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의 시간이 억겁의 세월처럼 여겨졌다.현장에 있던 서른네 명의 금급 인사들은 순식간에 숨을 죽였다.그들이 용전의 지위와 연봉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최영하가 이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속으로 콧방귀를 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최영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담담한 표정으로 새로운 규칙을 하나 발표했다.그녀가 정한 규칙이 바로 용전 항도 지부 규칙이 되는 것이다.위반자는 법에 따라 처리되며 사면은 없다.최영하의 말에 따르면 누구도 이곳에서는 사적인 친분에 따라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되며 앞으로 용전 항도 지부의 규칙을 세분화해서 누구든지 어길 시에는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서른네 명의 금급 인사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그녀의 추진력과 집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용전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절대로 용전 항도 지부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여겼다.아마 한 달도 안 되어서 용전한테 와서 도와달라고 울부짖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최영하는 쓸데없는 말 대신 요직에 있는 인사의 배치를 조정하면서 권력의 틀을 흐트러 놓았다.이어 규칙과 규정을 정비하고 세분화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바쁜 시간을 보낸 최영하는 마침내 용전의 일을 마쳤다.그녀의 이전 사무실에서 항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돼지 볶음밥 두 그릇을 보냈다.하현에게 잘 부탁한다는 나름의 읍소였다.“이런 실력을 감추고 최 지부장이 경찰서 2인자로 일했다니 정말로 인력 낭비였어.”하현은 젓가락을 들면서 감탄하는 기색을 과감 없이 드러내었다.한편으로는 최영하의 능력에 감탄했고 또 한편으로는 은연중 다행이라는 안도의 감탄이었다.최영하가 있음으로 해서 용전 항도 지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항도 하 씨와 하구천의 곁에 못을 박은 셈이었다.하구천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하현도 먼저 공격하는 것을 망설이지
하현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최영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그녀는 이 자리에 앉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용전의 미움을 사는 것 외에도 항성과 도성의 젊은 세력을 대표하는 하구천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하지만 자리에 오른 이상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만약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계속 이렇게 질질 끌려다니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최영하는 항성과 도성 상류층으로 진입할 기회가 없던 운명이었다.최 씨 일가는 영원히 일개 집안에 머물 운명이었던 것이다.한 사람이 일어서고, 한 가족이 우뚝 일어서려면 결국 대가를 치러야 한다.최영하의 얼굴빛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고 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물론 용전 항도 지부와 당신 최 씨 가문만 가지고는 항성과 도성의 근본을 흔들 수는 없을 거야.”“도박왕 화풍성이 철저히 우리 편에 설 수 있도록 내가 방법을 강구해 볼게...”최영하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화풍성을 끌어들인다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도박왕 화풍성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야. 그 정도로 수완이 뛰어나고 속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 꿈틀거리는 인간이라구. 아주 늙은 여우야!”“그의 말 열 마디 중 한 마디를 믿을까 말까 해. 까딱하다가는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라구.”“도박왕을 대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는 게 좋아.”“당신과 화풍성이 태국 3대 마승에게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어.”“그런데 이번 그 습격이 정말 우연히 일어난 걸까? 난 아니라고 봐.”“아마도 화풍성은 당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기회를 빌어 당신과의 관계를 좀 풀어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거야.”하현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나도 이미 그럴 거라고 짐작했어.”“그럼 왜 화풍성을 끌어들이겠다는 거야?”최영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자작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다.최영하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그까짓 일을 가지고 왜 날 찾은 겁니까?”“용전 항도 지부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말입니다. 그 일을 전담하는 금급 인사들도 있으니 그들에게 구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지부장님, 아마 안 될 거예요. 섬나라 사람들은 매우 특별한 신분이에요. 그들은 섬나라 검객 음류 사람들이라...”“섬나라 음류 사람들은 섬나라 6대 유파 중 하나이고 신당류와 함께 쌍벽을 이룹니다.”“음류 사람들은 지금 우리 정도의 전력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우리가 음류와 싸워 봐야 소용이 없으니 이 일은 지부장님께서 섬나라 음류 사람들한테 사정을 해 주면 좋겠습니다.”여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며 최영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곁눈으로 유심히 살폈다.하현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최영하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잠자코 지켜보았다.만약 그의 추측이 맞다면 이것은 용전 항도 지부 금급 인사들이 최영하를 궁지로 몰기 위해 궁리한 첫 번째 방해공작일 것이다.만약 그녀가 이 정도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부장 자리도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최영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순찰 대원들에게 사람을 구해 달라고 하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습니다.”“지부장님이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바로 오늘 밤 순찰대의 8대 고수들이 모두 백구를 따라 사직했습니다.”“남은 건 동, 철급 인사들인데 그들의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해 섬나라 음류 사람들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순찰대는 사람을 구해낼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지부장님께 살려 달라고 이렇게 온 거예요.”말을 마치며 여자는 최영하가 화를 낼까 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나한테 꽤나 어려운 문제를 내주었군요.”최영하는 냉소를 지으며 일어섰다.“그럼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봐야죠.”최영하가 일어서서 나가자 그 모습을 지켜
