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곧 묘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매장하는 시간은 해가 내리기 전, 가장 좋기로는 점심에 모든 걸 끝마쳐야 했다.일꾼들은 이미 성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온통 검은 착장을 하고는 품에 유골함을 안고 미리 정해둔 묘지 앞에 왔다.매장을 도와주는 사람이 그녀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그는 성혜인에게 노란 종이를 태우라 알렸다. 그러고는 이내 불꽃이 붙어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다 태운 후, 그녀는 유골함을 가장 중간자리에 놓았다.매장을 도와주는 사람은 또 유골함 위에 은색 천을 덮을 것을 알렸다. 그건 죽은 자를 공경한다는 뜻이며 또한 사후세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성혜인은 시종일관 조용하게 그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눈물은 일찍이 더이상 흐르지 않았다.그러나 부장품을 하나둘씩 올려놓을 때, 그녀의 눈가에서 참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10분 후, 매장을 돕는 사람이 그녀에게 이제 닫아도 되냐고 물었다.성혜인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우는 것보다 더욱 보기 안타까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닫으세요.”그렇게 매장을 끝냈다.성혜인은 묘비 앞에 자신이 준비한 꽃을 놓아두고 30분 동안이나 무릎을 꿇고 앉은 후에야 매장을 하기 위해 모셔온 업체 사람들을 떠나게 했다.마지막에 이곳에는 그녀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녀는 혼자일 것이다.그녀는 사실 성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의 마지막 소원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만약 그와 임지연의 진짜 아이를 찾게 되면 묘비 앞에 와 알려달라는 성휘의 소원을 말이다.성혜인은 너무 오래 꿇어앉은 나머지 무릎이 아파 났다. 몸을 일으키자 두 다리가 모두 저릿저릿해 났다. 물도 마시지 않아 그녀의 입술은 말라 갈라져 있었다.그녀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젖힌 다음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길가에 들어서자 그녀는 차 앞에 서 있는 강민지를 발견했다.평소에 화려하게 꾸미며 예쁜 모습을 하던 강민지도 오늘만큼은 온통 검은색
반승제가 전화를 끊은 후, 윤단미는 심호흡을 하고 현장에 있는 윤씨 집안 사람들에게 말했다.“승제가 받아들였어요. 세한그룹에 6000억을 주겠다고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계속 사람을 보내 세한그룹 건물 밖에 있는 사람들과 협상을 맺어야 합니다. 되도록 빨리 사람들을 내쫓아야 해요. 보름 후 BH그룹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세한그룹은 회생할 수 있습니다.”현장에서는 갑자기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고, 모든 사람들은 몸을 일으켜 서둘러 협상을 진행하러 갔다.윤단미는 차갑게 웃으며 성혜인에게 한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승제가 세한에 6000억을 투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따라서 세한그룹은 파산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불쌍한 성혜인 씨는 헛수고만 한 꼴이 됐네요. 차라리 남편한테 손가락 몇 개 좀 움직여 달라 하지 그랬어요.」성혜인이 이 소식을 받았을 때는 이미 포레스트에 도착한 뒤였다.그와 동시에 그녀는 소유주들의 대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 교수라는 사람한테서 말이다.“페니 씨, 세한에서 우리에게 한 사람당 30억씩 배상하고 싶다고 하는데, 우리가 계속 소란을 피워야 하나요?”사실 세한의 평판은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져서 이 배상은 소유주들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여론이 식은 뒤에는 배상도 없어질 것이었다.성혜인은 교수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 마음이 움직여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10년 전, 그들은 거의 모든 재산을 털어 집을 샀다. 그것도 좋은 지역의 집을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소송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정말로 세한그룹과 타협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지도 못했었다.성혜인의 사심이라면 그들이 계속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뇌리에 적어도 선량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임지연의 말이 떠올랐다.그 사람들은 이미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다 받았고 돌아갈 때가 되었다.세한의 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었으니, 그들의 목적은 적어도 달성한 셈이었다.“계속 소란을 피울 필요
윤단미 쪽에서는 그녀가 예상한 대로 주저 없이 윤희선의 아들을 내세웠다.윤희선은 제원대에서 그 일을 저지른 후, 진작부터 윤씨 가문의 오점으로 전락하였다. 심지어 백연서는 전에 반승제를 꾸짖을 때 윤희선의 일을 꺼내 말하기도 했다.윤희선이 해임된 것은 윤씨 가문 사람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더 이상 쓸모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래서 이번에도 책임질 사람을 망설임 없이 그녀의 아들로 선택한 것이었다.윤희선에게는 아들이 한 명밖에 없었다.그녀는 원래 성혜인에게 복수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혜인 때문에 자신이 제원대에서 어렵게 일궈낸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가 재기하기도 전에 집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아들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단미야, 단미야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내 아들을 보내지 마. 이건 감옥에 가야 하는 일이잖아.”윤단미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전혀 온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고모, 이 일은 저를 탓할 게 아닙니다. 승제가 우리더러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어요. 앞으로 윤씨 집안의 회사는 절대 파산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모두가 투표로 결정했는데 아드님의 득표수가 가장 많았어요. 