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우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차는 BH 그룹 입구에 멈춰 섰다.반승제는 차에서 내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고, 마침내 반승현과 마주했다.반승현의 생김새는 반씨 집안 가족을 닮지 않았는데 외모는 중사 정도로 그렇게 출중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눈은 반기범을 닮았다. 보기에 온화하면서도 살기를 숨기고 있는 것 말이다.이들 부자의 성격도 어떻게 말하면 거의 닮았다고 할 수 있다.반승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승제야, 오랜만이야. 별일 없었지?”그는 BH 그룹에 들어온 날도 반승제와 인사를 나누지 않았는데, 맡은 직급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정도라 아직 반승제가 직접 참관해야 할 지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반승우가 사고를 당한 후, 도리대로라면 금융을 전공한 반승현이 그 자리를 물려받아야 했고 또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었다.하지만 반태승은 그 자리에 반승제를 올려놓았다. 그에게 친형의 자리를 물려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반승우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다들 아무 말 하지 않았다.백연서가 반승제에게 그 자리는 반승우의 것이라는 말도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게다가 반승제는 한 번도 BH 그룹을 상속받으려고 생각하지 않았다.당시 그가 반승우를 대신해 이 자리에 올라앉았을 때, 반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전부 화를 참고 있었다.반승제가 해외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몇 년 동안, BH 그룹의 주식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가 결코 반승우에 뒤지지 않는 상업 천재라는 것을 증명한다.하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다른 사람의 눈에 반승제는 그저 반승우가 죽은 덕분에 운 좋게 기회를 얻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하물며 반승제는 반태승보다 더 악랄한 수단을 써 직접 상대를 파산시키거나, 아니면 사람을 압박하여 투신하게 만들고는 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 있었다. 보다시피 반승제는 상업적인 방법으로 못해내는 게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고, 따라서 모두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랬다.이제 마침내 반승현이
한성 그룹이 이번에 한국 기업과 협력하겠다고 나선 일은 확실히 큰 파문을 일으켰다.한성 그룹이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여태 한성 그룹은 한국 기업과 협력한다 해도 그 기간이 길어야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들은 BH 그룹과 베팅 계약은 물론, 이기기만 한다면 앞으로의 모든 협력 기회를 넘겨주겠다는 파격적인 요구를 제시했다.만약 반승제가 이긴다면, 그가 BH 그룹을 위해 낸 이윤은 반태승 때보다 몇 배는 뛰어넘을 것이다.하지만 이기려면 분명히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한성 그룹이 제시한 요구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반승제가 한성 그룹의 지분은 5%나 손에 넣어야 한다니... 설령 반승제가 이길 수 있다 해도 이것은 회사를 걸고 하는 “도박”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미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리고 이 “도박” 응하려는 반승제 역시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모두가 인정하는 두 자본가의 싸움이니 두 나라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반희월은 반승제가 이 계약에 서명하기로 동의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가 정말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아무리 아버지한테 실수를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도 그렇지, 이렇게 리스크가 큰 도박을 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한성 그룹 쪽이 지금 어떤 상황인 줄 알고.’곧이어 그녀는 반승제와 상의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으나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알고 보니 점심에 이미 그는 해외로 날아가 한성 그룹 대표와 계약을 체결하고 서명했다고 한다.반희월은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그렇게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그녀는 반기범과 마주치게 되었다.반기범은 몹시 득의양양한 기세였다.“희월아, 승제 해외로 계약 체결하러 갔다던데?”최근 반기범은 여러 차례 반희월을 찾아다녔고, 각종 이유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주식을 원했다.사실 반희월은 그가 제시한 조건에 충분히 마음이 흔들렸다.하지만 그녀는 반승제가 자라온 모습을
