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범은 핸드폰 너머로 가볍게 웃으며 득의양양해 하였다.“희월이 너도 뉴스를 봤나 보네. 승제가 정말 단단히 미쳤나 봐, 아쉽게도 걔 역시 승우만큼의 그릇이 안 되는 거지.”반희월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반씨 집안에 큰 폭풍이 몰아칠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재벌가 내의 이런 현상은 새로운 줄 세우기와 다를 바 없다. 일단 줄 세우기에 성공하면 그것은 천하에 부귀를 얻는 것이다.하지만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그들이 마주할 것은 끝없는 압박과 배척일 것이다.“오빠, 내가 오빠에게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야. 적어도 승제가 반씨 집안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는 거. 요 몇 년 동안 BH 그룹의 주식이 승제 때문에 많이 올랐어. 승제의 성과는 아버지보다 나쁘지 않아. 오빠가 나중에 대표가 되면, 수중에 있는 주식의 시가총액도 모두 승제 때문에 오른 거야.”“희월아, 위협은 뿌리부터 제거해야 하는 거야. 너도 경헌이가 나중에 초라한 도련님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잖아?”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남자는 선생님이고, 사람은 정직하지만, 조건이 확실히 좋지 않았다. 만약 남자 집안과 반씨 집안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녀도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반드시 자기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야만 했다. 게다가 임경헌 그 녀석은 자유롭게 노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인데, 어떻게 그 아이더러 괴로운 나날을 보내도록 할 수 있겠는가.반희월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알았어.”두 사람의 말에는 반승제의 결말을 정해져 있었다.반희월은 다시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승제는 쓰러져도 괜찮을 거야. 충분히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아이니까. 때가 되면 남녀 사이에 일에 대해서도 잘 꿰뚫어 볼 수 있겠지.’반희월은 남편과 사이가 좋았고, 둘은 항상 사랑하였지만, 가끔은 그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그녀는 반씨 집안에서 심지어는 이렇게 인정을 잃어버린 계략을 꾸며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그녀는 바로 컴퓨터를 껐다.옆에 있던 유경아는 성혜인이 오랫동안 멍해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물었다.“사모님, 몸이 안 좋으신 거 같은데... 얼굴이 아주 새빨개지셨어요.”성혜인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만져보았다.‘이렇게 뜨거울 수가.’“괜찮아요. 아주머니, 일찍 쉬세요. 오늘은 별로 뭘 먹고 싶지 않아서 이만 자러 가보겠습니다.”그렇게 욕실에 들어갔을 때, 장하리가 그녀에게 일에 관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장님, 여자 주인공은 이미 정해졌어요. 혹시 남자 주인공도 신인을 쓰실 예정인가요? 제가 이미 그분들의 프로필을 메일로 보냈어요. 아 참, 모든 조연은 이미 정해놓아서 남자 주인공만 캐스팅되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저녁에 안 감독님한테도 연락했습니다, 안 감독님도 준비 다 하셨다고 하더라고요.」조금 전 컴퓨터를 꺼버린 바람에, 메일을 확인하려면 성혜인은 다시 일어나야 했다.그러나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더는 움직이기 싫었다.「일찍 쉬세요, 내일 주말인데 요즘 다들 고생이 많네요.」「알겠습니다, 사장님도 편히 쉬세요.」이윽고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성혜인은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워졌다.간밤에 그녀는 한 꿈을 꾸었는데, 바로 자신이 결혼식장에 있는 꿈이었다. 하지만 신랑은 반승제가 아니었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손바닥은 어느새 땀으로 가득해 불안함이 끝없이 몰려왔다.곳곳에는 꽃, 술,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축복이 이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장의 문이 누군가에 의해 밀렸고, 반승제와 그의 경호원이 밖에서 걸어 들어오며 성혜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럼 내가 뭐가 돼?”“혜인아,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왜 모두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그는 애정과 증오가 섞인 눈빛으로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깜짝 놀란 성혜인은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이마에는 온통 땀투성이였다.서둘러 그녀는 옆에 있는 스탠드 등을 켰다. 꿈속에서 느낀 뼈를 깎는 듯한
간신히 마음을 안정시키고 거실로 나오자, 새로 입주한 여자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이 집에서 안 살 테니까 제 돈 다시 돌려주세요,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누구든 이런 일을 겪으면 무너질 것이다. 하물며 새로 입주한 사람이나 혼자 사는 여성이 이렇게 많은 카메라를 보면 누군들 트라우마가 안 생기겠는가.성혜인은 마음이 안정되자 곧바로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미안해요. 집이 이런 상황인지 몰랐어요,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돈은 돌려드릴 거고 이 집은 매물로 내놓지 않을 거예요.”새 주인은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성혜인의 얼굴색도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겼다.“미안합니다. 저는 처음에 당신이 일부러 그런 줄 알았어요. 예전에 무슨 부정한 짓을 했나 생각했죠. 조금 전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욕하면 안 됐는데... 아무튼 이 집엔 못살게 됐네요.”그녀는 일어난 후 머리가 어지러워 비틀거렸다. 너무 놀란 탓이었다.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은행 쪽에 연락해서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여인은 그녀가 너무 성가시게 굴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치 저주받은 집인 것처럼 서둘러 떠났다.성혜인 역시 잔뜩 놀라 머리가 저릿저릿해 날 정도였다.그녀는 경찰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말하고 나서 포레스트로 돌아갔고 곧바로 고열에 시달렸다.사람이 겁을 먹었을 때 가끔 이러고는 한다. 하물며 심리로 받은 큰 충격이 아닌가. 게다가 그녀는 최근 일로 너무 피곤했던 터라 고열이 금세 40도까지 치솟았다.결국, 유경아가 성혜인을 병원으로 데려갔다.그녀는 젖먹던 힘을 짜내 S.M에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 회사에 올 수 없으니 문제가 있으면 장하리와 먼저 상의하라고 말이다.모든 분부를 끝내고 그녀는 곧 기절했다.한편, 해외에 있는 반승제가 호텔 창문 앞에 서서 창문을 열었다.이곳은 아침이었고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하늘가에 무지개가 나타났다.그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보았는데,
