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무대 아래에서 성혜인도 포드 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포드 브랜드를 겨냥한 이유는 포드 사장님이 성혜인의 스승인 주영훈과 친구 사이이기 때문이다.성혜인은 전에 주영훈과 통화할 때, 포드 사장님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적이 있다.과연 포드 사장님 곁으로 다가가자마자, 사장님은 성혜인을 알아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페니 씨, 드디어 실물을 보게 되네요. 영훈이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주영훈이 하도 가는 곳마다 성혜인과 찍은 사진을 꺼내며 “자랑질”을 해 포드 사장님은 쉽게 성혜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포드 사장님께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서 성혜인은 온수빈을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새로 계약한 연예인 온수빈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남자 주인공이 바로 이 친구입니다.”말을 마치고 성혜인은 온수빈에게 술을 따르라고 사인을 주었다.그 뜻을 캐치한 온수빈은 종업원에게서 술 한잔을 가져와 공손하게 인사했다.“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이동해는 성혜인의 뜻을 알아차렸으며 주영훈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지금 이 술을 받아서 마신다면, 페니 씨 함정에 빠져드는 거죠? 그럼, 우리 이렇게 합시다! 그림 하나만 보내주면, 이 친구를 우리 브랜드 모델로 할게요. 어때요?”성혜인의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럼, 이 사장님의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이동해는 무엇인가 더 말하고 싶었으나, 무대에서 백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번째 곡은 무대 아래에 있는 분과 합동 공연을 하고 싶은데, 혹시 바이올린 연주에 능하신 분 계신가요?” 무대 아래에서는 분위기를 띠우기 위해 손을 드는 이가 있었다.하지만 백지영은 그들을 무시해 버리고 성혜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럼, 성혜인 씨,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성혜인 씨가 바이올린에 조예가 높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모든 이의 시선이 성혜인을 향하고 있다.그들은 모두 성혜인이 무대로 올라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성혜인은 재벌 무리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반승제가 아니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투명 인간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다들 웃음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자태로 가끔가다 소리를 내어 비아냥거리기도 했다.온수빈도 옆에서 조급해 마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이미 무대로 올라가고 있는 성혜인의 모습이 보였다.망신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로 올라가는 성혜인이 미친 건 아니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성혜인은 이브닝 파티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온 것이 아니다.비즈니스로 온 거라 깨끗하고 심플하게 차려입고 왔는데, 백지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게 되었다.오늘 같은 이브닝 파티는 이 무리에서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열리는데, 비즈니스가 아니라면 성혜인은 오지도 않을 것이다.무대에 올라가서 무대 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인사를 하고 나서 대범한 모습으로 백지영을 바라보았다.겁도 없이 정말로 올라온 성혜인을 마주 보며 얼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그래! 오늘 제대로 망신시켜줄게!’앞으로 모두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존재로 만들어 주겠다며 백지영은 속으로 다짐했다.“저는 를 연주할 생각인데, 성혜인 씨는 파가니니의 을 연주하세요.”백지영은 환하게 웃으며 치맛자락을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무대 위의 조명까지 백지영의 몸에 비추자, 어둠 속에 빛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어 보였다.반면, 성혜인이 서 있는 곳은 조명이 비춰 지지도 않았다.어디에 서 있든 신경 쓰는 이가 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있는 바이올린을 들어 올린 뒤, 다시 한번 확인했다.“백지영 씨 곡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말씀하신 대로 그냥 연주하면 됩니까?”백지영의 두 눈에는 성혜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파가니니의 이 가장 어려운 바이올린곡이라는 것을 송혜인은 모르고
짙은 감동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 사람들은 성혜인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더 이상 백지영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백지영은 처음부터 끝까지는 어릿광대에 불과한 존재였다.일부 재벌 사모님들은 성혜인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성혜인 씨는 모든 방면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주영훈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예뻐하셨는지 알 거 같아요.”“우리 아들 바이올린 선생님이 필요한데, 시간 괜찮으시면 좀 가르쳐줄 수 있어요?”“혜인 씨, 우리 티 타임 모임에도 와 주세요. 언제든지 두 팔 벌려 환영해요.”여자의 체면은 남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것이다.만약 반승제에게 기대어 난감한 상황에서 빠져나왔다면, 지금 눈앞에서 아첨을 떠는 사람들은 영원히 성혜인을 제대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에게 성혜인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회사에 일이 좀 많아서요. 죄송합니다.”“괜찮아요. 혜인 씨 회사 알고 있어요. 앞으로 합작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성혜인은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네, 감사합니다.”지금 성혜인을 둘러 싸고 사람은 무척이나 많고 심지어 손을 잡으려고 하는 이도 있다.“앞으로 이런 파티에 많이 참석하세요. 아니면 우린 혜인 씨가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잖아요. 바이올린에도 이렇게 큰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회사의 일로 시간이 없어서요.”“자주 참석하세요. 우리 딸 그림도 좀 봐줄 수 있어요?”인사를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 온수빈 곁으로 돌아가는 데 무려 10여 분이나 걸렸다.놀라워 마지 못하며 굳어버린 온수빈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성혜인은 한걸음에 달려와 이동해에게 인사했다.“이 사장님, 추한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이동해는 손에 술잔을 들고 자상한 미소를 띠었다.“영훈이가 왜 페니 씨를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시원시원하고 침착한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내일 온수빈 씨 광고 모델 계약서 보낼 게요. 근데, 미리 하는
