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해치워!”하현이 다시 그들의 습격을 피하자 네 명의 섬나라 검객들은 다시 손을 잡고 동시에 전방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갑판에 박힌 검을 뽑아 들고 오른손을 치켜들었다.마치 검은 바다에 비추는 한 줄기 달빛처럼 칼날이 번쩍이며 허공을 갈랐다.텐푸 쥬시로는 이 광경을 보고 얼굴빛이 갑자기 일그러졌다.“풍뢰화문! 절대로 우릴 침범할 수 없어!”순간 네 명의 섬나라 검객들이 들고 있던 장도가 겹쳐지며 동시에 앞을 막아섰다.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구도였다.텐푸 쥬시로가 고수라는 것은 가르친 솜씨를 보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창창창!”하현이 가지고 있던 검이 섬나라 장도에 부딪혀 떨어지며 불꽃이 튀었다.네 명의 공격을 깨뜨릴 방법이 없었다.그와 동시에 널브러져 있던 네 명의 섬나라 검객들도 비릿한 향이 나는 알약을 삼키고는 눈이 벌개져서 다시 죽일 듯한 눈빛으로 일어섰다.분명 이 알약은 부상을 지연시키고 순간적으로 온몸을 자극해 벌떡 일어서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바람과 천둥은 비로 변하고 천둥과 번개는 천지를 흔들지어다!”하현이 궁지에 몰린 듯하자 텐푸 쥬시로는 눈빛이 음흉하게 변하며 거침없이 명령을 내렸다.하현을 향한 살기가 텐푸 쥬시로의 눈에서 넘쳐흘렀다.여덟 명의 검객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고 그들의 손에 있던 섬나라 장도는 동시에 칼집으로 들어갔다가 동시에 칼집에서 튀어나왔다.“죽여!”섬나라 발도술!이것은 섬나라 검도술 중 가장 강력한 권법이라고 할 수 있다.여덟 명의 절정의 병왕들이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칼을 겨누었고 죽일 듯이 살기를 띠며 덤벼들었다.여덟 개의 칼이 하나로 합쳐져 어떤 전신도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전해졌다.누구도 쉽게 물리칠 수 없는 막강한 형세였다!이를 본 텐푸 쥬시로의 얼굴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이런 묘수는 텐푸 쥬시로도 막을 수 없다.그러니 홀몸인 하현은 어떠랴?텐푸 쥬시로는 이 재미난 광경을 혼
하백진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비아냥거리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하현이 난도질당하는 장면을 놓칠까 봐 걱정일 지경이었다.텐푸 쥬시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백진, 내가 하현을 죽일 테니 똑똑히 봐. 그리도 당신과 하구천이 나와 약속한 거, 절대 잊지 마!”하백진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쓸데없는 말 할 필요 없어. 당신이 하현을 죽이기만 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특별 외교 신분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이제부터 당신들은 우리 항성에서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야!”“당신이 항성의 법을 어겨도 하구천이 도와줄 테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하지 못할 거야!”“자, 이제 조용히 입 다물어.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방해하지 마!”텐푸 쥬시로는 흡족한 듯 소리 없이 웃었다.그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팔 수 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이 너무나 통쾌하고 즐거웠다.하백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의 풍뢰팔자의 칼날이 하현의 온몸을 에워쌌다.하현은 칼날 속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공세 속에서도 하현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텐푸 쥬시로가 풍뢰팔자를 가르치다니, 정말 대단하군.”“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은 나 하현을 만났어.”“내 앞에서는 전신도 땅강아지처럼 맥을 못 추는데 하물며 가짜 전신이라, 흥!”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검객들 속으로 뛰어들어 손바닥을 마구 휘갈겼다.표정은 냉담하고 결연했지만 몸동작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다.풍뢰팔자의 눈에는 평범했던 하현이 갑자기 부채만 한 손바닥을 들고 자신을 향하는 것은 착각이 들었다.하현의 손바닥은 천지를 뒤흔들고 하늘을 뒤덮어 버리는 것 같았다.“어서 죽여 버려!”약을 먹은 섬나라 검객들은 순간적으로 손에 든 칼을 사정없이 휘둘렀다.“촥!”낭랑한 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풍뢰팔자는 하나같이 온몸을 흠칫했다.사람 그
