.“자, 하현. 당신의 앞날이 순조롭길 바라...”“대구로 돌아간 후 사업도 가정사도 모두 잘 풀리길 바랄게...”하구천이 손에 든 샴페인을 하현에게 건네며 건배를 청했다.하현은 하구천의 행동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샴페인 잔을 받아들고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이 샴페인을 마시지 않으면?”“그럼 날 어떻게 상대할 거야?”“상대?”하구천이 피식하며 입을 열었다.“상대랄 것까지야 뭐 있겠어? 하현, 당신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난 항상 규칙대로 행동할 뿐이야.”“누군가 내 체면을 세워 준다면 나도 반드시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지.”“하지
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이 한 잔이 수십만 원은 할 텐데 이렇게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 안 그래?”“지금 술 얘기할 때야?”하구봉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방금 내가 소식을 들었는데 말이야!”“어젯밤 노부인이 당신을 24시간 안에 출국시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대!”“이제 노부인이 정한 시간까지는 열두 시간 정도 남았어!”“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여기까지 말하던 하구봉의 얼굴빛은 더욱더 낭패스러워졌다.하현은 오히려 이 상황이 흥미로운 듯했다.“만약 내가 떠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천도가 나서겠지!”“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 노부인 휘하의 천하 제일 검객인 천도가 당신의 저승길을 배웅하겠지. 천도는 문주의 실력을 훨씬 능가하는 전설의 신이야!”“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이 스스로 여길 떠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배웅을 받고 죽은 채로 떠나게 된다는 거야.”“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길을 걷고 있을 거라고.”“천도?”하현은 웃으며 손을 뻗어 하구봉의 어깨를 툭 쳤다.“나 대신 이 소식도 좀 전해줘.”“천도인지 만도인지가 날 처단하러 온다면 좀 빨리 서둘러서 오라고 말이야.”“오늘 밤 난 다른 일이 있어서 그를 상대할 시간이 없거든.”...5분 후 달리는 도요타 센추리 안.하구천은 예의 평정심을 되찾은 얼굴이었다.오히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허민설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하 소주, 하구봉은 항상 야심이 많았어. 그렇지 않았다면 어젯밤에 천 리를 마다않고 달려 엄청난 공을 세우려 하지도 않았을 거야.”“조심해야 해.”“지금 당장 하수진을 상대해야 하는데 뜻하지 않게 하구봉에게 칼을 맞을지도 몰라.”“게다가 오늘 하현과 당신이 맞붙는 걸 보고 하구봉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몰라.”하구천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하구봉이 상석에 앉고 싶어 하는 건 확실해. 그런 소심함으로 누굴 속일 수 있겠어?”“한눈에 다 알아봤다니까.”
하구천이 떠난 그 시각, 하현은 최영하가 준비해 놓은 차에 타고 있었다.그는 우선 잠시 쉴 곳을 찾은 다음 한숨 돌리면서 노부인의 출국 명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하지만 차의 시동이 걸리자마자 하구봉이 헐레벌떡 달려와 하현이 탄 차를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하현, 아버지가 당신을 찾아.”하현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왜 날 찾으시는 거지?”하현은 하문천과 몇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서로 떨떠름하고 달갑지 않은 사이였다.게다가 지금 굳이 두 사람이 만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아버지께서 어젯밤 일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하셔.”“그리고 당신한테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물어보려고 찾으시는 거야.”“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실 거야.”“그래서 지금 꼭 만났으면 하셔...”하구봉의 표정에 다소 떨떠름해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에게 이렇게 예의를 차려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구봉의 말을 들은 하현은 오히려 약간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최영하에게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든 하현은 하구봉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30분 후.차량 행렬이 항성 중심부 번화한 곳에 자리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건물 자체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위치가 상당히 좋았다.항성 중심부로 주위는 떠들썩하고 화려했지만 안쪽으로 들어오자 다른 세상처럼 차분하고 안정된 곳이었다.항성 중심부 금싸라기 같은 곳에 이런 땅을 차지하고 저택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하문천의 재력과 능력을 말해주었다.하현은 중심부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는 작은 테라스 위에서 서 있는 하문천을 보았다.상인 기질이 강한 하문천은 당나라 복장으로 말끔하게 갈아입은 뒤 직접 차를 우리고 있었다.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하문천은 돌아서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일어섰다.“하현, 지난번 만났을 땐 내가 실례가 많았어. 부디 괘념치 마시게.
