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윤은 안색이 약간 변했고, 당황하며 말했다.“선배, 정말 저를 오해하셨네요. 예전에는 친하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최근에서야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 역시 당신을 받아들이려고 했어요.”“너 봐봐. 오늘 저녁은 특별히 내가 밖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를 할 거야. 우리 둘 다 앞으로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먼저 네가 나 좀 봐줘. 우리 야식 먹으러 갈까?다윤의 아름다운 얼굴은 초라하고 가여웠다. 그녀는 이미 사회 초년생 여대생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여러 해 뒹굴었기에 그녀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때 조건을 따르지 않고, 그가 충동적으로 행동을 했다면, 자신은 그리 쉽게 유린당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직접 죽였을 것이다.진건후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측은히 여기며 말했다.“나를 받아 주려고? 다윤, 너 말 한 번 참 잘한다! 내가 만약에 이렇게까지 굴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똑바로 보기나 했겠어? 너희들 눈에는 돈밖에 안보이지!”다윤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선배, 진짜 오해하신 거예요, 나는 선배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요!”건후는 실실 웃는 얼굴로 사악한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내가 원래 이렇게 뛰어난지 미쳐 몰랐네. 이렇게 하자, 오늘 내가 손해를 좀 볼게. 거기다 내가 보증하지. 내일 내가 너를 데리고 가서 우리 집에 너의 이름을 올리도록 할게.”“나를 따라다니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는 거 알아 둬. 하지만 다들 별볼일 없긴 하지. 너처럼 이렇게 예쁜 애가 또 어디 있겠어.”이렇게 말하면서 건후는 벌써 다윤의 맑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 기세를 몰아 그녀를 끌어안았다.“선배, 이렇지 마세요!”다윤은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치려고 했지만, 그녀는 온 몸이 의자에 묶여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순간 건후는 본색을 다 드러냈다. 그는 계속해서 사악하게 웃었다. 다윤의 고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 바로 당기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상의를 찢어버렸다.“쾅!”
다윤의 얼굴 빛이 붉어졌다. 그녀는 3살 배기 어린애가 아니었다. 하현이 오지 않아 자신이 당하게 됐을 결말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현, 내가 경고하는데 네가 다시 한 번 감히 나를 건드리면, 이 어르신이 너를…..진건후는 이때 마침 벌벌 떨며 일어나 하현을 향해 돌진하며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모든 사람이 멸시하는 데릴사위, 장모님 발이나 씻기고, 집에서 화장실 청소만 하는 녀석이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나는 1분마다 그를 재밌게 죽일 수백 가지의 좋은 방법이 있다.결국……“퍽!”그 뒤, 하현은 크게 뺨을 한 대 때렸다. 건후는 현기증이 났고 그의 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났다.“너…… 네가 감히 나를……”건후는 한없이 분노했다.그리고 다윤도 의아해하는 얼굴이었다. 듣기로 하현은 데릴사위가 된 후 그는 늘 연약하고 무능해서 설 씨 집안에서는 누구라도 그를 괴롭힐 수 있었다는데, 오늘 보니 그는 정말 남자였다……하현에게 얻어 맞고 멍하니 있던 건후는 잠시 정신을 차린 후에야 침을 한 입 뱉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하현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얘야, 너 오늘 안에는 갈 수 없어!”말을 마치고 그는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하현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도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 안에 있는 다윤을 풀어주었다. 차가운 시선으로 건후를 바라보며 말했다.“누구를 찾나 보지? 그래, 난 오늘 여기서 기다릴게. 네가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 좀 봐야겠다!”한편 다윤은 긴장한 나머지 옷을 정리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우리 빨리 가자. 진건후가 최근에 거물급을 알게 된 거 같아. 그래서 돈을 좀 벌었던 모양이야. 듣기론 그 거물급이 그를 엄청 좋게 보나 봐. 네가 그 사람한테 한 짓을 보면 좋은 일은 기대할 수 없을 거야.이 말을 마친 다윤은 걱정이 가득했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라 배경도 없었고,
10여분이 지나자 S급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한 대가 멈춰 섰고, 그 차 안에서 흰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그의 뒤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눈빛이 날카로워 딱 봐도 몸 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백 씨 가문의 후계자인 백운은 이전에는 우지용을 등에 엎고, 하엔 그룹에 미움을 샀었다.지난번 설은아를 동창회에서 만난 이후 백 씨 가문은 우지용에게 혼 줄이 났는데 지금은 대대적으로 정비를 하였다.그러나 말라 죽은 낙타가 말보다 크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백 씨 가문이 최근 좀 처참해져 장사도 줄줄이 적자가 났어도 여전히 일반인들 보다는 매우 강했다.요즘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화를 참고 있던 백재욱은 진건후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전에 봤었던 다윤이 묶여 있다는 소식에 너무 기뻐서 흥분해 달려왔다.그 작은 아가씨는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적이 없었다. 오늘 밤 아마도 미혼인 여자를 찾은 기쁨을 누려 불운을 씻어 낼 지도 모를 일이었다.