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백진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비아냥거리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하현이 난도질당하는 장면을 놓칠까 봐 걱정일 지경이었다.텐푸 쥬시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백진, 내가 하현을 죽일 테니 똑똑히 봐. 그리도 당신과 하구천이 나와 약속한 거, 절대 잊지 마!”하백진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쓸데없는 말 할 필요 없어. 당신이 하현을 죽이기만 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특별 외교 신분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이제부터 당신들은 우리 항성에서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야!”“당신이 항성의 법을 어겨도 하구천이 도와줄 테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하지 못할 거야!”“자, 이제 조용히 입 다물어.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방해하지 마!”텐푸 쥬시로는 흡족한 듯 소리 없이 웃었다.그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팔 수 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이 너무나 통쾌하고 즐거웠다.하백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의 풍뢰팔자의 칼날이 하현의 온몸을 에워쌌다.하현은 칼날 속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공세 속에서도 하현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텐푸 쥬시로가 풍뢰팔자를 가르치다니, 정말 대단하군.”“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은 나 하현을 만났어.”“내 앞에서는 전신도 땅강아지처럼 맥을 못 추는데 하물며 가짜 전신이라, 흥!”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검객들 속으로 뛰어들어 손바닥을 마구 휘갈겼다.표정은 냉담하고 결연했지만 몸동작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다.풍뢰팔자의 눈에는 평범했던 하현이 갑자기 부채만 한 손바닥을 들고 자신을 향하는 것은 착각이 들었다.하현의 손바닥은 천지를 뒤흔들고 하늘을 뒤덮어 버리는 것 같았다.“어서 죽여 버려!”약을 먹은 섬나라 검객들은 순간적으로 손에 든 칼을 사정없이 휘둘렀다.“촥!”낭랑한 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풍뢰팔자는 하나같이 온몸을 흠칫했다.사람 그
텐푸 쥬시로는 하백진과 연결된 영상 통화를 꺼버렸다.그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은 듯 허둥지둥거렸다.“이 정도면 거의 나의 실력에 많이 가까워진 것 같군.”“전신의 정점에 다가설 만한 실력이야.”“그 정도 실력이 아니라면 어찌 우리 풍뢰팔자를 해치울 수 있겠어?”텐푸 쥬시로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감탄하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하현, 당신은 정말 비밀스러운 사람이야. 젊은 나이에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젊은데 유능하기까지 하다니 정말 대단해.”“당신 같은 사람이 왜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야?”“자랑을 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준비하기 어렵잖아!”“준비가 부족해서 아마 오늘 이렇게 당신한테 당한 거 같은데, 우리가 누굴 찾아가서 이 억울함을 따질 수 있겠어?”텐푸 쥬시로는 담담하게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다행히 내가 오랫동안 은거하면서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는 도를 터득했지. 은거하기 전보다 훨씬 더 깊은 도를 터득하게 된 거야.”“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 정말 당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안타깝게도 오늘 대하에서는 군신 한 명을 또 잃게 될 운명이로군!”텐푸 쥬시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짐짓 안타깝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마주 보며 비아냥거렸다.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졌다고 생각했다.하현의 실력이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몰아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나 텐푸 쥬시로가 직접 나서자 다시 기가 살아난 것이다.신당류 전설의 검객! 명불허전!지금 이 순간 섬나라 사람들은 전설이 되돌아온 것마냥 기고만장해졌다!“저놈을 죽여 버려! 우리 텐푸 쥬시로 전신이 하는 말 못 들었어?!”“자신이 전신이라도 된 줄 착각하겠지만 우리 텐푸 쥬시로 앞에서 감히 찍소리나 할 줄 알아?”“이 자식아! 젊은 놈이 어디 함부로 덤벼!”“네놈이 태어나서부터 무학을 수련했다고 해도 텐푸 쥬시로의 적수는 되지 못해!”“빨
텐푸 쥬시로는 신당류의 검객, 섬나라 전신, 황실 궁중 어의, 하늘과 인간의 도리를 깨달은 도인으로 불리고 있었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런 추잡한 수를 쓰다니!그는 자신이 시대의 걸출이라고 불리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오늘 그는 많은 준비를 했었다.심지어 자신이 정성껏 훈련시킨 풍뢰팔자도 선보였다.그런데 결과는 무참했다.이런 상황에서 텐푸 쥬시로가 정말 용감하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어떻게 하현과 싸울 수 있겠는가?그래서 정의롭고 늠름한 척 아랫사람의 뺨을 때리고 닥치는 대로 아랫사람의 몸을 던져 요트 엔진을 부순 뒤 텐푸 쥬시로는 깔끔하게 달아난 것이다.게다가 그의 탈출 경험은 아주 풍부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빠른 속도로 해안가에 도달할 것이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서 요트에 남아 있는 섬나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지금까지의 신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하현은 이 사람들과는 쓸데없이 뒤엉키고 싶지 않아서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 메시지를 보낸 후 스스로 바다속으로 뛰어들어 텐푸 쥬시로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쫓아갔다.