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시피 반태승은 이번에 아주 큰 결심을 내렸다.“이번 일은 승제 씨한테 맡기고 할아버지는 몸부터 추스르세요.”반태승은 미소를 지으며 성혜인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참한 아이가 이젠 더 이상 자기 손주며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성혜인은 본능적으로 반태승이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유경아에게 따듯한 차를 내오라고 전했다. 반태승은 그렇게 거의 십분 간 침묵에 잠겨 있다가 말을 꺼냈다.“승제는 나를 따라 부대에서 자라온 아이라 반씨 집안사람들의 손을 탄 적 없다. 그런데도 혼자 해외에 가서 BH그룹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따냈지. 알고 보면 아주 장한 녀석이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속상하구나. 승제는 20살도 안 됐을 때 벌써 수많은 회사를 인수해서 해외를 떠들썩하게 했단다.”반태승은 잠깐 말을 멈추고 차 한 모금 마셨다.“승제는 내가 키워준 정을 봐서 BH그룹을 물려받은 거다. 비록 그 자리는 승우의 것이었지만 난 항상 승제한테 마음이 갔거든. 그러는 한편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승제가 언제 갑자기 미쳐 날뛰면 집안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승제의 고삐는 내가 아직 단단히 잡고 있다. 원래는 그 고삐를 너한테 줄 생각이었지만 둘 다 싫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반태승이 아무에게도 한 적 없을 법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성혜인은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추측하고 있는 반승제의 자산도 덕분에 짐작이 가는 것 같았다.반승제가 해외에 가서 BH그룹보다 좋은 성적을 따냈다면 분명 BH그룹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씨 가문도 그에게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제가 알아도 되는 얘기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죄송해요, 할아버지. 저희는 진짜 서로한테 조금의 관심도 없어요.”“너를 붙잡으려고 한 말이 아니다. 나는 그저 수다를 떨고 싶었을 뿐이니 부담 갖지 말거라. 승제가 얼마 전에는 큰아버지의 별장을 쓰
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친자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그리고 성휘와 윤단미는 부녀 사이가 맞았다.성혜인은 뒤통수가 야구방망이에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영혼이 가출이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식탁에 차려진 아침 식사는 진작 차갑게 식었다. 별장은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었는데도 냉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임지연은 성혜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녀 덕분에 사랑이란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성혜인은 아주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다.자신이 임지연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성혜인은 아주 고통스러웠다. 이는 정신적 지주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감탄했다. 전생에 분명 엄청난 덕을 쌓았기에 임지연의 사랑을 받으며 클 수 있었다고 말이다.눈물로 베개를 적신 과거의 수많은 밤, 성혜인은 임지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겨우 잠들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면이 단단해져서인지 그러는 날이 없어졌다. 임지연을 꿈에서 만난 것도 아주 오래전의 일이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하지만 잔인한 현실은 결국 성혜인의 내면세계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임지연의 친딸이 그녀가 그렇게도 미워하던 윤단미라니... 성휘가 먹고 살 걱정 없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당부했던 친딸이 윤단미라니...‘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성혜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확인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망스러운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다. 생리가 끝나기도 전에 윤단미의 정체를 알게 됐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반태승은 이미 윤단미를 감옥에 보내려고 결심한 듯했다. 하지만 성혜인은 성휘와 임지연의 친딸이 감옥에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성혜인은 도무지 짜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참 안절부절못하다가 반태승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반태승은 잠깐 침묵하고 나서야 그녀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다.하지만 성혜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앞으
성혜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사람이 바랄 걸 바라야죠. 이 말은 나보다는 윤단미 씨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윤단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유리를 힘껏 두드리면서 외쳤다.“야! 이 쓰레기 같은 년아! 난 이런 짓을 하고도 부모님께 사랑받을 수 있지만 넌 아니야! 넌 자기가 어디에서 온 지로 모르지! 잡종! 더러운 잡종! 반승제한테 버림받은 잡종!!!”성혜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수표에 10억이라는 숫자를 적었다.“윤단미 씨는 곧 출국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평생 귀국을 제한받게 되겠죠. 앞으로 제원에서 만날 일은 없겠네요.”“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데?! 난 아직 지지 않았어!”윤단미는 결국 감정이 격해져서 경찰에 끌려가고 말았다. 성혜인은 비참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졌는데도 마음도 전혀 편하지 못했다.윤단미가 감옥에 가는 것은 단연 최고의 결말일 것이다. 하지만 성혜인은 그녀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풀어줄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돈까지 주게 생겼다. 그러니 오죽 서러웠겠는가?성혜인은 어두운 안색으로 경찰서를 나섰다. 하필이면 이때 그녀는 경찰서 안에 있던 설우현과 마주쳤다.