텐푸 쥬시로는 하백진과 연결된 영상 통화를 꺼버렸다.그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은 듯 허둥지둥거렸다.“이 정도면 거의 나의 실력에 많이 가까워진 것 같군.”“전신의 정점에 다가설 만한 실력이야.”“그 정도 실력이 아니라면 어찌 우리 풍뢰팔자를 해치울 수 있겠어?”텐푸 쥬시로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감탄하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하현, 당신은 정말 비밀스러운 사람이야. 젊은 나이에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젊은데 유능하기까지 하다니 정말 대단해.”“당신 같은 사람이 왜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야?”“자랑을 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준비하기 어렵잖아!”“준비가 부족해서 아마 오늘 이렇게 당신한테 당한 거 같은데, 우리가 누굴 찾아가서 이 억울함을 따질 수 있겠어?”텐푸 쥬시로는 담담하게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다행히 내가 오랫동안 은거하면서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는 도를 터득했지. 은거하기 전보다 훨씬 더 깊은 도를 터득하게 된 거야.”“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 정말 당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안타깝게도 오늘 대하에서는 군신 한 명을 또 잃게 될 운명이로군!”텐푸 쥬시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짐짓 안타깝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마주 보며 비아냥거렸다.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졌다고 생각했다.하현의 실력이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몰아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나 텐푸 쥬시로가 직접 나서자 다시 기가 살아난 것이다.신당류 전설의 검객! 명불허전!지금 이 순간 섬나라 사람들은 전설이 되돌아온 것마냥 기고만장해졌다!“저놈을 죽여 버려! 우리 텐푸 쥬시로 전신이 하는 말 못 들었어?!”“자신이 전신이라도 된 줄 착각하겠지만 우리 텐푸 쥬시로 앞에서 감히 찍소리나 할 줄 알아?”“이 자식아! 젊은 놈이 어디 함부로 덤벼!”“네놈이 태어나서부터 무학을 수련했다고 해도 텐푸 쥬시로의 적수는 되지 못해!”“빨
텐푸 쥬시로는 신당류의 검객, 섬나라 전신, 황실 궁중 어의, 하늘과 인간의 도리를 깨달은 도인으로 불리고 있었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런 추잡한 수를 쓰다니!그는 자신이 시대의 걸출이라고 불리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오늘 그는 많은 준비를 했었다.심지어 자신이 정성껏 훈련시킨 풍뢰팔자도 선보였다.그런데 결과는 무참했다.이런 상황에서 텐푸 쥬시로가 정말 용감하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어떻게 하현과 싸울 수 있겠는가?그래서 정의롭고 늠름한 척 아랫사람의 뺨을 때리고 닥치는 대로 아랫사람의 몸을 던져 요트 엔진을 부순 뒤 텐푸 쥬시로는 깔끔하게 달아난 것이다.게다가 그의 탈출 경험은 아주 풍부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빠른 속도로 해안가에 도달할 것이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서 요트에 남아 있는 섬나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지금까지의 신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하현은 이 사람들과는 쓸데없이 뒤엉키고 싶지 않아서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 메시지를 보낸 후 스스로 바다속으로 뛰어들어 텐푸 쥬시로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쫓아갔다.텐푸 쥬시로는 어쨌든 전신이었고 검객이었다.아무리 실력이 찌질하기로서니 그래도 전신의 위엄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하현은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고 싶었다.그렇지 않으면 은신해 있던 전신이 언제 또다시 나타나 자신의 목에 칼끝을 들이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하현에게 칼날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는 문제였다.하현이 자신을 놓치지 않고 쫓아온다는 것을 눈치챈 텐푸 쥬시로는 뭍에 오른 후 빠른 속도로 해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항성 태평산의 뒤쪽 기슭으로 상류층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함부로 개발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이 숲에는 새와 짐승도 많다고 전해지며 항성에서 보기 힘든 청정 장소였다.안타깝
