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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남편이 후회하는 100가지 방법
재벌 남편이 후회하는 100가지 방법
작가: 유나

0001 화

작가: 유나
음식의 향으로 가득한 방 안에서 나는 남편 권사현을 바라봤다. 그의 짙은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오뚝한 콧대와 날렵한 턱선을 감쌌다.

평범한 옷차림으로 가려지지 않는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었고 조각 같은 몸매는 잡지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 같은 느낌을 줬다. 그런 남자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이를 기념하며 나는 오붓한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평소 차가운 태도를 일관하던 그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줬다.

그가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는 정말 화를 내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오늘 특별히 그의 옆에 앉는 것이 아닌 마주 보는 자리를 선택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그의 반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어제 주치의로부터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결혼기념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전하기 위해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전하든 전부 좋은 소식일 것이다. 결혼기념일과 새 생명이 함께 찾아온다면 오늘 식사 자리의 의미도 특별해질 것이다.

“너무 맛있어.”

권사현이 말했다.

“셰프한테 당연한 말인데도 계속 감탄하게 돼.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나는 그의 칭찬에 잠깐 긴장했다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 사현 씨한테서 들은 감탄은 언제나 뜻깊게 느껴져.”

그도 미소를 지었지만 내 미소만큼 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만들 필요는 없었어. 두세 가지로도 충분하잖아. 먹는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는데.”

‘또 이런 식이야?’

나는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 특별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그의 휴대폰이 울리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깼고, 나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권사현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곧이어 그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 회사 연락이야. 꼭 가봐야 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목이 메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실망을 감췄다.

“괜찮아. 다녀 와. 난 여기 있을게.”

내 목소리는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무덤덤하게 들렸다.

“내가 꼭 보상할게. 보석이든 뭐든, 네가 원하는 걸 사줄게.”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며 외쳤다.

나는 의자에 기대며 좌절과 실망에 빠졌다. 결혼기념일 날 밤 9시에 남편이 일하러 가버리고 말았다.

‘사현 씨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나 있을까? 그 와중에 보석으로 보상을 한다고?’

나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남자들은 왜 항상 선물이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숨은 저도 모르게 나왔다. 그는 언제 돌아온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물론 항상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일이 끝나면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었다는 사실도 잊을 것 같았다.

한때는 먹음직스럽게 느껴졌던 음식도 이제는 맛이 없어 보였다. 우리의 결혼기념일 저녁은 업무 전화 하나로 완전히 망쳐졌다.

나는 음식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권사현을 기다리며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실에서 TV를 볼 때 임신 때문인지 금방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잠 들었다가 몇 시간 후 화들짝 깨어났다. 눈에 보이는 것은 고요한 집이었고, 나는 여전히 소파에 혼자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현재 시각은 자정 12시를 약간 넘기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깨달음이 나를 덮쳤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끝나버렸다. 분노와 실망이 나를 감싸며 권사현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임신 사실을 알리려던 계획도 이대로 망치고 말았다.

식탁 앞에 걸어가니 결혼기념일 저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스타 셰프가 돼서 이틀이나 휴가를 내고, 나를 좋아해 주는 손님들이 아닌 무심한 남편에게 요리를 해주다니 말이다.

나는 체념의 한숨을 내쉬며 식탁을 치웠다. 남은 음식은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

아침 일찍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익숙한 주방 소음이 들렸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걱정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일찍 왔네요, 솁. 이틀 쉬기로 했잖아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망친 기념일 저녁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때 매니저 이준혁이 다가왔다. 그는 커다란 체격과 달리 따듯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수정된 메뉴를 체크할 때 다가와서 말했다.

“차솁, 지금 시간 있어요?”

“네.”

나는 메뉴에서 눈을 떼며 대답했다.

“이번에 해외 연수 기회가 있는데 시간은 3년 정도 걸려요. 요리 실력을 올리는데 좋은 기회인 것 같은데, 혹시 관심 있어요?”

나는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3년이라니... 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아주 긴 시간이다. 하지만 이준혁의 제안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건드렸다.

이건 권사현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 무언가 이뤄낼 기회였다. 나는 항상 그의 지원에 의존해 왔다. 그를 사랑하긴 하지만 스스로 이뤄낸 성공도 맛보고 싶었다.

이준혁은 내 고민을 보아내고 어깨를 툭툭 쳤다.

“천천히 생각해요. 남편분이랑도 상의해 보고요. 평생을 좌우할 결정이니 신중해야 하지 않겠어요?”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떠났다.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빠졌다.

‘내가 출산하고 연수하러 가면 아이는? 우리 결혼은 괜찮을까? 그리고 사현 씨가 이 시간과 거리를 견딜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동안에도 나는 점심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몇 시간 후, 한 직원이 주방으로 달려왔다. 얼굴에 당황한 표정을 띤 채로 말이다.

“어떤 손님이 차솁을 만나겠다고 고집하고 있어요.”

직원의 목소리는 아주 다급했다.

“무슨 문제죠?”

“말을 안 하고 그냥 진상 짓만 해요. 담당 셰프를 만나겠다고요.”

나는 황급히 앞치마를 벗고 손을 씻은 뒤 직원을 따라 주방 밖으로 나갔다.

“안녕하세요, 채연서 셰프입니다.”

나는 손님의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음식에 어떤 문제가 있나요?”

상대는 임신한 여자였다.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화가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문제요? 전부 다 문제예요! 음식이 너무 밋밋해요.”

그녀는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다.

“이런 음식을 만든 사람이 어떻게 셰프인지 모르겠네요.”

나는 그녀의 말을 차분히 들으며 메뉴와 재료에 관해 설명하며 내 요리를 변호했지만, 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완강했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요. 내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려요. 당신 해고시킬 거니까요.”

‘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도 금만 전문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손님, 저희 음식은 최고의 재료로 최고 수준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 요리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무료로 다른 요리를 제공해 드릴게요.”

그녀는 무심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필요 없다고요. 당신 때문에 나랑 내 아이가 중독될 뻔했으니 해고 처리할 거예요. 내 남편이 알아서 할 거니까 나랑 말할 것도 없어요.”

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셰프로서 오랜 시간을 일 해왔다. 그동안 무리한 불만도 많이 봤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남편이 도대체 얼마나 잘났기에 무고한 나를 해고할 수 있단 말인가?

밖으로 다시 나가려는 찰나 사무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솁, 손님 남편분 오셨어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충분히 힘든 하루였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생각을 가다듬고 나섰다. 그녀의 남편이 무슨 권력을 가졌든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일에 자신이 있었고 내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비로 다시 들어서면서, 나는 그녀와 얘기하고 있는 키 큰 남자의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 그녀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남편에게 무언가 일렀다. 그 사람의 정체는 얼굴을 보기 전에도 알 수 있었다.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나는 내가 매일 밤 함께 잠드는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는 바로 권사현, 내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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