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오매 도관?”“당신은? 사비선?!”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목욕 타월을 두른 여자를 쳐다보았다.하현을 똑바로 바라보는 여자의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절체절명의 순간 몸을 피한 곳이 오매 도관 성녀 사비선의 노천탕일 줄은 몰랐다.티끌 하나 묻지 않은 흡사 선녀 같은 사비선의 얼굴을 보면서 하현은 처음으로 왜 이 여자가 사비선인지 알게 되었다.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자신을 성녀의 노천탕에 떨어뜨려 목숨을 살릴 수 있게 한 것이 텐푸 쥬시로의 큰 그림에 있었던 계략이었을까?만약 그렇다면 텐푸 쥬시로는 하구천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부터 단단히 해야 할 판이었다.하현의 기억이 맞다면 하구천은 성녀 사비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사비선의 유리 같은 눈동자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후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잠시 후 그녀도 자신의 노천탕에 불쑥 나타난 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현?!”“뭐? 그 쳐죽일 하현?!”“오매 도관의 얼굴에 몇 번이나 먹칠을 한 그놈? 경매장에서 난동을 부려 행사를 망치게 한 그놈?”“사송란을 죽이고도 감히 우리 오매 도관 사람들에게 3일 안에 해명하라고 했던 그놈이란 말이야?”“이놈이 어떻게 뻔뻔하게 이곳에 얼굴을 들이민단 말이야?”“성녀님, 이놈이 여기에 나타난 건 성녀님께 엄청난 모욕입니다. 죽어 마땅한 놈이죠!”오매 도관의 여제자들은 화가 난 얼굴로 달려들어 단칼에 하현을 찔러 죽이려고 했다.“솩!”사비선은 오른손을 내저으며 칼을 물리라는 손짓을 했다.이어 그녀는 병풍 뒤로 몸을 돌려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항성에 몇 안 되는 천연 온천이야. 피를 묻히고 망쳐서야 되겠어?”칼을 든 오매 도관 여제자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우리가 경솔했습니다. 지금 당장 이놈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
옷을 갈아입고 나온 사비선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하늘하늘 눈부셨다.그녀의 유리 같은 눈동자는 차갑게 하현을 주시하다가 잠시 후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은 전에 사송란의 일로 우리 오매 도관에게 해명하라고 했었지.”“오늘은 또 내 노천탕에 침입했어. 당연히 죽어 마땅해!”“하지만 우리 오매 도관은 당신한테 신세를 진 것도 있으니.”“내 생각엔 이걸로 서로 끝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어때? 다른 의견이라도 있어?”“뭐라구요?”사비선의 말을 듣고 오매 도관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성녀가 노천탕에서 이런 큰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오매 도관에서 해명하는 일과 이 일을 맞바꿔 여기서 이대로 끝내자고?그렇다면 이 일에서 결국 손해를 본 사람은 누구인가?!여제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성녀 사비선을 향했다.도저히 성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줄곧 오매 도관과 맞서던 이 남자를 설마 성녀 사비선은 이대로 눈감아주겠다는 것인가?어리둥절하기는 하현도 마찬가지였다.속세에서 남녀 간의 정열을 불태워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거나 자신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탕에서 올라와 사비선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몸에 걸쳐져 있던 향긋한 수건을 들어 자신의 머리와 얼굴을 닦았다.제멋대로인 그의 행동에 여제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그건 성녀님이 닦은 수건인데...”“팍!”여제자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사비선의 얼굴에 언짢은 빛이 스쳐 지나갔고 순간 그녀는 한 발짝 내디뎌 하현의 명치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툭!”하현은 얼떨결에 그녀의 손바닥을 막았지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전쟁의 신인 하현이었지만 방금 그의 손에 있던 향긋한 수건이 성녀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걸 그제야 알았
”당신이 24시간 이내에 항성을 떠나기만 한다면 더 이상 당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추궁하지 않을 거야. 그뿐만 아니라 우리 오매 도관은 당신한테 약간의 도움도 줄 수 있어.”사비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성녀, 오늘까지 기껏해야 우리 두 번 만난 셈이지, 그렇지?”“그런데 내가 그렇게 싫어?”“그렇게 항성을 떠났으면 좋겠어?”“그래, 맞아!”“당신이 항성에 온 이후로 항성 전체가 혼돈 속에 빠졌어. 항도 하 씨 가문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어.”사비선은 냉랭한 표정으로 여제자가 건네준 차를 받아 마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항성과 도성이 평온하려면 항도 하 씨 가문이 안정되어 있어야 해. 그게 기본이야.”“당신의 존재로 인해 항성과 도성은 휘청거리고 있어. 그러니 당신은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나주길 바라.”“그렇게 하는 것이 항도 하 씨 가문에 안정을 가져오는 길이야.”“항성과 도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야.”“당신이 떠나기만 한다면 모든 일은 간단해져. 우리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다고. 그러니 안 할 이유가 없잖아?”하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사비선, 당신의 말은 너무 편파적이야.”“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어. 그 모든 일들로 설명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야. 하구천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내가 있든 없든 하구천의 위신은 흔들릴 것이고 문주 자리도 흔들릴 거야.”“그러니까 그건 나와 아무 상관없어.”“난 그런 일 때문에 항성을 떠나지는 않을 거야.”사비선은 눈썹을 가늘게 치켜세우며 말했다.“하현, 당신 정말 이렇게 고집부릴 거야?”“고집이 아니라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항성을 떠나야 돼?”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물러서지 않았다.“내가 비록 이곳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난 내 자유의지로 살아갈 권리가 있어. 다
