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구봉은 눈을 반짝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하현, 내가 상석에 오르면 항성과 도성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어.”“노국이든 섬나라든 아무도 항성과 도성에 와서 함부로 할 수 없을 거야. 장담해.”“이렇게 된다면 내가 상석에 올라갈 기회도 있을까?”하구봉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하현이 입을 열었다.“도대체 당신의 이 용기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지?”“하구천이 상석에 올랐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될 거야.”하구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렸다.“나와 하구천은 달라.”“하구천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모략을 짜는 거야!”“그는 모든 것이 자기 손아귀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그걸 위해선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지!”“외부의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항도 하 씨 가문 내부에서 그를 반대하는 소리도 쉽게 억누를 수 있기 때문이야.”“그가 항도 하 씨 가문에 집권하면 항도 하 씨 가문뿐만 아니라 항성과 도성도 불안정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외부에서 빌려온 힘에는 결국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하지만 나의 이념은 하구천과는 달라.”“내가 만약 상석에 오른다면 섣불리 가문 전체를 장악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해나갈 생각이야.”“아마도 속도는 느리겠지만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가문을 끌고 나갈 수가 있지...”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생각도 좋고 방향성도 좋은데 당신은 운이 좀 좋지 않다고나 할까?”“그 길에서 하수진이 당신보다는 훨씬 빠르고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야.”“문주가 지지하는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지.”하구봉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하현, 그런 말 하면 재미없어...”“하수진도 나쁘지 않지만 결국 하수진은 딸이라는 걸 잊지 마.”“하수진이 잠시 상석에 오른다고 해도 문주의 미봉책에 불과해!”“문주께서 훗날 후사를 보지 않는 한.”“나중에 항도 하 씨 가문의 권력 이양에는 큰
순간 하구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고 그 자리에서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하, 하구천?!”최영하도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틀림없이 하구천이 맞아.”“하구천이 여길 왜 왔어?”하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가 뭐 때문에 왔든 당신도 상석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당당히 하구천한테 말할 수 있겠군.”“잘 됐어. 당신의 그 혈기를 보여줘.”“만약 하구천이 상석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당신이 그에게 말한다면 아마 나도 당신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구봉의 표정이 일순 결연하게 변하더니 잠시 후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봐, 어서 가서 하 소주를 영접해!”하 소주라는 세 글자가 하구봉의 입에서 나오자 하현의 눈에서는 비아냥거리는 빛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방금까지 하구봉은 하구천이 상석에 오를 자격이 못 된다는 둥 호기롭게 큰소리쳤다.하지만 하구천이라는 세 글자는 여전히 항도 하 씨 가문 2세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큰 바위였다.당장이라도 하구천을 칠 것 같았던 하구봉이 중요한 순간에 겁을 먹지 않았는가?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소 민망해하는 듯한 하구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비록 하구봉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뗐지만 하구천이 나타난 것을 보자 불안하게 조여오는 심정은 하구봉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어찌 되었건 하구봉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상석에 오르고 싶었고 하구천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나쁘지 않은 전개였다.그러나 지금은 절대 아니다.하구봉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구봉아, 방금 천 리를 건너 섬나라에 가서 문주를 대신해 십 년 전 그 일의 주범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항도 하 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 널 능가할 수 있는 공로는 없었을 거야.”“정말 기쁘게 생각해.”지방시 실크 양복을 입은 하구천은 화려한 옷
”아니야. 하 소주,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하구봉의 입꼬리가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잠시 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당신은 항도 하 씨 가문 소주야. 당신은 언제든지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2세대들을 통솔할 수 있어.”“내가 여기 일 다 처리되고 나면 직접 가서 보고하려고 생각했었어.”“그런데 하 소주가 이렇게 빨리 소식을 듣고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지 뭐야.”“이렇게 하자고. 문주한테 우선 이 일을 보고한 후에 내가 직접 가서 자세히 설명하는 걸로, 어때?”하구봉이 의도한 듯 무심코 문주라는 말을 꺼내자 하구천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감돌았다.그는 앞으로 나와 하구봉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구봉아, 잊지 마.”“난 너의 소주일 뿐만 아니라 너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는 걸.”“이번엔 내가 소식이 빨랐던 게 아니라 네가 보안을 잘 지킨 거야.”“섬나라에 가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데 왜 사촌 형인 나한테 미리 말을 하지 않았어?”“내가 너와 함께 갈 수는 없어도 네 신변 보호를 위해서 적어도 고수 몇 명은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안 그래?”“혹시 구봉이 너 날 경계하고 있는 거야?”“네가 한 공로를 내가 가로채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왜냐하면 너도 원하기 때문에? 저 높은 자리를 말이야...”‘저 높은 자리'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하구천의 표정은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하구봉은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하현 앞에서는 상석을 노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 일을 직접 거론하고 있는 하구천 앞에서는 절대로 하현 앞에서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보아하니 하현도 지금 네 곁에 서 있군.”“만약 네가 상석에 오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왜 하현이 네 곁에 서 있겠어?”“어쨌든 하현이 이번에 항성과 도성에 온 것은 내 자리를 노린 것이니까.”하구봉의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을 때 하구천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하현