성혜인은 자기 차 옆 이르자,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물렀다.옆에 있는 온시환은 지금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보고 있다.“성 사장님, 방금 연주 하신 곡 너무 듣기 좋았어요. 저 온몸에 소름까지 돋았습니다.”오버하는 듯한 온시환의 모습에 성혜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포드 모델은 이로써 우리가 따낸 거 같아요. 내일 계약할 준비 하고 앞으로 열심히 잘해 봐요.”온시환의 두 눈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정서가 그려져 있었다.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성 사장님, 얼굴에 뭐가 좀 묻었는데, 눈 좀 감아 보세요.”그러자 성혜인은 의심하며 물었다.“어디에 뭐가 묻었는데요?”성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온시환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다가가 뽀뽀하고 싶었다.그러나 바로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급한 대로 성혜인의 얼굴에 대고 대충 시늉하고는 실망이 가득한 소리로 말했다.“이제 됐어요.”됐다는 소리에 성혜인은 눈을 뜨고 웃었다.“고마워요. 온시환 씨 매니저 불렀으니, 먼저 들어가 봐요.”말을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반승제를 보게 되었는데, 성혜인은 살짝 놀랐다.‘돌아온 거야?’온시환도 차 유리에 비친 반승제를 보게 되었지만, 하는 수 없이 매니저가 몰고 온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반 대표님.”성혜인은 가볍게 인사만 하고 차에 오르려고 했다.바이올린에 관한 지난 일이 떠올라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차에 오르려는 성혜인을 보고 반승제는 걸음을 재촉하며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갑작스러운 백허그에 성혜인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뜨끔한 마음에 주위를 한 번 힐끗 바라보았다.이브닝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미리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라 주위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성혜인은 운전석에 오르려고 했지만, 반승제가 성혜인을 조수석으로 밀어 버렸다.그러고 나서 자기는 운전석에 오르고 성혜인은 그대로 조수석에 올랐다.반승제의 기분이 그
성혜인에게 밀치는 찰나에 반승제는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섰다.이미 방문을 열어버리고 밖으로 몸이 절반이나 나간 성혜인을 반승제는 다시 안으로 끌어안았다.“펑!”방문은 다시 닫히고 백허그 자세가 아닌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성혜인을 바라보는 반승제의 눈빛은 뜨겁기 그지없다. 마치 뭔가가 훨훨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단지 눈빛만으로 읽히고 설킨 애정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다.타오르는 반승제의 눈빛에 성혜인의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감당하기에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반 대표님, 이러지 마세요. 우리 지금 도대체 무슨 사이인 거예요…”아무런 사이도 아니다.샤워 타월만 몸에 감고 있었는데, 긴장한 나머지 하마터면 그대로 흘러 내려갈 뻔했다.반승제의 손도 샤워 타월을 따라 흘러 들어갔다.“네가 원하는 사이.”숨결이 점점 가빠지던 반승제는 성혜인을 들어 안고 창가에 있는 서랍장으로 빠르게 다가갔다.성혜인이 불을 꺼놓은 상황이라 방안은 어두컴컴하고 분위기는 야릇하기 그지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반승제는 이곳저곳 군데군데 불을 지피다가 샤워 타월을 던져 버렸다.성혜인의 허락 없이 마지막 그 단계까지 올라가지 않았지만, 깊이 잠긴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물었다.“혜인아, 너 24살이야. 근데 지금껏 해 본 적도 별로 없는데,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만족시켜 줄게.”이에 놀란 성혜인은 뒤로 물러서며 손으로 밀치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가슴을 밀치고 말았다.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두는 찰나에 다시금 입술이 막혔다.“혜인아, 하고 싶지 않아?”“우리 할까?”성혜인은 점점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눈앞의 물건들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이대로 가면 당장이라도 반승제의 유혹에 넘어갈 것만 같았는데, 성혜인의 핸드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야릇한 분위기는 한방에 사라지고 머릿속에는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반승제를 확 밀쳐 버리고 성혜인은 발개진 얼굴로 옆에 있는 휴대 전화를 잡아 들었다.샤워 타월도 다시 감고 주저 없
