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담담한 기색으로 차를 한 잔 마셨다. 그 앞에서 이 정도로 뻐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왕동석이 항공모함 한대를 사서 그 앞에 내놓지 않는 한 하현은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이다. 주건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보통 사람 출신이었다. 그는 부를 과시하는 행동에 거부감이 컸다. 하지만 문제는 왕동성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소연이 하현을 비꼬는 기회를 잡으려고 한 것이라 그는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참, 아주머니!”한 무리의 사람들이 치켜 세우는 중에 왕동성은 품위 있는 태도로 선물 상자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이건 우리 대성그룹에서 최근 가장 잘 팔리는 액체 금이에요. 이걸 먹으면 수명도 연장되고 몸에도 좋아요. 제 작은 성의니 기쁘게 받아주세요!”“물건이 비싸지 않다고 싫어하지 마세요.”주건국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입을 열고 말했다. “감사해요.”“이게 상류층 귀인들이 쓴다는 전설의 액체 금인가요?”이 물건을 보고 이소연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듣기로 이걸 오랜 기간 마시면 인간 세포가 활성화 돼서 몇 십 년 동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일찌감치 품절됐다고 들었어요. 비록 대성그룹이 한 병에 2천 만원으로 가격을 정하긴 했지만 암시장에서는 4천 만원으로도 물건을 구하기가 어려워요!”“거기다 10병이나 주시다니, 너무 겸손하시네요!”왕동석은 싱긋 웃었다. 그는 어쨌든 대성그룹 사업부의 매니저니 샘플을 가지고 온다고 해도 아무일 없을 것이다. 이소연은 이때 장모가 사위를 보는 기분이었다.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왕동석을 잠시 쳐다본 후에야 그녀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왕 도련님은 정말 마음이 깊어. 너 같은 시골 촌뜨기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야.”이것이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사람은 더 좋은 사람과 비교하면 죽어야 하고, 물건은 더 좋은 물건과 비교하면 버려야 한다는 것
“어젯밤에 엄마가 이번에 아빠가 또 무슨 가난뱅이 친척을 건드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거듭 말씀을 하셨는데!”“하현 이 놈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어떻게 이런 모임에 참석을 하다니? 왕 도련님과 비교하면 그는 거지나 다름 없네요.”“어렸을 때 내가 어떻게 그를 보고 잘 생겼다고 생각을 했었을까?”주시현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하현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죽마고우였던 하현과 젊고 유망한 청년 왕동석을 비교했다. 비교를 안 했으면 모르겠지만 한 번 비교를 해보면 놀랄 만큼 차이가 난다! 젊은 왕동석은 대성그룹의 업무부 매니저다. 게다가 대구 지프차 동호회에도 참가했으며 용문 대구 지회 왕 부회장의 조카이기도 하다. 이런 인물은 인맥이든 힘이든 개인 실력이든 대구에서 1인자인 셈이다. 하현과 그를 비교하면 하현은 그의 신발을 들어올릴 자격조차 없었다. 두 사람의 소위 죽마고우 시절에 대해 말하자니 이때 주시현은 조금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당시에 정말 눈이 멀어 이런 남자와 결혼하려고 했다니?하지만 하현은 주시현을 보았을 때 그저 간단하게 고개만 끄덕거렸을 뿐 자태가 아름다운 이 여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현의 이런 눈빛은 주시현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녀와 같은 여신급 존재는 대학 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랑거렸는지 모른다. 대구에서부터 남원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 여태껏 그녀의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남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젊고 유망한 왕동석이라도 그녀를 봤을 때 놀라지 않았는가?그런데 이 하현은 어떻게 그녀를 무시하는 거지?하지만 주시현은 재빨리 반응을 보였다. 이것은 분명 가난뱅이가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는 교묘한 전략일 것이다. 분명 가난뱅이일 뿐인데 일부러 시크한 척을 해서 여신의 마음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아첨을 떨고 있을 것이다. 주시현은 더욱더 싫어졌다. 이런 가난뱅이가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이 말을 듣고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두가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현, 너 이게 무슨 뜻이야?”이소연은 눈썹을 추켜세우고 노기가 충천했다. “왕 도련님이 너랑 악수하는 건 네 체면을 세워주고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건데 네가 악수도 안하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거야?”“지위도 신분도 다 부족하다고?”“너랑 악수할 자격이 없다고?”“너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네가 용문 대구 지회장이라도 돼?”주시현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하현이라는 데릴사위가 이번에 대구에 온 것은 십중팔구 주씨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어 백조고기를 먹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와 왕동석의 관계를 보고 하현은 분명 마음속의 질투를 참지 못하고 왕 도련님을 모욕하려는 것이다. 이 순간 주시현은 하현이 도량이 좁아 작은 일에 매여 큰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주건국도 깜짝 놀랐다. 