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에 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성혜인은 그저 덤덤하게 말했다.“반 대표님이 저한테 질렸다고 해서요. 저도 따로 살길을 마련해야죠.”덤덤한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에 설우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마음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설우현은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카사노바였다. 그리고 그의 직감이 성혜인은 절대 질렸다는 이유로 버림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성혜인이 누군가를 질렸다는 이유로 버리면 모를까...“그런 사람은 신경 쓰지 말아요. 세상에 남자가 반승제 씨밖에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어휴... 큰형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한 방 먹여주고 싶네.’설우현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반승제 씨는 해외에 있을 때 겁도 없이 경영 중심지에서 스타트업했어요. 근데 밥그릇을 빼앗기게 생긴 다른 사람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그래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하 격투장에 끌려가게 되었죠.”성혜인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록 지하 격투장에 가본 적은 없지만 부자들이 평소 숨기고 있던 잔혹성을 완전히 드러내는 곳이라는 것은 알았기 때문이다.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설우현이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설우현은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말없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다음은요? 지하 격투장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대요?”설우현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창틀을 톡톡 두드렸다.“지하 격투장은 무법지대에요. 돈 있는 사람이 톱인 셈이죠. 반승제 씨는 그곳에서 빠르게 돈을 모아갔어요. 그리고 지하 격투장 전체를 자기 영역으로 만들었어요. 듣기로는 목숨까지 걸었다고 하던데요.”성혜인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설우현을 바라봤다.반승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성혜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하 격투장까지 제패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설우현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눈매는 누가 카
“그 주제는 요즘 하도 예민해서 촬영하기 어려워요. 한 명의 팬이 친 사고로 통째로 제한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저한테도 그런 대본은 없어요.”배윤수가 말했다. 설우현과 반승제의 앞에서는 그도 허리를 굽히고 공손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대신 제가 얼마 전 금방 완성한 대본 두 개를 보여드릴까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두 분이 하나씩 받아줬으면 더없이 행복하겠네요.”배윤수는 공손함 뒤로 득의양양함을 숨기고 있었다.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두 사람이 그의 저택으로 직접 찾아온 것만으로 해도 그에게는 엄청난 영광이기 때문이다.배윤수는 모두가 공인한 믿고 보는 작가였다. 그러니 그의 대본은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수많은 제자가 있어서 좋은 대본이 끊길 새도 없었다.설우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반승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저는 오늘 그냥 얘기를 나눠보러 온 것이라서요. 필요하면 대표님이 둘 다 가져가도 상관없어요.”설씨 가문은 차고 넘치는 게 훌륭한 대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 그냥 인맥을 쌓을겸 배윤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물론 반승제도 마찬가지다. 그도 대본보다는 배윤수와 인맥을 쌓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대본이라면 BH그룹에 주지 못해 안달인 작가가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반승제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본을 훑어봤다. 확실히 그의 마음에 쏙 들 정도로 훌륭했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성혜인도 힐끗힐끗 곁눈질하면서 대본의 총체적인 틀을 파악했다.얼마 후 반승제는 대본을 덮으면서 머리를 돌렸다. 그러다 자칫 성혜인과 코끝이 부딪힐 뻔했다. 대본에 집중하던 성혜인이 어느덧 반승제에게 훌쩍 다가왔던 것이다.반승제는 손가락을 뻗어 성혜인의 머리를 밀어냈다. 제삼자의 각도에서 보기에 두 사람은 마치 사랑싸움 중인 커플 같았다.성혜인은 어쩔 수 없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반승제가 배윤수에게 말했다.“이 대본은 제가 투자할게요. 그리고 다른 대본은 설우현 씨한테 양보할게요.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가면 섭섭하잖아요.”설우
반승제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훑어보면서 말했다.“넌 예나 지금이나 남자 꼬실 줄밖에 모르는 모양이군.”성혜인은 마찬가지로 차가운 눈빛으로 반승제를 힐끗 노려보면서 말했다.“그게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 제가 대표님을 꼬시는 것도 아니잖아요.”반승제는 순간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성혜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손이 다 흠칫 떨렸다.“넌 내 비서였던 사람인데 완전히 상관없는 것도 아니지.”“저는 이미 해고당했거든요. 설마 대표님 남 사생활을 염탐하는 취미가 있으신 건 아니죠?”성혜인은 대놓고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차는 시동이 걸리는 대신 경보음만 내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자 바퀴가 펑크 나 있었다.이 동네에는 별장밖에 없어서 택시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보험 회사에 연락하고 나서 택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려고 했다.뒤늦게 차에 오른 반승제는 성혜인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천천히 따라가며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그녀는 자칫 넘어질 뻔했다. 