’헉'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해내던 텐푸 쥬시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하현, 역시 대단하군.”“젊은 나이에 전신에까지 오르다니.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거야.”“이런 인제가 우리 섬나라 귀족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텐푸 쥬시로,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당신을 구해 줄 순 없어.”“요트에서 이미 이 지역 통신을 다 차단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어.”“말하자면 당신이 나를 따돌린 뒤 방금 보낸 메시지는 영원히 아무도 받지 못할 거라는 거야.”텐푸 쥬시로는 얼굴빛이 흐려지며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십여 분 전에 도움 요청을 보낸 메시지 앞에 아직도 빨간 느낌표가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았다!“이 빌어먹을 놈이!”텐푸 쥬시로는 버럭 화를 냈다.“젊은 놈이 섬나라 검객을 뭘로 보는 거야?! 진정 내 칼에 죽고 싶은 거야?!”“내가 오늘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야!”텐푸 쥬시로가 포효하며 양손에 들고 있던 칼을 앞으로 힘껏 내질렀다.칼날이 시리도록 날카로웠다.귀신이 곡하고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주먹을 불끈 움켜쥔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하현은 텐푸 쥬시로가 자신을 향해 돌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텐푸 쥬시로는 하현의 곁을 지나쳐 산꼭대기 쪽으로 계속 달려갔다.하현은 눈앞에 벌어진 일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섬나라 전신이 이 지경이 되어도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떼고 칼을 내리치는 시늉으로 눈을 속이며 도망치다니!“텐푸 쥬시로! 자꾸 도망쳐 봐야 소용없어!”하현이 냉랭하게 소리쳤다.“하현, 제발 쫓아오지 마!”텐푸 쥬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숲으로 달리며 하현을 따돌리려고 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텐푸 쥬시로를 노려보았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십여 미터 정도로 유지하며 사냥감과 사냥꾼처럼 빠르게 쫓고 쫓겼다.머지않아 두 사람은 산꼭대기 가까이 있는
”퍽!”텐푸 쥬시로는 순식간에 몸이 날려 바위에 세게 부딪혔고 입에서 튀어나온 피가 바위 위에 점점이 흩어졌다.텐푸 쥬시로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졌고 눈동자는 매서운 칼날처럼 빛났다.그는 처음부터 온갖 계략을 써서 하현을 일생일대의 적처럼 두고 싸웠지만 하현은 결코 교만하거나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이런 상황에서조차 냉정함을 유지하며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반나절을 넘게 계략에 계략을 더하며 끌어왔지만 결국 텐푸 쥬시로는 하현을 죽이지 못하고 되레 그의 공격에 맥을 추지 못했다.하현, 이 자는 정말 치밀하고 강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챙!”텐푸 쥬시로는 이를 악물고 다시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그는 피범벅이 된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몸을 솟구쳐 허공에서 칼을 내리쳤다.마치 별똥별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하현도 단호한 얼굴로 칼을 휘둘렀다.“쨍그랑!”양측의 칼날이 부딪힘과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다시 엇갈렸다.하현은 벼랑 끝에 섰고 텐푸 쥬시로는 숲이 펼쳐진 쪽에 서 있었다.“영웅이 될 만한 젊은이군.”텐푸 쥬시로는 자신의 칼날을 어루만지며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당신 같은 사람이 몇 년만 더 세월의 경험을 쌓는다면 정말 무시무시할 것 같은데. 나조차도 당신을 상대하지 못하겠는 걸.”“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죽일 수 있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자꾸 잔꾀를 부리는 거야?”“당신네 섬나라 사람들은 전신의 경지에 올라도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힘들 거야.”“당신이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치던 순간부터 당신은 영원히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당신을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어떤 후수를 준비했는지 보고 싶어서일 뿐이야.”“그런데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당신의 후수가 날 무척 실망시켰다는 거야.”“실망