하현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황급히 수습을 하며 말했다. “왕 도련님, 하현은 분명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닐 거에요. 그는 자기가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고 했던 걸 거예요……”왕동석은 주건국을 무시하고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내가 너랑 악수할 자격이 없다고?”“내 신분, 지위, 능력이 부족하다고?”“임마, 너 머리가 망가졌니?”“아저씨 아주머니와 시현씨의 체면을 봐서 내가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안 그랬다간 대구 3분의 1의 땅에서 내가 입만 열면 너는 발전은커녕 쓰레기 줍고 밥 달라고 구걸할 곳도 없을 거야!”말을 마치고 왕동석은 팔짱을 끼고 하현을 잡아 먹을 듯한 얼굴로 굽히지 않는 기색이었다. 이소연도 정색을 하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현, 빨리 왕 도련님께 사과해!”“왕 도련님 같은 분은 네가 함부로 욕할 수 있는 분이 아니야. 미움을 살 수도 없어!”“왕씨 집안은 더더욱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만약 왕 도련님
왕동석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하현과 대화하는 게 귀찮아졌다. 주건국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저씨, 시현씨와 아주머니의 체면을 봐서 이번 일은 제가 저희 삼촌 왕 부회장님께는 말하지 않을 게요.”“하지만 이 촌놈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렇지 않으면 그는 밖에서 헛소리를 하고 다닐 거예요. 그럼 저도 당신들을 지켜 줄 수 없을 거예요.”말을 하면서 왕동석은 한숨을 지으며 발길을 돌려 떠났다. 계속 하현과 같은 룸에 있다가는 자신도 연루될 것 같았다. 몇몇 손님들은 이때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잠시 후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주 회장님,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한 턱 내겠습니다!”이 손님들은 몇 마디 말을 내뱉고는 하나같이 토끼보다 빠르게 달려 나갔다.하현이 정신이 이상해져 여기서 허풍을 떨고 있는데 만에 하나라도 용문 사람들 귀에 들어가면 그들도 곤경에 처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늙은 여우인데 누가 방금 알게 된 사람 때문에 용문의 미움을 사고 싶겠는가? 곧 방금 까지 북적이던 룸에는 주건국 일가와 하현 네 사람만 남게 되었다. 식탁에 가득 찬 요리는 아무도 젓가락을 대지 않아 룸 안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했다. 이소연은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네 꼴 좀 봐. 너는 재수없는 놈이야!”“너 때문에 왕 도련님이 가버렸잖아!”“우리 집 손님들도 가버렸고!”“너 도대체 우리 집에 빌붙으러 온 거야? 죽이러 온 거야?”주건국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연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하현은 아직 젊잖아. 농담 몇 마디 한 거 가지고 왜 그래?”“그리고 나는 원래 그 계집애 같은 놈이 아주 못마땅했어. 하현이 그를 화나게 해서 보내 버렸으니 아주 내 마음에 쏙 들어!”“당신 마음에 쏙 든다고!?”이소연은 성질이 올라왔다. “그러면 하현이 자기가 용문 대구 지회장이라고 말하도록 당신이
“쫓겨난 데릴사위를 네가 받아주겠다는 거야! 내 딸을 그 사람한테 시집 보내고 싶다는 거라고!”“주건국, 나는 네가 병에 걸린게 아닌가 무섭다! 정신병!”주건국은 차갑게 말했다. “시현이와 하현이는 죽마고우였어. 당시 두 집안이 구두로 혼인을 약속했었어. 다는 단지 약속을 지키려는 것뿐인데 왜 그래? 안돼?”“너……”이소연은 화나가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의자에 앉아 주건국을 보며 그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시현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고 하현에 대한 반감이 더 커졌다. 이 놈은 허풍쟁이일 뿐만 아니라 백조고기를 먹으러 온 두꺼비일 뿐이었다. 게다가 하현 때문에 부모님이 이렇게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다툼을 하시다니. 어머니는 아마 화가 나 병이 날 지도 모른다. 거기다 왕 도련님도 화가 나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주시현은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하현을 쳐다보자 메스껍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하현은 주씨 집안이 계속 싸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제지하며 말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그만 싸우세요.”“다 제 잘못입니다!”“제가 대구에 와서 진작에 지낼 곳을 다 준비를 해 놨어요. 그러니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일을 다 준비하고 난 후 다시 식사를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사실 10년 넘게 잘 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렇게 왔으니 얘기 좀 나눠요.”“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저 지금 갈 테니까요.”“그리고 이건 제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 아저씨 사양하지 마세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임복원이 보낸 하수오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자신의 짐을 들고 발길을 돌려 떠났다. 이렇게 깔끔하게 떠나다니?허세 부리는 거 아니야!?주시현은 멍해졌다. 그녀는 원래 하현이 다시 전진하기 위해 후퇴하는 척 연기를 하려는 것인 줄 알았다. 정말로 가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현아, 가지 마!”“시현아, 너 빨리
