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하현 역시 묻지 않았고, 물건들을 서재로 옮겨 하룻밤을 잤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현이 아침 준비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설민아가 차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오늘부터 우리 집 아침식사는 네가 준비할 필요 없어.”하현은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여보, 어제 일은 당신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거 같아. 나랑 서연은 그냥 친구일 뿐이야.”은아는 하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와 싸울 기미는 없었지만 표정이 유달리 싸늘했다.원래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고 여겼다. 그녀는 심지어 어떨 때는 두 사람이 정상적인 부부와 같이 변해야 된다고까지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심지어 병원 일까지도 그녀가 오해했었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려고까지 했다.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어젯밤 한 통의 전화와 한 장의 사진이 그녀의 모든 환상을 깨뜨려 버렸다.이전에 그녀는 이혼에 대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반대를 했었지만,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냉담하기만 했다.……설은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이것이 단지 병원 일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 설민혁과 관련된 일인 줄은 전혀 몰랐다. 지금 이 일은 좀 번거롭게 되었다.하현은 또 다른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아침 일찍부터 플래티넘 호텔에 왔다.회장실 안에서 변백범은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는 빠르게 일어나 몸을 숙이며 말했다.“하 도련님, 오셨습니까?”“일은 어떻게 처리됐어?”어젯밤 집에 들어간 후에 하현은 계속 변백범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백재욱의 태도가 그로 하여금 조금 경계하도록 했다. 백 씨 집안이 이미 그렇게 자신을 불쾌하게 한 이상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하 도련님, 어젯밤 제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조사를 해봤는데, 백 씨 집안은 수완이 좀 있습니다. 별볼일 없는 2류 가문이지만 우지
세오 맞은 편 테이블 뒤편에서 병원 원장이 세오의 표정을 보았다. 두려우면서도 자신이 받은 혜택을 생각하면 지금 아무리 무서워도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었다.결국 죄를 지어도 세오는 살길이 있었다. 변백범의 일을 하면서 양다리를 걸친다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었다.“당신 여동생 상황이 어떤지는 우리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우리 병원의 상황으로는 수술을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다시는 그런 말은 꺼내지 마세요.”“당신들은 오랜 시간 동안 독실을 차지하고도 병원비가 계속 끊겼잖아요. 솔직히 우리도 너무 유감스러워요. 지금 많은 환자 가족들도 불만이 있어요. 그냥 가세요. 남은 병원비는 계산하지 않을게요.”원장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세오의 여동생은 병원에 있는 것도 두려웠다. 한 달치 입원비와 진료비가 몇 백만 원이었다. 요 몇 년 세오가 번 돈은 여기로 다 들어갔다.하지만 원장의 말대로 별 다른 차도가 없었다. 병원도 제대로 된 치료법을 내놓지 못했기에 함부로 여동생의 발을 수술할 수도 없었다.이런 큰 수술은 모두 서울시에서도 종합병원만이 성공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세오는 그렇게 큰 돈은 낼 수가 없었다.“처음에 우리가 이 병원에 왔을 때, 동생의 병을 치료해 줄 방법을 반드시 찾아보겠다고 본인이 말씀하셨는데 잊으셨나요?”세오는 사무실 테이블을 쳤다. 사무실에 있던 모든 테이블이 흔들렸다.원장은 놀라서 바지에 오줌을 쌀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선생님, 진정하세요…… 우리도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했잖아요. 어차피 지금 병세가 거의 안정되어 악화 되지는 않을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서 돈을 좀 아끼세요. 종합병원에 가면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요!”“누가 내 여동생을 고칠 수 있나요! 말해보세요!”세오는 눈 앞이 조금 밝아졌다. 자기 여동생만 고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리라.“서울 종합병원의 부원장, 손서연 의사선생님. 그녀라면 여동생을 고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수술비가 제
“세오, 나랑 잘 지내보자. 내가 네 여동생의 다리를 고칠 사람을 찾았어.”하현도 군말 없이 벌떡 일어나 변백범을 제지했다.세오는 하현을 경멸하듯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한 말을 내가 믿을 거 같아?”하현은 미리 준비한 명함 한 장을 꺼내 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손서연 의사의 명함이야. 당신이 그녀에게 전화하면 그녀는 제일 좋은 병실에서 당신 여동생의 수술을 준비해 줄 거야.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줄게.”“어떻게 한 거야? 설마 나를 속이는 건 아니겠지?”세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서울 종합병원의 부원장. 정말 뛰어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몇 먹이 아니면 칼을 잡지 않을 거야. 눈앞의 작은 것들은 해결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이렇게 큰 일을 어떻게 해결해? 그가 이렇게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관건은 방금 돌아오는 길에서 세오도 사람을 찾아 알아봤었다. 손서연의 의술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부원장이고, 일반인들은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내 말을 못 믿겠으면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나서 다시 나를 찾아와.”