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하구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고 그 자리에서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하, 하구천?!”최영하도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틀림없이 하구천이 맞아.”“하구천이 여길 왜 왔어?”하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가 뭐 때문에 왔든 당신도 상석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당당히 하구천한테 말할 수 있겠군.”“잘 됐어. 당신의 그 혈기를 보여줘.”“만약 하구천이 상석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당신이 그에게 말한다면 아마 나도 당신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구봉의 표정이 일순 결연하게 변하더니 잠시 후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봐, 어서 가서 하 소주를 영접해!”하 소주라는 세 글자가 하구봉의 입에서 나오자 하현의 눈에서는 비아냥거리는 빛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방금까지 하구봉은 하구천이 상석에 오를 자격이 못 된다는 둥 호기롭게 큰소리쳤다.하지만 하구천이라는 세 글자는 여전히 항도 하 씨 가문 2세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큰 바위였다.당장이라도 하구천을 칠 것 같았던 하구봉이 중요한 순간에 겁을 먹지 않았는가?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소 민망해하는 듯한 하구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비록 하구봉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뗐지만 하구천이 나타난 것을 보자 불안하게 조여오는 심정은 하구봉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어찌 되었건 하구봉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상석에 오르고 싶었고 하구천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나쁘지 않은 전개였다.그러나 지금은 절대 아니다.하구봉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구봉아, 방금 천 리를 건너 섬나라에 가서 문주를 대신해 십 년 전 그 일의 주범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항도 하 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 널 능가할 수 있는 공로는 없었을 거야.”“정말 기쁘게 생각해.”지방시 실크 양복을 입은 하구천은 화려한 옷
”아니야. 하 소주,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하구봉의 입꼬리가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잠시 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당신은 항도 하 씨 가문 소주야. 당신은 언제든지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2세대들을 통솔할 수 있어.”“내가 여기 일 다 처리되고 나면 직접 가서 보고하려고 생각했었어.”“그런데 하 소주가 이렇게 빨리 소식을 듣고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지 뭐야.”“이렇게 하자고. 문주한테 우선 이 일을 보고한 후에 내가 직접 가서 자세히 설명하는 걸로, 어때?”하구봉이 의도한 듯 무심코 문주라는 말을 꺼내자 하구천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감돌았다.그는 앞으로 나와 하구봉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구봉아, 잊지 마.”“난 너의 소주일 뿐만 아니라 너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는 걸.”“이번엔 내가 소식이 빨랐던 게 아니라 네가 보안을 잘 지킨 거야.”“섬나라에 가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데 왜 사촌 형인 나한테 미리 말을 하지 않았어?”“내가 너와 함께 갈 수는 없어도 네 신변 보호를 위해서 적어도 고수 몇 명은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안 그래?”“혹시 구봉이 너 날 경계하고 있는 거야?”“네가 한 공로를 내가 가로채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왜냐하면 너도 원하기 때문에? 저 높은 자리를 말이야...”‘저 높은 자리'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하구천의 표정은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하구봉은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하현 앞에서는 상석을 노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 일을 직접 거론하고 있는 하구천 앞에서는 절대로 하현 앞에서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보아하니 하현도 지금 네 곁에 서 있군.”“만약 네가 상석에 오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왜 하현이 네 곁에 서 있겠어?”“어쨌든 하현이 이번에 항성과 도성에 온 것은 내 자리를 노린 것이니까.”하구봉의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을 때 하구천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하현
하현이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무릎이라도 꿇어 봐!”“무릎을 꿇으면 내가 한번 생각해 볼게. 당신 체면을 세워 줄지 말지, 어때?”하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장내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하구봉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으나 자신이 지금 끼어드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닌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하구천과 하현 둘 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평온한 얼굴이었다.하지만 하현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다 잘못하면 두 사람의 관계가 순식간에 칼끝 위에 서게 되는 게 문제였다.하구천을 도발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말해야 하나?