하현은 평화루를 나와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확실히 용문 대구 지회장이며 이것은 그가 앞으로 대구에서 공개할 신분이기도 했다. 지금은 주건국 일가가 믿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자연스럽게 믿게 될 것이다. 하현도 설명할 마음이 없어 차를 타고 변백범이 준비해둔 곳으로 갔다. 바로 이때,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더니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주건국은 하현에게 먼저 묵을 호텔을 찾은 다음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럼 그가 나중에 건너 가겠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주건국은 이소연을 대신해 하현에게 사과를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현에게 젊은이는 너무 야심을 품어서는 안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큰소리 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현은 이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지만 주건국은 확실히 자격을 갖춘 어른이었다. 하현은 그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별 다른 설명 없이 자신이 준비한 것이 있으니 시간 날 때 다시 주건국을 방문하러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30분 후 차는 대구 강구지역의 한 고급 개인 사무실에 도착했다. 하현은 곧바로 888호실로 갔고 안에는 변백범과 사람들이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하현이 들어 온 것을 보고 변백범, 대도 경수, 공해원은 모두 공손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분이 용문 대구 지회를 장악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대도 경수와 공해원은 하현에게 목숨을 바쳤다. 이번에 사전에 대구에 와서 일을 안배하고 소식을 알아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이 두 사람이 주력해서 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현은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고 난 후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어? 우리가 기왕 대구에 와서 성장하려고 하는데 더 좋은 곳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변백범은 대도 경수를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대도 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하
공해원은 깍듯하게 핸드폰에 있던 사진을 골라 텔레비전 화면에 띄운 뒤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씨 집안에 있는 네 아들 중 둘째와 셋째는 폐물이라 말 할 것이 없습니다.”“하지만 첫째 조남헌과 막내 조천행은 한 인물인 셈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좋은 것 말고도 기본적으로 용문 대구 지회 원로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조남헌은 이전에 부회장 위남풍과 동맹관계를 맺었고, 조천행은 부회장 왕화천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이 두 부회장은 용문 대구 지회에서 실세 거물들이지만 조씨 집안의 자제들을 아무 대가 없이 돕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 쌍방은 모두 조씨 집안 사람이 일단 상석에 앉으면 그들 부회장이 회장이 되도록 지원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어쨌든 조씨 집안은 용문 대구 지회에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상석에 앉고 싶으면 조씨 집안 사람들의 지지가 없이는 어려울 겁니다.”공해원은 또 한 장의 사진을 꺼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분은 세 명의 부회장 중 유일하게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우성빈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속셈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그의 목적을 확실하게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외부인들이 보기에 그는 용문 대구 지회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하현은 손을 뻗어 책상을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좀 재미 있네.”“간단히 말하자면, 첫째, 조씨 집안의 조남헌과 조천행 두 사람은 상석에 앉을 기회가 있다는 것이고.”“둘째, 용문 대구 지회의 두 부회장 왕화천과 우성빈은 각각의 목적이 있다는 거네.”“지금으로선 조천행과 왕화천 동맹이 가장 막강한 거네?”공해원은 낮은 목소리로 일깨우며 말했다. “도련님, 위남풍을 잊으셨습니다!”하현은 입을 열지 않았고 오히려 변백범이 담담하게 말했다. “위남풍은 진작에 없어졌어.”이 말이 나오자 공해원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이전에 위씨 집안이 제멋대로 남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소
공해원과 대도 경수 두 사람은 대구에서 이미 많은 것들을 준비해 두었다. 지금 그들은 하현이 손을 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크게 실력 발휘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하현은 잠시 생각하며 말했다. “지금 손을 대면 비용이 많이 들어.”“그들이 먼저 싸우게 해서 개 머리들이 다 박살 나면 뒷일을 수습하자.”“심가는 소식 없어?”하현은 화제를 바꾸었다. “심가……”공해원은 굳은 얼굴로 잠시 후 조용해 말했다. “도련님, 소인은 능력이 부족합니다.”“요 며칠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심가의 소식을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개입하기만 하면 스파이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눈이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명수 몇 명을 잃고 멈추게 했습니다.”