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흐릿한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그 날 저녁 하현과 서연이 함께 있을 때 몰래 찍힌 것이 확실하다.하현은 말문이 막힌 채, 다시 오늘 설민혁의 태도를 떠올렸다. 진상이 밝혀졌다. 설민혁이 찍은 사진임에 틀림이 없었다. 특별히 은아에게까지 보낸 것이다.“너 아직도 할 말이 있어? 사실이 눈 앞에 있는데 아직도 변명할 게 있어?”하현은 변명할 게 없어 말없이 서 있었고, 그 순간 은아는 확실히 단념한 것 같았다.그녀가 하현에게 핸드폰을 보여준 것은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보, 이 일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야……”하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설명해봐!”설은아가 냉랭하게 말했다.자신은 그녀에게 밥을 사주고 세오 여동생의 일을 해결하려고 그녀에게 작은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복잡한 일을 설명하자니 은아가 접해보지 않은 너무 어두운 부분이 많이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길바닥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일들이 더 붉어질지 모른다.“은아야, 내가 지금은 너한테 말할 수가 없어. 하지만 나랑 서연은 정말 단순한 친구 사이일 뿐이야. 다른 관계는 전혀 없어……”하현의 설명은 조금 부족했다.희정이 핸드폰을 빼앗아 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독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이 잘난 녀석아. 네가 데릴사위 주제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어! 너 그 돈 어디서 난 거야? 너 집에서 돈 훔쳤지!”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내가 필요해? 나 지금 출근도 못하고 있어!”“하현, 너는 우리가 이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 여기 보니까 서울호텔 최상층 레스토랑이네. 너는 여기가 동물원인 거 같니? 아무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야? 멍청하긴, 우리가 너처럼 바보 같은 줄 아니?”이 순간 희정은 기뻤다. 이번 기회로 하현과 그녀의 집안의 관계가 끊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이런 남자는 절대 안돼, 딸아. 그냥 이혼해. 내가 수천 배, 수만 배 훌륭한 신랑 찾아 줄게!”“거기다, 이미 말도 안 되는 병이라도 걸려서 옮기면 어떡해? 너무 무섭다!”희정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하고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만약에 정말 이런 스캔들이 퍼지기라도 하면, 설 씨 어르신은 그들 가족 일가를 바로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다시 생각해봐, 설민혁 그 집안은 너를 공격할 기회를 찾지 못 할까 봐 걱정하고 있어! 만약에 그가 이 일을 알게 되면, 너를 비난 당할 빌미만 하나 더 생기는 거 아니겠어!?”“너는 설 씨 집안에서 이런 자리를 갖는 게 쉽지 않아. 근데 이 쓸모 없는 남자 하나 때문에 앞길을 그르치면 안 되잖아!”“엄마, 그만해!”설민아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한편으론 하현을 보는 서연의 눈빛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하현의 눈빛이 화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심이 떠나질 않았다.그녀는 하현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그 놈이 해명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데.“이 바보 같은 계집애야. 너 그의 몇 마디에 정말 감동받은 건 아니지? 엄마가 옛날 사람으로서 너에게 한 마디 할게. 남자를 믿을 수 있다면, 암퇘지도 나무에 오를 수 있는 법이야! 남자는 귀신같이 잘 속이지. 그들이 10마디를 하면 반만 믿어도 다 속는 거야. 아마 그들이 팔린다면 돈을 계산해 줘야 할지도 모를 정도야!”희정은 옛날 사람의 말투로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설은아는 눈썹을 찡그렸고, 손에 들린 이혼 합의서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희정은 이미 자신이 설은아를 설득했다고 생각하며 계속 말했다.“이 결혼은 반드시 깨져야 해. 하지만 딸아.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전의 그 10억은 그 사람이 자기가 빌린 것이니까 그 사람 빚 인 거야. 너는 이혼 합의서에 서명만 확실히 하면 돼. 알았지?”“빚을 다 갚게 되면 너희들 빨리 이혼해. 엄마는 오