텐푸 쥬시로는 어쨌든 전신이었고 검객이었다.아무리 실력이 찌질하기로서니 그래도 전신의 위엄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하현은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고 싶었다.그렇지 않으면 은신해 있던 전신이 언제 또다시 나타나 자신의 목에 칼끝을 들이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하현에게 칼날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는 문제였다.하현이 자신을 놓치지 않고 쫓아온다는 것을 눈치챈 텐푸 쥬시로는 뭍에 오른 후 빠른 속도로 해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항성 태평산의 뒤쪽 기슭으로 상류층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함부로 개발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이 숲에는 새와 짐승도 많다고 전해지며 항성에서 보기 힘든 청정 장소였다.안타깝
’헉'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해내던 텐푸 쥬시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하현, 역시 대단하군.”“젊은 나이에 전신에까지 오르다니.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거야.”“이런 인제가 우리 섬나라 귀족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텐푸 쥬시로,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당신을 구해 줄 순 없어.”“요트에서 이미 이 지역 통신을 다 차단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어.”“말하자면 당신이 나를 따돌린 뒤 방금 보낸 메시지는 영원히 아무도 받지 못할 거라는 거야.”텐푸 쥬시로는 얼굴빛이 흐려지며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십여 분 전에 도움 요청을 보낸 메시지 앞에 아직도 빨간 느낌표가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았다!“이 빌어먹을 놈이!”텐푸 쥬시로는 버럭 화를 냈다.“젊은 놈이 섬나라 검객을 뭘로 보는 거야?! 진정 내 칼에 죽고 싶은 거야?!”“내가 오늘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야!”텐푸 쥬시로가 포효하며 양손에 들고 있던 칼을 앞으로 힘껏 내질렀다.칼날이 시리도록 날카로웠다.귀신이 곡하고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주먹을 불끈 움켜쥔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하현은 텐푸 쥬시로가 자신을 향해 돌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텐푸 쥬시로는 하현의 곁을 지나쳐 산꼭대기 쪽으로 계속 달려갔다.하현은 눈앞에 벌어진 일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섬나라 전신이 이 지경이 되어도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떼고 칼을 내리치는 시늉으로 눈을 속이며 도망치다니!“텐푸 쥬시로! 자꾸 도망쳐 봐야 소용없어!”하현이 냉랭하게 소리쳤다.“하현, 제발 쫓아오지 마!”텐푸 쥬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숲으로 달리며 하현을 따돌리려고 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텐푸 쥬시로를 노려보았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십여 미터 정도로 유지하며 사냥감과 사냥꾼처럼 빠르게 쫓고 쫓겼다.머지않아 두 사람은 산꼭대기 가까이 있는
”퍽!”텐푸 쥬시로는 순식간에 몸이 날려 바위에 세게 부딪혔고 입에서 튀어나온 피가 바위 위에 점점이 흩어졌다.텐푸 쥬시로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졌고 눈동자는 매서운 칼날처럼 빛났다.그는 처음부터 온갖 계략을 써서 하현을 일생일대의 적처럼 두고 싸웠지만 하현은 결코 교만하거나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이런 상황에서조차 냉정함을 유지하며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반나절을 넘게 계략에 계략을 더하며 끌어왔지만 결국 텐푸 쥬시로는 하현을 죽이지 못하고 되레 그의 공격에 맥을 추지 못했다.하현, 이 자는 정말 치밀하고 강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챙!”텐푸 쥬시로는 이를 악물고 다시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그는 피범벅이 된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몸을 솟구쳐 허공에서 칼을 내리쳤다.마치 별똥별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하현도 단호한 얼굴로 칼을 휘둘렀다.“쨍그랑!”양측의 칼날이 부딪힘과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다시 엇갈렸다.하현은 벼랑 끝에 섰고 텐푸 쥬시로는 숲이 펼쳐진 쪽에 서 있었다.“영웅이 될 만한 젊은이군.”텐푸 쥬시로는 자신의 칼날을 어루만지며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당신 같은 사람이 몇 년만 더 세월의 경험을 쌓는다면 정말 무시무시할 것 같은데. 나조차도 당신을 상대하지 못하겠는 걸.”“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죽일 수 있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자꾸 잔꾀를 부리는 거야?”“당신네 섬나라 사람들은 전신의 경지에 올라도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힘들 거야.”“당신이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치던 순간부터 당신은 영원히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당신을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어떤 후수를 준비했는지 보고 싶어서일 뿐이야.”“그런데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당신의 후수가 날 무척 실망시켰다는 거야.”“실망