“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도련님께서 분부해 주세요.”하현은 약간 의아해했다. “네가 훈련시킨 스파이도 아무런 소식을 알아내지 못하고 세상에서 증발해 생사가 불분명하다고?”공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재미있네. 보아하니 심가의 수심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깊은가 보네. 너희들은 당분간 이 일이 개입하지 마. 내가 직접 처리할게.”공해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남원 쪽 상황은 어때?”하현이 이어서 말했다. 이번에 변백범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오늘 아침 일찍 당전신과 연락을 했는데 형수님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아무일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계산으로는 길어봐야 일주일 안에는 강남 설씨 집안이 대구로 전체 이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일주일.”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아하니 일주일 안에 모든 걸 다 해결해야 할 것 같네.”그는 설은아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은아가 대구로 오기 전에 가능한 한 모든 위험한 요소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대구의 수심은 너무 깊었다. 용문, 심가, 섬나라 등등이 뒤섞
하현은 두 여자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힐끔 시선을 떨어뜨린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은아, 우린 들어가자.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서기는 소항 회관으로 들어가려는 하현의 앞을 가로막으라는 듯 임민아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하현은 무심코 발을 떼려다가 줄곧 자신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임민아가 갑자기 앞을 막자 흠칫 놀랐다.“나한테 무슨 볼 일 있어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더 이상 설은아한테 찝쩍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이미 설은아와 헤어졌어요. 그럼 깔끔하게 물러서요.”임민아는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설 씨 집안사람들은 당신을 전혀 반기지 않아요. 모르겠어요?”“이제 알았으면 썩 꺼져요! 어서!”“이곳은 우리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당신 같은 얼뜨기가 오는 곳이 아니에요!”하현은 냉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와 설은아 사이의 일은 당신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설은아는 내 친구예요. 그러니 친구로서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죠!”임민아는 턱을 치켜들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은아가 마음씨가 고와서 당신이 이러는 것도 가만히 놔두는 거예요!”“그렇지 않고서 당신같이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은아와 함께 있을 수 있겠어요?”“은아는 타고난 미모에 붙임성까지 있는 사람이에요. 봉황이 노는 곳에 어찌 꿩이 알짱거릴 수 있겠냐구요?”“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여기까지 말한 임민아는 콧대를 잔뜩 치켜세우며 위엄을 과시하려 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하현은 한쪽 입가를 살짝 말아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이윽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임민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임민아 씨, 맞죠?”“당신은 스스로가 너무 잘난 줄 아는 사람이군요.”“내가 어떤 사람이든, 자격이 있든 없든 그건 당
”아니야.”하현은 설은아가 갑자기 간민효를 언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엄도훈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우리 쪽이 계약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거야.”“그래서 회사 법무팀에 직접 물어보라고 연락한 거야.”하현의 설명을 들은 설은아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 갑자기 생각났어. 엄도훈이 당신한테 이러는 걸 보니 간민효가 당신한테 엄청 많은 도움을 줬었나 봐, 그렇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조그만 일에 간민효를 들먹일 필요는 없어.”설은아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만약 무성이나, 혹은 남원이나, 대구였다면 그녀도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그러나 금정은 역사와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다른 곳과 비교할 곳이 아니었다.금정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현이 이런 말을 하니 설은아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하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분명 금정에도 그의 포석을 두었음이 틀림없다.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인정하기 싫은 질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슬기를 떠올렸고 왕주아를 떠올렸고, 동리아를 떠올렸다.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질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차는 그렇게 달리고 달려 으리으리한 소항 회관에 다다랐다.화려한 불빛이 눈앞에 일렁거렸고 많은 차들이 오갔다.곳곳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퍼졌고 많은 미남미녀들이 드나들었다.차가 멈춘 후 하현은 설은아를 따라 걸어 나왔고 곧이어 마세라티가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빼어난 몸매에 세련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두 여자는 설은아가 금정에서 안 지 얼마 안 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한 사람은 진서기이고 다른 한
