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봤다면 배워. 지금은 이 방법밖엔 없으니까.”이런 방면에 있어 조심스러운 성혜인에 비하면, 반승제는 상당히 개방적인 편에 속했다.성혜인은 눈을 감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얼버무리며 말했다.“여보, 나 지금 너무 좋아.”반승제는 흠칫 몸이 굳어버리더니, 시선을 내려 그녀를 쳐다보았다.‘미친! 어떻게 내 비서가 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군!’심지어 그는 욕을 뱉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 그녀의 뒤통수를 세게 잡아 긴 키스를 했다.모든 것이 끝난 후, 그는 한편에 있는 티슈를 뽑아 성혜인의 손가락을 닦아주었다.차 창문이 조금 열리자 내부와 바깥공기가 서로 뒤섞였다.성혜인은 감히 반승제를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틈 사이로 바깥의 찬 바람이 불어와 더운 기운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반승제는 일단 보통 티슈로 깨끗이 닦은 다음, 알코올 티슈로 손가락 하나하나를 닦았다.마치 값비싼 예술품을 닦듯이 말이다.분명하지 않았음에도, 성혜인은 이런 모호한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거두려고 하는데, 때마침 반승제가 직접 놓아주었다.‘참 재미있는 비서야.’반승제는 한 번도 여자에게 이렇게 함으로써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그녀가 결혼했던 몸이라는 게 떠오르자, 그는 조금 혐오감이 들기도 했다.반승제는 심한 결벽증이 있지 않은가.원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조롱하는 말을 몇 마디 던져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능숙하네, 예전에 많이 해봤나 봐?” 같은 말을 말이다.그러나 성혜인은 고개를 틀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긴 속눈썹, 피를 떨군 듯 빨개진 얼굴, 그녀는 부드러운 게 한입 베어 물면 마치 과일처럼 달 것 같았다.그렇게 반승제는 조롱하려던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고요한 차 안에서 그는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너무 빠르게 뛰는 탓에 반승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심장은 곧 가슴을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매우 낯선 느낌에
의사는 진찰 결과가 확실히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소 어이가 없었다.“아마 반 대표님은 그 여성분께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계시나 봅니다. 그래서 긴장되는 것일 수 있어요.”반승제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돌팔이 의사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밖으로 나가다 때마침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세운과 마주쳤다.진세운은 그를 아래 우로 훑어보며 물었다.“어때?”하지만 반승제는 그를 무시한 채 쓱 지나가 버렸다.진세운은 그제야 반승제가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군지 알지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하는 수 없이 진세운은 방 안으로 들어가 의사에게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머리 부상에 의한 후유증 외에는 아주 건강하네.”그의 말에 진세운은 조금 의아해졌다. 반승제가 직접 병원에 찾아올 정도면 분명히 몸에 불편을 느껴서일 테니 말이다.“증상은 어떻답니까?”의사는 갑자기 말을 하지 않고 몇 초 동안 망설이더니, 비로소 우물쭈물 한마디를 뱉었다.“진 선생, 내가 보기에 이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증상과 비슷하네. 심장이 빨리 뛰고, 긴장한 탓에 손바닥에 땀이 나고, 아마도 너무 흥분해서 약간 어지러운 것일 수도 있어.”그러자 진세운은 살짝 눈썹을 추켜올리며 피식 웃었다.“승제가 어떻게 말하던가요?”“반 대표님은 그냥 나가셨어. 이걸 믿지 못하는 모양이셔.”정말 믿을 수 없는 반응이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감정 아닌가?‘승제가 이런 감정조차 모른다고?’그 시각, 반승제는 이미 병원을 떠난 뒤였다. 바깥의 찬 바람이 몸에 닿자, 그는 갑자기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반승제는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우려고 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조금 전 성혜인이 안겨준 즐거움에 잠겨 있었다.한번 경험해보니, 더욱 맛보고 싶은 즐거움이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히 예전의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이상하게도 부대에 있을 적의 기억은 아주 또렷이 남아있었다.한 무리의 남성들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이 떠난 후, 그녀는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배윤수의 뒤를 따랐다.