”총교관은 누구보다 위풍당당하고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해!”“그는 우리 대하의 병부 전설이야. 살아있는 전설이라고!”“그런데 어떻게 총교관이 자신이라는 그런 망발을 늘어놓을 수가 있어?”“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총교관의 이름에 이미 먹칠을 한 거라고, 알아?”사비선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쏘아보았다.“이것만으로도 당신을 싫어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은데!”“무고한 사람은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신념이 나에게 없었다면 오늘 당신을 절대로 이 오매 도관에서 나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어!”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야. 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 몫이지만!”“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당신은 구제불능이군!”사비선의 얼굴에 희미한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총교관은 그녀의 우상이나 다름없었다.절대 그 누구도 총교관의 위상을 더럽히는 걸 용납할 수 없는 그녀였다.“이봐! 이놈을 당장 끌고 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장 항성에서 내쫓아!”“그리고 앞으로 또 한 번 이놈이 스스로를 총교관이라 칭하거든 당장 죽여 버려도 좋아!”“오매 도관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거야!”말이 끝나자 사비선은 몸을 돌리며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순간 십여 명의 오매 도관 여제자들이 하현 앞을 가로막으며 장검을 들이대었다.그중 한 사람은 험악한 얼굴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당장 꺼져!”하현은 십여 명의 여제자들도, 그들이 든 장검도 모두 무시했다.그는 단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비선을 바라보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사비선, 오매 도관을 떠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항성과 도성을 떠나라면 그것도 그렇게 할 수 있어. 당신이 하라 마라 할 것도 없어.”“그러나 총교관의 일에 관해서는 말이야. 당신은 내가 총교관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렇다면 내가 한 가지 물어볼게.”“바깥에서 떠도는 소문이 있던데 말이야. 곧 대하 9대 총교관으로
오매 도관 뒷산 금지구역 안.텐푸 쥬시로는 오른손으로 피가 흥건한 복부를 감싸고 있었다.얼굴은 피범벅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그러나 그는 얼른 알약을 하나 꺼내 입에 털어 넣고는 벼랑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는 창백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사비선이 이 자식을 죽이지 않을 줄은 몰랐군.”“역시 여자들 치마폭에서 놀던 놈은 다르군.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살아난 거야!?”말을 마치며 텐푸 쥬시로는 스스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자신이 남긴 흔적을 조심스럽게 지운 후 그 자리를 떠나려고 돌아서려던 참이었다.순간 뒤에서 ‘슥’하는 소리가 들렸다.뭔가 낌새를 알아차린 텐푸 쥬시로는 얼른 거즈로 상처를 동여맨 뒤 자신의 섬나라 장도를 움켜쥐고 음산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주변의 공기는 북극의 한기를 가져온 듯 차갑게 내려앉았다.1분의 시간이 억겁의 시간 같았다.잠시 뒤 숲속에서 두 손을 뒷짐진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냉담한 표정에 기세는 범상치 않았다.노인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텐푸 쥬시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텐푸 쥬시로는 눈을 가늘게 뜨며 건너편 노인을 자세히 쳐다본 후에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남양 전신, 양제명?”그러자 양제명은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날 알아본다니 그럼 당연히 이 사실도 알겠군. 내가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당신 아들한테 부탁한 말이 있을 텐데, 그것도 알겠지?”“그런데 이제 보니 텐푸 쥬시로 당신은 나 양제명의 말을 허투루 들은 모양이야.”“왜 그랬을까?”“나 양제명이 십 년 동안 수족도 못 쓰다가 겨우 일어났더니 날 벌써 잊은 건가?”텐푸 쥬시로의 눈 밑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당연히 남양 전신 양제명을 아는 듯했다.남양국은 오랜 세월 동안 태국과 천축국에 시달렸지만 결국 나라를 온전히 지켰고 심지어 동남 해역에서는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그럴 수 있었던 가장
”섬나라 사람들은 달변가라더니 내가 오늘 직접 확인한 셈이로군.”“만약 지금 그 말을 대하 전신이 내게 했었다면 분명 믿었을 거야.”“하지만 당신네 섬나라 사람들은 항상 말에 신용이 없고 배신을 밥 먹듯 해.”“당신이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나?”“게다가 난 죽을 고비를 넘긴 늙은이야. 순망치한의 이치를 잘 알고 있지.”“우리 남양국이 비록 대하와 분쟁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두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그런데 어느 날 당신네 섬나라가 정말로 원하던 목적을 이룬다면 우리 남양국엔 아마도 좋은 날이 오지 않겠지, 안 그래?”“나 양제명은 공과 사를 잘 아는 사람이야. 텐푸 쥬시로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합당한 처사가 아니겠어?”자신이 양제명을 설득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을 안 텐푸 쥬시로는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양제명, 당신 끝까지 갈 준비됐어?”