반승제는 그녀의 곁으로 가서 멈춰서더니 창문을 내리면서 말했다.“택시가 잡히는 곳은 1km 밖에 있어. 걸어서 언제 도착하려고 그래?”반승제는 자기 차에 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일면서 쌩 멀어졌을 뿐이다.제자리에 멈춰 선 성혜인은 주먹을 꼭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이토록 재수 없는 사람은 둘도 없을 거로 생각하면서 말이다.‘이 세상에 남자란 남자는 다 죽고 반승제만 남았다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을 거야!’성혜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반승제가 갑자기 후진해 왔다. 그리고 성혜인의 곁에 또다시 멈춰 서며 차갑게 말했다.“타.”반승제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성혜인은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반승제는 한 손을 운전대에 걸친 채 천천히 그녀의 속도에 맞춰 운전했다.침향 팔찌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샌가 고급 시계로 대체되었
반승제의 앞에 앉아 있었던 서주혁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이젠 보기만 해도 반응이 오는 거야?”반승제는 언제부턴가 꽉 잡고 있던 주먹을 풀면서 열기를 식히려는 듯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샹들리에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눈가는 갑작스러운 열기로 인해 아직도 발그레했다.‘술맛이 조금이라도 달랐으면 약을 탔는 줄 알았겠군...’...같은 시각.성혜인은 머리를 숙인 채 앞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했다.“저는 페니라고 해요. 괜찮으니까 편하게 대해줘요.”여자는 안경 너머 성혜인을 힐끗 보더니 곧바로 다시 머리를 숙였다.이때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와서 주문을 기다렸다. 성혜인은 메뉴판을 여자 앞에 내려놓으면서 물었다.“예진 씨 먼저 먹고 싶은 걸 골라요.”박예진은 겨우 머리를 들어 메뉴판을 힐끗 봤다. 가장 싼 축에 속하는 세트 메뉴도 120만 원씩 하는 것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속눈썹이 다 파르르 떨렸다.“페니 님, 저희... 다른 식당에 가면 안 될까요?”박예진은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안경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그 찰나의 순간에 성혜인은 박예진의 목에서 졸린 적 있는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 본 척 무덤덤하게 말했다.“오늘은 제가 사는 자리이니 걱정하지 말고 앉아요. 우리 아직 대본 얘기도 해야 하잖아요.”성혜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약간 진정된 듯 박예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입술은 아직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가격에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성혜인은 오늘 반승제의 곁에서 함께 봤던 대본을 떠올리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저 오늘 배 작가님 댁에 갔었어요. 그곳에서 작가님의 대본을 보게 되었는데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주인공이 피치 못할 운명으로 살인범이 된 내용인데 BH그룹의 눈에 들어서 스릴러 드라마로 만들어질 거래요. 모든 회차가 다 재미있어서 성공은 떼놓은 당상인 것 같던데요.”대본 얘기가 나오자
낮에 성혜인을 천 리 밖으로 내보낼 것처럼 굴던 반승제가, 갑자기 다른 사람들을 전부 내쫓고 둘만의 자리를 만들었다.성혜인은 그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지 못했지만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갔다.자리에 앉은 후, 반승제가 그녀에게 물었다.“서주혁이 너 결혼했다던데?”반승제의 친구들은 그가 자신의 아내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성혜인이 그의 아내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때문에 서주혁은 여전히 페니를 유부녀로 알고 있었다.“이혼했습니다.”그러자 반승제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왜 이혼했는데?”“이건 대표님과 상관없는 문제인 것 같은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끝마친 성혜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반승제의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녀의 얼굴은 마치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이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설 수 있는 거야?!’반승제도 전혀 숨기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성혜인을 아래 우로 훑어보더니 말했다.“너를 비서로 삼으면서, 내가 아무런 조건도 대지 않았나?”성혜인은 흠칫 온몸이 굳어버렸다. 조건이 있었겠지 왜 없었겠는가.침대에 오르지 않는다고 했을 뿐, 반승제가 키스하려 들면 성혜인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는 철저한 사업가라,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비서 훈련도 받지 않았는데... 예전의 내가 그냥 곁에 남겨뒀다고? 무슨 계략이 있었던 게 아닐까?’반승제는 시선을 아래로 푹 내렸다. 본능적으로 끓어오른 욕정에 눈가는 어느새 새빨개졌다.“비서 일은 얼마나 했어?”성혜인의 침묵은 이미 그에게 답을 준 것과 같았다. 분명히 조건이 있었으며, 더 나아가 그 조건이 남녀 사이의 일과 관련된 것이라는걸.단지 그녀가 직접 말하기 어려웠을 뿐이다.‘역시 몸으로 이 자리를 얻은 거였네.’“아직도 한 달 반 정도 남았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승제는 그녀를 잡아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당겨 안았다.불편했던 성혜인이 곧바로 일어나려 하자 반승제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 아래로