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하지?!하구봉은 비록 하현과 접촉한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이제야 뭔가 알 것 같았다.하현은 하구천 같은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간단히 말해서 만약 일이 계속 진행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 두 사람은 분명 영영 사이가 틀어질 것이다.무리들 중 끝에 서 있던 하민석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그는 하현이 하구천 앞에서 이렇게 거리낌 없이 아무 말이나 지껄일 줄은 정말 몰랐다.요즘 항성과 도성에서 감히 하구천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단연코 하현밖에 없을 것이다.“아하하하!”“그래?”“그게 당신이 말하는 조건이야?”곽영준, 하민석 등이 깜짝 놀라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인 것과는 달리 하구천은 오히려 어이없는 듯 파안대소를 보였다.아마도 하구천은 하현이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한 것 같았다.“안타깝게도 그런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어.”“무릎 꿇는 게 별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하현 당신이 날 무릎 꿇게 할 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하지만 어떻든 간에 난 당신한테 조금도 악의를 가져본 적이 없어.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우리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은 당신이 원래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되는 곳에 어쩌다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야.”“
”뭐? 전 소주?”“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말자고?”하구천은 하현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하현, 당신 말하는 본새를 보니 우리가 서로 말이 통하긴 쉽지 않겠군.”“그렇지만 당신은 이번에 하구봉을 데리고 천 리를 넘어 섬나라로 갔어. 십 년 전 일의 주범을 찾으려는 문주를 도와주려고 그랬을 거야.”“그리고 나서 당신은 항성을 어지럽히려던 이걸윤을 처리했어...”“간단히 말해 하현 당신은 그동안 항성과 도성의 수많은 일에 관여해 왔어.”“당신이 한 모든 일은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했고 그 파장도 적지 않았어.”“그래서 난 방금 당신을 보고 나서 결정했어. 이 순간부터 이 구역의 모든 사람들은 당신을 귀빈으로 모시게 될 거야.”“아무도 당신을 귀찮게 하지 못할 거라고.”“당신이 24시간 안에...”하구천은 말을 하면서 손목의 시계를 가까이 들어 올리며 음산한 미소를 떠올렸다.“아, 내 정신 좀 봐. 이제 열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군.”“당신이 열두 시간 안에 출국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이 진행될 거야.”“나의 관대함에 감사할 필요는 없어. 난 항도 하 씨 가문 소주야. 이 정도 도량은 있어야지.”하구천은 말을 마치며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고 곧이어 누군가가 샴페인 두 잔을 들고 왔다.“자, 하현. 당신의 앞날이 순조롭길 바라...”“대구로 돌아간 후 사업도 가정사도 모두 잘 풀리길 바랄게...”하구천이 손에 든 샴페인을 하현에게 건네며 건배를 청했다.하현은 하구천의 행동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샴페인 잔을 받아들고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이 샴페인을 마시지 않으면?”“그럼 날 어떻게 상대할 거야?”“상대?”하구천이 피식하며 입을 열었다.“상대랄 것까지야 뭐 있겠어? 하현, 당신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난 항상 규칙대로 행동할 뿐이야.”“누군가 내 체면을 세워 준다면 나도 반드시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지.”“하지
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이 한 잔이 수십만 원은 할 텐데 이렇게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 안 그래?”“지금 술 얘기할 때야?”하구봉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방금 내가 소식을 들었는데 말이야!”“어젯밤 노부인이 당신을 24시간 안에 출국시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대!”“이제 노부인이 정한 시간까지는 열두 시간 정도 남았어!”“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여기까지 말하던 하구봉의 얼굴빛은 더욱더 낭패스러워졌다.하현은 오히려 이 상황이 흥미로운 듯했다.“만약 내가 떠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천도가 나서겠지!”“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 노부인 휘하의 천하 제일 검객인 천도가 당신의 저승길을 배웅하겠지. 천도는 문주의 실력을 훨씬 능가하는 전설의 신이야!”“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이 스스로 여길 떠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배웅을 받고 죽은 채로 떠나게 된다는 거야.”“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길을 걷고 있을 거라고.”“천도?”하현은 웃으며 손을 뻗어 하구봉의 어깨를 툭 쳤다.“나 대신 이 소식도 좀 전해줘.”“천도인지 만도인지가 날 처단하러 온다면 좀 빨리 서둘러서 오라고 말이야.”“오늘 밤 난 다른 일이 있어서 그를 상대할 시간이 없거든.”...5분 후 달리는 도요타 센추리 안.하구천은 예의 평정심을 되찾은 얼굴이었다.오히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허민설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하 소주, 하구봉은 항상 야심이 많았어. 그렇지 않았다면 어젯밤에 천 리를 마다않고 달려 엄청난 공을 세우려 하지도 않았을 거야.”“조심해야 해.”“지금 당장 하수진을 상대해야 하는데 뜻하지 않게 하구봉에게 칼을 맞을지도 몰라.”“게다가 오늘 하현과 당신이 맞붙는 걸 보고 하구봉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몰라.”하구천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하구봉이 상석에 앉고 싶어 하는 건 확실해. 그런 소심함으로 누굴 속일 수 있겠어?”“한눈에 다 알아봤다니까.”