하현의 담담한 얼굴에 아리송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하문천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껄껄 웃었다.“아, 그래. 그렇지!”“내가 잊고 있었군. 그날 노부인도 자네한테 당했었지!”“하구천은 노부인한테 말하면 자네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그렇다면 하구천이 너무 자네를 쉽게 생각하는 거잖아?”“자네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하수진이 자리에 오르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하구천이 오늘 당장 자네를 항성과 도성에서 내쫓고 싶겠지만 보아하니 헛된 꿈을 꾸는 것 같구만.”말을 하면서 하문천은 하현에게 차를 한 잔 더 따라주며 감탄해하는 눈빛을 잊지 않았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농담도 잘 하십니다. 하구천이 노부인에게까지 도움을 청했으니 그래도 체면은 좀 세워 줘야죠.”“다만 어떻게 체면을 세워 줘야 할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허허, 자네한텐 도통 못 당하겠군그래.”하문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지난번 만났을 때 자넨 내 얼굴을 때리더니 이번엔 하구천의 얼굴을 때리는구만.”“자네가 뒤에서 어떤 전략으로 사람들을 움직일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하현은 하문천의 말에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문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르신 한 가지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전 누구의 뺨을 때릴 의도는 단연코 없었습니다.”“내 얼굴을 때리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반격했을 뿐입니다.”“알겠어, 알겠다구!”하문천은 껄껄 웃으며 재빨리 탁자 밑에서 자료 뭉치를 꺼내 하현 앞에 놓았다.“아무리 하늘을 나는 천도라 할지라도 하현 자네 앞에선 기도 못 펼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야.”“나한테 마침 이런 자료들이 있으니 자네가 틈이 나면 뒤적거려 보게. 조심해서 나쁠 거야 뭐 있겠는가?”하현은 자료를 받아들지는 않고 가만히 하문천을 곁눈으로 힐끔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어르신, 천도가 그렇게 무서우십니까? 노부인이 그렇게
하현의 말에 하문천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잠시 후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자네, 그런 농담은 집어치우게.”“나 같은 인물이 어떻게 그런 복잡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문주가 하수진을 상석에 앉히려는 걸 안 이후로 난 이미 여러 번 구봉이에게 말했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오늘 내가 자네를 오라고 한 것도 다른 생각은 없었네.”“난 단지 자네가 항성과 도성에서 하는 일이 순풍에 돛 단 듯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야.”“어쨌든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탄 사이 아닌가?”“안 그런가?”하현은 일어나서 찻잔을 움켜쥐고 손가락을 튕겼다.‘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맞은편에서 멀지 않은 옥상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총구가 나타났다.첨단 장비였기 때문에 멀리서도 얼마든지 대상을 조종할 수 있었다.이 모습을 본 하문천의 안색이 급격히 일그러졌다.하현 앞에서는 절대 뭔가를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자신이 몰래 잠복시켜 둔 저격수들의 정체를 하현에게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서서 하문천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어르신, 이 세상에 바보 천치는 없습니다.”“날 이용하실 수는 있어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꼭 치러야 합니다.”“가만히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먹겠다... 어르신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군요.”하현은 말을 마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하현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하구봉은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하문천과 하현의 만남은 짧았지만 하현은 그 짧은 사이에 하문천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하문천은 힘없이 앉았고 하구봉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이해가 안 돼요.”“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상석을 노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남들이 싸우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