하현이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무릎이라도 꿇어 봐!”“무릎을 꿇으면 내가 한번 생각해 볼게. 당신 체면을 세워 줄지 말지, 어때?”하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장내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하구봉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으나 자신이 지금 끼어드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닌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하구천과 하현 둘 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평온한 얼굴이었다.하지만 하현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다 잘못하면 두 사람의 관계가 순식간에 칼끝 위에 서게 되는 게 문제였다.하구천을 도발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말해야 하나?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하지?!하구봉은 비록 하현과 접촉한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이제야 뭔가 알 것 같았다.하현은 하구천 같은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간단히 말해서 만약 일이 계속 진행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 두 사람은 분명 영영 사이가 틀어질 것이다.무리들 중 끝에 서 있던 하민석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그는 하현이 하구천 앞에서 이렇게 거리낌 없이 아무 말이나 지껄일 줄은 정말 몰랐다.요즘 항성과 도성에서 감히 하구천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단연코 하현밖에 없을 것이다.“아하하하!”“그래?”“그게 당신이 말하는 조건이야?”곽영준, 하민석 등이 깜짝 놀라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인 것과는 달리 하구천은 오히려 어이없는 듯 파안대소를 보였다.아마도 하구천은 하현이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한 것 같았다.“안타깝게도 그런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어.”“무릎 꿇는 게 별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하현 당신이 날 무릎 꿇게 할 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하지만 어떻든 간에 난 당신한테 조금도 악의를 가져본 적이 없어.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우리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은 당신이 원래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되는 곳에 어쩌다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야.”“
”뭐? 전 소주?”“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말자고?”하구천은 하현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하현, 당신 말하는 본새를 보니 우리가 서로 말이 통하긴 쉽지 않겠군.”“그렇지만 당신은 이번에 하구봉을 데리고 천 리를 넘어 섬나라로 갔어. 십 년 전 일의 주범을 찾으려는 문주를 도와주려고 그랬을 거야.”“그리고 나서 당신은 항성을 어지럽히려던 이걸윤을 처리했어...”“간단히 말해 하현 당신은 그동안 항성과 도성의 수많은 일에 관여해 왔어.”“당신이 한 모든 일은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했고 그 파장도 적지 않았어.”“그래서 난 방금 당신을 보고 나서 결정했어. 이 순간부터 이 구역의 모든 사람들은 당신을 귀빈으로 모시게 될 거야.”“아무도 당신을 귀찮게 하지 못할 거라고.”“당신이 24시간 안에...”하구천은 말을 하면서 손목의 시계를 가까이 들어 올리며 음산한 미소를 떠올렸다.“아, 내 정신 좀 봐. 이제 열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군.”“당신이 열두 시간 안에 출국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이 진행될 거야.”“나의 관대함에 감사할 필요는 없어. 난 항도 하 씨 가문 소주야. 이 정도 도량은 있어야지.”하구천은 말을 마치며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고 곧이어 누군가가 샴페인 두 잔을 들고 왔다.“자, 하현. 당신의 앞날이 순조롭길 바라...”“대구로 돌아간 후 사업도 가정사도 모두 잘 풀리길 바랄게...”하구천이 손에 든 샴페인을 하현에게 건네며 건배를 청했다.하현은 하구천의 행동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샴페인 잔을 받아들고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이 샴페인을 마시지 않으면?”“그럼 날 어떻게 상대할 거야?”“상대?”하구천이 피식하며 입을 열었다.“상대랄 것까지야 뭐 있겠어? 하현, 당신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난 항상 규칙대로 행동할 뿐이야.”“누군가 내 체면을 세워 준다면 나도 반드시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지.”“하지
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이 한 잔이 수십만 원은 할 텐데 이렇게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 안 그래?”“지금 술 얘기할 때야?”하구봉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방금 내가 소식을 들었는데 말이야!”“어젯밤 노부인이 당신을 24시간 안에 출국시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대!”“이제 노부인이 정한 시간까지는 열두 시간 정도 남았어!”“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여기까지 말하던 하구봉의 얼굴빛은 더욱더 낭패스러워졌다.하현은 오히려 이 상황이 흥미로운 듯했다.“만약 내가 떠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천도가 나서겠지!”“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 노부인 휘하의 천하 제일 검객인 천도가 당신의 저승길을 배웅하겠지. 천도는 문주의 실력을 훨씬 능가하는 전설의 신이야!”“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이 스스로 여길 떠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배웅을 받고 죽은 채로 떠나게 된다는 거야.”“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길을 걷고 있을 거라고.”“천도?”하현은 웃으며 손을 뻗어 하구봉의 어깨를 툭 쳤다.“나 대신 이 소식도 좀 전해줘.”“천도인지 만도인지가 날 처단하러 온다면 좀 빨리 서둘러서 오라고 말이야.”“오늘 밤 난 다른 일이 있어서 그를 상대할 시간이 없거든.”...5분 후 달리는 도요타 센추리 안.하구천은 예의 평정심을 되찾은 얼굴이었다.오히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허민설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하 소주, 하구봉은 항상 야심이 많았어. 그렇지 않았다면 어젯밤에 천 리를 마다않고 달려 엄청난 공을 세우려 하지도 않았을 거야.”“조심해야 해.”“지금 당장 하수진을 상대해야 하는데 뜻하지 않게 하구봉에게 칼을 맞을지도 몰라.”“게다가 오늘 하현과 당신이 맞붙는 걸 보고 하구봉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몰라.”하구천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하구봉이 상석에 앉고 싶어 하는 건 확실해. 그런 소심함으로 누굴 속일 수 있겠어?”“한눈에 다 알아봤다니까.”