”그래, 맞아! 아들이 하는 말에 무슨 토를 달아?”최희정은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이 한 말을 완전히 뒤집을 모양이었는지 싸늘한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네, 그렇게 능력이 많아?”“그렇게 은아랑 재결합하고 싶어?”“그럼, 좋아!”“자네가 우리 은아를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면!”“나도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게!”“둘이 같이 살고 싶으면 살아도 돼. 그건 내가 허락해 줄 수 있어.”하현은 최희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나이에 비해 여전히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최희정이 표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계속하다간 양측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거란 걸 잘 알았다.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설은아의 모습을 보던 하현이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대구 정 씨 가문 수장이요? 문제없죠!”“설은아를 그 자리에 올려놓겠습니다!”“그래! 알았네! 자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두고 보겠어!”최희정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하현이 식탁에 않는 걸 더는 막지 않았다.식사 자리는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어색하고 불편한 식사를 마친 뒤 이영산 부부가 떠나자 하현은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그때 발코니에 있는 설은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설은아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오늘 저녁 소항 회관에서 모임이라고?”“그래, 꼭 시간 내서 갈게.”“그런데 내가 말씀드린 그 일은 가닥이 좀 잡혔어?”하현은 이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후 내내 휴식을 취한 설은아는 저녁 6시가 되자 단장을 하고 차를 몰고 어딘가로 떠나려고 했다.차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현이 불쑥 조수석 문을 열고 히죽히죽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여보, 어디 가게?”설은아는 원래 하현을 소항 회관에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지만 하현이 조수석에 올라타는 걸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중요한 비즈니스 모임이 있어. 친구가
”그래요?”하현은 최희정에게는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우리 처남, 어서 밥이나 먹어!”이영산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아예 하현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최희정은 하현이 자신의 양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마음 같아서는 하현을 향해 뺨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내놓은 수표와 계약서가 모두 사실이어서 그녀로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가짜 처남! 당신은 신분도 가짜라서 한 마디 못하고 있는 거지?”“남자가 되어서 남아일언중천금이란 말도 몰라? 본인이 한 말도 수습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못한 거 아냐?”하현이 이영산의 체면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그는 자신의 아내를 무시했던 이영산을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지금 간이 너무 싱거워? 그렇다면 내가 좀 더 끓어줄까? 그러면 당신의 입맛에 맞게 될 텐데. 어때?”“자네, 그만해!”이때 최희정이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치며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아주 기고만장하군!”“오백억 돌려받고 계약 한 건 따낸 것뿐이잖아?”“뭐가 그렇게 기고만장할 게 있어?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고?”“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네더러 능력 있다고 추켜세울 줄 알았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쨌든 장모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래서 난 돈을 받아왔구요.”“그러면 이제 저는 설은아와 재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호적등본은 어딨죠?”“제가 가져가도 되는 거죠?”하현의 말을 들은 최희정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눈앞의 하현이 못마땅해 죽을 지경이었다.그녀는 절대로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허락하지 않으면 하현의 비아냥에 더욱 설 곳이 없어져 도저히 끝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설은아, 장모님이 별로 이의가 없으신 것 같으니