“희월아, 다시 잘 생각해 봐. 마침 승제도 출국해서 하는 말인데, 너도 걔가 어떤 상태인지 잘 봤잖아. 이미 BH 그룹 대표 자리에 적합하지 않게 됐다고.”반기범은 이 말을 끝으로 자신의 옷을 정리했다. 얼굴에는 시종일관 웃음을 띠고 있는 채로 말이다.“아버지 쪽은 내가 잘 설득해 볼게. 일단 동의만 하신다면, 희월이 네 지분은 나한테 거의 금상첨화인 셈이야. 그때가 되면 나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 내놓을 수 없을걸?”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다.반희월이 아무리 반승제를 아낀다 해도, 자신의 훗날 반씨 집안에서의 위치를 잘 생각해야 한다.반기범의 한 마디에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그가 떠나고 나서야, 반희월은 서둘러 BH 그룹 건물을 빠져나왔다.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반승제에게 전화하지 않고 곧장 성혜인이 있는 곳으로 갔다.현재 성혜인은 자신의 회사에 머물며 다음 드라마에 출연할 배역들을 일일이 선별하고 있다. 선별을 마친 후 그녀가 외쳤다.“장 비서.”그러나 성혜인의 부름에도 장하리는 오지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물어보니 성혜인은 비로소 그녀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녀의 상황에 대해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성혜인은 즉시 장하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순간 성혜인은 조금 조급해졌다.‘장 비서 최근에서야 약혼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데, 지금 전화도 안 받고... 설마 최근 나한테 보인 태도가 모두 괜찮은 척하는 거였나? 여전히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건가?’성혜인은 즉시 건물을 떠나, 차를 몰고 장하리와 방우찬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그러나 그곳에는 장하리도 방우찬도 없었다. 방우찬은 아마도 홍규연의 뒤꽁무니를 쫓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정순이었는데 그녀는 장하리의 이름을 듣자마자 노발대발했다.“그 빌어먹을 년은 일찍 이사 갔어요. 이 집은 내 집인데 왜 여기에 와서 그년을 찾아요?! 꺼지세요!
지금 그녀는 방우찬에게 6억은 물론, 그 집이 비록 문제가 있다 해도 주택 대출금을 계속 갚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하리는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다.하룻밤 사이, 그녀는 10억이라는 돈을 손에 넣었다.‘씀씀이가 큰 남자라 다행이야, 또 나를 외적으로 마음에 들어 하기도 하고...’일주일에 세 번, 그녀는 이미 아주 많은 이득을 얻었다.이윽고 장하리는 그가 건넨 연락처를 가져와 친구 추가를 했으나, 남자는 줄곧 수락하지 않았다. 그녀를 역겹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장하리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또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여자가 되어있으리라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얼마 안 지나,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6억의 돈을 보고 방우찬은 조금 의아해했다.‘어디서 6억이 난 거지?’이전에 주택 계약금을 낼 때, 두 사람은 통장에 저축해둔 돈을 거의 모두 털어냈었다. 그런데 장하리가 이렇게 빠른 시간내에 6억 원을 돈을 돌려준다니? 무슨 수로?방우찬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리야, 너 이 6억 원 어디서 난 거야?”장하리는 이제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역겨움이 몰려왔다. 7년간의 노력이 결국 이런 결말을 맞게 됐으니 말이다.한때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로 그를 형용할 수 있었지만, 진실이 드러난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방우찬에게 얼마나 두꺼운 필터를 씌웠는지 알게 되었다.장하리는 단지 너무 어린 나이에 그를 만난 것이다. 그녀가 놓을 수 없는 것은 단지 청춘일 뿐이다.“오빠, 다시는 만나지 말자.”그 말을 들은 방우찬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다.그는 사실 장하리와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방우찬에게 있어 가장 좋은 선택은 홍규연과 결혼해 홍규연의 돈을 받고 밖에서 장하리와 만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장하리와 같은 여자는 살림에 아주 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할 수는 있어도 홍규연과 달리 침대에 함께 오를 수 없었다.