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사람들은 달변가라더니 내가 오늘 직접 확인한 셈이로군.”“만약 지금 그 말을 대하 전신이 내게 했었다면 분명 믿었을 거야.”“하지만 당신네 섬나라 사람들은 항상 말에 신용이 없고 배신을 밥 먹듯 해.”“당신이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나?”“게다가 난 죽을 고비를 넘긴 늙은이야. 순망치한의 이치를 잘 알고 있지.”“우리 남양국이 비록 대하와 분쟁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두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그런데 어느 날 당신네 섬나라가 정말로 원하던 목적을 이룬다면 우리 남양국엔 아마도 좋은 날이 오지 않겠지, 안 그래?”“나 양제명은 공과 사를 잘 아는 사람이야. 텐푸 쥬시로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합당한 처사가 아니겠어?”자신이 양제명을 설득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을 안 텐푸 쥬시로는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양제명, 당신 끝까지 갈 준비됐어?”“준비가 되었다면 덤벼 봐.”“저승길, 내가 배웅해 주지!”텐푸 쥬시로는 앞에 있는 양제명을 향해 굳은 표정을 지었고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하현에 대한 원한이 더없이 커져 가고 있었다.하현이 항성과 도성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가?그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인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니!만약 그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섬나라 사람들은 아마 두 도시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날 배웅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될 거야.”“당신이 한창 전성기일 때 할 수 없었던 걸 지금 무슨 수로 할 수 있겠나?”“날 죽이려면 아마 당신네 신당류 종주 야마모토 잇신을 불러야 할 거야.”양제명은 냉랭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당신은 그럴 능력이 못 돼.”텐푸 쥬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되받아쳤다.“잇신 어르신은 오랫동안 은둔하셔서 세상 일엔 별로 관심이 없어.”“당신들 같은 야비한 사람들이 어르신을 귀찮게 할까 봐 아예 관심을 끄신 거지.”“대신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말을 끝내며 텐푸 쥬시로는 알약
”챙!”텐푸 쥬시로는 양제명의 칼날을 본 순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그는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도를 들어 양제명의 칼에 맞서며 몸을 날려 피해야 했다.텐푸 쥬시로는 가까스로 양제명의 일격을 피할 수 있었다.다만 양제명의 칼날은 텐푸 쥬시로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본 텐푸 쥬시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호흡을 가다듬었다.그의 눈에는 하현에 대한 원망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험상궂게 변해 가는 텐푸 쥬시로의 얼굴을 보고 양제명은 냉랭하게 말했다.“내가 보기에 당신은 미야타보다 못하군. 어쨌거나 미야타는 하현과 몇 수는 맞서 싸웠는데 말이야.”“그런데 지금 당신은 어때?”“미야타의 죽음에 겁을 먹은 지 오래구만.”“그래서 막판에 하현의 칼을 피하지 못한 거야.”“그의 칼은 이제 당신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어.”텐푸 쥬시로는 이 말을 듣고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하현, 흥! 핏덩이 같은 애송이일 뿐이야!”“이번에 내가 급하게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오장육부가 갈기갈기 찢어졌을 거야.”“절대 그럴 리가 없어! 하현은 그렇게 당하고 말 사람이 아니야!”“이번에 섬나라로 돌아가서 일 년 반 동안 수련하고 나면 나 텐푸 쥬시로, 하현에게 반드시 보여줄 거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만약 당신이 지금 하현보다 실력이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면 난 당신을 높이 볼 수 있을 거야.”“그런데 지금 당신 모습이 어때? 싸움에서 진 개가 핑계를 대며 짖어대는 꼴이야!”“텐푸 쥬시로, 당신은 섬나라 전신과 신당류 검객의 체면을 말도 못 하게 구겼어.”“당신 손발을 모두 베어 하현에게 선물로 줘야겠군.”“그러면 당신이 섬나라도 돌아갈 기회는 영영 없을 테니까.”말을 마치며 양제명은 다시 한 걸음 내디뎠고 이번에는 텐푸 쥬시로가 있는 곳을 향해 거리를 좁혀 갔다.텐푸 쥬시로의 얼굴이 험상궂게 굳어졌고 그가 막 손을 쓰려던 참
도요타 엘파의 전동문이 서서히 열리자 하구천은 검은 우산을 펼치고 빗속을 걸어갔다.그리고 나서 그는 페라리의 창문을 두드리며 하백진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손짓했다.잠시 멍한 얼굴로 넋을 잃은 표정을 하고 있던 하백진은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하구천을 보고 하백진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잠시 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빗속에 서 있는 남자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구천아, 실패했어.”“설득하지도 없애지도 못하고 모두 실패했어.”“지금까지 난 남들한테 줄곧 쓰레기들이라고 비아냥거렸는데.”“하현 그놈을 만나 보니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지 않았어.”하백진의 얼굴에 자조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구천은 오른손을 들어 하백진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들은 바로는 그놈이 오매 도관 뒷산 금지구역에 들어가 사비선과도 만났다던데, 맞아?”“텐푸 쥬시로는 오매 도관의 손을 빌려 그놈을 죽이려 한 것 같은데 이제 보니 그 계획은 실패한 것 같군.”“어리석은 섬나라 놈 같으니라구!”하구천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하현을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비선과 하현이 정식으로 얼굴을 대면하게 만들었어!”“천하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텐푸 쥬시로에 대한 원망을 내뱉은 뒤 하구천은 침착한 얼굴로 돌아왔다.하백진이든 사송란이든, 허민설을 비롯한 여인들은 그냥 그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일 뿐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인은 아니었다.이렇게 큰 항성과 도성에서 하구천이 정말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좋아하는 여인은 사비선 뿐이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비선과 하구천의 사이는 왠지 멀어질 듯하다.여인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하구천도 사비선의 마음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다.게다가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하현 그 망나니 같은 놈은 오매 도관의 노천 온천에 떨어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비선과 맞닥뜨렸다고 한다.이런 생각을 하니