하문천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계속 말을 이었다.“지금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상황은 솔직히 말해서 양측의 싸움이야.”“한쪽은 문주로 대표되는 지금 현재의 실세야. 그들은 현재 항도 하 씨 가문의 가장 많은 자원과 발언권을 장악하고 있지.”“그들은 지금 십 년 전 일을 구실 삼아 하구천을 소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온 힘을 집중시키고 있어.”“그래야 하수진이 상석에 앉을 수 있으니까.”“문주도 그 자리에 몇 년 더 앉을 수 있고 말이야.”“다른 한쪽은 노부인을 필두로 한 장손 일가들이지.”“하구천을 향한 노부인의 애정과 사랑이 끝이 없을 것 같으냐?”“그렇지 않다.”“네 큰아버지도 예전엔 노부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 그런데 왜 넷째가 문주의 자리에 앉았겠느냐?”“지금 하구천이 노부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하구천의 능력과 덕행이 뛰어나서 그런 건 아니야.”“가장 큰 이유는 하구천이 항도 하 씨 가문 장손이기 때문이야.”“넷째는 후사가 없어!”“노부인은 항도 하 씨 가문이 순조롭게 다음 세대로 계승되길 바라는 거야.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항도 하 씨 가문 내부에서 이루어지길 바라지.”“하수진은 항도 하 씨 가문 입장에서 볼 때 남이나 다름없어!”“하현은 항도 하 씨 외부 세력이자 하수진을 상석에 앉히려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를 대표하는 인물이야.”“노부인은 그래서 하현을 24시간 내에 항성과 도성을 떠나라고 한 거야. 하수진의 오른팔을 잘라 하구천의 지위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지.”하구봉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아버지,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하현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어젯밤 직접 목격하지 않았느냐?!”하문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실 어젯밤 일은 아마 문주가 하현을 한 번 시험하기 위해 시킨 일일 거야.”“만약 천 리를 건너 섬나라를 습격하는 간단한 임무도 수행해 낼 수 없다면 하문준의 칼이 될 자격이 없는
”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자.”열변을 토하던 하문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이번에 천 리를 건너가 섬나라를 급습한 일은 비록 문주가 너한테 시킨 일이긴 하지만 너와 호위대의 공이 적지 않아.”“공로를 치적할 때 네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너한테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어.”“그래서 이번 일은 아마도 네가 하현과 함께 주동적으로 움직여야 해.”“만약 그가 너한테 이런 명분을 준다면 넌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게 되겠지.”“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너무 강요하지는 마.”“현재로서는 우리가 문주와 한배를 타기로 했으니 하현과 사이가 틀어지면 좋지 않아. 무슨 뜻인지 알겠니?”하구봉은 하문천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돌아오는 길에 하현과 얘기를 나눴어요.”“하현 말로는 그는 감독일 뿐이고 진정한 공로는 나한테 있다고 했어요.”“그는 이런 작은 공로에는 별로 관심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솔선해서 모든 공로를 나한테 돌린다고 했다구요.”말을 하면서 하구봉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그는 항도 하 씨 가문 호위대를 지휘하고 있었지만 가장 부족한 것이 공로였다.이번 일만 공적에 올려지면 앞으로 누가 덤비든 호위대 책임자 자리는 넘볼 수 없을 것이다.간단히 말해 이번 사건은 하현이 하구봉에게 안정제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하현이 정말 그랬다고? 뜻밖이군.”“다른 말은 없었고?”하문천의 얼굴에 흐뭇한 기색이 역력했다.비록 그는 하현이 쉬운 상대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뜻밖에도 하현이 이렇게 큰 도량과 기량을 겸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보통 사람들은 조그마한 공로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다.하지만 하현은 마치 자신이 한 일을 세상이 잊길 바라는 사람처럼 몸을 낮추었다.하문천은 더욱 환한 미소로 하구봉에게 시선을 던졌다.“기왕 말이 나온 김에 얼른 문주에게 가서 이 일을 분명하게 말해 두거라.”“그러고 난 다음엔
하문천은 냉담한 기색을 띠며 싸늘하게 조카를 바라보았다.“내가 너한테 몇 번이나 말했니?”“큰일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해야 해!”“그런데...”조카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멍청한 놈!”하문천은 욕설을 내뱉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 봐!”조카는 빠르게 핸드폰 앱을 켜서 가장 위에 있는 뉴스를 눌렀다.“항성과 도성의 풍운아,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었던 하현, 천 리를 건너 섬나라로 가서 십 년 전 진범을 체포하다!”제목은 그냥 보통의 뉴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지만 항성과 도성의 현재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제목만 봐도 무슨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릴 정도로 명확하고 충분했다.하구봉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한 공로를 빼앗으려는 거야...”“가장 중요한 내 공로를!”“평생 다시 올까 말까 한 내 공로를!”“감히 이 개자식이 이런 식으로 폭로해서 빼앗아가다니!”하구봉은 펄떡펄떡 뛰며 흥분하기 시작했다.도무지 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는 원래 이 공로로 호위대 책임자의 자리를 굳건히 하려고 했고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대의 문주가 될 기회도 엿보려고 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지금 이 순간 하구봉은 이 뉴스를 보도한 자들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맞은편에서 태블릿 PC를 들고 있던 하문천의 조카는 사색이 되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구봉 도련님!”“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하구천이 이 일을 떠벌린 것 같습니다!”“항성일보에 직접 연락해 자세한 내용을 알려줬다고 해요.”“그 과정을 봤는데 세세한 것까지 아주 정확하고 치밀해서 마치 현장을 직접 본 사람 같았어요.”“간단히 말해 이 일은 하현의 공로라는 걸 조금도 숨기지 않았어요!”“탕!”하구봉은 태블릿 PC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이를 갈았다.“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
