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운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후, 조금 전의 장면이 생각나서 참지 못하고 반승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미안해,」반승제는 아주 빨리 답장을 보내왔다.「???」「실수로 성혜인 씨의 몸을 봤어.」메시지가 전송되기 무섭게 반승제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그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을 뱉는 게 알렸다.“진세운, 네가 실수로 혜인이의 몸을 봤다는 게 뭔지 말해 봐!”진세운은 손을 들어 미간을 비비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한 차례 설명한 후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간호사한테 혜인 씨를 보라고 했어.”반승제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나아져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서 또 성혜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성혜인은 이미 이불을 새것으로 간 뒤였다. 전화가 온 것을 보고 그녀는 얼른 수락 버튼을 눌렀다.“혜인아, 열 좀 내렸어?”“네.”“세운이 외모가 어떻다고 생각해??”“네?”성혜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가늠 잡지 못했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반승제가 다시 물었다.“왜 메시지 답장 안 했어?”“핸드폰을 안 봤어요.”“보고 싶어.”앞의 대화는 모두 평범했지만, 마지막 네 글자에, 성혜인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고 허리까지 꼿꼿이 펴고 앉게 되었다.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반승제도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침묵했지만 아무도 먼저 전화를 끊지 않았다.끝내 성혜인은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다른 일이 없는지 물어보려 했다. 그때, 반승제가 문득 말을 꺼냈다.“너는, 내가 보고 싶어?”입을 벌리자, 성혜인은 숨이 가쁘고 열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반승제도 서두르지 않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이런 물음뿐이었다.“베팅 계약에서 이길 자신 있나요?”그는 시선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확실하지 않아.”성혜인은 순간 초조해졌다.“반승제 씨, 농담이에요? 만약 당신이 진다면, BH 그룹은...”‘만약 대표님이 지게 되면 반기범 씨가 절대로 가만두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성혜인은 침묵에 빠졌다.이에 설우현은 손을 들어 성혜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우리 형님이 워낙 차가우신 분이세요. 평소에도 여동생만 예뻐하고 저는 늘 욕먹는 신세거든요. 페니 씨, 반 대표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실력이라면 멀지 않아 또다시 회사를 차릴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스카우트해 가려고 애를 쓸 거예요. 반 대표는 상업계의 귀재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해외 쪽에서 각광 받는 것도 반씨 가문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에요. 그냥 ‘반승제’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그러기에 충분한 거죠.”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설우현은 그녀가 알아듣지 못한 줄 알고 덧붙였다.“혹시 전에 제가 얘기했던 지하 격투장 기억 나세요?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그레이 존인데, 모든 걸 거래할 수 있는 곳이에요. 물론 반 대표의 지역이기도 하고요. 그때 설씨 가문에서 그 지역의 통제권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어요. 다른 가문에서도 그 곳을 차지하려고 피 터지게 싸웠었는데, 모두가 힘이 빠져 있을 때, 반 대표가 나타나서 손쉽게 먹어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 형님은 저더러 반 대표와 맞서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반 대표에 대해서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페니 씨와 반 대표가 절대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점만은 확신할 수 있어요.” 말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성혜인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이제 막 병원에서 나오고 급하게 달려온 바람에 코끝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무척이나 허약해 보였다.“그러니 회사에만 신경 쓰시고 반 대표 걱정은 하지 마세요. 페니 씨는 호화롭게 잘 지내기만 하면 돼요.”성혜인은 술집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밖은 이미 칠흑 같은 장막이 내려 앉아 있었다.차에 오르던 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수신 버튼을 누르자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혹시 성혜인 씨예요?”의문을 품고 화면을 한
여자는 순간 안색이 변하더니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버렸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승제는 이미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조금 전까지 세상 순수하던 눈빛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물끄러미 반승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몇 초 정도 지나자 여자의 눈빛에는 흥미로운 맛이 감돌았다.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은 음흉한 빛이 번쩍이고 있다.이때 집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우리 아가 아직도 밖이야?”“엄마, 금방 돌아갈게요.”반승제가 떠나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내내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에게 다가갔다.차에 오른 반승제는 휴대 전화를 꺼내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몸은 좀 나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마침 급한 일이 생겨 메시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내가 좀 바빠. 혜인아,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성혜인은 이미 침대에 누운 지 한참 된 후였다.오후에 병원에서 뛰쳐나와 내내 무리한 바람에 다시 힘없이 몸져눕게 되었다.