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최영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그녀는 이 자리에 앉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용전의 미움을 사는 것 외에도 항성과 도성의 젊은 세력을 대표하는 하구천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하지만 자리에 오른 이상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만약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계속 이렇게 질질 끌려다니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최영하는 항성과 도성 상류층으로 진입할 기회가 없던 운명이었다.최 씨 일가는 영원히 일개 집안에 머물 운명이었던 것이다.한 사람이 일어서고, 한 가족이 우뚝 일어서려면 결국 대가를 치러야 한다.최영하의 얼굴빛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고 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물론 용전 항도 지부와 당신 최 씨 가문만 가지고는 항성과 도성의 근본을 흔들 수는 없을 거야.”“도박왕 화풍성이 철저히 우리 편에 설 수 있도록 내가 방법을 강구해 볼게...”최영하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화풍성을 끌어들인다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도박왕 화풍성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야. 그 정도로 수완이 뛰어나고 속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 꿈틀거리는 인간이라구. 아주 늙은 여우야!”“그의 말 열 마디 중 한 마디를 믿을까 말까 해. 까딱하다가는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라구.”“도박왕을 대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는 게 좋아.”“당신과 화풍성이 태국 3대 마승에게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어.”“그런데 이번 그 습격이 정말 우연히 일어난 걸까? 난 아니라고 봐.”“아마도 화풍성은 당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기회를 빌어 당신과의 관계를 좀 풀어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거야.”하현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나도 이미 그럴 거라고 짐작했어.”“그럼 왜 화풍성을 끌어들이겠다는 거야?”최영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자작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다.최영하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그까짓 일을 가지고 왜 날 찾은 겁니까?”“용전 항도 지부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말입니다. 그 일을 전담하는 금급 인사들도 있으니 그들에게 구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지부장님, 아마 안 될 거예요. 섬나라 사람들은 매우 특별한 신분이에요. 그들은 섬나라 검객 음류 사람들이라...”“섬나라 음류 사람들은 섬나라 6대 유파 중 하나이고 신당류와 함께 쌍벽을 이룹니다.”“음류 사람들은 지금 우리 정도의 전력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우리가 음류와 싸워 봐야 소용이 없으니 이 일은 지부장님께서 섬나라 음류 사람들한테 사정을 해 주면 좋겠습니다.”여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며 최영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곁눈으로 유심히 살폈다.하현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최영하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잠자코 지켜보았다.만약 그의 추측이 맞다면 이것은 용전 항도 지부 금급 인사들이 최영하를 궁지로 몰기 위해 궁리한 첫 번째 방해공작일 것이다.만약 그녀가 이 정도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부장 자리도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최영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순찰 대원들에게 사람을 구해 달라고 하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습니다.”“지부장님이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바로 오늘 밤 순찰대의 8대 고수들이 모두 백구를 따라 사직했습니다.”“남은 건 동, 철급 인사들인데 그들의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해 섬나라 음류 사람들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순찰대는 사람을 구해낼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지부장님께 살려 달라고 이렇게 온 거예요.”말을 마치며 여자는 최영하가 화를 낼까 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나한테 꽤나 어려운 문제를 내주었군요.”최영하는 냉소를 지으며 일어섰다.“그럼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봐야죠.”최영하가 일어서서 나가자 그 모습을 지켜