“준비가 되었다면 덤벼 봐.”“저승길, 내가 배웅해 주지!”텐푸 쥬시로는 앞에 있는 양제명을 향해 굳은 표정을 지었고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하현에 대한 원한이 더없이 커져 가고 있었다.하현이 항성과 도성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가?그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인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니!만약 그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섬나라 사람들은 아마 두 도시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날 배웅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될 거야.”“당신이 한창 전성기일 때 할 수 없었던 걸 지금 무슨 수로 할 수 있겠나?”“날 죽이려면 아마 당신네 신당류 종주 야마모토 잇신을 불러야 할 거야.”양제명은 냉랭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당신은 그럴 능력이 못 돼.”텐푸 쥬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되받아쳤다.“잇신 어르신은 오랫동안 은둔하셔서 세상 일엔 별로 관심이 없어.”“당신들 같은 야비한 사람들이 어르신을 귀찮게 할까 봐 아예 관심을 끄신 거지.”“대신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말을 끝내며 텐푸 쥬시로는 알약
”챙!”텐푸 쥬시로는 양제명의 칼날을 본 순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그는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도를 들어 양제명의 칼에 맞서며 몸을 날려 피해야 했다.텐푸 쥬시로는 가까스로 양제명의 일격을 피할 수 있었다.다만 양제명의 칼날은 텐푸 쥬시로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본 텐푸 쥬시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호흡을 가다듬었다.그의 눈에는 하현에 대한 원망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험상궂게 변해 가는 텐푸 쥬시로의 얼굴을 보고 양제명은 냉랭하게 말했다.“내가 보기에 당신은 미야타보다 못하군. 어쨌거나 미야타는 하현과 몇 수는 맞서 싸웠는데 말이야.”“그런데 지금 당신은 어때?”“미야타의 죽음에 겁을 먹은 지 오래구만.”“그래서 막판에 하현의 칼을 피하지 못한 거야.”“그의 칼은 이제 당신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어.”텐푸 쥬시로는 이 말을 듣고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하현, 흥! 핏덩이 같은 애송이일 뿐이야!”“이번에 내가 급하게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오장육부가 갈기갈기 찢어졌을 거야.”“절대 그럴 리가 없어! 하현은 그렇게 당하고 말 사람이 아니야!”“이번에 섬나라로 돌아가서 일 년 반 동안 수련하고 나면 나 텐푸 쥬시로, 하현에게 반드시 보여줄 거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만약 당신이 지금 하현보다 실력이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면 난 당신을 높이 볼 수 있을 거야.”“그런데 지금 당신 모습이 어때? 싸움에서 진 개가 핑계를 대며 짖어대는 꼴이야!”“텐푸 쥬시로, 당신은 섬나라 전신과 신당류 검객의 체면을 말도 못 하게 구겼어.”“당신 손발을 모두 베어 하현에게 선물로 줘야겠군.”“그러면 당신이 섬나라도 돌아갈 기회는 영영 없을 테니까.”말을 마치며 양제명은 다시 한 걸음 내디뎠고 이번에는 텐푸 쥬시로가 있는 곳을 향해 거리를 좁혀 갔다.텐푸 쥬시로의 얼굴이 험상궂게 굳어졌고 그가 막 손을 쓰려던 참
도요타 엘파의 전동문이 서서히 열리자 하구천은 검은 우산을 펼치고 빗속을 걸어갔다.그리고 나서 그는 페라리의 창문을 두드리며 하백진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손짓했다.잠시 멍한 얼굴로 넋을 잃은 표정을 하고 있던 하백진은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하구천을 보고 하백진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잠시 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빗속에 서 있는 남자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구천아, 실패했어.”“설득하지도 없애지도 못하고 모두 실패했어.”“지금까지 난 남들한테 줄곧 쓰레기들이라고 비아냥거렸는데.”“하현 그놈을 만나 보니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지 않았어.”하백진의 얼굴에 자조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구천은 오른손을 들어 하백진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들은 바로는 그놈이 오매 도관 뒷산 금지구역에 들어가 사비선과도 만났다던데, 맞아?”“텐푸 쥬시로는 오매 도관의 손을 빌려 그놈을 죽이려 한 것 같은데 이제 보니 그 계획은 실패한 것 같군.”“어리석은 섬나라 놈 같으니라구!”하구천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하현을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비선과 하현이 정식으로 얼굴을 대면하게 만들었어!”“천하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텐푸 쥬시로에 대한 원망을 내뱉은 뒤 하구천은 침착한 얼굴로 돌아왔다.하백진이든 사송란이든, 허민설을 비롯한 여인들은 그냥 그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일 뿐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인은 아니었다.이렇게 큰 항성과 도성에서 하구천이 정말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좋아하는 여인은 사비선 뿐이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비선과 하구천의 사이는 왠지 멀어질 듯하다.여인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하구천도 사비선의 마음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다.게다가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하현 그 망나니 같은 놈은 오매 도관의 노천 온천에 떨어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비선과 맞닥뜨렸다고 한다.이런 생각을 하니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