”이런 멍청이!”최영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치더니 긴 부츠 속에 감춰진 총을 만지작거리며 교토 룸으로 향했다.“저리 꺼져!”“누구야! 누가 감히 들어오래!”“우리 북천 패도가 꽃처녀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 거 안 보여?”“어이 보자, 이 꽃처녀도 예쁘게 생겼는데? 우리랑 같이 놀아 볼래?”입구를 지키던 섬나라 검객 몇 명이 고개를 들어 최영하를 힐끔 보더니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최영하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 것이다.“팡팡팡!”최영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섬나라 검객 몇 명은 그대로 자신들의 허벅지를 감싸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뒹굴었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모두 눈이 뒤집힐 정도로 깜짝 놀랐다.그곳에는 용전 항도 지부와 항성 하 씨, 그리고 홍성, 심지어 항성 경찰서 사람들도 있었다.그들이 모두 여기 이렇게 나타난 것은 새로 부임한 최영하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간을 보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최영하가 이렇게 매섭고 살벌하게 처리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누구의 체면 따위 봐 줄 최영하가 아니었다.“펑!”최영하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문을 살며시 손으로 밀었다가 냅다 발로 걷어차 버렸다.경악하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자작을 붙잡고 있던 섬나라 청년에게 다가가서 한 발을 걷어차 넘어뜨렸다.괴로워하던 청년을 향해 최영하는 손바닥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쳤다.“퍽!”섬나라 청년은 한방에 몸이 붕 떠서 날아가 버렸다.최영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겉옷이 벗겨진 채 거의 속옷 차림만 남은 자작에게 덮을 것을 던져 주고 나서야 휴지로 자신의 손바닥을 닦았다.“자, 어떻게 된 건지 말씀해 보시죠.”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정신이 혼미해졌다.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최영하에게 쏠렸다.최영하의 행동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는 입으로는 칭찬하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지부장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는 희롱과 조롱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이렇게 거칠게 굴어 봐야 용전이라는 큰 버팀목을 잃은 용전 항도 지부의 지부장일 뿐이었다.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물 속에 비친 영롱한 달처럼 언제 허물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아무리 용전 항도 지부장이라 하더라도 그 권위는 그리 크지 않았다.하현은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는 겁 없는 섬나라 청년을 보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섬나라 청년 뒤 지근 거리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그 노인은 약간 대머리에 얼핏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노인처럼 마른 몸이었다.하지만 하현의 눈에는 범상치 않아 보였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응시하고 있었다.“당신이었군. 북천 패도.”최영하는 기모노를 입은 청년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난 또 어떤 사람이 우리 용전 항도 지부 구역에서 행패를 부리나 했지. 아주 제멋대로 여자들을 희롱하고 있었군.”“알고 보니 섬나라 북천의 음류 제자였군.”“그렇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항성 관청에서 이미 당신한테 송환 명령을 내렸을 텐데.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당신네 조직원들에게 모두 나가라고 한 걸 모르시나?”“아직도 항성에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니, 죽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섬나라는 매우 신기한 나라였다.예를 들어 그들 나라에서는 북천 같은 깡패 조직을 버젓이 정식으로 등록하고 설립할 수 있었다.북천파는 섬나라 깡패 조직 중 중형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다.몇 년 동안 북천파는 섬나라 음류 검객 문하에 들어간 관계로 섬나라 음류 선두주자가 되었다.항성은 그들이 대하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항성 관청에 덜미가 잡혀 바로 송환되었다.그러나 최영하를 놀라게 한 것은 이미 송환 명령을 받은 북천파가 아직 항성을 떠나지 않고 횡포를 부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히 용전의 터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이건