하현의 말을 들은 황보동은 미간에 깊게 팬 주름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하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유심히 보려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아줌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아주머니, 앞으로 옷을 입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티셔츠를 거꾸로 돌려서 입으면 계속 목을 조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숨쉬기도 힘들고 잠도 푹 잘 수 없습니다!”“그것만 주의하면 십중팔구는 아무 어려움 없이 푹 잘 수 있을 거예요.”“물론 계란은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하현의 말을 듣고 온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모두 어리둥절해져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잠시 후 엷은 미소가 얼굴에 번지기 시작했다.가만히 눈을 들어 아줌마를 보니 역시나 옷을 거꾸로 입고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목을 조르고 있으니 당연히 호흡이 곤란해지고 밤에 잠도 잘 수 없었을 것이다.황보동은 이 아줌마보다 하현이 더욱 궁금해졌다.황보동은 일단 아줌마에게 부적을 써서 건네주었고 이윽고 두 번째 손님이 다가왔다.두 번째 손님은 팔십이 넘은 노인이었는데 머리가 좀 헝클어져 있었고 미간에 약간 거뭇거뭇한 빛이 돌았다.몸에는 약취가 풍겨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황보동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나침반을 꺼내 잠시 바라본 뒤 담담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자네, 이분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 보게.”하현은 노인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 노인은 아마 며칠 전에 외출할 때 개똥을 밟았고 실수로 또 시궁창에 빠졌을 겁니다.”“그로부터 며칠 동안 운이 없게도 외출할 때마다 크고 작은 재해를 입었습니다.”“물만 마셔도 이가 시릴 지경일 겁니다.”“요즘 아주 운이 나쁜 일 연속이었을 거예요.”“해결책은 간단합니다.”“집으로 돌아가 목욕재계하고 사흘 밤낮으로 쉬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그리고 앞으로 외출할 때는 하늘만 쳐다보지 마세요.”“척추에 문제가 있으면 의사를 찾아가 물리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병이
”제가 사기꾼일까 봐 집복당의 이름을 빌려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셨던 거죠.”“그래서 이천억이란 금액을 불러 절 놀래켰고요.”“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니 안심할 수 있는 거죠.”“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없다면 대사님의 손녀를 구하려고 할 테고요. 혹시라도 제가 구한다면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다는 얘기가 되니 집복당의 새 주인이 되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거죠.”“한마디로 황보대사님이 매우 고심하고 계시다는 뜻이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결국 대사님 같은 분은 스스로 최소한의 지켜야 할 도리 같은 게 있는 겁니다. 돈 때문에 그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 거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황보동을 바라보았다.풍수를 보러 온 십여 명의 손님들이 하현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어쩐지 평소 붙임성 좋고 환하게 사람들을 대하던 황보대사가 이상하리만큼 싸늘하게 대하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로군!하현의 말을 듣고 황보대사의 의도를 간파한 간민효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소를 떠올렸다.그녀도 분명 황보동의 인품을 믿고 싶었던 게 틀림없었다.“이보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도 능력이지만 풍수지리사는 입만 번지르르하다고 되는 게 아니야. 진짜 실력이 좋아야 하는 거야.”“만약 자네가 입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라면 남을 살리고 도와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고 그 입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도 잃을 수가 있어.”황보동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내 일 방해하지 말고 어서 썩 꺼져!”말을 하면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나침반을 내려놓고 붉은 종이를 꺼내 부적을 쓰려고 했다.“제 추측이 맞다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대사님은 이 아줌마가 악습에 깊이 마음을 다쳤다고 판단해 이 부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할 겁니다.”