“안 해봤다면 배워. 지금은 이 방법밖엔 없으니까.”이런 방면에 있어 조심스러운 성혜인에 비하면, 반승제는 상당히 개방적인 편에 속했다.성혜인은 눈을 감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얼버무리며 말했다.“여보, 나 지금 너무 좋아.”반승제는 흠칫 몸이 굳어버리더니, 시선을 내려 그녀를 쳐다보았다.‘미친! 어떻게 내 비서가 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군!’심지어 그는 욕을 뱉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 그녀의 뒤통수를 세게 잡아 긴 키스를 했다.모든 것이 끝난 후, 그는 한편에 있는 티슈를 뽑아 성혜인의 손가락을 닦아주었다.차 창문이 조금 열리자 내부와 바깥공기가 서로 뒤섞였다.성혜인은 감히 반승제를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틈 사이로 바깥의 찬 바람이 불어와 더운 기운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반승제는 일단 보통 티슈로 깨끗이 닦은 다음, 알코올 티슈로 손가락 하나하나를 닦았다.마치 값비싼 예술품을 닦듯이 말이다.분명하지 않았음에도, 성혜인은 이런 모호한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거두려고 하는데, 때마침 반승제가 직접 놓아주었다.‘참 재미있는 비서야.’반승제는 한 번도 여자에게 이렇게 함으로써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그녀가 결혼했던 몸이라는 게 떠오르자, 그는 조금 혐오감이 들기도 했다.반승제는 심한 결벽증이 있지 않은가.원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조롱하는 말을 몇 마디 던져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능숙하네, 예전에 많이 해봤나 봐?” 같은 말을 말이다.그러나 성혜인은 고개를 틀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긴 속눈썹, 피를 떨군 듯 빨개진 얼굴, 그녀는 부드러운 게 한입 베어 물면 마치 과일처럼 달 것 같았다.그렇게 반승제는 조롱하려던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고요한 차 안에서 그는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너무 빠르게 뛰는 탓에 반승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심장은 곧 가슴을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매우 낯선 느낌에
의사는 진찰 결과가 확실히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소 어이가 없었다.“아마 반 대표님은 그 여성분께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계시나 봅니다. 그래서 긴장되는 것일 수 있어요.”반승제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돌팔이 의사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밖으로 나가다 때마침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세운과 마주쳤다.진세운은 그를 아래 우로 훑어보며 물었다.“어때?”하지만 반승제는 그를 무시한 채 쓱 지나가 버렸다.진세운은 그제야 반승제가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군지 알지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하는 수 없이 진세운은 방 안으로 들어가 의사에게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머리 부상에 의한 후유증 외에는 아주 건강하네.”그의 말에 진세운은 조금 의아해졌다. 반승제가 직접 병원에 찾아올 정도면 분명히 몸에 불편을 느껴서일 테니 말이다.“증상은 어떻답니까?”의사는 갑자기 말을 하지 않고 몇 초 동안 망설이더니, 비로소 우물쭈물 한마디를 뱉었다.“진 선생, 내가 보기에 이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증상과 비슷하네. 심장이 빨리 뛰고, 긴장한 탓에 손바닥에 땀이 나고, 아마도 너무 흥분해서 약간 어지러운 것일 수도 있어.”그러자 진세운은 살짝 눈썹을 추켜올리며 피식 웃었다.“승제가 어떻게 말하던가요?”“반 대표님은 그냥 나가셨어. 이걸 믿지 못하는 모양이셔.”정말 믿을 수 없는 반응이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감정 아닌가?‘승제가 이런 감정조차 모른다고?’그 시각, 반승제는 이미 병원을 떠난 뒤였다. 바깥의 찬 바람이 몸에 닿자, 그는 갑자기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반승제는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우려고 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조금 전 성혜인이 안겨준 즐거움에 잠겨 있었다.한번 경험해보니, 더욱 맛보고 싶은 즐거움이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히 예전의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이상하게도 부대에 있을 적의 기억은 아주 또렷이 남아있었다.한 무리의 남성들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이 떠난 후, 그녀는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배윤수의 뒤를 따랐다.배윤수는 올해 50세로 더는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 구레나룻의 머리카락도 모두 희게 변했다.사무실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모두들 깍듯하게 배윤수에게 인사를 했다.그러나 배윤수의 개인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턱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박예진에게 앉으라는 표시를 줬다.박예진은 올해로 22살로 대학교 3학년 학생이 되었다.그녀는 천천히 한 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고, 두려움에 두 다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아까 페니 씨 만나러 갔지? 대본은 줬어?”“줘... 줬습니다.”말을 끝마친 박예진은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배윤수를 감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러자 배윤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예진이 뭐 다른 말은 하지 않았겠지?”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박예진은 놀래 흠칫 떨었다.“아뇨, 아무것도 안 말했습니다.”배윤수는 피식 웃더니 이내 몸을 숙여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넌 아직 최고가 아니야. 페니는 대단하다고 할 인물이 아니라 영화계에 큰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할 거야. 대본 주니까 그쪽에서 뭐래?”박예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페니 씨는 그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저더러 다시 수정하라 했어요.”배윤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콧방귀를 꼈다.“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겠지. 내가 대본을 준 건 그저 설씨 가문 아들 체면을 봐서 어쩔 수 없이 준거니까. 넌 그저 대충 수정하고 보내면 돼, 네가 고친 게 마음에 안 들도록 말이야.”말을 끝마친 다음, 그는 자신의 손을 박예진의 다리에 올려놓았다.그러자 그녀는 또 한 번 흠칫 떨었다.배윤수는 그녀가 이토록 자신을 무서워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리에서 손을 거둬 다시 그녀의 목덜미에 대고, 계속 아래로 내려가 어깨뼈를 만졌다.“예진이 최근 살 좀 빠진 것 같네, 돌아가서 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