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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화

작가: 유나
나는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잘못 본 것이 아닌지 확인했다. 충격에 커진 눈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말이다.

내 남편 권사현이 임신한 다른 여자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일하는 이 레스토랑에서 권사현이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했다.

그 여자가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려요. 당신 해고시킬 거니까요.”

순간 심장이 요동쳤고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마치 배가 주먹으로 강타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사현 씨?”

권사현은 내 시선을 마주했지만 표정은 태연했다.

“어, 연서야.”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톤으로 말했다. 내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의 설명을 기다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권사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차은별이 먼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 당신이 연서 씨였어요? 아까는 미안해요. 저는 차은별이라고 해요. 사현이 친구요.”

나의 무표정한 얼굴을 본 차은별은 계속해서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현이는 제가 여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거든요. 사현이는 정말 최고의 친구예요.”

나는 권사현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친구?”

나는 믿기 힘든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권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친구. 은별이는 임신한 상태로 귀국했고 지금 의지할 데가 없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나는 여전히 설득되지 않았다. 내 시선은 차은별에게 옮겨졌다. 그녀는 연약해 보이는 태도를 유지하며 나의 양해를 구했다.

“아이는...?”

권사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 애는 아니야. 오해하지 마.”

나는 이제야 약간 안심하며 권사현을 믿기로 했다. 그 순간, 차은별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내 주의를 끌었다.

“뭐... 이름이 채연서라고 했죠? 아까는 제가 미안해요. 선을 넘은 것 같네요. 하지만 임산부 혼자 낯선 도시에 있는 것도 쉽지 않아요. 남자의 도움이 필요해서 조금 과장되게 말했어요. 이해하죠? 여자라면 다 보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녀의 사과는 절대 진심이 아니었다. 진심이라고 해도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무례했고, 내 남편을 자기 남편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내 남편을 들먹이며 나를 해고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하지만 이때 권사현이 듣기 좋게 말하라는 눈치를 줬다.

“...괜찮아요.”

나는 웅얼거리며 대답하다가 그녀의 손목에 걸린 파란색 보석을 발견했다.

‘잠깐, 저거 한정판 블루 다이아몬드 아니야? 어제 사현 씨 가방에서 본 그거! 나를 위해 준비한 기념일 선물인 줄 알았는데...?!’

차은별은 분명히 내 시선을 의식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강아지 같은 눈빛을 보냈다.

“아, 이 팔찌요? 사현이가 준 거예요. 연서 씨처럼 너그러운 사람은 사현이가 친구한테 작은 선물 주는 거 신경 쓰지 않죠?”

‘하, 친구...?’

나는 차갑게 웃었다. 차은별의 질문에는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고 대신 권사현에게 말했다.

“내 사무실로 와. 할 말 있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나는 빠르게 돌아섰다. 내가 떠날 때 차은별의 달콤한 목소리가 계속 뒤따라왔다.

“사, 사현아... 난 네 아내가 이렇게 예민한 줄 몰랐어.”

권사현은 말없이 내 뒤를 따랐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는 사무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울렸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권사현도 곧이어 들어왔다.

우리 둘만 남게 되자 나는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임신한 여자한테 선물을 사주고, 남들 앞에서 널 자기 남편이라고 주장하게 놔둔다고?”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해야. 그 팔찌 원래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 하지만 은별이가 예민한 상태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줬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기념일 저녁을 망치고 나한테 줬어야 하는 선물을 다른 여자한테 줬다고? 내가 그걸 꼭 보고 있어야겠어? 넌 이게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

권사현이 인상을 썼다.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은별이는 악의가 없어. 내가 잘 알아. 조금 충동적이고 애교가 많을 뿐 나쁜 의도는 없어. 난 단지 친구로서 챙겨주고 싶을 뿐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네 소중한 친구 기분이 상할까 봐 내 기분을 무시한 거야? 네 아내 기분을?”

“내가 널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잖아. 네가 이렇게 기분 나빠 할 줄 몰랐어. 난 이성적으로 상황을 조율하려고 했던 거야.”

나는 팔짱을 끼고 그의 감정 없는 대답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네 대단한 조율이 그다지 잘된 것 같진 않네.”

나는 권사현이 답하기 전에 질문을 이었다.

“어젯밤 집에 돌아오기는 했어?”

“돌아갔지.”

그는 망설임 없이 이어서 대답했다.

“네가 소파에서 잠들었길래 깨우고 싶지 않아서 다시 사무실로 갔어.”

회사 운영이 얼마나 바쁜지는 나도 알았다. 바쁜 사람을 붙잡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약간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런 건 일단 뒤로 밀어두고 중요한 문제에 집중했다.

“오늘 밤에는 집에 올 거야?”

“응.”

“좋아, 그럼 집에서 얘기하자.”

권사현이 다가와 내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한때는 위로가 되었던 행동이지만 지금은 마치 끝과 같은 느낌이었다.

권사현이 떠난 뒤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감정을 추스르며 그와 차은별에 관한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평정심을 되찾은 후,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일을 계속했다. 내 업무 시간이 끝날 때쯤 해가 지고 있었다.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내 가장 친한 친구 윤아율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어디야?”

윤아율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렸다.

나는 평소와 달리 진지한 그녀의 목소리에 놀랐다. 윤아율은 절대 내가 일하는 시간에 직접 전화하지 않았다.

“아직 일하고 있어. 이제 곧 퇴근하려고. 무슨 일이야? 목소리 왜 그래?”

윤아율의 다음 말이 곧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연서야, 나 방금 권사현이 임신한 여자랑 너희 집으로 들어 걸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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