”성녀?!”“오매 도관?”“당신은? 사비선?!”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목욕 타월을 두른 여자를 쳐다보았다.하현을 똑바로 바라보는 여자의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절체절명의 순간 몸을 피한 곳이 오매 도관 성녀 사비선의 노천탕일 줄은 몰랐다.티끌 하나 묻지 않은 흡사 선녀 같은 사비선의 얼굴을 보면서 하현은 처음으로 왜 이 여자가 사비선인지 알게 되었다.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자신을 성녀의 노천탕에 떨어뜨려 목숨을 살릴 수 있게 한 것이 텐푸 쥬시로의 큰 그림에 있었던 계략이었을까?만약 그렇다면 텐푸 쥬시로는 하구천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부터 단단히 해야 할 판이었다.하현의 기억이 맞다면 하구천은 성녀 사비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사비선의 유리 같은 눈동자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후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잠시 후 그녀도 자신의 노천탕에 불쑥 나타난 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현?!”“뭐? 그 쳐죽일 하현?!”“오매 도관의 얼굴에 몇 번이나 먹칠을 한 그놈? 경매장에서 난동을 부려 행사를 망치게 한 그놈?”“사송란을 죽이고도 감히 우리 오매 도관 사람들에게 3일 안에 해명하라고 했던 그놈이란 말이야?”“이놈이 어떻게 뻔뻔하게 이곳에 얼굴을 들이민단 말이야?”“성녀님, 이놈이 여기에 나타난 건 성녀님께 엄청난 모욕입니다. 죽어 마땅한 놈이죠!”오매 도관의 여제자들은 화가 난 얼굴로 달려들어 단칼에 하현을 찔러 죽이려고 했다.“솩!”사비선은 오른손을 내저으며 칼을 물리라는 손짓을 했다.이어 그녀는 병풍 뒤로 몸을 돌려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항성에 몇 안 되는 천연 온천이야. 피를 묻히고 망쳐서야 되겠어?”칼을 든 오매 도관 여제자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우리가 경솔했습니다. 지금 당장 이놈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
옷을 갈아입고 나온 사비선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하늘하늘 눈부셨다.그녀의 유리 같은 눈동자는 차갑게 하현을 주시하다가 잠시 후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은 전에 사송란의 일로 우리 오매 도관에게 해명하라고 했었지.”“오늘은 또 내 노천탕에 침입했어. 당연히 죽어 마땅해!”“하지만 우리 오매 도관은 당신한테 신세를 진 것도 있으니.”“내 생각엔 이걸로 서로 끝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어때? 다른 의견이라도 있어?”“뭐라구요?”사비선의 말을 듣고 오매 도관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성녀가 노천탕에서 이런 큰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오매 도관에서 해명하는 일과 이 일을 맞바꿔 여기서 이대로 끝내자고?그렇다면 이 일에서 결국 손해를 본 사람은 누구인가?!여제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성녀 사비선을 향했다.도저히 성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줄곧 오매 도관과 맞서던 이 남자를 설마 성녀 사비선은 이대로 눈감아주겠다는 것인가?어리둥절하기는 하현도 마찬가지였다.속세에서 남녀 간의 정열을 불태워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거나 자신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탕에서 올라와 사비선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몸에 걸쳐져 있던 향긋한 수건을 들어 자신의 머리와 얼굴을 닦았다.제멋대로인 그의 행동에 여제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그건 성녀님이 닦은 수건인데...”“팍!”여제자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사비선의 얼굴에 언짢은 빛이 스쳐 지나갔고 순간 그녀는 한 발짝 내디뎌 하현의 명치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툭!”하현은 얼떨결에 그녀의 손바닥을 막았지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전쟁의 신인 하현이었지만 방금 그의 손에 있던 향긋한 수건이 성녀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걸 그제야 알았
”당신이 24시간 이내에 항성을 떠나기만 한다면 더 이상 당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추궁하지 않을 거야. 그뿐만 아니라 우리 오매 도관은 당신한테 약간의 도움도 줄 수 있어.”사비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성녀, 오늘까지 기껏해야 우리 두 번 만난 셈이지, 그렇지?”“그런데 내가 그렇게 싫어?”“그렇게 항성을 떠났으면 좋겠어?”“그래, 맞아!”“당신이 항성에 온 이후로 항성 전체가 혼돈 속에 빠졌어. 항도 하 씨 가문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어.”사비선은 냉랭한 표정으로 여제자가 건네준 차를 받아 마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항성과 도성이 평온하려면 항도 하 씨 가문이 안정되어 있어야 해. 그게 기본이야.”“당신의 존재로 인해 항성과 도성은 휘청거리고 있어. 그러니 당신은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나주길 바라.”“그렇게 하는 것이 항도 하 씨 가문에 안정을 가져오는 길이야.”“항성과 도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야.”“당신이 떠나기만 한다면 모든 일은 간단해져. 우리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다고. 그러니 안 할 이유가 없잖아?”하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사비선, 당신의 말은 너무 편파적이야.”“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어. 그 모든 일들로 설명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야. 하구천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내가 있든 없든 하구천의 위신은 흔들릴 것이고 문주 자리도 흔들릴 거야.”“그러니까 그건 나와 아무 상관없어.”“난 그런 일 때문에 항성을 떠나지는 않을 거야.”사비선은 눈썹을 가늘게 치켜세우며 말했다.“하현, 당신 정말 이렇게 고집부릴 거야?”“고집이 아니라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항성을 떠나야 돼?”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물러서지 않았다.“내가 비록 이곳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난 내 자유의지로 살아갈 권리가 있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