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그릇을 꺼내 대문 앞에 세차게 던졌다.이어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서 사죄해!”“저기 가서 무릎을 꿇으란 말이야!”딸과의 재결합을 허락받기 위해 온 남자라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을 것이다.그런데 엄도훈한테서 오백억을 받아왔다고?허튼소리도 정도껏이지!이를 본 설유아는 급기야 울상이 되어 말했다.“형부, 그냥 지금 엄마한테 사과하세요.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요...”“수표도 계약서도 진짜입니다. 거짓 하나 없는 사실이라구요!”하현은 설은아가 건네주는 물컵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그런데 제가 무슨 죄를 인정해야 합니까?”“허허! 하현! 쓴맛을 봐야 피눈물을 흘리며 단념할 모양이군!”하현이 완강한 자세를 보이자 이영산은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저따위 가짜 계약서와 수표는 인터넷에 뒤져보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어! 당신 같은 사람이 이걸 모른다고?”“만약에 저것이 가짜로 판명된다면!”“당장 이 집에서 나가! 절대 돌아올 생각하지 마!”설은아를 포함해 설 씨 집안의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이영산은 하현이 철저히 없어져 주길 간절히 바랐다.하현이 끼어들어서 그의 수많은 계획들이 틀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으로 관련 사이트를 열어 계약서 번호를 입력해 조회하기 시작했다.최희정은 하현이 하루아침에 오백억이라는 거금을 받아왔다는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고 계속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조회는 왜 해 보는 거야?”“거두절미하고 당장 무릎 꿇어! 무릎 꿇기 싫으면 당장 꺼지라고!”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경호원 몇 명을 부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어?!”순간 이영산은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이럴 리가 없는데? 이, 이게 어떻게 진짜일 수가 있어?”“믿을 수 없어!”당황한 이영산의 목소리에 최희정은 어리둥절해하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그러고 나서 이영산의 핸드폰을 잡아채듯 가져와 계약서와 대조해
”탁!”“신사 상인 연합회가 SL그룹에서 빌려 간 돈 오백억이에요!”“탁!”“신사 상인 연합회와의 향후 5년 치 계약서입니다!”“탁!”“신사 상인 연합회 회장이 선불한 첫해 선입금입니다!”“선입금은 되돌려 줄 필요없이 계약은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최희정을 바라보며 웃는 듯 마는 듯 오묘한 미소를 떠올렸다.“설 씨 집안을 대신해 오백억을 돌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5년 치 계약도 성사시켰고 선입금까지 받았어요.”“선입금까지 호주머니에 찔러줬으니 이젠 두 사람, 그 입 다물 수 있겠죠?”하현은 그릇을 집어 들고 이영산의 면전에서 ‘퍽’하고 깨뜨렸다.“가짜 처남! 이제 먹어도 돼. 국물도 먹어가면서 먹어. 체하지 않게.”“뭐?”하현의 말을 듣고 모두들 그가 방금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물건들을 보았다.설 씨 가족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러고는 하현에게 시선을 돌려 더욱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하현은 빚을 돌려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계약서에 선입금까지 받아왔기 때문이다.이것은 결코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말도 안 돼! 이건 절대 불가능해!”이영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장 먼저 벌떡 일어섰다.“신사 상인 연합회가 어떤 곳이야? 그곳은 서남 천문채의 금정 지사가 뒤를 받쳐주는 곳이야!”“호랑이 같은 그들 입에서 먹이를 빼앗아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당신 같은 얼뜨기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지?”“가짜야! 계약서도 수표도 모두 가짜일 거야! 틀림없어!”“당신은 설은아를 얻기 위해 이런 뻔뻔한 짓을 벌인 게 분명해!”“잘 들어! 난 설은아의 의붓 오빠야! 어머니 아버지의 장자로서 절대 당신의 그런 더러운 음모가 실현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계약서와 수표를 위조하는 것은 중죄야!”“법대로라면 당신은 적어도 십몇 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해!”말을 하면서 이영산은 이를 갈며 수표
”드셔보세요?”“드셔보면 알 거예요!”“여기 자리 없는 거 안 보여? 여기 이 음식들, 우리가 다 먹기에도 모자라!”“먹고 싶으면 조용히 구석에서 먹고 가. 안 그러면 그냥 가든지!”최희정은 손에 젓가락을 쥐고 설유아를 툭툭 치면서 못마땅한 듯 싸늘하게 내뱉었다.설유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엄마. 다 차려진 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일이야. 그리고 우린 한 가족이잖아!”“가족? 저놈은 우리와 한 가족이 아니야!”“이 대문을 들어서게 한 것은 그나마 알던 사이라서 체면을 봐준 거야!”“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요리들은 먹성 좋은 우리 아들이 먹기에도 모자라다는 거야!”“남는 게 어디 있어?”최희정은 하현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듯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이영산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어머니는 정말 제 친어머니나 다름없어요. 아니 제 친어머니보다 더 저한테 잘해 주세요!”“제가 대식가라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맞아요. 여기 있는 음식들, 제가 먹기에도 모자랄지 몰라요.”설유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 닭찜은 형부 먹인다고 해놓고선...”“닥쳐!”설유아의 말대꾸에 최희정은 더욱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닥치지 않을 거면 너도 저 몹쓸 놈이랑 함께 꺼져!”“예전에는 상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저 얼뜨기랑 우리 집안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내가 잘해 줘야 해?”최희정은 하현의 향해 눈을 부라리며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집에 와서 뻔뻔하게 재혼을 한다고 큰소리치는 걸 보니 3년 동안 밥 안 먹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어!”장리나가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저 사람은 백두산 산삼까지 먹었는걸요. 평생 밥 안 먹어도 괜찮을 거예요.”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엄마, 그리고 당신들 그만해요!”“하현은 내가 부른 거예요.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말하세요!”“네가 오라고 했다고?”설은아의 말을 듣고 최희정이 불쑥