”이런 멍청이!”최영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치더니 긴 부츠 속에 감춰진 총을 만지작거리며 교토 룸으로 향했다.“저리 꺼져!”“누구야! 누가 감히 들어오래!”“우리 북천 패도가 꽃처녀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 거 안 보여?”“어이 보자, 이 꽃처녀도 예쁘게 생겼는데? 우리랑 같이 놀아 볼래?”입구를 지키던 섬나라 검객 몇 명이 고개를 들어 최영하를 힐끔 보더니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최영하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 것이다.“팡팡팡!”최영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섬나라 검객 몇 명은 그대로 자신들의 허벅지를 감싸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뒹굴었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모두 눈이 뒤집힐 정도로 깜짝 놀랐다.그곳에는 용전 항도 지부와 항성 하 씨, 그리고 홍성, 심지어 항성 경찰서 사람들도 있었다.그들이 모두 여기 이렇게 나타난 것은 새로 부임한 최영하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간을 보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최영하가 이렇게 매섭고 살벌하게 처리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누구의 체면 따위 봐 줄 최영하가 아니었다.“펑!”최영하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문을 살며시 손으로 밀었다가 냅다 발로 걷어차 버렸다.경악하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자작을 붙잡고 있던 섬나라 청년에게 다가가서 한 발을 걷어차 넘어뜨렸다.괴로워하던 청년을 향해 최영하는 손바닥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쳤다.“퍽!”섬나라 청년은 한방에 몸이 붕 떠서 날아가 버렸다.최영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겉옷이 벗겨진 채 거의 속옷 차림만 남은 자작에게 덮을 것을 던져 주고 나서야 휴지로 자신의 손바닥을 닦았다.“자, 어떻게 된 건지 말씀해 보시죠.”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정신이 혼미해졌다.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최영하에게 쏠렸다.최영하의 행동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는 입으로는 칭찬하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지부장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는 희롱과 조롱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이렇게 거칠게 굴어 봐야 용전이라는 큰 버팀목을 잃은 용전 항도 지부의 지부장일 뿐이었다.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물 속에 비친 영롱한 달처럼 언제 허물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아무리 용전 항도 지부장이라 하더라도 그 권위는 그리 크지 않았다.하현은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는 겁 없는 섬나라 청년을 보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섬나라 청년 뒤 지근 거리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그 노인은 약간 대머리에 얼핏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노인처럼 마른 몸이었다.하지만 하현의 눈에는 범상치 않아 보였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응시하고 있었다.“당신이었군. 북천 패도.”최영하는 기모노를 입은 청년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난 또 어떤 사람이 우리 용전 항도 지부 구역에서 행패를 부리나 했지. 아주 제멋대로 여자들을 희롱하고 있었군.”“알고 보니 섬나라 북천의 음류 제자였군.”“그렇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항성 관청에서 이미 당신한테 송환 명령을 내렸을 텐데.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당신네 조직원들에게 모두 나가라고 한 걸 모르시나?”“아직도 항성에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니, 죽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섬나라는 매우 신기한 나라였다.예를 들어 그들 나라에서는 북천 같은 깡패 조직을 버젓이 정식으로 등록하고 설립할 수 있었다.북천파는 섬나라 깡패 조직 중 중형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다.몇 년 동안 북천파는 섬나라 음류 검객 문하에 들어간 관계로 섬나라 음류 선두주자가 되었다.항성은 그들이 대하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항성 관청에 덜미가 잡혀 바로 송환되었다.그러나 최영하를 놀라게 한 것은 이미 송환 명령을 받은 북천파가 아직 항성을 떠나지 않고 횡포를 부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히 용전의 터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이건
”퐝!”북천 패도는 앞에 있던 테이블을 발로 펑 하고 차서 넘어뜨린 후 벌떡 일어섰다.그는 청주 한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후 비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설명?”“최 지부장, 나한테서 무슨 설명을 원하는 거야?”“나 북천 패도는 섬나라 음류의 제자야. 당신들 대하 여자들을 몇 명 데리고 놀았어. 이게 다 당신들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였어.”“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감히 나한테 설명을 하라마라 명령해?!”“게다가 용전 항도 지부는 지금 그야말로 뿌리 없는 나무잖아. 여전히 용전이 무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일개 용전 항도 지부장일 뿐인데 내가 일일이 설명해야 해?”“누가 당신한테 그런 건방진 용기를 주었을까?”