차에서 내리자 백재욱은 군말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람 어딨어?”그 순간 건후는 아첨을 떨며 얼굴을 내밀고 굽신거리며 말했다.“백 도련님, 오셨습니까? 오늘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다윤의 얼굴은 창백해져 사람의 얼굴색이 아니었다.끝장났다. 이 악마가 정말 왔구나. 내가 오늘 밤 끝을 보게 된다면 어디까지 처참해질지 모른다.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다윤은 곧장 죽어도 한이 없었다. 그녀는 전통적인 여자라 그런 일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살아서 이런 곤욕을 치르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는 편이 나았다.이 때 백재욱은 진건후를 상대하지도 않고 실눈을 뜬 채,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웃으며 말했다.“다윤, 정말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너를 만지기도 전에 네가 내 뺨을 때렸었지? 오늘 네가 내 손에 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하하하하……”다윤은 입술을 깨물고 감히 백재욱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또 무슨 심리인가? 진건후는 사이코패스 인가?백재욱은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조바심을 냈다.그는 닥치는 대로 코트를 벗어 경호원에게 던지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누구든 나는 상관할 바 아니야, 지금 꺼져, 이 어르신이 하는 일을 망치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어르신이 너를 죽일 거야.”말하는 중에 그가 뒤에 있는 경호원을 힐끗 쳐다보자, 그 경호원이 알록달록한 지폐를 땅 위에 떨어뜨렸다.백재욱은 이런 하수인을 다루는 법을 알았다. 몇 마디 협박하고 돈을 꺼내면 상대방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그는 오늘 밤 즐기러 왔기 때문에 이런 하수인을 처리할 마음이 없었다.이 광경을 보고 건후는 당황했다. 만약 하현이 이 돈을 가지고 가버리면 하현 혼자 벼락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그 순간 그는 소리쳤다.“백 도련님. 그를 보내시면 안됩니다. 이 남자는 다윤이 짝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다윤을 짓밟는 걸 보게 해야죠. 그래야 더 시원하지 않겠어요?”백재욱은 화가 날 것 같았지만 이 말을 듣고는 눈이 밝아졌다.“의미가 있네. 진건후. 네가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그러면서 그는 직접 돈다발을 땅 위에 던지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들었지? 저 여자를 저기에 혼자 눕혀. 너는 옆에서 그냥 보기만 해……”이 말을 듣자 다윤의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이 악마가 이렇게 끔찍할 줄 몰랐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이 때 하현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백 영감님. 보아하니 지난번에 우지용이 당신을 편히 모시지 못 한 거 같은데……”귀에 익은 소리를 듣고서, 웃고 있던 백재욱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현의 얼굴이 순간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의 얼굴은 극도로 일그러졌다.하현! 확실히 하현이었다!이 데릴사위가 백재욱의 신분을 어디 안중에 둘 수 있겠는가?하지만 그 전의 일이
설은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하현 역시 묻지 않았고, 물건들을 서재로 옮겨 하룻밤을 잤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현이 아침 준비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설민아가 차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오늘부터 우리 집 아침식사는 네가 준비할 필요 없어.”하현은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여보, 어제 일은 당신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거 같아. 나랑 서연은 그냥 친구일 뿐이야.”은아는 하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와 싸울 기미는 없었지만 표정이 유달리 싸늘했다.원래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고 여겼다. 그녀는 심지어 어떨 때는 두 사람이 정상적인 부부와 같이 변해야 된다고까지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심지어 병원 일까지도 그녀가 오해했었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려고까지 했다.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어젯밤 한 통의 전화와 한 장의 사진이 그녀의 모든 환상을 깨뜨려 버렸다.이전에 그녀는 이혼에 대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반대를 했었지만,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냉담하기만 했다.……설은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이것이 단지 병원 일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 설민혁과 관련된 일인 줄은 전혀 몰랐다. 지금 이 일은 좀 번거롭게 되었다.하현은 또 다른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아침 일찍부터 플래티넘 호텔에 왔다.회장실 안에서 변백범은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는 빠르게 일어나 몸을 숙이며 말했다.“하 도련님, 오셨습니까?”“일은 어떻게 처리됐어?”어젯밤 집에 들어간 후에 하현은 계속 변백범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백재욱의 태도가 그로 하여금 조금 경계하도록 했다. 백 씨 집안이 이미 그렇게 자신을 불쾌하게 한 이상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하 도련님, 어젯밤 제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조사를 해봤는데, 백 씨 집안은 수완이 좀 있습니다. 별볼일 없는 2류 가문이지만 우지