배윤수는 올해 50세로 더는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 구레나룻의 머리카락도 모두 희게 변했다.사무실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모두들 깍듯하게 배윤수에게 인사를 했다.그러나 배윤수의 개인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턱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박예진에게 앉으라는 표시를 줬다.박예진은 올해로 22살로 대학교 3학년 학생이 되었다.그녀는 천천히 한 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고, 두려움에 두 다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아까 페니 씨 만나러 갔지? 대본은 줬어?”“줘... 줬습니다.”말을 끝마친 박예진은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배윤수를 감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러자 배윤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예진이 뭐 다른 말은 하지 않았겠지?”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박예진은 놀래 흠칫 떨었다.“아뇨, 아무것도 안 말했습니다.”배윤수는 피식 웃더니 이내 몸을 숙여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넌 아직 최고가 아니야. 페니는 대단하다고 할 인물이 아니라 영화계에 큰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할 거야. 대본 주니까 그쪽에서 뭐래?”박예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페니 씨는 그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저더러 다시 수정하라 했어요.”배윤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콧방귀를 꼈다.“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겠지. 내가 대본을 준 건 그저 설씨 가문 아들 체면을 봐서 어쩔 수 없이 준거니까. 넌 그저 대충 수정하고 보내면 돼, 네가 고친 게 마음에 안 들도록 말이야.”말을 끝마친 다음, 그는 자신의 손을 박예진의 다리에 올려놓았다.그러자 그녀는 또 한 번 흠칫 떨었다.배윤수는 그녀가 이토록 자신을 무서워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리에서 손을 거둬 다시 그녀의 목덜미에 대고, 계속 아래로 내려가 어깨뼈를 만졌다.“예진이 최근 살 좀 빠진 것 같네, 돌아가서 몸보
박예진의 집은 가난했다. 그녀가 성주대에 합격한 후, 부모님은 시골에서 상경해 그녀와 함께 제원에서 지냈다.그들은 성주대와 10km 떨어진 동네에서 살았다.시골에 있던 집은 일찍 팔았다. 그녀의 아버지 박주완은 마침 그를 원하는 학교를 찾았고, 어머니인 김애은은 시골에서 그 지역의 채소를 갖고 오느라, 두 사람은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히 보냈다.박예진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 줄곧 학업에 매진해왔다.성주대에 합격한 그해, 그녀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오랫동안 현수막을 걸어두기도 했다.박주완의 엄격한 교육에 그녀는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라났다.박예진의 용돈은 매일 4000원을 넘지 않았는데, 이건 부모님이 세운 기준이었다.그러나 피임약 한 알의 가격이 거의 이 정도라, 점심과 등하교 교통비를 제외하면 도무지 살 수가 없었다.집에 돌아온 박예진은 집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김애은은 여전히 부엌에서 바삐 돌아치고 있었다. 집은 고작 9평 남짓이었는데 하나는 거실, 하나는 주방 이렇게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겨우 몸을 돌릴 수 있는 작은 화장실 하나가 더 달린 구조였다.“엄마, 저 6000원만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부엌 한편에 서서 조심스레 이 요구를 제기했다.프라이팬 위의 감자를 뒤집고 있던 김애은은 이 말을 듣자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또 돈 가져가서 뭐 하게? 아침에 이미 4000원 줬잖아? 우리 윗집 사람들, 그 집 딸도 대학생이라던데 매일 2000원만 갖고 다닌다더라. 듣자 하니 요즘 대학교 학식 가격도 싸서 2000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던데.”“예진아, 너도 종일 다른 사람들과 비교 말고 부모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해. 우리 집은 그런 조건이 없어. 비길 거면 공부로 비겨. 너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우리 세 식구 모두 제원에 오기 위해서, 텃밭이며 집이며 전부 팔았어.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니 말 좀 들으렴.”자리에 서 있던 박예진은 어딘가가 몹시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어 박주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연락해보니 역시 배 교수님이 받으시더라고. 