“당신 손에 있는 그 총이 주었나?”“아니면 당신 최 씨 가문이 일류 가문이라도 돼? 도성 관청 일인자라서?”“재주가 있으면 날 쏴 죽여!”북천 패도는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정말 이름처럼 횡포가 사납고 포악했다.북천 패도가 이렇게 말하자 섬나라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며 비실비실 웃었고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최영하를 바라보았다.그들이 보기에 지금 최영하는 무릎을 꿇어도 시원찮은 마당이었다.하물며 그들과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자격조차 없어 보였다.“이 꽃처녀는 나랑 한번 놀기로 했어!”“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섬나라 사람들이 당신 체면을 세워주려고 돌아가며 놀아 주고 있는 거야!”북천 패도는 옷이 찢겨진 채 거의 속옷 차림이 된 처량한 자작을 가리키며 말했다.“최 지부장, 말귀를 알아들었다면 이 여자한테 가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 좀 해 줘.”“그렇지 않으면 내가 잠시 후에 당신까지 희롱할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당신이 쏜 총에 내 부하가 다쳤으니 이따 도성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북천 패도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섬나라 북천파 작은 두목이자 음류 제자라는 신분이 그의 어깨에 훈장처럼 걸려 있어서 도성에서도 이렇
북천 패도는 실실 비웃으며 말했다.“왜 내가 당신을 괴롭히지?”“이전의 용전 항도 지부장이었다면 내가 체면을 세워주겠어!”“하지만 지금의 용전 항도 지부장은 뭐 내가 체면을 봐 줄 필요가 없지!”“나랑 동등하게 대화하는 건 고사하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해도 시원찮아, 알겠어?”최영하는 분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직접 총을 꺼내 그를 쏘려고 했다.하현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고 그녀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말한 뒤 무덤덤한 표정으로 북천 패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당당하게 말했다.“섬나라 사람들이 우리 대하 땅에서 감히 이렇게 함부로 날뛰다니!”하현은 원래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섬나라 음류는 섬나라 6대 유파 중 하나였기 때문에 최 씨 가문의 힘만으로는 대적할 수 없었다.그래서 하현은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북천 패도는 건방진 눈빛으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하현의 마르고 하얀 얼굴을 보며 냉소를 흘렸다.“왜? 지부장이 나한테 안 될 것 같으니까 백마 탄 기사라도 납시셨나?”“내가 이렇게 내 멋대로 날뛰고 떠는데 당신이 왜 참견이야?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덤비기라도 할 거야? 그럼 덤벼 봐!”“네놈이 얼마나 배짱이 있는 놈인지 똑똑히 봐 줄게. 어디 그 허연 얼굴로 감히 날 건드릴 수 있는지 보자구!”북천 패도는 말을 하면서 그의 얼굴을 점점 더 하현의 얼굴에 들이밀었다.북천 패도의 횡포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하현의 얼굴에 뿜어대는 태도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물러섰다.“북천 패도, 당신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누가 말 안 해줬어?”“너 이 자식...”“그리고 당신 말이야, 너무 수가 얕은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날 움직이게 하다니!”“내가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당신한테 미안해질 정도야, 안 그래?”북천 패도는 눈을 부라리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 말라비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당장 해치워요!”거만하고 콧대가 높은 북천 패도는 하현이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어서 해치우라니까!”키노시타는 군말 없이 실눈을 뜨고 하현의 손목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분명 한 방이면 끝날 것 같았다.“퍽!”하현은 피하지 않고 바로 손을 휘둘러 키노시타의 뺨을 후려쳤다.천하의 무공, 난공불락이었다.빠른 손놀림은 아무도 당해내지 못했다.촥촥 뺨을 때리는 찰진 소리가 울렸고 키노시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말할 수 없이 따끔한 고통이 밀려왔다.“우지직!”그는 모서리에 있는 장식을 박살 내고는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북천 패도 일행들은 모두 넋이 나간 얼굴로 키노시타를 쳐다보았다.키노사타 장로는 음류의 고수였다.비록 전쟁의 신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고수였다.최고의 고수가 지금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뺨을 맞고 날아간 것이다.어떻게 이런 실력이?!북천 패도가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키노시타는 벽을 짚고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섰다.전쟁의 신이라도 되는 걸까?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했던가.키노시타는 몇 년 동안이나 최고의 군왕으로 군림했었다.그러나 하현의 한 방에 몸이 날아가자 그는 하현이 전쟁의 신급 고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전쟁의 신의 위력을 확인하자 키노시타는 두려움과 동시에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왜냐하면 자신은 지금의 자리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몇 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신들린 고수가 이렇게 젊다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두려움이 일었다.이렇게 젊은 나이에 전쟁의 신급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어느 세력에서도 결코 낮은 신분은 아니었다.게다가 전신급이라는 말만으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이었다.북천 패도는 아직도 하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키노시타, 뭐하는