”퐝!”북천 패도는 앞에 있던 테이블을 발로 펑 하고 차서 넘어뜨린 후 벌떡 일어섰다.그는 청주 한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후 비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설명?”“최 지부장, 나한테서 무슨 설명을 원하는 거야?”“나 북천 패도는 섬나라 음류의 제자야. 당신들 대하 여자들을 몇 명 데리고 놀았어. 이게 다 당신들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였어.”“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감히 나한테 설명을 하라마라 명령해?!”“게다가 용전 항도 지부는 지금 그야말로 뿌리 없는 나무잖아. 여전히 용전이 무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일개 용전 항도 지부장일 뿐인데 내가 일일이 설명해야 해?”“누가 당신한테 그런 건방진 용기를 주었을까?”“당신 손에 있는 그 총이 주었나?”“아니면 당신 최 씨 가문이 일류 가문이라도 돼? 도성 관청 일인자라서?”“재주가 있으면 날 쏴 죽여!”북천 패도는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정말 이름처럼 횡포가 사납고 포악했다.북천 패도가 이렇게 말하자 섬나라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며 비실비실 웃었고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최영하를 바라보았다.그들이 보기에 지금 최영하는 무릎을 꿇어도 시원찮은 마당이었다.하물며 그들과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자격조차 없어 보였다.“이 꽃처녀는 나랑 한번 놀기로 했어!”“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섬나라 사람들이 당신 체면을 세워주려고 돌아가며 놀아 주고 있는 거야!”북천 패도는 옷이 찢겨진 채 거의 속옷 차림이 된 처량한 자작을 가리키며 말했다.“최 지부장, 말귀를 알아들었다면 이 여자한테 가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 좀 해 줘.”“그렇지 않으면 내가 잠시 후에 당신까지 희롱할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당신이 쏜 총에 내 부하가 다쳤으니 이따 도성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북천 패도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섬나라 북천파 작은 두목이자 음류 제자라는 신분이 그의 어깨에 훈장처럼 걸려 있어서 도성에서도 이렇
북천 패도는 실실 비웃으며 말했다.“왜 내가 당신을 괴롭히지?”“이전의 용전 항도 지부장이었다면 내가 체면을 세워주겠어!”“하지만 지금의 용전 항도 지부장은 뭐 내가 체면을 봐 줄 필요가 없지!”“나랑 동등하게 대화하는 건 고사하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해도 시원찮아, 알겠어?”최영하는 분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직접 총을 꺼내 그를 쏘려고 했다.하현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고 그녀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말한 뒤 무덤덤한 표정으로 북천 패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당당하게 말했다.“섬나라 사람들이 우리 대하 땅에서 감히 이렇게 함부로 날뛰다니!”하현은 원래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섬나라 음류는 섬나라 6대 유파 중 하나였기 때문에 최 씨 가문의 힘만으로는 대적할 수 없었다.그래서 하현은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북천 패도는 건방진 눈빛으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하현의 마르고 하얀 얼굴을 보며 냉소를 흘렸다.“왜? 지부장이 나한테 안 될 것 같으니까 백마 탄 기사라도 납시셨나?”“내가 이렇게 내 멋대로 날뛰고 떠는데 당신이 왜 참견이야?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덤비기라도 할 거야? 그럼 덤벼 봐!”“네놈이 얼마나 배짱이 있는 놈인지 똑똑히 봐 줄게. 어디 그 허연 얼굴로 감히 날 건드릴 수 있는지 보자구!”북천 패도는 말을 하면서 그의 얼굴을 점점 더 하현의 얼굴에 들이밀었다.북천 패도의 횡포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하현의 얼굴에 뿜어대는 태도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물러섰다.“북천 패도, 당신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누가 말 안 해줬어?”“너 이 자식...”“그리고 당신 말이야, 너무 수가 얕은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날 움직이게 하다니!”“내가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당신한테 미안해질 정도야, 안 그래?”북천 패도는 눈을 부라리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 말라비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당장 해치워요!”거만하고 콧대가 높은 북천 패도는 하현이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어서 해치우라니까!”키노시타는 군말 없이 실눈을 뜨고 하현의 손목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분명 한 방이면 끝날 것 같았다.“퍽!”하현은 피하지 않고 바로 손을 휘둘러 키노시타의 뺨을 후려쳤다.천하의 무공, 난공불락이었다.빠른 손놀림은 아무도 당해내지 못했다.촥촥 뺨을 때리는 찰진 소리가 울렸고 키노시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말할 수 없이 따끔한 고통이 밀려왔다.“우지직!”그는 모서리에 있는 장식을 박살 내고는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북천 패도 일행들은 모두 넋이 나간 얼굴로 키노시타를 쳐다보았다.키노사타 장로는 음류의 고수였다.비록 전쟁의 신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고수였다.최고의 고수가 지금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뺨을 맞고 날아간 것이다.어떻게 이런 실력이?!북천 패도가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키노시타는 벽을 짚고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섰다.전쟁의 신이라도 되는 걸까?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했던가.키노시타는 몇 년 동안이나 최고의 군왕으로 군림했었다.그러나 하현의 한 방에 몸이 날아가자 그는 하현이 전쟁의 신급 고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전쟁의 신의 위력을 확인하자 키노시타는 두려움과 동시에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왜냐하면 자신은 지금의 자리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몇 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신들린 고수가 이렇게 젊다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두려움이 일었다.이렇게 젊은 나이에 전쟁의 신급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어느 세력에서도 결코 낮은 신분은 아니었다.게다가 전신급이라는 말만으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이었다.북천 패도는 아직도 하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키노시타, 뭐하는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