세오 맞은 편 테이블 뒤편에서 병원 원장이 세오의 표정을 보았다. 두려우면서도 자신이 받은 혜택을 생각하면 지금 아무리 무서워도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었다.결국 죄를 지어도 세오는 살길이 있었다. 변백범의 일을 하면서 양다리를 걸친다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었다.“당신 여동생 상황이 어떤지는 우리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우리 병원의 상황으로는 수술을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다시는 그런 말은 꺼내지 마세요.”“당신들은 오랜 시간 동안 독실을 차지하고도 병원비가 계속 끊겼잖아요. 솔직히 우리도 너무 유감스러워요. 지금 많은 환자 가족들도 불만이 있어요. 그냥 가세요. 남은 병원비는 계산하지 않을게요.”원장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세오의 여동생은 병원에 있는 것도 두려웠다. 한 달치 입원비와 진료비가 몇 백만 원이었다. 요 몇 년 세오가 번 돈은 여기로 다 들어갔다.하지만 원장의 말대로 별 다른 차도가 없었다. 병원도 제대로 된 치료법을 내놓지 못했기에 함부로 여동생의 발을 수술할 수도 없었다.이런 큰 수술은 모두 서울시에서도 종합병원만이 성공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세오는 그렇게 큰 돈은 낼 수가 없었다.“처음에 우리가 이 병원에 왔을 때, 동생의 병을 치료해 줄 방법을 반드시 찾아보겠다고 본인이 말씀하셨는데 잊으셨나요?”세오는 사무실 테이블을 쳤다. 사무실에 있던 모든 테이블이 흔들렸다.원장은 놀라서 바지에 오줌을 쌀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선생님, 진정하세요…… 우리도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했잖아요. 어차피 지금 병세가 거의 안정되어 악화 되지는 않을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서 돈을 좀 아끼세요. 종합병원에 가면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요!”“누가 내 여동생을 고칠 수 있나요! 말해보세요!”세오는 눈 앞이 조금 밝아졌다. 자기 여동생만 고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리라.“서울 종합병원의 부원장, 손서연 의사선생님. 그녀라면 여동생을 고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수술비가 제
“세오, 나랑 잘 지내보자. 내가 네 여동생의 다리를 고칠 사람을 찾았어.”하현도 군말 없이 벌떡 일어나 변백범을 제지했다.세오는 하현을 경멸하듯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한 말을 내가 믿을 거 같아?”하현은 미리 준비한 명함 한 장을 꺼내 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손서연 의사의 명함이야. 당신이 그녀에게 전화하면 그녀는 제일 좋은 병실에서 당신 여동생의 수술을 준비해 줄 거야.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줄게.”“어떻게 한 거야? 설마 나를 속이는 건 아니겠지?”세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서울 종합병원의 부원장. 정말 뛰어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몇 먹이 아니면 칼을 잡지 않을 거야. 눈앞의 작은 것들은 해결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이렇게 큰 일을 어떻게 해결해? 그가 이렇게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관건은 방금 돌아오는 길에서 세오도 사람을 찾아 알아봤었다. 손서연의 의술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부원장이고, 일반인들은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내 말을 못 믿겠으면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나서 다시 나를 찾아와.”하현은 군말 없이 돌아서 가 버렸다.이런 거만한 사람을 상대할 때는 다그칠 필요가 없다. 적당히 비위를 맞추면 그만이었다.세오는 하현의 뒷모습을 주시하였다. 그가 마당을 나오려고 할 때야 입을 열었다.“기다려봐요.”말을 마치자, 그는 자신의 여동생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나타나 하현이 심호흡하는 것을 지켜보며 말했다.“내가 뭘 도와주길 바래요?”“백 씨네 집안에 아직 약간의 세력이 있으니 네가 나를 대신해서 맡아줘. 만약 불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대신해서 해결해주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으면 해. 백 씨 집안 사람을 포함해서 모두 자기 사람이 없어진 줄도 모르게.”“나를 윗사람으로 모실 수 있겠어? 변백범도 같이?”세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이런 일이라면 그는
이 생각에 다다르자, 설민혁의 안색이 완전히 일그러졌다.“안돼. 설은아를 그냥 놔두면 안되겠다. 절대 그녀가 이혼을 하게 두면 안돼. 나랑 자리 싸움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 안돼. 방법을 찾아야겠다!”설민혁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쉽지 않은 일이지만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지금은 하엔 그룹의 중요한 시기니까 우리 설 씨 집안에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큰 일 날 수 있다고, 할아버지께 그들이 이혼하지 못하도록 말씀드릴까?”지연이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자기 아이디어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일리가 있어!”민혁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설지연의 눈을 보자 경각심이 생겼다. 보아하니 설지연도 생각없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하현이 설 씨 집안에 도착했을 때 은아를 볼 수 없었다. 대신 희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희정은 “짝” 소리와 함께 손에 들린 합의서를 땅으로 내던지며 냉랭하게 말했다.“하현, 이혼 합의서에 사인해. 오늘부터 너는 더 이상 설 씨 가문의 사위가 아니니, 짐 정리해서 썩 꺼져!”그 순간, 희정은 웃기만 했다. 그녀가 3년 내내 바랐던 일이다. 마침내 이 쓸모 없는 녀석을 쓸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꿈에서도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그 다음 훌륭한 사윗감만 찾으면 되었다. 그러면 그녀는 바로 이 집안에서 편히 누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하현은 바닥에 있는 이혼 합의서를 들고 몇 번을 보았지만 서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은아는요?”희정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방금 설은아의 방에 들어갔을 때, 책상에서 이 이혼합의서가 눈에 들어왔다.지금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현이 없어지고, 자신의 딸이 마침내 이혼을 준비하다니 이거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었다.이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