최영하를 비롯한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도 이 장면을 보고 아연실색했다.그러나 섬나라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그들은 정말로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이 광경을 쳐다보았다.어떻게 키노시타 같은 장로가 손도 쓰지 못하고 저렇게 당할 수 있는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하현에게 얼굴을 맞은 키노시타는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고 이도 몇 개 빠졌다.그의 치아는 모두 고가의 재질로 심은 것이어서 평소에도 그는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누가 감히 그의 얼굴에 손을 댈 수 있었겠으며 그를 반쯤 죽여 놓을 수 있었겠는가?그러나 키노시타는 지금 그 애지중지한 이가 빠졌음에도 한 마디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어떻게 이럴 수가?분명 이것은 정상이 아니었다!섬나라 음류 사람들은 섬나라에서조차 그 기세가 하늘을 뚫을 정도였는데 이 작은 도시와 와서 이렇게 기도 못 쓰고 쓰러지다니!키노시타 장로가 하현 앞에서 얼마나 허풍을 떨었는지 사람들은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지금의 광경에 넋이 나간 것이다.최영하는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금세 침착한 얼굴로 돌아와 덤덤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최영하는 하현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다만 그의 신분으로 미루어 보아 그냥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오늘 이 장면이 그녀의 모든 추측을 사실로 증명해 주었다.북천 패도는 북천파의 이인자였고 섬나라 음류 제자였다.하현의 신분이 최영하가 짐작한 그 신분이 맞다면 북천 패도 정도는 충분히 밟고 싶은 대로 밟을 수 있다.그래서 순간 최영하는 하현을 막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반 발짝 물러서서 다른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에게 손사래를 쳤다.곧이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들 모두는 한낱 힘없는 메뚜기에 불과했다.“정말 실망인데!”하현은 마지막으로 회심의 일격을 가한 뒤 키노시타를 땅바닥에 떨구었다.키노시타는 얼굴이 시퍼렇게 부은 채 감히 맞서지도 못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북천 패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
이 말을 듣고 하현은 돌아서서 형나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집에서 볼 때보다 밖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이 훨씬 성숙하고 듬직했기 때문이다.비록 아직 철없이 밀어붙이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럴 때는 노련한 기질이 더해져 함부로 나서지 않고 슬쩍 뒤로 빠지는 것이다.하현은 잠시 지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없어. 여기서 잠깐 봐 봐”“보고 나서 바로 가게 물색하러 가 봐야 해.”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버럭 소리를 지를 뻔했다.지금 자신이 얼마나 우아하게 참고 있는데 그게 할 소린가?그러나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온유하고 정숙한 척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며 했다.눈먼 장님에게 아무리 눈빛을 보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형나운은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천천히 자신의 코트를 벗고 하현이 보는 앞에서 앞 단추 두 개를 풀었다.그녀는 자신의 심장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오늘 아침 무술을 연마할 때 여기가 답답해져서 죽을 뻔했어요.”“한번 봐 보세요.”말을 하면서 형나운은 은근슬쩍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단추 풀지 않아도 돼.”“그러다가 험상궂은 당신 경호원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래?”“왜요? 무서워요?”형나운은 놀리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도 두려울 때가 있어요?”“내가 지금 누가 날 추행한다고 소리 지르면 내 경호원들이 쫓아와 당신을 쫓아내기라도 할까 봐요?”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도대체 나한테 봐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옷 입어.”“딱 3초 줄게. 내 말대로 하지 않고 계속 이런 식이면 난 그냥 갈 거야!”하현이 약간 화가 난 것을 보고 형나운은 비로소 다소곳해졌다.“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난 정말 이 거추장스러운 외투는 안 입고 싶은데요. 이