말로는 우리 예진이 성적이 아주 좋대. 줄곧 1등을 놓치지 않는다면서 말이야. 배 교수님도 많이 보살펴주시는 것 같은데 쟤가 어떻게 나쁜 물이 들겠어. 우리 집에도 어렵사리 성주대 학생이 나왔잖아. 나는 야근하는 것도 막 기쁘지 뭐야? 최근 심사가 잦아서 많이 힘들긴 하지만, 동료들이 예진이가 성주대 학생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부러워하더라고. 나중에 졸업하면 분명히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우리 예진이는.”그 말을 들은 박예진은 몸에 무형의 족쇄가 채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벽을 짚고 천천히 쪼그려 앉아 울려고 했다.그러나 하필이면 그때, 김애은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를 보고는 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밖에서 뭐 해? 네 아빠도 이미 돌아오셨는데 왜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어? 이따가 그 6000원 어떻게 쓸 건지 잘 말해봐.”박예진은 묵묵히 걸어 들어갔다. 칠흑같이 어두운 복도에서 그녀가 문을 닫자, 틈새로 새어 나오던 불빛도 서서히 사라져갔다.그렇게 그녀는 불이 켜진 ‘상자’ 속에 갇혀 방향을 잃었다....아침 일찍 깨어난 성혜인은 대충 아침을 먹고 가방을 들어 집 문을 나섰다.회사에 도착해 사무실 의자에 앉자, 심인우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페니 씨, 대표님께서 돌아오라네요...”어젯밤 결재한 서류를 막 보낸 성혜인은 그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올랐다.“대표님 무슨 병 있는 거 아니에요?! 심 비서님, 저 정말 농담 하는 거 아닙니다. 한번 정신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대표님이 머리를 다치시더니 바보가 된 게 틀림없어요!”심인우는 놀라 손을 흠칫 떨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통화가 스피커 모드로 켜져 있어 성혜인의 욕설은 훤히 다 들렸다.심지어 한글자 한글자 너무 똑똑하게 들려, 사무실에서는 메아리가 울렸다.심인우는 서둘러 성혜인에게 눈치를 줬다.“페니 씨, 이곳으로 돌아오는 건 사실
심인우는 마음속으로 미리 그녀의 명복을 빌며 고개를 저었다.“안 좋은 것 같아요.”성혜인은 흠칫 몸을 떨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제가 한 말... 대표님께서 다 들으셨나요?”“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 들으셨어요.”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안에 혼자 앉아있던 반승제는 그녀가 온 것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성혜인은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가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굴렀다.“대표님.”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불같이 타오르던 반승제의 화는 갑자기 물 한 바가지를 끼얹은 듯 사그라들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오늘 성혜인의 차림새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짧은 무스탕, 쭉 뻗은 청바지에 하이힐로 평범하게 차려입었다. 아마 길거리에 있는 아무나 잡아 세워도, 그녀보다 더욱 섹시하게 차려입었을 정도로 말이다.하지만 몸매가 너무 뛰어난 탓에 성혜인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평범하게 걷는 것도 심지어는 관능적으로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것 같았다.그가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성혜인도 감히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반승제는 손에 있던 빈 컵을 앞으로 밀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커피 한 잔 타와.”그러자 성혜인은 온몸이 굳어버렸다.‘이게 다야? 노발대발할 줄 알았더니?’그녀는 서둘러 빈 컵을 들고 꼭대기 층에 있는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를 타고 갖고 갔을 때, 그는 이미 해외 미팅을 진행하고 있었다.성혜인은 커피를 한편에 놓고 소파로 가 앉았다.해외 미팅을 끝마친 반승제는 뒤이어 BH그룹 내부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성혜인도 반승제가 그 시나리오를 촬영하려 한다는 것을 대충 알아챘다.그녀는 단지 4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이런 거 보면, 전혀 기억 상실한 사람 같지 않단 말이야...’회의가 끝난 후, 반승제는 몸을 일으켜 한쪽에 있는 서류 가방을 그대로 성혜인에게 던졌다.“나랑 접대하러 가자.”“대표님, 저...”“계약 종료까지 아직 한 달여나 남았어. 아직 시간 안 됐으니까
