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북산 세 글자를 듣자 왕화천은 한 숨을 내쉬었다. “내가 듣기로 장 선생님은 연경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요. 박 교수님, 자신 있어요?”“네. 저는 어쨌든 장 선생님과 오랜 친분이 있고 제 체면을 세워 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모시고 올 수 있을 겁니다.”박 교수의 안색이 조금 안 좋았다. “다만……”“다만 뭐요?”왕화천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제가 방금 그의 조수에게 연락을 했는데 조수가 말하길 장 선생님이 지금 큰 수술을 하고 있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합니다.”“장 선생님의 수술 과정에서는 누구도 방해를 해서는 안 되거든요.”“그래서 장 선생님을 모셔올 자신은 있는데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기 때문에 최상의 경우라고 해도 24시간 후에 도착을 하게 될 거예요.”“근데 부인께서 24시간을 버티리라고는 보장할 수가 없어요.”박 교수의 안색은 매우 나빴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그는 빨리 오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대하는 사람은 국수 장북산이었다. 이런 인물은 그뿐만 아니라 연경의 세자라고 해도 결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아직 수술 중이었다. 만약 강제로 장북산의 수술을 강제로 중단한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왕화천의 얼굴은 순간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그는 대구에서 약간의 권세가 있긴 했지만 연경에서는 이런 권세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박 교수는 장북산은 강제로 데려올 수 없었고 왕화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왕화천은 분노를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박 교수, 이번 일을 잘 도와주셨으면 합니다.”“장 선생님을 모셔와 주세요.”“그리고 제 부인의 증상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세요.”“약은 걱정하지 말고 쓰세요.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왕화천은 맨 마지막 말을 할 때 조금 이를 갈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이다. 김애선이 만약 식물인간이 된다면 금정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왕화천은 앞으로 나와 김애선의 손을 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 교수가 이미 장북산 선생을 초청했어.”“장 선생님 쪽에서 수술이 끝나기만 하면 제일 먼저 올 거야.”“그러니까 당신은 꼭 버텨야 해!”김애선은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입을 열었다. “방금 당신들이 한 말 다 들었어요.”“만약 장북산이 3일 내내 수술을 한다면요? 수술 후에 환자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떠날 수 없다면요?”“아니면 그가 기꺼이 오긴 했지만 내가 이미 식물인간으로 변해 있으면요?”“왕 어르신, 우리는 기다릴 수 없어요! 반드시 나를 구해야 해요!”왕화천은 눈꺼풀이 살짝 뛰었다. 그가 어떻게 김애선이 말한 이런 일들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이때 여전히 위로하며 말했다. “안심해. 장 선생님이 반드시 제때에 나타날 거니까.”김애선은 처량하게 웃었다. “만약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요?”“나는 이 병으로 일찍이 수많은 연줄로 그를 찾았어요. 하지만 그의 답장은 항상 똑같았어요. 번호를 매겨야 한다고요. 모든 환자들이 다 그를 필요로 하니까요!”“그가 있는 곳에는 번호가 벌써 5년까지 걸려 있어요. 우리가 5년까지 기다릴 수 있겠어요?”“게다가 우리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해도 장북산이 나를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어요?”“만약 그가 수술에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해요? 그냥 식물인간으로 살아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이런 해결책을 생각해 내면서 김애선은 몸서리를 쳤다. 이전에 줄곧 왕주아의 어머니가 이렇게 죽기 보다 못한 최후를 맞았다고 비웃어 왔다. 하지만 자신도 이런 최후를 맞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인과응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장북산이 안되면 우리는 다른 전문가도 찾아 볼 거야!”왕화천은 한 마디 한 마디 입을 열었다. “나는 재주 좋은 의사 한 사람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이 그렇게
밤 자정 12시. 야식 먹을 시간. 이 시간 용문회는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현이 왔을 때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왕화천이 용문회를 통째로 빌렸다. 왕화천은 이번에 홀 중앙에 앉아 피 묻은 스테이크를 정성스럽게 자르고 있었다. 그는 입안에서 피비린내를 맛보듯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또한 그의 곁에는 선풍도골의 분위기를 풍기는 어르신이 손에 먼지떨이를 들고 아랑곳하지 않고 을 들고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핸드폰 화면이 간간이 켜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인간 세상과는 관계없는 신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현은 왕화천 맞은편의 의자를 아무렇게나 당겨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국수를 가져다 준 후에야 하현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집어 먹으며 입을 열었다. “왕 선생님, 이 한밤중에 또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요?”왕화천은 지난번 만났을 때 보다 지금 훨씬 더 열정적으로 보였다. 하현이 국수 한 그릇만 주문한 것을 보고 그가 손을 흔들자 종업원이 미리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음식이 다 준비되자 왕화천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도령,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으니 이런 것들이 입맛에 맞는 지 한 번 먹어봐.”“만약 입맛에 안 맞으면 얼마든지 말 해. 생각나는 건 뭐든지 요리사가 다 만들 수 있을 테니까.”