모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평온했다.그런 성혜인의 모습에 반희월은 반승제가 무가치하다고 느껴졌다.“승제 걔는 어렸을 때부터 강했어, 누구한테 필요한 걸 말하지도 않았다. 어려서부터 형의 그늘에 살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게 익숙해진 애야. 승제는 너를 좋아하면 안 돼, 물론 너도 승제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고. 하지만 지금 승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혜인, 너뿐이야.”반승제가 아니었다면 반희월은 성혜인을 만나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반씨 집안에서 성혜인은 누구다 다 욕하는 길거리의 쥐와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내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알아서 잘해주길 바라, 성혜인 양.”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사무실 문을 닫을 뿐이었다.그런 다음 그녀는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결국 참지 못하고 한성 그룹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난 뒤 오후의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그녀는 회사의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시간은 이미 다음 날 아침이 되어있었지만, 성혜인은 쉴 틈도 없이 바로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반승제는 받지 않았다.그녀는 또 심인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아직 제원에 있었고 그쪽은 밤이 깊어 있었다.“미안해요, 심 비서님. 저는 심 비서님이 대표님이랑 같이 해외로 출장 오신 줄 알았어요.”“페니 씨, 대표님은 이번 출장에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하는 수 없이 성혜인은 전화를 끊었다.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니, 반승제는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정말 베팅계약에 서명할 심산인 걸까?어차피 이 결정은 반승제 본인이 내린 거라 성혜인과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그녀는 문득 반승제가 대표 자리에서 해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그와 같은 용모, 능력을 갖춘 사람은 반드시 구름과 같이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니 말이다. 반승제는 계속 그 자리에서 “신선”놀음을 해야 할 사람이다.만약 어느 날 그가 깊은 “골짜기”에 빠
게다가 베팅 계약에 대해 반승제는 그녀에게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혜인은 반희월에게 사실을 전해 듣고 안절부절못해 하며 이곳까지 왔다.‘정말 내가 여기는 왜 왔지...’성혜인은 입술을 꼭 다물고 자신을 비웃었다. 이내 그녀는 직접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오후에 국내로 돌아가려고 했다.‘아직 우리 회사 일도 처리하지 못한 게 산더미인데, 내가 무슨 반씨 집안일에 참여하러 와? 나한테는 불필요한 일인데.’호텔로 돌아오니 머리가 어지러워 났고 오후에 또 비행기를 탈 생각을 하니 성혜인은 벌써 몸이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비행기에 오르려고 할 때 해외 뉴스를 한번 살펴보았다.최근 뉴스에 따르면 반승제와 한성 그룹의 대표가 이미 베팅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불과 10여 분 전에 이곳의 가장 비싼 호텔에서 양측이 서명했는데, 현장의 사진도 몇 장이 유출되었다.사진 속의 임원들 무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렴풋이 아름다운 그림자가 있었다.성혜인은 더 이상 보지 않고, 비행모드를 켠 다음 공항에 들어갔다.제원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눈꺼풀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서 침대에 엎드려 곧장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려 꼬박 하루를 자고서야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다행히도, 장하리는 저녁에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지금 회사에 출근하겠다는 것이었다.성혜인은 자신이 검토한 자료를 그녀에게 보냈다.“안 감독님께 알리세요. 다음 편을 촬영할 수 있다고요. 송아현 씨 쪽에서 시간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여주인공은 여전히 송아현 씨로 갈 거예요. 또, 현재 송아현 씨가 살고 있는 집 주소를 나한테 보내 주실래요? 제가 직접 방문해서 지금 상태를 살펴보려고요.”곧 송아현의 주소가 보내져 왔다.S.M은 현재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모든 연예인은 회사 장래의 돈줄일 수 있으므로 홀대할 수 없다.그리고 그 전에 온시환에게 투자한 돈이 이미 입금되었다. 무려 4000억이 넘는 돈이 말이다. 이건 회사에서 몇 편의