포레스트에서 이틀 정도 휴양하면서 로즈가든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배후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포레스트 쪽 사람에게 시켰다.그러나 관리 사무소측에서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마리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경찰은 심지어 이 모든 것이 송혜인의 자작극이라는 의심까지 하기 시작했다.몇 걸음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결코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집주인으로서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었고 로즈가든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 주택 관리 센터에서도 증명해 줄 수 있었다.하여 그 일은 중간에서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말았다.포레스트에서 휴양하는 동안 가끔 천장에 온통 감시 카메라인 장면을 꿈꾸기도 했다.여태껏 생각만 하면, 온몸에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섬뜩하여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불과 이틀 동안 몸무게가 7, 8근이나 줄어들었으니 말이다.다시
한편, 무대 아래에서 성혜인도 포드 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포드 브랜드를 겨냥한 이유는 포드 사장님이 성혜인의 스승인 주영훈과 친구 사이이기 때문이다.성혜인은 전에 주영훈과 통화할 때, 포드 사장님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적이 있다.과연 포드 사장님 곁으로 다가가자마자, 사장님은 성혜인을 알아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페니 씨, 드디어 실물을 보게 되네요. 영훈이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주영훈이 하도 가는 곳마다 성혜인과 찍은 사진을 꺼내며 “자랑질”을 해 포드 사장님은 쉽게 성혜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포드 사장님께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서 성혜인은 온수빈을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새로 계약한 연예인 온수빈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남자 주인공이 바로 이 친구입니다.”말을 마치고 성혜인은 온수빈에게 술을 따르라고 사인을 주었다.그 뜻을 캐치한 온수빈은 종업원에게서 술 한잔을 가져와 공손하게 인사했다.“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이동해는 성혜인의 뜻을 알아차렸으며 주영훈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지금 이 술을 받아서 마신다면, 페니 씨 함정에 빠져드는 거죠? 그럼, 우리 이렇게 합시다! 그림 하나만 보내주면, 이 친구를 우리 브랜드 모델로 할게요. 어때요?”성혜인의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럼, 이 사장님의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이동해는 무엇인가 더 말하고 싶었으나, 무대에서 백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번째 곡은 무대 아래에 있는 분과 합동 공연을 하고 싶은데, 혹시 바이올린 연주에 능하신 분 계신가요?” 무대 아래에서는 분위기를 띠우기 위해 손을 드는 이가 있었다.하지만 백지영은 그들을 무시해 버리고 성혜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럼, 성혜인 씨,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성혜인 씨가 바이올린에 조예가 높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모든 이의 시선이 성혜인을 향하고 있다.그들은 모두 성혜인이 무대로 올라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성혜인은 재벌 무리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반승제가 아니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투명 인간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다들 웃음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자태로 가끔가다 소리를 내어 비아냥거리기도 했다.온수빈도 옆에서 조급해 마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이미 무대로 올라가고 있는 성혜인의 모습이 보였다.망신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로 올라가는 성혜인이 미친 건 아니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성혜인은 이브닝 파티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온 것이 아니다.비즈니스로 온 거라 깨끗하고 심플하게 차려입고 왔는데, 백지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게 되었다.오늘 같은 이브닝 파티는 이 무리에서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열리는데, 비즈니스가 아니라면 성혜인은 오지도 않을 것이다.무대에 올라가서 무대 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인사를 하고 나서 대범한 모습으로 백지영을 바라보았다.겁도 없이 정말로 올라온 성혜인을 마주 보며 얼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그래! 오늘 제대로 망신시켜줄게!’앞으로 모두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존재로 만들어 주겠다며 백지영은 속으로 다짐했다.“저는 를 연주할 생각인데, 성혜인 씨는 파가니니의 을 연주하세요.”백지영은 환하게 웃으며 치맛자락을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무대 위의 조명까지 백지영의 몸에 비추자, 어둠 속에 빛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어 보였다.반면, 성혜인이 서 있는 곳은 조명이 비춰 지지도 않았다.어디에 서 있든 신경 쓰는 이가 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있는 바이올린을 들어 올린 뒤, 다시 한번 확인했다.“백지영 씨 곡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말씀하신 대로 그냥 연주하면 됩니까?”백지영의 두 눈에는 성혜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파가니니의 이 가장 어려운 바이올린곡이라는 것을 송혜인은 모르고