그들의 눈에는 하현이 간민효를 잡아먹기라도 할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민효의 손을 놓았다.하지만 그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어두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간민효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보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어쨌든 당신 덕에 위기를 모면했어요.”“내가 미리 독을 넣긴 했지만 비행기가 그대로 출발해서 폭발하기라도 했다면 무고한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은 모두 나한테 책임이 있었을 거구요.”간민효는 멍한 눈빛으로 말을 마친 후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이래저래 난 하현 당신에게 신세를 졌어요.”“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 간민효의 친구가 된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나 간민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게요.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거예요!”“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내 진심이에요!”“내가 없어도 내 명함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혹은 약혼자를 찾아가도...”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명함을 꺼내 하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들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하현은 손안에 든 명함을 보았다.이것은 특수 목기로 조각한 것이었다.이름 하나와 전화번호만 새겨져 있어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명함은 딱 봐도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히 명함을 살피기 시작했다.명함 모서리에 몇 가지 비밀 문양 같은 것이 있었다.역시 금정 간 씨 가문다웠다.5대 문벌 중 문벌의 기원지인 금정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금정 간 씨 가문!금정 간 씨 가문은 다른 오래된 문벌보다 신비에 가까운 기세를 가진 강력한 집안이었다.이 여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신분도 간석준보다 훨씬 높았다.이런 생각들이 하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그는 간민효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아, 고맙습니다.”그러나 하현은 간민효의 명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특히 깁스를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한 ‘독’이라는 말에 눈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 아름다운 검은 옷의 여인에게 신의 경지에 가까운 독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렇게 속을 알 수 없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사소한 부주의로 의외의 실패를 맛볼 수가 있다.동시에 하현은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신분이 비할 바 없이 높고 독극물에 대해서도 해박하다.게다가 간 씨 성을 가지고 있다.이쯤 되고 보니 상대의 신분은 알 만할 것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하현은 그녀의 신분을 캐지 않았다.하현은 이제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상대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지만 죽은 사람에겐 더 이상 관심을 둘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곧이어 중년 수사대장이 하현을 찾아와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다.하현은 금정으로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에 두 스튜어디스에게 공을 넘겼다.양효리라는 이름의 스튜어디스는 잘 협조할 생각이었지만 이다송이 그녀를 막았다.이 모습이 하현의 흥미를 끌었다.양효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다송 같은 여자와 절친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와 뒤엉키는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보통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양효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부지불식중에 이다송에게 물들어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이미 자신과 얽힌 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곧 일등석은 말끔히 청소되었고 특수 약물을 뿌린 뒤여서 그런지 좀 전의 피비린내는 모두 싹 사라졌다.하현은 자신의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그러자 간 씨 성을