열정은 대단했지만 수수한 옷을 입고 있는 도인의 신분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하현은 젓가락을 들고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다른 건 관심 없어요. 국수 한 그릇이면 돼요.”“제가 가장 두려운 건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2만 원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는데 이것은 직접 계산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장면은 왕화천의 눈동자를 약간 움츠리게 했다. 을 보고 있던 수수한 옷차림의 도인은 이때 하현을 올려다 보며 혐오감을 드러냈다. 하현 이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하현의 감춰진 말에 왕화천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살짝 굳어졌다. 하현 이 놈은 정말 어이가 없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여지원은 이때 무거운 기색으로 하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서로 여러 번 만나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현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상복 차림의 도인은 옆에서 실눈으로 하현을 쳐다보더니 잠시 후 눈동자에 경멸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현은 이때도 왕화천에게 계속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고 실눈을 뜨고 말했다. “자, 왕 부회장님 잡담은 이제 그만하시죠.”“한밤중에 야식이나 먹자고 불러내신 건 아니겠죠?”“일이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하세요!”“일이 없으면 저는 가볼게요. 당신 딸이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올 때부터 이미 왕화천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 그는 계속해서 왕화천을 자극했다. 이 생각이 깊은 부회장이 얼마나 기량이 있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왕화천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뒷말은 무시한 뒤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하 도령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을 하니 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하도록 하지.”“처음에 김애선의 문제를 한 눈에 알아봤다고 들었어. 그리고 올해 병이 도지면 온몸이 굳어져 식물인간이 된다고 단정했다면서.”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요. 증상이 뚜렷해요. 대구의 전문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북산 선생님을 모셔온다고 해도 김애선을 구할 수 없을 거예요.”왕화천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 “김애선은 병에 걸린 게 아니라 무술을 연마하다가 잘못된 기를 흡수했기 때문에 그래요.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주화입마라고 해요.”왕화천의 말투는 더욱 다급해졌다. “그럼 네가 이 소위 주화입마라는 증상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 거야?”“있지요. 심지어 아주 간단해요.”하현은 담담한 기색이었다.“내가 손을 쓰면 30분만에 그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그리고 저는 그녀가 앞으로 발병하지
“그래서 김애선 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를 요구하는 지를 묻는다면 제가 명쾌하게 대답해드리죠.”“돈을 얼마나 많이 주든 나는 손대지 않을 거야.”“그녀가 나에게 미움을 산 것 외에도 가장 중요한 건 그녀가 주아에게 해명을 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거야!”“내가 나서기를 원해? 그녀가 그럴 자격이 있어?”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왕주아라는 세 글자를 말할 때 그는 그 수수한 옷차림의 도인의 눈매가 싸늘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하 도령, 너도 나도 모두 어른이야!”“어른은 이익만 따져.”“게다가 원수 맺는 것 보다는 푸는 게 좋잖아!”“네가 나 왕화천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해도, 10대 최고 가문 중의 하나인 금정 김씨 집안은 네가 중요하게 여길 만한 가치가 있지 않아?”“네가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나는 너에게 돈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쌍방의 원한도 모두 없애겠다고 약속할게!”“네가 원한다면 나는 용문 대구 지회에 네 자리를 하나 마련해 줄게. 하 장로님이라는 호칭이면 만족하겠지?”“심지어 나는 너를 나와 대등하게 부회장이 되게 할 수도 있어. 내가 몇십 년 후에 지회장 자리도 너에게 줄게. 어때?”권세, 힘, 지위, 돈. 지금 하현을 굴복시키기 위해 왕화천이 꺼낼 수 있는 것들은 다 꺼냈다. 하현은 이때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 “돈은 상관없어.” “원한을 푸는 일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용문 대구 지회 부회장 자리는 더더욱 관심 없어. 지회장도 별로 하고 싶지 않고.”“더구나 당신은 지금 부회장일 뿐인데 용문 대구 지회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 이런 조건들을 제시하는 건 나한테 머리를 숙여서가 아니라 잠시 굴욕을 참는 것일 뿐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어.”“내가 너희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면 너희들이 안심하고 나에게 복수할 수 있지 않겠어? 그렇지 않아?”“그러니 나는