진세운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후, 조금 전의 장면이 생각나서 참지 못하고 반승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미안해,」반승제는 아주 빨리 답장을 보내왔다.「???」「실수로 성혜인 씨의 몸을 봤어.」메시지가 전송되기 무섭게 반승제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그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을 뱉는 게 알렸다.“진세운, 네가 실수로 혜인이의 몸을 봤다는 게 뭔지 말해 봐!”진세운은 손을 들어 미간을 비비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한 차례 설명한 후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간호사한테 혜인 씨를 보라고 했어.”반승제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나아져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서 또 성혜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성혜인은 이미 이불을 새것으로 간 뒤였다. 전화가 온 것을 보고 그녀는 얼른 수락 버튼을 눌렀다.“혜인아, 열 좀 내렸어?”“네.”“세운이 외모가 어떻다고 생각해??”“네?”성혜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가늠 잡지 못했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반승제가 다시 물었다.“왜 메시지 답장 안 했어?”“핸드폰을 안 봤어요.”“보고 싶어.”앞의 대화는 모두 평범했지만, 마지막 네 글자에, 성혜인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고 허리까지 꼿꼿이 펴고 앉게 되었다.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반승제도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침묵했지만 아무도 먼저 전화를 끊지 않았다.끝내 성혜인은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다른 일이 없는지 물어보려 했다. 그때, 반승제가 문득 말을 꺼냈다.“너는, 내가 보고 싶어?”입을 벌리자, 성혜인은 숨이 가쁘고 열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반승제도 서두르지 않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이런 물음뿐이었다.“베팅 계약에서 이길 자신 있나요?”그는 시선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확실하지 않아.”성혜인은 순간 초조해졌다.“반승제 씨, 농담이에요? 만약 당신이 진다면, BH 그룹은...”‘만약 대표님이 지게 되면 반기범 씨가 절대로 가만두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성혜인은 침묵에 빠졌다.이에 설우현은 손을 들어 성혜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우리 형님이 워낙 차가우신 분이세요. 평소에도 여동생만 예뻐하고 저는 늘 욕먹는 신세거든요. 페니 씨, 반 대표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실력이라면 멀지 않아 또다시 회사를 차릴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스카우트해 가려고 애를 쓸 거예요. 반 대표는 상업계의 귀재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해외 쪽에서 각광 받는 것도 반씨 가문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에요. 그냥 ‘반승제’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그러기에 충분한 거죠.”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설우현은 그녀가 알아듣지 못한 줄 알고 덧붙였다.“혹시 전에 제가 얘기했던 지하 격투장 기억 나세요?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그레이 존인데, 모든 걸 거래할 수 있는 곳이에요. 물론 반 대표의 지역이기도 하고요. 그때 설씨 가문에서 그 지역의 통제권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어요. 다른 가문에서도 그 곳을 차지하려고 피 터지게 싸웠었는데, 모두가 힘이 빠져 있을 때, 반 대표가 나타나서 손쉽게 먹어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 형님은 저더러 반 대표와 맞서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반 대표에 대해서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페니 씨와 반 대표가 절대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점만은 확신할 수 있어요.” 말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성혜인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이제 막 병원에서 나오고 급하게 달려온 바람에 코끝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무척이나 허약해 보였다.“그러니 회사에만 신경 쓰시고 반 대표 걱정은 하지 마세요. 페니 씨는 호화롭게 잘 지내기만 하면 돼요.”성혜인은 술집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밖은 이미 칠흑 같은 장막이 내려 앉아 있었다.차에 오르던 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수신 버튼을 누르자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혹시 성혜인 씨예요?”의문을 품고 화면을 한
여자는 순간 안색이 변하더니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버렸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승제는 이미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조금 전까지 세상 순수하던 눈빛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물끄러미 반승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몇 초 정도 지나자 여자의 눈빛에는 흥미로운 맛이 감돌았다.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은 음흉한 빛이 번쩍이고 있다.이때 집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우리 아가 아직도 밖이야?”“엄마, 금방 돌아갈게요.”반승제가 떠나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내내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에게 다가갔다.