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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 화

Author: 유나
내가 분노를 터뜨리기 전에 권사현이 먼저 정색했다. 그가 뱉어낸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 꽃은 네 게 아니야.”

그는 단호하게 그녀에게서 꽃다발을 빼앗아 내게 건넸다.

“이건 연서를 위한 거야.”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차은별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나는 겨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억눌렀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차은별이 눈물을 글썽이며 권사현을 향해 돌아섰다.

“사, 사현아... 네 사생활을 방해해서 미안해. 근데 이 꽃 정말 내 게 아니야? 고등학교 때 기억하지? 네가 연회 때마다 나한테 라벤더를 선물했잖아.”

권사현은 망설이며 나와 차은별을 번갈아 보았다. 터무니없는 반응이었다. 마치 그도 이 꽃이 누구의 것인지 잊은 것처럼 말이다.

“연서야.”

권사현이 차분하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은별이한테 양보해. 내가 내일 더 특별한 걸 줄게. 약속해.”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차은별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조작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나만 봤을 뿐 권사현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신사적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 더는 못 참겠어. 둘이 여기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난 호텔에 갈 테니까.”

나는 가방을 챙기러 돌아갔다. 권사현은 미안하다는 듯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미안해. 근데 이렇게 감정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 은별이는 임신했어. 임신 호르몬이 여자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아?”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나는? 나도 임신 중이야!’

그러나 현실은 잔인했다. 나는 이미 권사현에게 임신 소식을 전할 타이밍을 놓쳤다.

“핑계 댈 것도 없어. 난 떠날 거야.”

내가 조용히 말하며 지나치려고 하자 권사현은 재빨리 다시 앞길을 막았다.

“이러지 마, 연서야. 내가 사과할게. 오늘 내가 저녁 식사를 차릴게. 너 늦은 시간에 요리하는 거 싫어하잖아. 설거지도 내가 할게.”

나는 한숨을 쉬며 그의 제안을 고민했다. 그의 말대로 난 늦은 밤 요리하는 걸 싫어하고 외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호텔에 묵으면 분명히 외식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못해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녁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 권사현에게는 완벽한 벌이 될 듯했다. 설거지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권사현과 차은별을 단둘이 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차은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왜 요리를 사현이가 해요? 요리는 집안일이고 여자들이 하는 일이잖아요. 저는 오늘 집을 청소하고 촌스러운 장식들을 정리하느라 피곤해서 컵 하나도 못 들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요리했을 거예요. 사현아, 넌 회사에서 힘들었을 텐데 쉬어야지. 연서 씨는 멀쩡하잖아. 목청도 얼마나 높은데. 그 힘을 요리하는 데 쓰면 되겠다. 셰프니까 요리도 잘할 거 아니야.”

나는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이 집의 주인인 줄 알 것이다.

권사현은 차은별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중재에 나섰다.

“그만해, 차은별. 내 아내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연서는 내 도우미가 아니야.”

그의 대답이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 편이 되어줬다는 것이 기뻤다. 이제 내가 차은별을 향해 승자의 표정을 지을 차례다.

차은별은 금세 상처받은 척했다.

“왜?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권사현 너 변했어. 나랑 보낸 시간 따위는 완전히 잊은 것 같아.”

“지금은 상황이 달라. 내가 널 실망시켰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하지만...”

나는 권사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을 일으켰다. 그에 대한 실망감이 한없이 커져갔다. 차은별을 꾸짖으려던 것도 잠시 금세 다시 달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판단력이 왜 자꾸 흐려지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방에 들어간 나는 저녁 준비에 필요한 재료들을 꺼냈다. 오늘은 치즈와 닭고기를 곁들인 마카로니를 만들기로 했다.

몇 분 후, 권사현이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주방에 들어왔다.

“저녁 준비 도울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돕고 싶다면 굳이 막을 이유는 없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권사혁이 물었다. 그가 대화를 시도하려는 건 알았지만, 나는 복잡한 마음에 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함께 요리했다. 중간에 권사현은 자신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려고 했다.

그는 갑자기 내 허리를 감싸며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의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아직도 화난 것 같은데?”