서재에서 하현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자리를 폈다.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는 설은아의 마음을 이해했고, 만약에 자신이었다면 그렇게 침착하지 못했을 것이다.거기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장모는 뒤에서 더 부채질을 할 가능성이 컸다. 이번 일은 점점 더 귀찮아 지겠지.……다음날 아침 식사시간에 하현은 아침 일찍 식사를 차려놓고 설은아에게 인사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설은아는 아침 식사 대신 이혼 합의서를 면전에서 찢었다.하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역시, 설은아는 냉랭하게 말했다.“이혼은 천천히 해도 되지만 네가 나한테 해줘야 할 일이 있어.”“뭔데? 반드시 할게.”하현이 서둘러 대답했다.“내가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 묻지도 않고 바로 대답하네? 내가 너한테 불법적인 일을 시키면 어쩌려고? 무섭지도 않아?”설은아는 떨리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아직도 너의 됨됨이를 모르겠어? 너는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거야.”“히죽거리지 마!”설은아는 냉랭하게 말했다.“이전의 10억까지 포함해서 다시 10억을 빌려줘. 그리고 네가 직접 증명서를 써줘. 그건 너의 개인적인 채무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설은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이것이 희정이 시킨 일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다.설은아의 성격으로는 그럴 리가 없었다.하지만 설 씨 집안에서 3년 넘게 살면서 하현은 일찍 희정의 성격에 익숙해졌다. 더구나 이런 사소한 일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은아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하현은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좋아. 현금으로 줄까? 아니면 수표로 줄까? 내가 사람을 시켜서 가져오라고 할게.”하현이 말했다.“현금”“문제없지. 나에게 반나절의 시간을 줘.”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희정은 오늘 아주 신이 났다. 오늘은 흐린 날씨였지만 그녀는 온 몸에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희정은 하현이 10억을 더 빌려줄 것이라 계산하고 있을 때, 서울 공항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다.서울 공항은 항공편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가장 많은 항공편은 제주에서 날아온 비행기들이었다.이 때 슬림한 정장 차림에 곱슬 머리를 한 남자가 양손에 짐을 들고 출국장입구에 섰다.무관심한 표정으로 핸드폰 대신 장미 한 송이를 뒷짐 진 채 들고 있었다.그의 주위에 많은 어린 소녀들이 지나갈 때 그들은 그의 눈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이 시대에 사람을 데리러 갈 때 핸드폰을 보지 않는 남자는 매우 적었다. 이 제스처만으로도 수천 명의 소녀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잠시 후, 출국장에서 마침내 누군가가 나왔다.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 8명이 길을 연 뒤 50대 중반의 부자로 보이는 날씬하고, 그런대로 기품이 있는 여자가 등장했다.이미 나이가 들었지만 이 여인은 여전히 화장을 짙게 하였고, 최신 신상을 입고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그저 걸어 다니기만 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카리스마를 지녔다.하선미. 강남 하 씨 가문의 2대째 범상치 않은 여인이었다.그녀는 중년에 남편을 잃고 슬하에 자식도 없으니 하 씨 집안에서는 외할머니도 친하지 않고, 아버지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녀는 비즈니스에 머리가 있어 하 씨 가문에서 강남의 지위를 이용해 스스로 많은 돈을 벌었고, 본적은 다시 하 씨 가문을 받고 약간의 발언권도 얻었다.물론 전반적으로 하 씨 가문의 변두리 인물이긴 하지만 강남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는 절대적으로 두려운 존재였다.이 시간, 그녀가 먼 길을 온 목적은 오직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박시훈을 위해서였다.이전에 박시훈은 그녀의 시중을 들기 위해 제주로 갔었지만, 최근 박시훈은 그녀에게 서울에 와서 자신을 뒷받침해 달라고 이미 여러 차례 요구를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처참하게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하선미는 결국 왔다. 그녀가 몹시