하현은 군말 없이 돌아서 가 버렸다.이런 거만한 사람을 상대할 때는 다그칠 필요가 없다. 적당히 비위를 맞추면 그만이었다.세오는 하현의 뒷모습을 주시하였다. 그가 마당을 나오려고 할 때야 입을 열었다.“기다려봐요.”말을 마치자, 그는 자신의 여동생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나타나 하현이 심호흡하는 것을 지켜보며 말했다.“내가 뭘 도와주길 바래요?”“백 씨네 집안에 아직 약간의 세력이 있으니 네가 나를 대신해서 맡아줘. 만약 불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대신해서 해결해주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으면 해. 백 씨 집안 사람을 포함해서 모두 자기 사람이 없어진 줄도 모르게.”“나를 윗사람으로 모실 수 있겠어? 변백범도 같이?”세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이런 일이라면 그는
이 생각에 다다르자, 설민혁의 안색이 완전히 일그러졌다.“안돼. 설은아를 그냥 놔두면 안되겠다. 절대 그녀가 이혼을 하게 두면 안돼. 나랑 자리 싸움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 안돼. 방법을 찾아야겠다!”설민혁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쉽지 않은 일이지만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지금은 하엔 그룹의 중요한 시기니까 우리 설 씨 집안에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큰 일 날 수 있다고, 할아버지께 그들이 이혼하지 못하도록 말씀드릴까?”지연이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자기 아이디어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일리가 있어!”민혁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설지연의 눈을 보자 경각심이 생겼다. 보아하니 설지연도 생각없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하현이 설 씨 집안에 도착했을 때 은아를 볼 수 없었다. 대신 희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희정은 “짝” 소리와 함께 손에 들린 합의서를 땅으로 내던지며 냉랭하게 말했다.“하현, 이혼 합의서에 사인해. 오늘부터 너는 더 이상 설 씨 가문의 사위가 아니니, 짐 정리해서 썩 꺼져!”그 순간, 희정은 웃기만 했다. 그녀가 3년 내내 바랐던 일이다. 마침내 이 쓸모 없는 녀석을 쓸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꿈에서도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그 다음 훌륭한 사윗감만 찾으면 되었다. 그러면 그녀는 바로 이 집안에서 편히 누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하현은 바닥에 있는 이혼 합의서를 들고 몇 번을 보았지만 서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은아는요?”희정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방금 설은아의 방에 들어갔을 때, 책상에서 이 이혼합의서가 눈에 들어왔다.지금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현이 없어지고, 자신의 딸이 마침내 이혼을 준비하다니 이거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었다.이
핸드폰에 흐릿한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그 날 저녁 하현과 서연이 함께 있을 때 몰래 찍힌 것이 확실하다.하현은 말문이 막힌 채, 다시 오늘 설민혁의 태도를 떠올렸다. 진상이 밝혀졌다. 설민혁이 찍은 사진임에 틀림이 없었다. 특별히 은아에게까지 보낸 것이다.“너 아직도 할 말이 있어? 사실이 눈 앞에 있는데 아직도 변명할 게 있어?”하현은 변명할 게 없어 말없이 서 있었고, 그 순간 은아는 확실히 단념한 것 같았다.그녀가 하현에게 핸드폰을 보여준 것은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보, 이 일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야……”하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설명해봐!”설은아가 냉랭하게 말했다.자신은 그녀에게 밥을 사주고 세오 여동생의 일을 해결하려고 그녀에게 작은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복잡한 일을 설명하자니 은아가 접해보지 않은 너무 어두운 부분이 많이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길바닥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일들이 더 붉어질지 모른다.“은아야, 내가 지금은 너한테 말할 수가 없어. 하지만 나랑 서연은 정말 단순한 친구 사이일 뿐이야. 다른 관계는 전혀 없어……”하현의 설명은 조금 부족했다.희정이 핸드폰을 빼앗아 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독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이 잘난 녀석아. 네가 데릴사위 주제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어! 너 그 돈 어디서 난 거야? 너 집에서 돈 훔쳤지!”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내가 필요해? 나 지금 출근도 못하고 있어!”“하현, 너는 우리가 이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 여기 보니까 서울호텔 최상층 레스토랑이네. 너는 여기가 동물원인 거 같니? 아무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야? 멍청하긴, 우리가 너처럼 바보 같은 줄 아니?”이 순간 희정은 기뻤다. 이번 기회로 하현과 그녀의 집안의 관계가 끊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이런 남자는 절대 안돼, 딸아. 그냥 이혼해. 내가 수천 배, 수만 배 훌륭한 신랑 찾아 줄게!”“거기다, 이미 말도 안 되는 병이라도 걸려서 옮기면 어떡해? 너무 무섭다!”희정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하고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만약에 정말 이런 스캔들이 퍼지기라도 하면, 설 씨 어르신은 그들 가족 일가를 바로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다시 생각해봐, 설민혁 그 집안은 너를 공격할 기회를 찾지 못 할까 봐 걱정하고 있어! 만약에 그가 이 일을 알게 되면, 너를 비난 당할 빌미만 하나 더 생기는 거 아니겠어!?”