”성녀?!”“오매 도관?”“당신은? 사비선?!”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목욕 타월을 두른 여자를 쳐다보았다.하현을 똑바로 바라보는 여자의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절체절명의 순간 몸을 피한 곳이 오매 도관 성녀 사비선의 노천탕일 줄은 몰랐다.티끌 하나 묻지 않은 흡사 선녀 같은 사비선의 얼굴을 보면서 하현은 처음으로 왜 이 여자가 사비선인지 알게 되었다.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자신을 성녀의 노천탕에 떨어뜨려 목숨을 살릴 수 있게 한 것이 텐푸 쥬시로의 큰 그림에 있었던 계략이었을까?만약 그렇다면 텐푸 쥬시로는 하구천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부터 단단히 해야 할 판이었다.하현의 기억이 맞다면 하구천은 성녀 사비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사비선의 유리 같은 눈동자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후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잠시 후 그녀도 자신의 노천탕에 불쑥 나타난 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현?!”“뭐? 그 쳐죽일 하현?!”“오매 도관의 얼굴에 몇 번이나 먹칠을 한 그놈? 경매장에서 난동을 부려 행사를 망치게 한 그놈?”“사송란을 죽이고도 감히 우리 오매 도관 사람들에게 3일 안에 해명하라고 했던 그놈이란 말이야?”“이놈이 어떻게 뻔뻔하게 이곳에 얼굴을 들이민단 말이야?”“성녀님, 이놈이 여기에 나타난 건 성녀님께 엄청난 모욕입니다. 죽어 마땅한 놈이죠!”오매 도관의 여제자들은 화가 난 얼굴로 달려들어 단칼에 하현을 찔러 죽이려고 했다.“솩!”사비선은 오른손을 내저으며 칼을 물리라는 손짓을 했다.이어 그녀는 병풍 뒤로 몸을 돌려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항성에 몇 안 되는 천연 온천이야. 피를 묻히고 망쳐서야 되겠어?”칼을 든 오매 도관 여제자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우리가 경솔했습니다. 지금 당장 이놈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
옷을 갈아입고 나온 사비선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하늘하늘 눈부셨다.그녀의 유리 같은 눈동자는 차갑게 하현을 주시하다가 잠시 후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은 전에 사송란의 일로 우리 오매 도관에게 해명하라고 했었지.”“오늘은 또 내 노천탕에 침입했어. 당연히 죽어 마땅해!”“하지만 우리 오매 도관은 당신한테 신세를 진 것도 있으니.”“내 생각엔 이걸로 서로 끝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어때? 다른 의견이라도 있어?”“뭐라구요?”사비선의 말을 듣고 오매 도관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성녀가 노천탕에서 이런 큰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오매 도관에서 해명하는 일과 이 일을 맞바꿔 여기서 이대로 끝내자고?그렇다면 이 일에서 결국 손해를 본 사람은 누구인가?!여제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성녀 사비선을 향했다.도저히 성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줄곧 오매 도관과 맞서던 이 남자를 설마 성녀 사비선은 이대로 눈감아주겠다는 것인가?어리둥절하기는 하현도 마찬가지였다.속세에서 남녀 간의 정열을 불태워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거나 자신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탕에서 올라와 사비선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몸에 걸쳐져 있던 향긋한 수건을 들어 자신의 머리와 얼굴을 닦았다.제멋대로인 그의 행동에 여제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그건 성녀님이 닦은 수건인데...”“팍!”여제자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사비선의 얼굴에 언짢은 빛이 스쳐 지나갔고 순간 그녀는 한 발짝 내디뎌 하현의 명치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툭!”하현은 얼떨결에 그녀의 손바닥을 막았지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전쟁의 신인 하현이었지만 방금 그의 손에 있던 향긋한 수건이 성녀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걸 그제야 알았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