설우현은 회색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성혜인은 코너를 돌다가 그의 품에 부딪혔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성혜인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리고 시선을 숙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페니 씨?”“아, 안녕하세요...”성혜인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설우현이 왜 경찰서에 있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녀의 호기심을 보아낸 설우현은 길가에 세워져 있는 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제원의 도둑들은 참 대담하더라고요. 차 바퀴까지 도둑 맞힐 수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성혜인은 당연히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설우현의 차를 힐끗 봤다. 설우현의 롤스로이스는 바퀴 네 개가 모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로고까지 뽑힌 것을 보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했
반승제에 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성혜인은 그저 덤덤하게 말했다.“반 대표님이 저한테 질렸다고 해서요. 저도 따로 살길을 마련해야죠.”덤덤한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에 설우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마음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설우현은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카사노바였다. 그리고 그의 직감이 성혜인은 절대 질렸다는 이유로 버림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성혜인이 누군가를 질렸다는 이유로 버리면 모를까...“그런 사람은 신경 쓰지 말아요. 세상에 남자가 반승제 씨밖에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어휴... 큰형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한 방 먹여주고 싶네.’설우현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반승제 씨는 해외에 있을 때 겁도 없이 경영 중심지에서 스타트업했어요. 근데 밥그릇을 빼앗기게 생긴 다른 사람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그래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하 격투장에 끌려가게 되었죠.”성혜인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록 지하 격투장에 가본 적은 없지만 부자들이 평소 숨기고 있던 잔혹성을 완전히 드러내는 곳이라는 것은 알았기 때문이다.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설우현이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설우현은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말없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다음은요? 지하 격투장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대요?”설우현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창틀을 톡톡 두드렸다.“지하 격투장은 무법지대에요. 돈 있는 사람이 톱인 셈이죠. 반승제 씨는 그곳에서 빠르게 돈을 모아갔어요. 그리고 지하 격투장 전체를 자기 영역으로 만들었어요. 듣기로는 목숨까지 걸었다고 하던데요.”성혜인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설우현을 바라봤다.반승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성혜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하 격투장까지 제패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설우현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눈매는 누가 카
“그 주제는 요즘 하도 예민해서 촬영하기 어려워요. 한 명의 팬이 친 사고로 통째로 제한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저한테도 그런 대본은 없어요.”배윤수가 말했다. 설우현과 반승제의 앞에서는 그도 허리를 굽히고 공손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대신 제가 얼마 전 금방 완성한 대본 두 개를 보여드릴까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두 분이 하나씩 받아줬으면 더없이 행복하겠네요.”배윤수는 공손함 뒤로 득의양양함을 숨기고 있었다.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두 사람이 그의 저택으로 직접 찾아온 것만으로 해도 그에게는 엄청난 영광이기 때문이다.배윤수는 모두가 공인한 믿고 보는 작가였다. 그러니 그의 대본은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수많은 제자가 있어서 좋은 대본이 끊길 새도 없었다.설우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반승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저는 오늘 그냥 얘기를 나눠보러 온 것이라서요. 필요하면 대표님이 둘 다 가져가도 상관없어요.”설씨 가문은 차고 넘치는 게 훌륭한 대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 그냥 인맥을 쌓을겸 배윤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물론 반승제도 마찬가지다. 그도 대본보다는 배윤수와 인맥을 쌓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대본이라면 BH그룹에 주지 못해 안달인 작가가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반승제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본을 훑어봤다. 확실히 그의 마음에 쏙 들 정도로 훌륭했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성혜인도 힐끗힐끗 곁눈질하면서 대본의 총체적인 틀을 파악했다.얼마 후 반승제는 대본을 덮으면서 머리를 돌렸다. 그러다 자칫 성혜인과 코끝이 부딪힐 뻔했다. 대본에 집중하던 성혜인이 어느덧 반승제에게 훌쩍 다가왔던 것이다.반승제는 손가락을 뻗어 성혜인의 머리를 밀어냈다. 제삼자의 각도에서 보기에 두 사람은 마치 사랑싸움 중인 커플 같았다.성혜인은 어쩔 수 없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반승제가 배윤수에게 말했다.“이 대본은 제가 투자할게요. 그리고 다른 대본은 설우현 씨한테 양보할게요.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가면 섭섭하잖아요.”설우