짙은 감동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 사람들은 성혜인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더 이상 백지영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백지영은 처음부터 끝까지는 어릿광대에 불과한 존재였다.일부 재벌 사모님들은 성혜인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성혜인 씨는 모든 방면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주영훈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예뻐하셨는지 알 거 같아요.”“우리 아들 바이올린 선생님이 필요한데, 시간 괜찮으시면 좀 가르쳐줄 수 있어요?”“혜인 씨, 우리 티 타임 모임에도 와 주세요. 언제든지 두 팔 벌려 환영해요.”여자의 체면은 남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것이다.만약 반승제에게 기대어 난감한 상황에서 빠져나왔다면, 지금 눈앞에서 아첨을 떠는 사람들은 영원히 성혜인을 제대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에게 성혜인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회사에 일이 좀 많아서요. 죄송합니다.”“괜찮아요. 혜인 씨 회사 알고 있어요. 앞으로 합작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성혜인은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네, 감사합니다.”지금 성혜인을 둘러 싸고 사람은 무척이나 많고 심지어 손을 잡으려고 하는 이도 있다.“앞으로 이런 파티에 많이 참석하세요. 아니면 우린 혜인 씨가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잖아요. 바이올린에도 이렇게 큰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회사의 일로 시간이 없어서요.”“자주 참석하세요. 우리 딸 그림도 좀 봐줄 수 있어요?”인사를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 온수빈 곁으로 돌아가는 데 무려 10여 분이나 걸렸다.놀라워 마지 못하며 굳어버린 온수빈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성혜인은 한걸음에 달려와 이동해에게 인사했다.“이 사장님, 추한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이동해는 손에 술잔을 들고 자상한 미소를 띠었다.“영훈이가 왜 페니 씨를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시원시원하고 침착한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내일 온수빈 씨 광고 모델 계약서 보낼 게요. 근데, 미리 하는
성혜인은 자기 차 옆 이르자,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물렀다.옆에 있는 온시환은 지금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보고 있다.“성 사장님, 방금 연주 하신 곡 너무 듣기 좋았어요. 저 온몸에 소름까지 돋았습니다.”오버하는 듯한 온시환의 모습에 성혜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포드 모델은 이로써 우리가 따낸 거 같아요. 내일 계약할 준비 하고 앞으로 열심히 잘해 봐요.”온시환의 두 눈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정서가 그려져 있었다.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성 사장님, 얼굴에 뭐가 좀 묻었는데, 눈 좀 감아 보세요.”그러자 성혜인은 의심하며 물었다.“어디에 뭐가 묻었는데요?”성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온시환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다가가 뽀뽀하고 싶었다.그러나 바로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급한 대로 성혜인의 얼굴에 대고 대충 시늉하고는 실망이 가득한 소리로 말했다.“이제 됐어요.”됐다는 소리에 성혜인은 눈을 뜨고 웃었다.“고마워요. 온시환 씨 매니저 불렀으니, 먼저 들어가 봐요.”말을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반승제를 보게 되었는데, 성혜인은 살짝 놀랐다.‘돌아온 거야?’온시환도 차 유리에 비친 반승제를 보게 되었지만, 하는 수 없이 매니저가 몰고 온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반 대표님.”성혜인은 가볍게 인사만 하고 차에 오르려고 했다.바이올린에 관한 지난 일이 떠올라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차에 오르려는 성혜인을 보고 반승제는 걸음을 재촉하며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갑작스러운 백허그에 성혜인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뜨끔한 마음에 주위를 한 번 힐끗 바라보았다.이브닝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미리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라 주위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성혜인은 운전석에 오르려고 했지만, 반승제가 성혜인을 조수석으로 밀어 버렸다.그러고 나서 자기는 운전석에 오르고 성혜인은 그대로 조수석에 올랐다.반승제의 기분이 그
성혜인에게 밀치는 찰나에 반승제는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섰다.이미 방문을 열어버리고 밖으로 몸이 절반이나 나간 성혜인을 반승제는 다시 안으로 끌어안았다.“펑!”방문은 다시 닫히고 백허그 자세가 아닌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성혜인을 바라보는 반승제의 눈빛은 뜨겁기 그지없다. 마치 뭔가가 훨훨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단지 눈빛만으로 읽히고 설킨 애정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다.타오르는 반승제의 눈빛에 성혜인의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감당하기에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반 대표님, 이러지 마세요. 우리 지금 도대체 무슨 사이인 거예요…”아무런 사이도 아니다.샤워 타월만 몸에 감고 있었는데, 긴장한 나머지 하마터면 그대로 흘러 내려갈 뻔했다.반승제의 손도 샤워 타월을 따라 흘러 들어갔다.“네가 원하는 사이.”숨결이 점점 가빠지던 반승제는 성혜인을 들어 안고 창가에 있는 서랍장으로 빠르게 다가갔다.성혜인이 불을 꺼놓은 상황이라 방안은 어두컴컴하고 분위기는 야릇하기 그지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반승제는 이곳저곳 군데군데 불을 지피다가 샤워 타월을 던져 버렸다.성혜인의 허락 없이 마지막 그 단계까지 올라가지 않았지만, 깊이 잠긴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물었다.“혜인아, 너 24살이야. 근데 지금껏 해 본 적도 별로 없는데,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만족시켜 줄게.”이에 놀란 성혜인은 뒤로 물러서며 손으로 밀치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가슴을 밀치고 말았다.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두는 찰나에 다시금 입술이 막혔다.“혜인아, 하고 싶지 않아?”“우리 할까?”성혜인은 점점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눈앞의 물건들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이대로 가면 당장이라도 반승제의 유혹에 넘어갈 것만 같았는데, 성혜인의 핸드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야릇한 분위기는 한방에 사라지고 머릿속에는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반승제를 확 밀쳐 버리고 성혜인은 발개진 얼굴로 옆에 있는 휴대 전화를 잡아 들었다.샤워 타월도 다시 감고 주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