“촤악!”하현은 이번에 왕화천의 얼굴에 차를 끼얹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권하는 술만 안 먹는 게 아니라 벌주도 마시지 않을 거예요.”“퍽!”“이 못난 놈!”“건방지게!”하현이 왕화천에게 찻물을 끼얹는 것을 보고 계속 침묵하고 있던 수수한 옷차림의 도사는 책상을 내리쳤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탁자가 부러지더니 냄비와 그릇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하현은 반 걸음 뒤로 물러 서 먼지 하나도 묻지 않았다. 왕화천은 동작이 느렸고 약간 낙담하는 기색이었다. 수수한 옷차림의 도사는 난처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재빨리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나서 하현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었다. “젊은이!”“내가 오랫동안 보면서!”“계속해서 참았어!”“너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구나!”“네가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 생겨서 왕 부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지 모르겠네!”“근데 네가 해결을 할 수 있든 없든 왕 회장은 이미 너에게 이런 조건을 내걸고 너를 극진하게 대했는데 네가 감히 거절을 해?”“너 대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왕 회장님과 왕 부인께 빌붙으려고 하는지 알아야 해!” “네가 이런 영광을 얻고도 감히 겸허하게 굴지 않고 여전히 여기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거야?”“법치사회가 아니었다면 가난했던 나의 젊었을 때의 성격으로는 벌써 너를 한방에 죽였을 거야!” “세발 고양이 솜씨를 가지고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네가 믿거나 말거나 한 손으로 너를 일어나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겠어!”지금 이 수수한 옷차림의 도사는 하현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찼다. 속세를 벗어난 명인의 자태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눈에 하현은 대역무도한 죄인으로 그에게 아무렇게나 짓밟혀 죽어야 했다. 게다가 그가 여기에 나타난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그것은 하현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왕화천은 그가 하현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가 실력
하현의 표정을 보고 청허 도장은 이 녀석이 스스로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이때 그는 도도한 자세로 차갑게 말했다. “빈도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내가 분명히 말하는 데 만약 빈도가 기분이 언짢아 사종국을 돌아오게 하면 넌 언제든 길가에서 죽게 될 거야!”“정용이 이미 그의 심복 양성호를 보내 너를 처리할 테니까.”“살고 싶으면 왕 회장의 조건을 들어줘야 할 거야!”“오, 그럼 먼저 도장님의 18대 조상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네요.”하현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흥미롭게 입을 열었다. “도장님은 주아의 스승님이시고, 지금 식물인간이 된 주아의 어머니는 당신의 후배네요.” “그렇다면 당신들 관계는 분명 좋을 거 같은데요?”“그럼 내가 지금 주아 대신 나서서 정당한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 주아와 주아 어머니에게 해명을 해주려고 하는데.”“당신은 왜 막으려고 하는 거예요?”“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도장님께서 설명해 주시겠어요?”청허 도장은 콧방귀를 뀌며 세상을 다 꿰뚫어 본다는 듯한 태도로 차갑게 말했다. “주아는 내 조카니 당연히 주아를 아끼지!”“주아를 아끼기 때문에 나는 주아가 어디서 튀어 나온 지도 모르는 말만 잘하고 실속 없는 놈들에게 속아 사리 분별도 못하고 자기 아버지에게 까지 반항하게 되는 걸 원치 않는 거야!”“만약 네가 주아를 해치지 않고 보호해 준다면 나도 반드시 너를 도와줄 거야.”“네가 주아를 대신해서 마땅한 권리를 위해 싸워 준다면 나도 너에게 감사할 거야!”“하지만 네가 이렇게 탐욕을 부리고 이렇게 오만 방자하게 굴면서 돈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왕씨 그룹의 회장 자리까지 요구한다면 해명을 요구할 거야! 이건 완전 막무가내로 구는 거야!” “빈도는 절대 동의할 수 없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돈은 관심 없어. 나도 받을 마음 없어.”“회장 자리는 주아에게 주라는 거야. 당연히 주아를 상석에 앉혀야지!”“주아의 어머니가 건강한 사람이었
이때 청허도장은 정의롭고 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구 3분의 1의 땅에서 그의 지위로 볼 때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에 따른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가 법이라고 한 말은 좀 과장되긴 했지만 보통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일을 결정 할 때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청허 도장은 오늘 왜 이 일을 방해하러 왔는지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 어쨌든 그를 산 밖으로 나오도록 왕화천이 2천억의 대가를 치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돈을 주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왕화천도 잘못한 게 없었다. 왕화천은 이때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어쨌든 인물이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도장님, 정의를 세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대구에는 도장님이 계시니 국민들에게는 복이고 관청에는 행복입니다!”왕화천이 치켜세우는 말을 듣고 청허 도장은 순간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현은 여기서 서로를 치켜세우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왕 부회장님.”하현은 여전이 이 ‘부’자에 힘을 주어 말했고, 왕화천은 눈가가 저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오늘 보니 지난 번 나한테 밥을 사줄 때보다 더 열정적이네.” “그런데 성의가 없고 여전히 형식적이야!”“그러니 김애선은 안심하고 식물인간으로 살아.”“주아의 것은 누구도 가져 가지 못해!”“그리고 주아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무도 결정할 수 없어!”“잘 있어.”말을 마치고 하현은 일어나 떠나려고 했다. “날뛰네!”청허 도장은 이때 벌떡 일어섰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사종국보고 돌아오라고 할 거야.”“너는 내일 길거리에 나뒹굴게 될 거야!”이것은 그의 비장의 카드였다. 그는 하현을 겁줘서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결국 하현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개 같은 놈!”하현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청허 도장은 크게 움직이며 한 걸음을 내디뎠고 동시에 그의 손에 먼지를 쓸어내며 공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