하구천이 떠난 그 시각, 하현은 최영하가 준비해 놓은 차에 타고 있었다.그는 우선 잠시 쉴 곳을 찾은 다음 한숨 돌리면서 노부인의 출국 명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하지만 차의 시동이 걸리자마자 하구봉이 헐레벌떡 달려와 하현이 탄 차를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하현, 아버지가 당신을 찾아.”하현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왜 날 찾으시는 거지?”하현은 하문천과 몇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서로 떨떠름하고 달갑지 않은 사이였다.게다가 지금 굳이 두 사람이 만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아버지께서 어젯밤 일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하셔.”“그리고 당신한테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물어보려고 찾으시는 거야.”“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실 거야.”“그래서 지금 꼭 만났으면 하셔...”하구봉의 표정에 다소 떨떠름해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에게 이렇게 예의를 차려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구봉의 말을 들은 하현은 오히려 약간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최영하에게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든 하현은 하구봉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30분 후.차량 행렬이 항성 중심부 번화한 곳에 자리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건물 자체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위치가 상당히 좋았다.항성 중심부로 주위는 떠들썩하고 화려했지만 안쪽으로 들어오자 다른 세상처럼 차분하고 안정된 곳이었다.항성 중심부 금싸라기 같은 곳에 이런 땅을 차지하고 저택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하문천의 재력과 능력을 말해주었다.하현은 중심부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는 작은 테라스 위에서 서 있는 하문천을 보았다.상인 기질이 강한 하문천은 당나라 복장으로 말끔하게 갈아입은 뒤 직접 차를 우리고 있었다.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하문천은 돌아서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일어섰다.“하현, 지난번 만났을 땐 내가 실례가 많았어. 부디 괘념치 마시게.
하현의 담담한 얼굴에 아리송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하문천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껄껄 웃었다.“아, 그래. 그렇지!”“내가 잊고 있었군. 그날 노부인도 자네한테 당했었지!”“하구천은 노부인한테 말하면 자네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그렇다면 하구천이 너무 자네를 쉽게 생각하는 거잖아?”“자네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하수진이 자리에 오르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하구천이 오늘 당장 자네를 항성과 도성에서 내쫓고 싶겠지만 보아하니 헛된 꿈을 꾸는 것 같구만.”말을 하면서 하문천은 하현에게 차를 한 잔 더 따라주며 감탄해하는 눈빛을 잊지 않았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농담도 잘 하십니다. 하구천이 노부인에게까지 도움을 청했으니 그래도 체면은 좀 세워 줘야죠.”“다만 어떻게 체면을 세워 줘야 할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허허, 자네한텐 도통 못 당하겠군그래.”하문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지난번 만났을 때 자넨 내 얼굴을 때리더니 이번엔 하구천의 얼굴을 때리는구만.”“자네가 뒤에서 어떤 전략으로 사람들을 움직일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하현은 하문천의 말에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문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르신 한 가지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전 누구의 뺨을 때릴 의도는 단연코 없었습니다.”“내 얼굴을 때리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반격했을 뿐입니다.”“알겠어, 알겠다구!”하문천은 껄껄 웃으며 재빨리 탁자 밑에서 자료 뭉치를 꺼내 하현 앞에 놓았다.“아무리 하늘을 나는 천도라 할지라도 하현 자네 앞에선 기도 못 펼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야.”“나한테 마침 이런 자료들이 있으니 자네가 틈이 나면 뒤적거려 보게. 조심해서 나쁠 거야 뭐 있겠는가?”하현은 자료를 받아들지는 않고 가만히 하문천을 곁눈으로 힐끔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어르신, 천도가 그렇게 무서우십니까? 노부인이 그렇게
하현의 말에 하문천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잠시 후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자네, 그런 농담은 집어치우게.”“나 같은 인물이 어떻게 그런 복잡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문주가 하수진을 상석에 앉히려는 걸 안 이후로 난 이미 여러 번 구봉이에게 말했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오늘 내가 자네를 오라고 한 것도 다른 생각은 없었네.”“난 단지 자네가 항성과 도성에서 하는 일이 순풍에 돛 단 듯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야.”“어쨌든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탄 사이 아닌가?”“안 그런가?”하현은 일어나서 찻잔을 움켜쥐고 손가락을 튕겼다.‘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맞은편에서 멀지 않은 옥상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총구가 나타났다.첨단 장비였기 때문에 멀리서도 얼마든지 대상을 조종할 수 있었다.이 모습을 본 하문천의 안색이 급격히 일그러졌다.하현 앞에서는 절대 뭔가를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자신이 몰래 잠복시켜 둔 저격수들의 정체를 하현에게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서서 하문천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어르신, 이 세상에 바보 천치는 없습니다.”“날 이용하실 수는 있어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꼭 치러야 합니다.”“가만히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먹겠다... 어르신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군요.”하현은 말을 마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하현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하구봉은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하문천과 하현의 만남은 짧았지만 하현은 그 짧은 사이에 하문천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하문천은 힘없이 앉았고 하구봉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이해가 안 돼요.”“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상석을 노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남들이 싸우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