형나운의 말을 듣고 우다금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정말로 하현이 자신의 딸을 뒷문으로 들여보냈을 줄은 몰랐다.그러니까 하현이 없었다면 자신의 딸은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얘기다.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우다금은 갑자기 난처한 듯 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하지만 우소희는 하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깔보던 데릴사위의 도움을 받았다니!그걸 인정한다면 앞으로 설은아의 집에 가서 어떻게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어제 설은아 앞에서 얼마나 큰소리 떵떵 치고 나왔는데 이렇게 단번에 고개를 숙일 수 있겠는가?이런 생각이 스치자 우소희는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채 기세를 꺾지 않았다.“형 대표님, 인사팀 팀장님이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이 회사가 사람의 외모나 능력을 중시했기 때문 아니겠어요?”“데릴사위가 뒷문으로 들여보냈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우소희는 나름 상류사회에서 놀던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섞어가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몇몇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 경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이없어했다.그들은 우소희가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우소희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형나운, 이 사람이 데릴사위인 내 도움은 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 그럼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줘!”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홀연히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형나운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무 팀장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지시했다.“하현이 그렇게 말했으니 분부대로 해. 우소희 씨가 그렇게 능력이 출중하다고 자신하니 공정하게 원칙에 따라 채용하도록 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줘야지.”“누가 청탁을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어. 스스로의 능력이 가장 중요해.”형나운의 말을 듣고 무 팀장은 곧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우소희 씨. 스스로 능력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말했다.“선생님, 여기는 형 씨 가문 그룹입니다. 무엇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기업이죠.”“만약 당신이 여기서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운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이때 몇몇 경비원도 냉담한 표정으로 걸어왔다.하현은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힐끔 보며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2분 남았어요.”우소희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현, 그만해요. 센 척 좀 그만해요!”“당신이 그런다고 누가 내려올 줄 알아요?”“잘 들어요. 당신이 설령 간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해도, 혹은 김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할지라도 이럴 자격은 없어요. 알겠어요?”우다금도 하현을 한심스러운 듯 노려보며 냉소를 연발했다.“하현, 우리 앞에서 허풍 떠는 짓 그만해!”“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그래? 어?”“여기 대표님이 내려와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묻힐 곳도 없이 이승을 떠돌 거야!”“내가 한마디 충고할게.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썩 꺼져! 얼른!”“그리고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대표님한테 나쁜 인상을 주게 생겼다고!”“우리 딸은 앞으로 연봉 이억을 받을 인재야!”“당신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우다금은 하현이 자신들을 등에 업고 뭔가 이득을 볼 심산으로 여기 왔다고 확신했다.그런 목적이 들통났으니 이판사판으로 사람을 불러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데릴사위놈이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꼴이라니!고약한 놈!죽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1분 전.”하현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개의치 않았다.“내가 당신이라면 벌써 전화를 걸었을 거예요.”“일이 잘못된다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당신이 형나운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갈 텐데?”하현이 기세 좋게 몰아붙이자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잠시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하현, 이제 그만해. 충분히 했잖아!”