”만약 그렇다면 나 하백진이 사람을 잘못 고른 거야!”“그동안 널 잘못 본 거라구!”하백진은 고개를 들고 하구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가 될 사람이 여자 때문에 이렇게 충동적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고모, 이건 충동적인 것이 아니야. 오매 도관이 내 편에 서 있다는 건 항성과 도성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하구천이 또박또박 설명했다.“사비선이 하현과 우연히 만났다고 해도 사비선의 신분이나 지위를 거론하며 누군가가 이를 이용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 우리와 오매 도관 사이의 약한 동맹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문제야!”“더군다나 남자로서 이런 모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사비선이 그 남자와 엮이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아.”하백진은 손을 내밀어 하구천의 잘생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죽는다고 해도?”“구천아, 높은 자리에 올라갈 사람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지금은 너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야. 말과 행동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해. 이런 사소한 일들이 너의 앞길에 방해가 되어서는 절대 안 돼.”“널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내가 오늘 직접 나섰겠니?!”“아무리 봐도 이번엔 우리가 좀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옳은 일은 잠시 숨을 죽이고 참는 거야.”“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우리는 벼락같은 기세로 하현 그놈의 목을 잘라 버리면 돼!”하백진은 하현이 너무도 미웠다.하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뒷일을 도모해야 한다.감히 그녀에게 뺨을 때리다니!하현에 대한 원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의 실력과 기백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구천이 후계자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이런 자와 계속 힘겨루기를 해 봤자 힘만 빠지지 도움되는 일이 뭐가 있으랴!따라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차분히 머리를 식히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하현의 뺨 몇 대가 하백진을 공포와 분노의 수렁으로 빠뜨렸지만 오만한 그녀를 현명하게 만든 점
하구천은 흠칫 놀라는 눈빛을 띠고는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하백진에게 말했다.“껍데기뿐인 당난영이지만 손을 쓰려면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그녀는 의심이 많아지고 예민해지긴 했지만 넷째 숙부는 여전히 그녀를 매우 아끼고 있어.”“심지어 그녀 곁에는 항상 최고 병왕이 함께 하고 있다구.”“그녀를 죽이려면 한 방에 끝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만 더 궁지로 몰릴 거야.”“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하백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의 번호를 보여주며 말했다.“대하 제일의 킬러 조직, 행화루.”“마침 나한테 신세를 진 게 좀 있거든.”...이튿날 아침.삼계호텔 스위트룸에서 깨어난 하현은 핸드폰에 메시지가 몇 개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하나는 양유훤이 텐푸 쥬시로에 대해 보고한 것이었다.사악한 텐푸 쥬시로를 제외하고 다른 섬나라 사람들은 모두 남양파의 손에 들어갔으니 그들의 결말이 별로 좋지 않게 끝났다는 내용이었다.다른 하나는 그 절세의 총잡이에 대한 정보였다.최영하는 항도 하 씨 가문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도련님, 하구봉을 의심하고 있다.들은 바에 의하면 이 도련님은 항도 하 씨 가문의 직계로 몇 년 동안 중동 전장에 출몰하며 항성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최근에 돌아온 모양이었다.마지막 메시지는 공해원이 보내온 것이었다.하현이 요청한 오매 도관의 성녀 사비선의 내력에 관한 자료를 보내왔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원하는 자료는 무엇이든 뚝딱 대령하던 공해원조차도 이번에는 꽤나 곤혹을 치른 모양이었다.사비선이 오매 도관 앞에 버려진 것을 오매 도관에서 입양했다는 자료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녀의 과거는 그야말로 백지 상태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그 공백마저도 점점 더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하현은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지시를 내린 후에야 일어나 씻기 시작했다.그가 씻고 아침식사를 하러 나가려는