하구천이 떠난 그 시각, 하현은 최영하가 준비해 놓은 차에 타고 있었다.그는 우선 잠시 쉴 곳을 찾은 다음 한숨 돌리면서 노부인의 출국 명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하지만 차의 시동이 걸리자마자 하구봉이 헐레벌떡 달려와 하현이 탄 차를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하현, 아버지가 당신을 찾아.”하현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왜 날 찾으시는 거지?”하현은 하문천과 몇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서로 떨떠름하고 달갑지 않은 사이였다.게다가 지금 굳이 두 사람이 만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아버지께서 어젯밤 일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하셔.”“그리고 당신한테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물어보려고 찾으시는 거야.”“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실 거야.”“그래서 지금 꼭 만났으면 하셔...”하구봉의 표정에 다소 떨떠름해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에게 이렇게 예의를 차려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구봉의 말을 들은 하현은 오히려 약간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최영하에게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든 하현은 하구봉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30분 후.차량 행렬이 항성 중심부 번화한 곳에 자리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건물 자체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위치가 상당히 좋았다.항성 중심부로 주위는 떠들썩하고 화려했지만 안쪽으로 들어오자 다른 세상처럼 차분하고 안정된 곳이었다.항성 중심부 금싸라기 같은 곳에 이런 땅을 차지하고 저택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하문천의 재력과 능력을 말해주었다.하현은 중심부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는 작은 테라스 위에서 서 있는 하문천을 보았다.상인 기질이 강한 하문천은 당나라 복장으로 말끔하게 갈아입은 뒤 직접 차를 우리고 있었다.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하문천은 돌아서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일어섰다.“하현, 지난번 만났을 땐 내가 실례가 많았어. 부디 괘념치 마시게.
하현의 담담한 얼굴에 아리송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하문천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껄껄 웃었다.“아, 그래. 그렇지!”“내가 잊고 있었군. 그날 노부인도 자네한테 당했었지!”“하구천은 노부인한테 말하면 자네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그렇다면 하구천이 너무 자네를 쉽게 생각하는 거잖아?”“자네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하수진이 자리에 오르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하구천이 오늘 당장 자네를 항성과 도성에서 내쫓고 싶겠지만 보아하니 헛된 꿈을 꾸는 것 같구만.”말을 하면서 하문천은 하현에게 차를 한 잔 더 따라주며 감탄해하는 눈빛을 잊지 않았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농담도 잘 하십니다. 하구천이 노부인에게까지 도움을 청했으니 그래도 체면은 좀 세워 줘야죠.”“다만 어떻게 체면을 세워 줘야 할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허허, 자네한텐 도통 못 당하겠군그래.”하문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지난번 만났을 때 자넨 내 얼굴을 때리더니 이번엔 하구천의 얼굴을 때리는구만.”“자네가 뒤에서 어떤 전략으로 사람들을 움직일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하현은 하문천의 말에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문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르신 한 가지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전 누구의 뺨을 때릴 의도는 단연코 없었습니다.”“내 얼굴을 때리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반격했을 뿐입니다.”“알겠어, 알겠다구!”하문천은 껄껄 웃으며 재빨리 탁자 밑에서 자료 뭉치를 꺼내 하현 앞에 놓았다.“아무리 하늘을 나는 천도라 할지라도 하현 자네 앞에선 기도 못 펼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야.”“나한테 마침 이런 자료들이 있으니 자네가 틈이 나면 뒤적거려 보게. 조심해서 나쁠 거야 뭐 있겠는가?”하현은 자료를 받아들지는 않고 가만히 하문천을 곁눈으로 힐끔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어르신, 천도가 그렇게 무서우십니까? 노부인이 그렇게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