엄도훈이 지금까지 무사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건달이었기 때문이다.매일 싸우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인 그의 몸에 혈기가 항상 돌고 있었던 것이다.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이미 수천 번은 죽어도 더 죽었을 것이다.“곧 죽는다구요?!”엄도훈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팔괘경에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형님, 이 물건은 제가 골동품 시장에서 사 온 거예요.”“몇만 원짜리 물건인데 그렇게 큰 문제가 있는 겁니까?”엄도훈 같은 건달들은 주먹이 곧 도리라고 믿었다.그런 그가 어떻게 풍수나 관상술 같은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는 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것이다.정말로 풍수라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해도 풍수를 이길 수 없는데 사람들이 뭐 하러 고군분투하겠는가?사실 엄도훈은 하현이 오늘 자신과 싸우고 난 뒤 살짝 겁주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하현에게 밟혀 제대로 호된 맛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가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까지 할 뻔했다.하현은 담담하게 툭 내뱉었다.“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 마음이지.”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문제가 생기면 방금 사람을 찌르려던 그 비수를 가슴에 달고 있어. 그 물건에 혈기가 있으니 당신의 목숨을 구해 줄 거야.”“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하현은 말을 마치며 돌아섰다.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자마자 가타부타 말이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하현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사람을 속이는 방법도 어지간해야지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현이 떠난 뒤에 엄도훈은 정형외과에 가서 뼈를 맞추려고 손을 늘어뜨린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가 건물을 나와 막 대문 쪽으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지붕 기와가 미끄러져 내려와서 ‘퍽’소리를 내며 그의 이마에 떨어졌다.엄도훈은 머리를 감싸고 욕을 했지
하현은 차를 마시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엄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빚진 것은 저희 잘못입니다. 형님이 직접 가져가 주십시오.”“그리고 우리 신사 상인 연합회에서 앞으로 보상 차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이번에는 절대 걱정하는 일 없을 겁니다!”“절대로 더 이상 빚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백억을 선불로 내겠습니다!”“첫해 합작하는 것에 대한 선입금입니다!”“부디 형님께서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SL그룹의 약품과 기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금정에서도 우리는 SL그룹만 계약할 겁니다.”말을 하면서 엄도훈은 수표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내놓았는데 그것이 오백억이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엄도훈을 바라보았다.비록 그가 수려한 언변을 늘어놓은 건 아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다.어차피 엄도훈이 또 이상한 짓을 하려 한다면 하현이 한 발로 밟아 죽이면 되는 일이다.“알았어. 그래 그럼 수표와 계약서는 내가 가져가지.”하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하지만 당신들과 합작을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내 아내의 뜻에 달렸어.”“알겠습니다!”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고 더욱 환하게 웃었다.“형수님 뜻에 따르겠습니다!”“형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엄도훈은 뒤에서 선물 상자를 꺼내 하현 앞에 공손히 놓았다.“형님, 이것은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이번에 어떻게 하다 보니 서로 싸우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지만 성의는 해야죠. 서로 알게 된 인사치레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말을 하면서 엄도훈은 선물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각양각색의 보석이 가득 박혀 있는 여성용 시계가 있었다.프랑스산 고급 명품 브랜드 시계로 그 가치는 억 단위가 넘었다.“여자시계?”하현이 무심코 입을 열었다.“이거 줘 봐야 소용없어.”“형님, 꼭 받아주십시오.”“사양하지 마시고요. 형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서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