외부 사람들 눈에는 비록 당난영이 최근 몇 년 동안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옆에서 본 그녀는 여전히 젊은 시절의 냉철함과 단호함을 잃지 않았고 십 년 전 일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누구보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분석할 줄 아는 여자였다.당난영은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자신의 말을 듣고 난 하현의 반응이 몹시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부인. 설마 수집하신 자료들, 아무런 백업이 없다고는 말씀하시지 않겠죠?”“물론 있지.”당난영은 단둘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복제가 절대 허용되지 않는 기밀문서들을 다 포함해서 측근들에게 자료를 모두 스캔해 놓으라고 지시했어.”숨겨둔 비밀을 털어놓은 당난영은 그제야 양미간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래서 지금 일이 더 난처해졌어.”“이 자료들에 의존해 계속 조사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아무런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어.”“스캔한 서류는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이야.”하현은 웃으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나뭇잎이 눈을 가리고 있으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수밖에요!”“증거가 사라진 거 맞아요. 확실히 사라져 버렸어요.”“하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증거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에요.”“항도 하 씨 가문 문주를 예로 들어 보죠.”“그동안 친아들이 어린 나이에 죽게 된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으셨나요?”“항도 하 씨 노부인은 어떠신가요?”“노부인 입장에서 증거가 중요할까요?”“아마 노부인은 진실을 알고 있을 거예요. 만약 노부인이 살인범을 지키려고 한다면 부인이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아무 소용없을 겁니다.”당난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잠시 후 뭔가 깨달은 듯 얼굴빛이 변했다.자신은 지금까지 증거라는 틀에 집착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대부분의 경우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증거란 것은 있든 없든 그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 일이 잘 지나가면 부인께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그렇지만 당신은 각별히 조심해야 해!”당난영은 침착하게 말했다.“한 번 실패를 맛볼 때마다 그만큼 지혜로워는 것 같더군.”“십 년 전 일을 다시 조사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내가 죽기를 바랐다는 걸 알게 되었어.”하현은 이 말을 듣고 씁쓸한 눈빛을 보였다.십 년 전 그 일에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였다.항성과 도성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두컴컴하게 내려앉은 하늘을 보았다.곧 비바람이 들이닥칠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이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곱상한 얼굴에 호리호리한 옷차림의 하인이 들어왔다.그녀는 당난영을 향해 깍듯이 인사한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아침 차가 준비되었습니다.”“그래, 올려놔.”당난영이 손짓을 하자 곧 아스파라거스 죽, 호두 만두, 새우 만두, 가벼운 국수 등이 식탁에 가득 차려졌다.이 외에도 테이블에는 인삼차 한 잔과 보이차 한 잔이 놓였다.보이차는 항성식 아침 차의 상징이어서 특별히 하현을 위해 준비했다.항상 건강 관리에 신경 쓰는 당난영에게 인삼차는 친숙한 아침 차였다.하인이 아침 상을 차려놓자 당난영은 손을 흔들며 나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그런 다음 당난영은 인삼차를 들고 천천히 입김을 불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아침을 즐겨 먹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이건 내 작은 성의로 알아줬으면 좋겠어.”“먹고 싶은 게 있으면 따로 말해도 돼. 내가 셰프한테 준비하라고 할 테니까.”당난영이 말을 마치며 인삼차를 입에 가져갔다.하지만 하현은 숨을 살짝 들이미시더니 이내 안색이 돌변했다.“부인, 잠깐만요.”하현은 예의도 차리지 않고 당난영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낚아채 몇 번 킁킁거린 후 떠나려는 하인에게 시선을 돌렸다.“인삼은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고려인삼이든 서양인삼이든 기를 보양하고 피를
”촤랑!”하현이 들고 있던 찻잔이 그의 손을 빠져나가는 순간 하인은 본능적으로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곱상한 그녀의 얼굴이 사악하게 일그러졌다.하인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순간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하현을 향해 은침을 날렸다.하현은 매서운 얼굴로 손에 든 냅킨을 들어 올리며 은침을 붙잡았다.이 틈을 타 키가 작은 하인은 어느새 칼을 하나 집어 들었다.하인은 몸을 굴려 당난영의 앞에 이르렀고 머뭇거림 없이 몸을 일으켜 당난영의 목구멍에 칼을 들이대었다.“탕탕탕!”하인의 손에 있던 칼은 허공을 향해 있었고 닭 잡을 힘조차도 없어 보이던 당난영의 손에는 어느새 총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그녀는 덤덤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총에 들어 있던 여섯 발의 총알을 모두 하인의 몸에 꽂았다.하인은 이리저리 몸부림치다가 흉악한 얼굴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닭 잡을 힘도 없어 보이던 당난영이 언제 어디서 총을 꺼냈는지 하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이 하인의 식솔들을 모두 다 잡아와서 그 죄를 물어야겠어!”항도 하 씨 가문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그녀의 곁으로 몰려들었다.당난영은 냅킨으로 손가락을 닦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아울러 오늘 이 여자와 접촉한 사람뿐만 아니라 개미 한 마리라도 샅샅이 밝혀내!”“이 여자가 어떤 사람과 접촉했고 누구에게 명령을 받았는지 알아야 해.”“우리 항도 하 씨 가문 가든 별장에 반년 동안 숨어 있었으니 반년 전부터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던 거야.”당난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경호원 무리는 명령에 답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곧 항성과 도성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 분명했다.시신은 이내 어디론가 끌려나갔고 다이닝은 깨끗하게 정리되었으며 공기 중에는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다.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방금 이곳에서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하현은 당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