그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만해.”

나의 목소리는 의도한 것보다 부드러웠다. 그의 입술이 내 목을 스치자 마음속의 저항이 서서히 무너졌다. 허리에 힘이 풀리며 몸은 배신하듯 그에게 기울었다.

“간지러워.”

나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에 확고한 거절의 의미는 없었다.

“그래?”

권사현은 낮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권사현.”

나는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내 몸은 여전히 그의 손길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얼마나 쉽게 녹아내리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걸 정확히 이용했다.

그는 결국 뒤로 물러났지만 손이 잠시 더 머물며 나를 전율케 했다. 나는 애써 요리에 다시 집중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마카로니를 끓이는 동안 권사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너랑 차은별 씨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권사현은 한숨을 쉬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 뒤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은 내 피부 위에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은별이랑 나는 그냥 오래된 친구야. 특별한 건 없어. 맹세해.”

“그 변명은 이제 질렸어. 차은별 씨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구는지 똑바로 말해.”

“정말 특별한 건 없어.”

권사현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굳이 말하자면, 한 가지가 있긴 해.”

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말해봐.”

“어렸을 때...”

권사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은별이가 날 한 번 구해줬어, 내가 학교 선배들한테 괴롭힘당하고 있을 때... 그 선배들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 그걸 겁 없는 은별이가 대신 막아줬지. 너도 봤겠지만 은별이는 변함이 없어. 세상 두려울 게 없다는 태도잖아.”

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눈을 깜박였다. 권사현의 이런 과거는 내가 전혀 몰랐던 부분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결국 우리 둘 다 두들겨 맞고 서로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갔지. 그때 아버지가 엄청 화를 내시고 우리 둘 다 전학 가게 됐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의 과거를 이제야 안 것에 질투가 생겼지만 동시에 새로운 이해도 생겼다.

권사현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게 다야. 은별이가 도와줬던 건 고맙게 생각하지만,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너야. 네가 내 아내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권사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저녁을 마저 준비하자. 나머지는 내가 맡을게. 넌 쉬어. 그리고 설거지는 약속대로 내가 할 거야.”

나는 부드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많은 일이 지나간 후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미소 짓게 할 수 있었다.

1시간 후, 저녁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내가 음식을 차릴 때 권사현이 나를 대신해 주방을 정리했다.

“은별이를 불러올게.”

권사현이 말했다. 나는 식탁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들지 않고 음식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잠시 후, 권사현과 차은별이 함께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접시에만 집중했다. 차은별은 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음식 냄새가 정말 좋네요. 맛도 좋기를 바랄게요.”

그녀는 음식이 식지 않게 덮고 있던 뚜껑을 열며 말했다.

권사현은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경직된 침묵 속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 침묵이 불편하게 이어지던 중, 갑자기 차은별이 목이 멘 듯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급히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갔다.

“뭐야?”

나는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권사현은 즉시 일어서 그녀를 따라갔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권사현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차은별의 안색은 아주 창백했다.

“무슨 일이야?”

나는 권사현과 차은별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니요?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이번으로 두 번째예요! 처음에는 당신 레스토랑에서, 이번에는 집에서요. 내가 당신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거예요?”

차은별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내가 차은별 씨를 왜 죽여요? 그리고 음식은 사현 씨도 같이 만들었어요. 모든 음식이 똑같이 준비됐고요.”

나는 방어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마카로니에 우유를 넣었잖아요! 난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요!”

차은별이 소리쳤다.

“맞아. 은별이는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 요리에 우유를 쓰면 어떡해?”

권사현도 나를 질책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권사현.”

나는 천천히 말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너도 주방에 있었어. 내가 어떤 재료를 썼는지 똑똑히 봤지. 우유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어.”

권사현의 표정이 흔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식욕을 잃은 상태였다.

“차은별 씨, 이 요리에는 우유가 들어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건 제가 직접 개발한 우유 없는 레시피니까요. 레스토랑 손님들한테 물어보면 알 거예요.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네요. 어차피 차은별 씨는 제가 독살하려고 했다고 단정 지은 것 같으니까요. 그럼 저는 이만...”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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