설 씨네 별장.하현은 은행에 가서 현금 10억을 찾았다.그가 현금이 든 비닐 봉지를 티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을 때 희정의 눈은 모두 빨갛게 되었다.지금 그녀는 하현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지폐를 재빨리 뒤져보고, 진짜인 것이 확실해지자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증명서는? 네가 빚을 다 책임지겠다고 하지 않았어?”고개를 들어올리며 희정이 들뜬 말투로 말했다.하현은 이미 준비된 문서를 꺼냈다. 안에는 하현의 서명이 있었을 뿐 아니라 변호사의 서명까지 되어있었다. 20억은 하현의 개인적인 채무이며 설은아와는 무관하다는 내용이었다.희정은 잠시 자세히 살폈고 다시 몇몇 전문 컨설턴트에게 전화를 한 뒤에 비로소 흐뭇한 미소로 증명서를 받아 들었다.이것이 있으면 그녀는 마음 놓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자금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이미 그녀와 관계가 없는데. 설은아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현을 쓸어버리면 그만이었다.“내가 이렇게 하는 게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해?”설은아는 옆에서 10억은 한 번 쳐보지도 않고 하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전에 희정이 승낙을 한 후에 그녀는 이것이 하현에게 빚진 것처럼 보일 수 있기에 조금 후회가 되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하현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여러 해 동안 그는 계속 설 씨 집안에서 불평 없이 힘든 일을 마다 하지 않았다.설마 그가 손서연을 만나 정말 다른 일을 했을까?은아가 입을 열자 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네가 나한테 이렇게 물어봐 주니 기분이 좋네. 여전히 나를 아껴주는 거 같아.”“히죽거리지 마. 네가 분명하게 설명해주기 전까지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 방에도 들어올 수 없어.”설은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현의 웃는 얼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일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이 때 희정은 이미 돈을 가지고 가서 금고에 넣어 두고 구두쇠 행세를 하고 있
얼굴 빛이 약간 변한 후 희정은 갑자기 일어나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쓸모 없는 녀석. 10억을 가져왔다고 해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말하는데 너는 적어도 10억은 더 가져와야 해. 그리고 빚은 여전히 네가 감당해야 되고!”“그래요. 문제없죠. 하지만 몇 년은 더 기다리셔야 할 거 같아요. 제가 방금 10억을 빌렸는데 그가 끝없이 돈을 빌려줄 수는 없지 않겠어요?”하현은 시원스럽게 입을 열었다.“너……”희정은 또 다시 안색이 바뀌었다. 잠시 후 말을 이었다.“설 씨 집안 데릴사위야. 너 지금 일하고 있잖아. 월급카드로 낼 수도 있지. 매월 월급은 내가 관리할게!”“어머니가 필요한 거면 제 월급카드를 줄게요.”하현은 살짝 웃었다. 이것은 전부 그의 계산 안에 있었다.이 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설유아는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매형의 월급카드를 받는다는 건 희정이 그의 월급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렇게 되면 그를 설 씨 집안에서 쫓아낼 수 없게 된다.침실에서 설유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그 월급카드로 뭐 하게? 그 놈이 한 달에 얼마나 벌 수 있겠어? 거기다 그 월급카드를 받으면 설 씨 집안에서 어떻게 쫓아낼 수 있겠어?희정은 차갑게 말했다.“그 동창이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준 걸 보면 월급이 그렇게 낮지는 않을 거야. 그 돈이면 에르메스 몇 개는 더 살 수 있을 거야.“그를 설 씨 집안에서 쫓아 내는 건 네 언니 생각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돼. 지금은 아직 결정을 안 했어. 이 월급카드를 내가 공짜로 받은 건 아니야!”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희정도 당연하게 생각이 되었다. 하현이 정말로 설 씨 집에서 나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월급카드를 돌려줘도 늦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지금 하현의 카드는 그녀의 것이 되어야 한다.희정이 하현이 바람 핀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설 씨 어르신은 벌써 사람을 시켜 설은아 집에 전화를 걸