나침반을 든 황보동의 손이 살짝 흔들렸다.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하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현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황보동은 냉담한 눈빛으로 얼굴도 들지 않고 매몰차게 말했다.“우리 집복당은 시장에서 파는 허드레 물건이 아니야. 이천억! 다른 가격으로는 안 팔아!”“어때? 살 거야? 말 거야?”차갑고 매마른 말투였다.하현은 눈동자를 살짝 움츠렸다.상대는 분명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간민효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황보대사님, 우리 장사꾼들은 신용을 중시합니다.”“정직이 천하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어제 분명 이백억에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왜 갑자기 이천억이 된 거죠?”“전 이미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해 이곳에 대한 평가를 꼼꼼히 진행했어요.”“이곳은 많아 봐야 백오십억 정도의 값어치가 있어요. 손볼 곳도 너무 많고요.”“어르신이라 아주 후하게 쳐서 이백억을 제시한 거예요.”“제 호의를 무시한 채 이렇게 얼토당토않는 가격을 제시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지 않습니까?”간민효는 돈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버릴 만큼 많지는 않았다.특히 황보동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이백억은 어제 가격이고.”“이천억은 오늘 가격이야.”“집복당은 우리 황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건물이야. 내가 원하는 만큼 받아야 팔 수 있어.”“당신이 아무리 부동산 전문가를 대동해 감정을 했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물론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사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내 손녀만 치료해 준다면 공짜로도 줄 수도 있어.”황보동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면서 뭔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들어온 아줌마에게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아줌마는 최근 밤마다 악몽을 꾸고 낮에는 숨이 턱턱 막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그녀의 설명을 들은 황보동은 나침반을 꺼내 빙빙 돌리며 계속 미간을 찌푸렸다.황보동이 자신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간민효도 화가 나기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저릿해져 와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흥!”난처해하는 하현의 모습을 보고 간민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집복당은 금정에서 이미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때 금정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이었어.”“옛날에는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다들 어마어마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내가 어릴 때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뭔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안타깝게도 지금 집복당의 주인인 황보동은 한동안 가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고 과학의 길만 좇았지.”“그러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아무도 이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자 다시 돌아왔어.”“하지만 그의 풍수지리술은 그의 조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어서 결국 점점 몰락하게 되었지.”“10여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대부분이 이 근처 오래된 이웃뿐이야.”“첫째는 가까이 있으니까 오는 것이고 둘째는 가끔 좋은 날과 길일을 보는 데는 아주 뛰어난 풍수지리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야. 셋째는 아주 싸다는 매력 때문이지.”“다만 이렇게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아서 아마 결국 사라질 거야.”“참, 반년 전 황보동의 유일한 손녀이자 집복당의 9대 계승자, 황보정이 갑자기 두 눈을 잃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 뭐야.”“황보정은 집복당을 계승할 만큼 풍수지리사의 자질이 뛰어났어. 그래서 집복당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금정 일부 명문가들도 관심을 가졌고.”“그런데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출사를 했을 때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어.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어떤 원인도 찾을 수가 없었지.”“집복당 일가가 여러 해 동안 천기를 누설한 결과라는 말도 있어.”“황보동도 풍수지리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대.”“그래서 지금 황보동도 많이 낙담한 상태야.”“이 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