반승제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훑어보면서 말했다.“넌 예나 지금이나 남자 꼬실 줄밖에 모르는 모양이군.”성혜인은 마찬가지로 차가운 눈빛으로 반승제를 힐끗 노려보면서 말했다.“그게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 제가 대표님을 꼬시는 것도 아니잖아요.”반승제는 순간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성혜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손이 다 흠칫 떨렸다.“넌 내 비서였던 사람인데 완전히 상관없는 것도 아니지.”“저는 이미 해고당했거든요. 설마 대표님 남 사생활을 염탐하는 취미가 있으신 건 아니죠?”성혜인은 대놓고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차는 시동이 걸리는 대신 경보음만 내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자 바퀴가 펑크 나 있었다.이 동네에는 별장밖에 없어서 택시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보험 회사에 연락하고 나서 택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려고 했다.뒤늦게 차에 오른 반승제는 성혜인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천천히 따라가며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그녀는 자칫 넘어질 뻔했다. 반승제는 그녀의 곁으로 가서 멈춰서더니 창문을 내리면서 말했다.“택시가 잡히는 곳은 1km 밖에 있어. 걸어서 언제 도착하려고 그래?”반승제는 자기 차에 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일면서 쌩 멀어졌을 뿐이다.제자리에 멈춰 선 성혜인은 주먹을 꼭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이토록 재수 없는 사람은 둘도 없을 거로 생각하면서 말이다.‘이 세상에 남자란 남자는 다 죽고 반승제만 남았다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을 거야!’성혜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반승제가 갑자기 후진해 왔다. 그리고 성혜인의 곁에 또다시 멈춰 서며 차갑게 말했다.“타.”반승제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성혜인은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반승제는 한 손을 운전대에 걸친 채 천천히 그녀의 속도에 맞춰 운전했다.침향 팔찌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샌가 고급 시계로 대체되었
반승제의 앞에 앉아 있었던 서주혁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이젠 보기만 해도 반응이 오는 거야?”반승제는 언제부턴가 꽉 잡고 있던 주먹을 풀면서 열기를 식히려는 듯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샹들리에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눈가는 갑작스러운 열기로 인해 아직도 발그레했다.‘술맛이 조금이라도 달랐으면 약을 탔는 줄 알았겠군...’...같은 시각.성혜인은 머리를 숙인 채 앞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했다.“저는 페니라고 해요. 괜찮으니까 편하게 대해줘요.”여자는 안경 너머 성혜인을 힐끗 보더니 곧바로 다시 머리를 숙였다.이때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와서 주문을 기다렸다. 성혜인은 메뉴판을 여자 앞에 내려놓으면서 물었다.“예진 씨 먼저 먹고 싶은 걸 골라요.”박예진은 겨우 머리를 들어 메뉴판을 힐끗 봤다. 가장 싼 축에 속하는 세트 메뉴도 120만 원씩 하는 것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속눈썹이 다 파르르 떨렸다.“페니 님, 저희... 다른 식당에 가면 안 될까요?”박예진은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안경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그 찰나의 순간에 성혜인은 박예진의 목에서 졸린 적 있는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 본 척 무덤덤하게 말했다.“오늘은 제가 사는 자리이니 걱정하지 말고 앉아요. 우리 아직 대본 얘기도 해야 하잖아요.”성혜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약간 진정된 듯 박예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입술은 아직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가격에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성혜인은 오늘 반승제의 곁에서 함께 봤던 대본을 떠올리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저 오늘 배 작가님 댁에 갔었어요. 그곳에서 작가님의 대본을 보게 되었는데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주인공이 피치 못할 운명으로 살인범이 된 내용인데 BH그룹의 눈에 들어서 스릴러 드라마로 만들어질 거래요. 모든 회차가 다 재미있어서 성공은 떼놓은 당상인 것 같던데요.”대본 얘기가 나오자
낮에 성혜인을 천 리 밖으로 내보낼 것처럼 굴던 반승제가, 갑자기 다른 사람들을 전부 내쫓고 둘만의 자리를 만들었다.성혜인은 그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지 못했지만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갔다.자리에 앉은 후, 반승제가 그녀에게 물었다.“서주혁이 너 결혼했다던데?”반승제의 친구들은 그가 자신의 아내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성혜인이 그의 아내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때문에 서주혁은 여전히 페니를 유부녀로 알고 있었다.“이혼했습니다.”그러자 반승제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왜 이혼했는데?”“이건 대표님과 상관없는 문제인 것 같은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끝마친 성혜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반승제의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녀의 얼굴은 마치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이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설 수 있는 거야?!’반승제도 전혀 숨기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성혜인을 아래 우로 훑어보더니 말했다.“너를 비서로 삼으면서, 내가 아무런 조건도 대지 않았나?”성혜인은 흠칫 온몸이 굳어버렸다. 조건이 있었겠지 왜 없었겠는가.침대에 오르지 않는다고 했을 뿐, 반승제가 키스하려 들면 성혜인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는 철저한 사업가라,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비서 훈련도 받지 않았는데... 예전의 내가 그냥 곁에 남겨뒀다고? 무슨 계략이 있었던 게 아닐까?’반승제는 시선을 아래로 푹 내렸다. 본능적으로 끓어오른 욕정에 눈가는 어느새 새빨개졌다.“비서 일은 얼마나 했어?”성혜인의 침묵은 이미 그에게 답을 준 것과 같았다. 분명히 조건이 있었으며, 더 나아가 그 조건이 남녀 사이의 일과 관련된 것이라는걸.단지 그녀가 직접 말하기 어려웠을 뿐이다.‘역시 몸으로 이 자리를 얻은 거였네.’“아직도 한 달 반 정도 남았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승제는 그녀를 잡아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당겨 안았다.불편했던 성혜인이 곧바로 일어나려 하자 반승제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 아래로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