경찰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여자의 말이 틀린 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깁스를 했다고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깁스 안에 규조토를 섞으면 불법이지.”하현은 천천히 손에 든 홍차를 깁스 위에 뿌렸다.하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여자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규조토는 매우 특별한 화학 물질이었기 때문에 약용이나 C4 총기의 원료로만 쓰인다.“규조토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물질이 필요하지. 게다가 그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알코올이지!”“규조토 위에 소주, 보드카 등 독한 술을 한 잔만 뿌려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그 폭발의 위력은 아주 무서워!”“이론적으로 깁스 형태로 만들 정도로 규조토를 썼다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해. 아마 이 비행기는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나고도 남아!”“아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했을 거야!”“그러면 이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는 거지!”“뼈도 하나 못 추릴 만큼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는 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스튜어디스에게 비상 탈출구를 열라고 지시한 다음 작은 깁스 부스러기를 집어서 떨어뜨리며 보드카 한 잔을 뿌렸다.“쾅!”보드카와 깁스 부스러기가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이다송과 양효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만약 정말로 비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모두 죽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깁스를 한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자신의 계략을 모두 간파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중년 형사는 식은땀을 쫙 흘렸다.신고가 들어온 비행기를 자신이 살핀 뒤에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분명 하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는 심사인 듯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여러분의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뭔가를 숨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하현은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공항 경찰이라 그런가? 별로 프로답지 못하시군요들!”“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신들 해고하는 일부터 할 겁니다!”“당신들은 스스로가 다 찾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4 총기를 가장 잘 숨기기 좋은 곳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들고 있던 홍차를 여자의 다친 왼손에 부었다.“아!”여자는 뜨거운 찻물에 데여 비명을 지르며 하현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다친 손인데 조사할 게 뭐 있다는 거야?”“내가 정말 C4 총기를 숨기고 있는 줄 알아?”“설마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고 당신들과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한다고 거야?”“난 연봉 수억을 받는 임원이야. 내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해!”말을 하면서 여자는 수사대장에게 지갑에 든 명함을 꺼내 신분을 증명하려고 제시하려고 했다.그러자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의 수사대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젊은이, 여기서 이렇게 함부로 굴지 마. 우쭐대고 싶어서 주위의 시선을 좀 모으려나 본데!”“방금 우리가 확인했어. C4 총기 같은 건 전혀 없었어!”하현은 중년 형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왼손을 다쳤다고 했지만 몸에서는 아무 약 냄새도 나지 않아.”“그리고 지금 보니 당신은 얼굴에 아주 풀메이크업을 했군. 분명 본인이 한 거겠지.”“그런데 말이야. 한 손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화장을 할 수 없어.”“무엇보다 팔을 다친
곧이어 사복을 입은 여자 경찰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와 여자의 온몸을 뒤졌다.잠시 후 여자 경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여자의 몸을 수색했지만 지갑과 핸드폰 외에는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고 이상한 단서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여자 경찰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또 한 번 빠르게 수색했다.이번엔 여자의 발바닥까지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여자 경찰은 어두운 표정으로 중년의 사복 경찰을 향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중년의 경찰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가 일등석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다송, 양효리. 당신들 둘 다 죽고 싶어?”“이 여자한테서 C4 총기가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았어?”“당신들 말 때문에 귀한 일등석 손님들한테 피해를 줬잖아? 이제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거야?”양효리와 이다송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그늘진 그녀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보통 이런 일을 발견하면 공을 세운 만큼 큰 보상을 받게 된다.그것이 적어도 수천만 원이나 된다.하지만 지금은?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녀들은 웃음거리가 되었다.경찰서에서든 회사에서든 피해를 일으킨 것에 배상하기 위해 본보기로 두 사람을 해고할 것이다.