우다금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서더니 하현에게 달려왔다.“당신 여기 뭐 하러 왔어? 어?”“설마 당신 장모가 우릴 미행이라도 하라고 시켰어?”“떠도는 소문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당신 처가는 이제 파산이야!”“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우리 덕을 보려고 하는 거지!”우다금은 최희정 일가에 대한 미움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았다.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자기 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으니까 사위를 대동해 뭐라도 덕을 보려고 치근덕거리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썩 꺼져! 꺼지라고!”우다금은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자처럼 포효했다.“어쨌든 형 씨 가문 그룹에서 너 같은 놈을 경비로 부를 일은 없어!”“형 씨 가문 그룹이 어떤 곳인지나 알아?”“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으면 발도 들이지 못할 그룹이야!”“모두가 우리 딸처럼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하현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우다금의 억지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하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우소희는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말했다.“하 씨! 들었어?”“이곳은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빨리 꺼져! 안 꺼져?!”“어서 꺼지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사람을 안다는 걸 무 팀장님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품위가 완전히 떨어진다고!”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현을 밀치려고 했다.하현의 존재가 그녀들에게는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가 형 씨 가문 그룹에서 어떻게 잘생긴 갑부들을 낚을 수 있겠는가?하현이 한 발짝 물러서며 우소희의 손을 피했다.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러워서였다.그는 소위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과는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감히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우소희는 자존심이 확 상했다.뭔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두 모녀를 본 하현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예정대로라면 우소희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 보고를 하러 올라갔을 텐데 왜 로비에 이렇게 있는 것인가?결국 하현은 우다금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거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인사팀 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우소희 엄마, 우다금입니다.”“아, 맞아요. 맞아요. 바로 오늘 출근하려던 우소희예요! 좋은 연봉으로 입사하게 된 우소희요!”“사실은 어제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느라 우리 딸이 술을 너무 먹어서 오늘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쨌든 우리 소희는 인재잖아요!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주시면 어떨까 해서요.”하현은 어이가 없었다.정말로 가지가지 하는 진상 모녀였다.어렵게 형 씨 가문 그룹에 취직을 시켜줬더니 지각을 해?그러고도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우리 딸이 여기 입사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데 가지는 않을 거예요.”우다금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우리가 여기 로비에 있는데 팀장님이 좀 내려와서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아, 그리고 점심은 너무 오버할 필요없이 고위층 몇 명과 자리를 마련해서 인사시켜 주면 됩니다.”“참고로 우리 딸은 82년산 라피트만 마셔요. 피부가 상할까 봐 고급술만 마시죠.”“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친 우다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뒤 우소희를 쳐다보았다.“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도 아니잖아?”“우리 딸 같은 출중한 인재를 모셔가는 형 씨 가문 그룹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네가 이 회사에 오지 않는다면 형 씨 가문 그룹은 석 달도 안 되어서 문을 닫을 거야!”“아마 무 팀장이 곧 내려와서 우릴 맞이할 거야.”우다금의 말에 프런트 데스크의 예쁜 직원과 잘생긴 경비원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
한바탕 휘몰아치고 맞이한 밤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했다.최희정은 가끔 이를 악물었다가 화가 나서 헐떡거렸다가 도저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찌감치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민효와 풍수관 일을 상의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형나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기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맞고 싶어?”하현의 말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서운 기운을 감지한 형나운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있어요?”하현은 무심하게 내뱉었다.“시간 없어. 가게를 보러 가야 해. 바빠.”“당신이 원하는 가게, 나한테 없을 것 같아요?”형나운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내가 삼백 개는 더 보여줄 수 있어요.”“아니야. 필요없어. 내가 찾을 수 있어.”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할 말 없으면 끊어.”“아,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이 어제 나한테 부탁한 일 다 처리해 줬는데 이제 와서 입 싹 닦을 거예요?”형나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형나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말했다.“나의 주인님, 지금 하녀를 도와줄 시간이 좀 있을까요?”“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 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지금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식물인간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오늘 잠시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요? 주인님이라면 날 구해 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