차에 오른 반승제는 휴대 전화를 꺼내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몸은 좀 나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마침 급한 일이 생겨 메시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내가 좀 바빠. 혜인아,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성혜인은 이미 침대에 누운 지 한참 된 후였다.오후에 병원에서 뛰쳐나와 내내 무리한 바람에 다시 힘없이 몸져눕게 되었다.포레스트에서 이틀 정도 휴양하면서 로즈가든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배후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포레스트 쪽 사람에게 시켰다.그러나 관리 사무소측에서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마리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경찰은 심지어 이 모든 것이 송혜인의 자작극이라는 의심까지 하기 시작했다.몇 걸음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결코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집주인으로서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었고 로즈가든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 주택 관리 센터에서도 증명해 줄 수 있었다.하여 그 일은 중간에서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말았다.포레스트에서 휴양하는 동안 가끔 천장에 온통 감시 카메라인 장면을 꿈꾸기도 했다.여태껏 생각만 하면, 온몸에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섬뜩하여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불과 이틀 동안 몸무게가 7, 8근이나 줄어들었으니 말이다.다시
한편, 무대 아래에서 성혜인도 포드 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포드 브랜드를 겨냥한 이유는 포드 사장님이 성혜인의 스승인 주영훈과 친구 사이이기 때문이다.성혜인은 전에 주영훈과 통화할 때, 포드 사장님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적이 있다.과연 포드 사장님 곁으로 다가가자마자, 사장님은 성혜인을 알아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페니 씨, 드디어 실물을 보게 되네요. 영훈이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주영훈이 하도 가는 곳마다 성혜인과 찍은 사진을 꺼내며 “자랑질”을 해 포드 사장님은 쉽게 성혜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포드 사장님께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서 성혜인은 온수빈을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새로 계약한 연예인 온수빈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남자 주인공이 바로 이 친구입니다.”말을 마치고 성혜인은 온수빈에게 술을 따르라고 사인을 주었다.그 뜻을 캐치한 온수빈은 종업원에게서 술 한잔을 가져와 공손하게 인사했다.“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이동해는 성혜인의 뜻을 알아차렸으며 주영훈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지금 이 술을 받아서 마신다면, 페니 씨 함정에 빠져드는 거죠? 그럼, 우리 이렇게 합시다! 그림 하나만 보내주면, 이 친구를 우리 브랜드 모델로 할게요. 어때요?”성혜인의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럼, 이 사장님의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이동해는 무엇인가 더 말하고 싶었으나, 무대에서 백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번째 곡은 무대 아래에 있는 분과 합동 공연을 하고 싶은데, 혹시 바이올린 연주에 능하신 분 계신가요?” 무대 아래에서는 분위기를 띠우기 위해 손을 드는 이가 있었다.하지만 백지영은 그들을 무시해 버리고 성혜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럼, 성혜인 씨,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성혜인 씨가 바이올린에 조예가 높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모든 이의 시선이 성혜인을 향하고 있다.그들은 모두 성혜인이 무대로 올라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성혜인은 재벌 무리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반승제가 아니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투명 인간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다들 웃음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자태로 가끔가다 소리를 내어 비아냥거리기도 했다.온수빈도 옆에서 조급해 마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이미 무대로 올라가고 있는 성혜인의 모습이 보였다.망신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로 올라가는 성혜인이 미친 건 아니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성혜인은 이브닝 파티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온 것이 아니다.비즈니스로 온 거라 깨끗하고 심플하게 차려입고 왔는데, 백지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게 되었다.오늘 같은 이브닝 파티는 이 무리에서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열리는데, 비즈니스가 아니라면 성혜인은 오지도 않을 것이다.무대에 올라가서 무대 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인사를 하고 나서 대범한 모습으로 백지영을 바라보았다.겁도 없이 정말로 올라온 성혜인을 마주 보며 얼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그래! 오늘 제대로 망신시켜줄게!’앞으로 모두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존재로 만들어 주겠다며 백지영은 속으로 다짐했다.“저는 를 연주할 생각인데, 성혜인 씨는 파가니니의 을 연주하세요.”백지영은 환하게 웃으며 치맛자락을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무대 위의 조명까지 백지영의 몸에 비추자, 어둠 속에 빛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어 보였다.반면, 성혜인이 서 있는 곳은 조명이 비춰 지지도 않았다.어디에 서 있든 신경 쓰는 이가 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있는 바이올린을 들어 올린 뒤, 다시 한번 확인했다.“백지영 씨 곡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말씀하신 대로 그냥 연주하면 됩니까?”백지영의 두 눈에는 성혜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파가니니의 이 가장 어려운 바이올린곡이라는 것을 송혜인은 모르고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