송아현은 말을 마친 후 고개를 떨구더니 시선을 아래로 늘어트렸다.“오늘 왜 찾아오셨는지 저도 잘 알아요. 선택을 해보라는 뜻이잖아요, 하지만 한 매니저님에 대한 감정을 내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으세요?”송아현은 손에 든 컵을 내려놓았다.“포기하라는 뜻은 없습니다. 하지만 약속해 줘야 해요, 유명해진 뒤 사석에서 한서진 씨를 어떻게 쫓아다니든 지간에, 그건 상관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있는 한 그분에 대한 집념이 드러나면 안 돼요. 아현 씨는 배우입니다, 연기도 잘하시잖아요? 그저 그 연기력을 아현 씨 인생에도 녹여내면 됩니다.”송아현은 눈을 번쩍 뜨더니 참지 못하고 성혜인을 꽉 끌어안았다.“약속할게요! 사장님, 앞으로 절대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게요!”그러자 성혜인도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한 약속을 절대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절대 안 까먹을게요! 사... 사장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저한테 가장 잘해준 사람이니까요.”감정이 복받친 듯 쉰 목소리로 말하며, 송아현은 감히 성혜인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성혜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아무도 송아현이 그 가장 암울한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그녀는 성혜인이 자신에게 잘해줬다고 말하지만, 사실 성혜인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도대체 여태 어떤 나쁜 사람들을 만난 거야...’회사에 돌아왔을 때, 꼭대기 층에 있는 직원들은 여전히 야근하고 있었다. 요즘은 모두가 매우 바빴으니 말이다.성혜인은 장하리를 불러 저녁에 야근하는 모든 사람에게 밀크티를 사주라고 했다.100여 잔의 밀크티가 도착했을 때, 꼭대기 층의 직원들이 순식간에 환호성을 질렀고 성혜인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바깥의 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렇게 그녀가 계속해서 컴퓨터 속의 자료를 훑어보려 하는데, 갑자기 장하리가 들어와서 성혜인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주었다.“사장님은 위가 좋지 않으니 밀크티 대신
반기범은 핸드폰 너머로 가볍게 웃으며 득의양양해 하였다.“희월이 너도 뉴스를 봤나 보네. 승제가 정말 단단히 미쳤나 봐, 아쉽게도 걔 역시 승우만큼의 그릇이 안 되는 거지.”반희월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반씨 집안에 큰 폭풍이 몰아칠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재벌가 내의 이런 현상은 새로운 줄 세우기와 다를 바 없다. 일단 줄 세우기에 성공하면 그것은 천하에 부귀를 얻는 것이다.하지만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그들이 마주할 것은 끝없는 압박과 배척일 것이다.“오빠, 내가 오빠에게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야. 적어도 승제가 반씨 집안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는 거. 요 몇 년 동안 BH 그룹의 주식이 승제 때문에 많이 올랐어. 승제의 성과는 아버지보다 나쁘지 않아. 오빠가 나중에 대표가 되면, 수중에 있는 주식의 시가총액도 모두 승제 때문에 오른 거야.”“희월아, 위협은 뿌리부터 제거해야 하는 거야. 너도 경헌이가 나중에 초라한 도련님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잖아?”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남자는 선생님이고, 사람은 정직하지만, 조건이 확실히 좋지 않았다. 만약 남자 집안과 반씨 집안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녀도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반드시 자기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야만 했다. 게다가 임경헌 그 녀석은 자유롭게 노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인데, 어떻게 그 아이더러 괴로운 나날을 보내도록 할 수 있겠는가.반희월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알았어.”두 사람의 말에는 반승제의 결말을 정해져 있었다.반희월은 다시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승제는 쓰러져도 괜찮을 거야. 충분히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아이니까. 때가 되면 남녀 사이에 일에 대해서도 잘 꿰뚫어 볼 수 있겠지.’반희월은 남편과 사이가 좋았고, 둘은 항상 사랑하였지만, 가끔은 그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그녀는 반씨 집안에서 심지어는 이렇게 인정을 잃어버린 계략을 꾸며야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