“남자구실 못 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반승제도 눈꼬리가 살짝 붉어졌다. 입술도 마찬가지로 부어오른 모습이다.조금 전, 닳도록 키스한 두 사람의 입술은 퉁퉁 부어올라 새빨갛다.문 꼬리를 잡고 성혜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반승제의 눈빛에서 억울함도 보였다.“너 제원 대학교 나온 거 맞아? 남자구실을 못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달아오르게 해놓고 가버리면 난 어떡해? 오래 참으면 병 나. 앞으로 나한테 아이가 없다면 그것도 모두 네 탓이야.”반승제의 뻔뻔스러움에 성혜인은 놀라울 따름이었다.몰래 그곳을 힐끗 보았는데, 말 그대로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반승제는 문에 기대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성혜인에게 알아서 처리하라는 듯한 자태를 보이며 말이다.너무 솔직하고 너무 당당한 반승제의 모습에 성혜인은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정말로 남자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반태승은 반드시 물어볼 것이다.그때가 되면 반승제는 뻔뻔한 얼굴로 모든 잘못을 성혜인에게 돌릴 것이다.이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절대 그런 일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성혜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반승제 씨, 남자구실 못하게 된 거 어떻게 알았어요?”“반 대표님”이라고 하지 않고 이름 석 자를 부르고 있다.이에 반승제는 눈초리를 떨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걱정한 기색이 역력한 성혜인의 모습을 보아하니 반승제의 말에 제대로 넘어간 것 같다.짧은 시간 내에 흥분했다가 갑자기 차분해졌으니 문제가 나고도 남을 노릇이다.“병원에 가서 진단 받아봐요.”도대체 뭐가 사실인지 성혜인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반승제도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성혜인을 놀리려고 했던 말인데, 남녀 사이의 일에 무방비한 것을 보고 좋기도 하면서 안쓰러웠다.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인 줄만 알았는데,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혜인아, 너…”놀리려고 했던 반승제는 성혜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낭패를 보이며 먼저 시선을 옮겼다.“나하고 했던 그날 밤, 사실 처음이었지
방안의 불은 켜져 있고 누구도 다시 끄지 않았다.성혜인은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졸음이 스르르 밀려오더니 잠에 들어버렸다.한편, 짐을 챙기러 오라는 반승제의 부름에 심인우는 한걸음에 달려와 지금 아래층에 있다. 유경아가 문을 열어주었다.지금껏 반승제의 곁을 함께해 온 심인우는 완벽한 비서라고 할 수 있다.심인우는 고개를 들어 위층을 바라보았는데, 아무런 기척이 들리지 않자, 유경아에게 물었다.“아주머니, 대표님과 페니 씨 또 싸우셨습니까?”그렇지 않으면 급하게 연락 와서 짐을 챙기라고 할 리가 없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먼저 가서 주무세요. 대표님 짐은 제가 챙기고 떠나겠습니다.”시간은 이미 늦었고 유경아도 나이가 있어 날밤을 새우면 안 된다.하여 유경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심인우는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지 일부러 발걸음을 가볍게 내디뎠다.하지만 방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반승제가 묶고 있는 침실 밖에서 귀를 쫑긋하고 한참 동안 들었는데도 조용하다.이에 심인우는 두 사람이 당분간 화해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지금, 이 상황에서 들어가면 정말로 눈치가 없는 것이다.마치 오지 않은 것처럼 심인우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다행히 심인우의 방해를 받지 않아 두 사람이 날이 밝을 때까지 쭉 잘 수 있었다.반승제는 잠에서 깨어날 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막으려고 손을 들었다.다른 한 팔은 무엇인가에 억눌려서 저리기 그지없었다.움직이려고 하자, 고개를 돌려보니 품 안에서 곤히 자는 성혜인이 보였다.푹 잠든 모습에 새근새근 들리는 숨소리까지 아이가 자는 듯했다.순간 반승제는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며 어젯밤 일을 떠올려 보았다.너무 졸린 바람에 미처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잠에 들어 버렸고 그 후로는 의식이 없었다.아침부터 달콤한 상황에 반승제는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러 올랐다.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성혜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날 밤이 성혜인의
반승제는 등을 지그시 기대고 살짝 웃으며 답했다.“그래, 성혜인.”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내 흐뭇해하는 반승제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차는 병원 앞에 멈춰 섰고 “비뇨기과”라는 글자를 보게 되었을 때, 반승제는 좀 불편했다.남자는 이 일에 있어서 언제나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편이다.절대 그쪽으로 능력이 없다며 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하지만 성혜인과 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 위해 자존심 따위는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모든 검사를 마치고 의사도 윗사람의 지시를 받은 상황이라 애매모호하게 설명했다.“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심리적인 문제인지 신체적인 문제인지 제대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두 분께서 많이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만약 다음 부부 관계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내분께서도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일단 지켜보시죠.”의사의 말에 성혜인은 목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게다가 처방까지 내려주는 의사의 모습에 순간 당황해 마지 못했다.“정말 문제 있어요?”반승제는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며 마치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의사도 성혜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런 염치 없는 일은 의사도 처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일자리를 보존하고 싶다면, 계속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네, 아마도 문제가 있는 걸로 보입니다. 많이 자극해 주시고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다시 와서 검사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의사는 남자 성적 기능에 좋은 약을 가득 담아 성혜인에게 정중하게 건네주었다.병원을 나설 때까지 성혜인은 머리가 텅 빈 상태였다.남녀 사이의 일에서 반승제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성혜인은 잘 알고 있다정신을 잃게 할 정도인데, 갑자기 문제가 생기며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약까지 처방해 줬으니 말이다.반승제는 조수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 손으로 턱을 괴고 팔꿈치로 기대면서 여유로운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