‘다음엔 또 누구야? 이 여자 왜 이렇게 발랑 까졌어!’성혜인은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턱이 아프게 꼬집혔다.반승제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다 갑자기 그는 성혜인을 놔주며 말했다.“나랑 같이 들어가.”‘밖에 혼자 남게 하는 건 전혀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할 수 없이 성혜인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안에는 그 외국 여자와 몇 명의 임원들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내내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대화가 끝이 날 무렵, 여자는 자신 쪽의 임원들을 모두 나가게 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은 그녀와 반승제,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성혜인만이 남겨졌다.성혜인은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지 않고 따로 소파에 앉았다.여자가 영어로 반승제에게 뭐라 말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낮아 성혜인은 잘 듣지 못했다.뒤이어 그녀는 일부로 높게 말하는 반승제의 목소리를 들었다.“저 사람은 단지 제 비서일 뿐입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여자는 몸을 일으키더니 망설임 없이 반승제의 품에 안겨 그의 목을 잡았다.그녀는 반승제의 귓가에 대고 그의 어깨에 금발을 늘어뜨린 채, 낮게 몇 마디를 전했다.유혹인 듯 아닌듯하게 말이다.그녀를 밀어내려던 반승제는 곁눈질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혜인을 바라보고 손을 멈칫하더니, 이내 여자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여자의 붉은 입술은 때때로 그의 귓가에 닿았고, 웃을 때는 더욱 애교스러운 몸짓으로 반승제의 품에 파고들었다.보다 못한 성혜인은 곧장 시선을 돌렸다.그러나 귀에는 여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비록 서른 살이었지만, 관리를 잘한 덕분에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대표님, 이 룸에는 따로 휴식실이 있어요. 저 대표님과 따로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그 말을 들은 성혜인은 조용히 손에 있는 서류를 움켜잡았다.이윽고 그녀의 귀에는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와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반승제가 성혜인에게 신신당부했다.“절대 다른 사람들 들여보내
한편, 차 안에서 반승제는 바닥에 떨어진 두꺼운 서류 더미를 보며 한장 한장 줍기 시작했다.그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여자가 질투할 때 보이는 반응」「비서가 제 얼굴에 서류를 뿌렸어요, 해고해야 하나요?」「비서가 세 다리를 걸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연달아 세 개의 질문을 올리자, 곧 첫 번째 질문에 댓글이 달렸다.누가 봐도 연애 고자가 단 댓글이었지만 여자를 모르는 반승제는 그 말이 곧 진리라고 생각했다.「질투할 때 무슨 반응을 보이냐니... 울거나, 그러는 척 하는 거지. 선물 사줘서 달래주면 됨.」반승제는 핸드폰 화면을 끄더니 “척”이라는 글자를 성혜인의 몸에 씌웠다.‘그래서 페니가 정말 질투 하고 있다는 거야? 두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았네. 그 여자랑 연기한 게 효과가 꽤 괜찮은데?’반승제는 그 여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가 협력사의 임원과 거의 다 자봤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확실히 우아한 매력을 풍기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실력도 있는 여자였다.휴식실에 들어선 반승제가 곧장 그녀에게 흥미가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자, 여자는 그 자리에서 깔끔히 포기했다.이윽고 그가 여자에서 자신을 도와달라 부탁하자, 그녀는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 혼자 침대에 앉아 목이 잠길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확실히 경험이 많고 노련한 사람이라 그런지, 그녀는 일찍이 반승제와 성혜인의 관계에 대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나올 때 여자는 심지어 애매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쳐다보기도 했다. 단지 성혜인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을 뿐.반승제는 모든 서류를 정리한 다음, 심인우에게 와서 차를 몰게 했다.심인우가 가속 페달을 밟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심 비서는 페니가 나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페니 씨 이혼하지 않았나? 누구를 위해서 이혼한 걸까? 두 분이 일찍부터 함께 침대에 올랐으니까, 지금으로서는 대표님 때문에 이혼했다는 결론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대표님 영향력이 이렇게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