모든 책임을 두 사람에게 떠넘기는 셈이다.“수사대장님, 죄송합니다. 저희도 신고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승객 한 분이 이 여자한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저희도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이다송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중년 경찰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승객이 그따위 소리를 해? 누구야?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좀 가 줘야겠어!”“그 사람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책임을 져야지!”“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말을 하면서 중년 경찰은 바닥에 쓰러진 여자에게 굽실거리며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반드시 책임지고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제대로 처리하겠다고요?”여자는
하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나한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냄새를 맡았다구요!”“냄새요?”“당신이 무슨 개코인 줄 아세요?”“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구요?!”두 스튜어디스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가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다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분명 여기저기서 허세나 부리며 날뛰는 미친놈이라 생각한 듯했다.“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어서 지금 바로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 당신을 잡아가라고 할 겁니다!”늘씬한 스튜어디스가 거만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여기는 수백 명이 탑승한 비행이 안입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안 되는 곳이라구요!”“당신이 아무리 일등석 고객이라도 소용없어요!”스튜어디스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당신 코가 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니 그럼 이것도 좀 맡아 보세요? 내가 무슨 향수를 썼는지 알아맞춰 보시라구요!”하현은 눈앞에 곱게 화장한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에서 그녀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이름표로 눈길을 돌렸다.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양효리, 당신은 어젯밤에 우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샤넬 5호 향수를 뿌렸어요. 그런데 평소 근검절약하는 습성 때문에 아끼고 아끼던 향수의 유통기한은 이미 지나버려서 지금은 거의 베이스 향만 남았군요.”“그리고 이다송, 당신은 어젯밤에 두 명의 남자랑 함께 보냈군요. 한 명은 값싼 향수를 쓰는 한량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좀 신분이 있는 남자였을 겁니다. 에르메스 향수를 쓴 것 보니...”“두 가지 향수가 당신 몸에 섞여 있어요. 아마도 어젯밤 당신은 너무 피곤해서 샤워할 틈도 없이 바로 오늘 아침 출근한 것이 틀림없어요...”하현의 말을 듣고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이 갑자기 추위에 얼어붙은 고목처럼 얼어붙었다.이다송은 하현이 어떻게 자신의 비밀을 알아챘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바로 기장을 찾아 허둥지둥 뒷걸음질쳤다.두 사람이
이 모습을 본 일등석의 스튜어디스가 열정적으로 다가와 그녀를 도와주었다.여자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자리에 앉았다.주변 승객들은 힐끔 쳐다볼 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은 살짝 찡그린 얼굴로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깁스를 한 그녀의 손에 자꾸 시선이 갔던 것이다.뭔가 미심쩍은 냄새가 진동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낌새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현은 수년 동안 전쟁터에서 굴러온 사람이라 이런 낌새에 기가 막히게 촉각이 발달해 있었다.순간 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곧장 몸을 돌려 일등석을 떠났고 힐끔 뒤를 돌아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러나 그 여자는 하현의 움직임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하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순간 하현은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이때 아리따운 용모의 스튜어디스가 하현에게 다가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손님,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죄송하지만 자리로 돌아가 앉아 주시겠어요?”또 다른 스튜어디스가 거들며 나섰다.“화장실에 가실 거면 이륙 후에 이용해 주십시오.”하현이 일등석에서 나왔기 때문에 스튜어디스들은 불만이 있어도 상냥하게 응대해야 했다.만약 다른 손님이 비행기 이륙에 방해를 했다면 아마 호되게 창피를 당했을 것이다.하현은 앞으로 나와 일등석의 유리문이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기장님께 연락 좀 해 주십시오. 제가 기장님을 만나야 합니다.”하현의 표정을 본 스튜어디스는 상냥한 미소로 말했다.“손님, 아무리 일등석 손님이어도 마음대로 기장님을 볼 수 있는 없습니다.”“비행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따로 등록을 해 드릴 수는 있어요. 괜찮으시겠습니까?”스튜어디스는 하현을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소위 인플루언서쯤으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기장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