설민혁은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 순간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하엔 그룹의 회장이라고 하면 이 일이 알려질까 두렵지 않니?모두 믿지 않았다. 이 형편없는 모습을 한 하현이 어떻게 하엔 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단 말인가?전에 동류에게 프로포즈 했을 때도 그는 자신이 회장이라는 걸 숨기지 않았는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 사실이 이 우스갯소리를 증명해준다.지금 그가 또 이렇게 말을 하다니, 정말 뻔뻔스럽다.한쪽에 있던 설은아가 보다 못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속삭였다.“할아버지, 하현이 그 사장님의 회원 카드를 썼나 봐요……”“포르쉐를 운전시킨 그 사장?”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말을 믿었다.포르쉐 같은 고급차를 운전기사에게 마음대로 운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부자라는 것을 말해준다.서울 호텔의 회원 카드는 돈만 있으면 최고급 회원 카드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그런데 설 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다른 사람의 운전기사로 나섰다고? 부끄럽다!지금 설 씨 어르신은 하현을 보는 것이 어쩜 이렇게 불쾌한지 당장 문밖으로 쓸어 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하지만 방금 설민혁이 한 말을 떠올리며 그는 여전히 싸늘하게 말했다.“그만, 이 얘기는 그만해…… 하나만 묻자. 너 그 레스토랑에 갔을 때 단정치 않은 여자 한 명 데리고 갔었지?”“그 사람은 제 친구예요.”하현은 눈썹을 찡그리며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손서연이 그를 도와준 것이 적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너……”설 씨 어르신은 노발대발 화를 내며 이 데릴사위가 그 단정치 못한 여자와 내통하고서 아직도 자기 친구라고 하다니. 그는 정말 설씨 집안이 다 바보 천치인 줄 아나?한쪽에서 설 씨 어르신이 말한 이 이야기를 듣고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안절부절 못했다.그녀는 바로 하현의 월급 카드를 가져가려고 했다. 아직 돈을 보지도 못했는데, 하현이 지금 쫓겨나가면 그녀는 다 잃
“기억해, 딱 한 번이야. 다음은 안 돼!”설 씨 어르신의 눈빛이 흐릿했다.“지금 은아가 재정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 은아가 프로젝트 책임자가 돼서, 네가 그녀를 등에 업고 기세 등등하게 설치면서 나는 안중에도 없구나”“만약 내가 원한다면 그녀의 모든 직책은 내려놔야 돼. 네가 날 뛸 밑천이 없어지게 만들 거야. 말 한마디면 끝이야!”“말씀하신 대로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하현은 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설 씨 어르신의 말도 안 되는 협박은 누그러졌다.설은아는 프로젝트 담당자로서 설 씨 집안의 장래와 생사와 관계가 있었다.그는 이전에 설은아가 재정부장이 된 것도 참아낼 수 있었다.지금 감히 이런 일로, 설 씨 집안의 앞날의 운명을 걸 수 있겠는가?그는 할 수도 없었고, 그럴 배짱도 없었다.하현의 뒷모습을 보며 설 씨 어르신은 이를 꽉 깨물었다.3년 동안 하현은 설 씨 집에서 때리고 욕을 해도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신분은 개 한 마리와도 별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개 한 마리보다 못했다.하지만 설 씨 집안에서 설은아가 그 자리에 앉은 뒤부터 그의 태도가 거만 해지더니 더욱 날뛰었다.설 씨 어르신은 하현이 믿는 구석이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하현이 정말 그런 거라면 설씨 집안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니 그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었다.“희정, 이게 네 데릴사위야. 나조차 안중에 없어.”설 씨 어르신은 한쪽으로 희정을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희정은 평소에 얼마나 날 뛰고 떠벌리는지고 다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설 씨 어르신이었다.이 순간 그녀는 감히 말을 못하고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저 역시 은아를 그 사람이랑 이혼시키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정말 상황이 허락이 안되잖아요.”이전에도 그녀는 하현과 은아가 이혼하기를 기대했었다.하지만 하현이 그녀에게 월급카드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또 10억을 그녀에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