“너는 설 씨 집안에서 이런 자리를 갖는 게 쉽지 않아. 근데 이 쓸모 없는 남자 하나 때문에 앞길을 그르치면 안 되잖아!”“엄마, 그만해!”설민아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한편으론 하현을 보는 서연의 눈빛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하현의 눈빛이 화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심이 떠나질 않았다.그녀는 하현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그 놈이 해명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데.“이 바보 같은 계집애야. 너 그의 몇 마디에 정말 감동받은 건 아니지? 엄마가 옛날 사람으로서 너에게 한 마디 할게. 남자를 믿을 수 있다면, 암퇘지도 나무에 오를 수 있는 법이야! 남자는 귀신같이 잘 속이지. 그들이 10마디를 하면 반만 믿어도 다 속는 거야. 아마 그들이 팔린다면 돈을 계산해 줘야 할지도 모를 정도야!”희정은 옛날 사람의 말투로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설은아는 눈썹을 찡그렸고, 손에 들린 이혼 합의서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희정은 이미 자신이 설은아를 설득했다고 생각하며 계속 말했다.“이 결혼은 반드시 깨져야 해. 하지만 딸아.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전의 그 10억은 그 사람이 자기가 빌린 것이니까 그 사람 빚 인 거야. 너는 이혼 합의서에 서명만 확실히 하면 돼. 알았지?”“빚을 다 갚게 되면 너희들 빨리 이혼해. 엄마는 오
서재에서 하현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자리를 폈다.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는 설은아의 마음을 이해했고, 만약에 자신이었다면 그렇게 침착하지 못했을 것이다.거기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장모는 뒤에서 더 부채질을 할 가능성이 컸다. 이번 일은 점점 더 귀찮아 지겠지.……다음날 아침 식사시간에 하현은 아침 일찍 식사를 차려놓고 설은아에게 인사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설은아는 아침 식사 대신 이혼 합의서를 면전에서 찢었다.하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역시, 설은아는 냉랭하게 말했다.“이혼은 천천히 해도 되지만 네가 나한테 해줘야 할 일이 있어.”“뭔데? 반드시 할게.”하현이 서둘러 대답했다.“내가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 묻지도 않고 바로 대답하네? 내가 너한테 불법적인 일을 시키면 어쩌려고? 무섭지도 않아?”설은아는 떨리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아직도 너의 됨됨이를 모르겠어? 너는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거야.”“히죽거리지 마!”설은아는 냉랭하게 말했다.“이전의 10억까지 포함해서 다시 10억을 빌려줘. 그리고 네가 직접 증명서를 써줘. 그건 너의 개인적인 채무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설은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이것이 희정이 시킨 일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다.설은아의 성격으로는 그럴 리가 없었다.하지만 설 씨 집안에서 3년 넘게 살면서 하현은 일찍 희정의 성격에 익숙해졌다. 더구나 이런 사소한 일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은아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하현은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좋아. 현금으로 줄까? 아니면 수표로 줄까? 내가 사람을 시켜서 가져오라고 할게.”하현이 말했다.“현금”“문제없지. 나에게 반나절의 시간을 줘.”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희정은 오늘 아주 신이 났다. 오늘은 흐린 날씨였지만 그녀는 온 몸에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희정은 하현이 10억을 더 빌려줄 것이라 계산하고 있을 때, 서울 공항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다.서울 공항은 항공편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가장 많은 항공편은 제주에서 날아온 비행기들이었다.이 때 슬림한 정장 차림에 곱슬 머리를 한 남자가 양손에 짐을 들고 출국장입구에 섰다.무관심한 표정으로 핸드폰 대신 장미 한 송이를 뒷짐 진 채 들고 있었다.그의 주위에 많은 어린 소녀들이 지나갈 때 그들은 그의 눈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이 시대에 사람을 데리러 갈 때 핸드폰을 보지 않는 남자는 매우 적었다. 이 제스처만으로도 수천 명의 소녀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잠시 후, 출국장에서 마침내 누군가가 나왔다.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 8명이 길을 연 뒤 50대 중반의 부자로 보이는 날씬하고, 그런대로 기품이 있는 여자가 등장했다.이미 나이가 들었지만 이 여인은 여전히 화장을 짙게 하였고, 최신 신상을 입고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그저 걸어 다니기만 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카리스마를 지녔다.하선미. 강남 하 씨 가문의 2대째 범상치 않은 여인이었다.그녀는 중년에 남편을 잃고 슬하에 자식도 없으니 하 씨 집안에서는 외할머니도 친하지 않고, 아버지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녀는 비즈니스에 머리가 있어 하 씨 가문에서 강남의 지위를 이용해 스스로 많은 돈을 벌었고, 본적은 다시 하 씨 가문을 받고 약간의 발언권도 얻었다.물론 전반적으로 하 씨 가문의 변두리 인물이긴 하지만 강남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는 절대적으로 두려운 존재였다.이 시간, 그녀가 먼 길을 온 목적은 오직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박시훈을 위해서였다.이전에 박시훈은 그녀의 시중을 들기 위해 제주로 갔었지만, 최근 박시훈은 그녀에게 서울에 와서 자신을 뒷받침해 달라고 이미 여러 차례 요구를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처참하게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하선미는 결국 왔다. 그녀가 몹시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