고모, 잘 생각해보세요. 윤씨 집안의 회사가 계속 굳건할 겁니다. 아드님이 몇 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나오면 저희가 의식주 걱정은 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고모도 밖에서 잘 사실 수 있고요.”다른 사람들도 윤선희가 뭘 잘 모른다며 설득했다.윤선희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는 이 사람들의 자신의 집안 가족들이라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예전에 그녀가 제원대의 학과장이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듣기 좋은 말들만 그녀에게 했다.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 윤선희는 가족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오점으로 변했다.그녀의 눈에는 온통 한이 맺혀 윤단미를 노려보았다.“단미야, 그 아이는 겨우 스물 몇 살이야! 어떻게 연해 지역에 있는 집 건축과 관
“승제야, 지문은 위조할 수 없어. 이 세상에 완전히 같은 지문은 존재하지도 않고, 기계가 내린 답이 바로 이런 답이야. 승우 형은 이곳에 살아있다는 거. 단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너를 만나지 못하는 거지.”반승제의 호흡은 더욱더 빨라졌다. 그는 서주혁이 흥분을 억누르며 하는 말소리를 들었다.“지금 너 찾으러 갈게, 구체적인 건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반승제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서주혁을 기다렸다.서주혁은 감식 보고서를 들고 일찍 도착했다.“이제 우리는 이 노트의 3일 동안의 경로를 잘 조사하기만 하면 돼.”반승제는 손을 들어 미간을 눌렀다. 순간 마음이 조금 복잡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주혁아, 이 일은 당분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돼.”그는 괜히 허탕 친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기뻐할까 봐 걱정했다.반승우가 살아있다 해도 6년이나 그들을 만나지 못한 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가 만나려 하지 않은 거였거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였거나.어쨌든 이 안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서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승제 더러 윤단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라 전했다.윤단미는 밤새 잠을 못 자서 정신이 없었다.반승제의 전화를 받은 그녀는 마치 형장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었다.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뜻밖에도 서주혁을 발견했다.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반승제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물을 뿐이었다.“이 노트가 계속 너한테 있었다고?”윤단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아래에 놓인 손은 자신의 살을 떼어낼 것처럼 꽉 쥔 채로 말이다.“윤씨 저택에?”“응, 어제 내가 보디가드 시켜서 특별히 갖고 오라고 한거야.”“어느 보디가드인데?”그러자 윤단미는 자신의 보디가드를 불러 데려왔다.반승제는 보디가드를 보며 물었다.“이 노트 갖고 올 때, 길에서 누구랑 마주친 적 있나요?”보디가드는 고개를 저었다.반승제는 손을 들어 눈썹을 어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이 반승제에게 이곳의 주소를 보냈다.그 시각, 성혜인은 이미 룸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안에는 중년 남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모든 남자의 곁에는 술 시중을 드는 여자들이 있었다.남자는 중년이 되어 일단 주색에 빠지기만 하면 매우 느끼해져서 보기 좋지 않아진다.성혜인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맨 가운데에 앉아 있는 한도하를 발견했다.그 사람이 바로 오늘 밤 그녀가 찾으려는 사람이었다.한도하의 지난 드라마는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탔다. 그래서 현재 그에게 투자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원래 그는 성혜인을 거절하려 했으나 예쁜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 지금 품에 안겨있는 여자는 그녀와 비할 바 없이 추해 보였다.“한 감독님.”성혜인이 부르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당신이 페니 씨군요. 어서 앉으세요, 통화에서 페니 씨 목소리를 들었을 때 틀림없이 미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그러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그녀에게 쏠리기 시작했다.모든 업계에는 작은 무리가 있었다. 현재 이곳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한도하의 친구이자 감독들이었다.공기 중의 값싼 술 냄새와 향수 냄새를 맡은 성혜인은 속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순간 어렸을 적 일이 떠오르며, 이 장면이 예전 성휘를 따라다니며 만났던 모습과 똑같다는 걸 발견했다.그래서 그녀의 적응력은 매우 뛰어났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이 체면을 봐주리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한도하는 곁에 있던 여자들을 밀치고 기다리다 못해 성혜인에게 손을 흔들었다.성혜인은 한 무리 남자들의 발끝을 넘어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평온한 얼굴로 빙긋 웃으며 한도하를 바라보았다.“한 감독님, 제 취지는 이미 알고 계시죠? 저는 감독님의 다음 영화에 투자하고 싶습니다.”“페니 씨, 일단 술부터 마시고 천천히 본론으로 들어갑시다.”다른 감독들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술도 안 마시면 얘기를 이어나갈 수 없어요.”성혜인은 이미 오기 전에
성혜인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다행히 임경헌이 나타나 중간에서 꽃병을 가로막아 준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형, 이러다가 사람이 죽겠어요! 페니 씨도 보고만 있지 말고 와서 말려 봐요!”임경헌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꽃병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성혜인은 이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황급히 한도하의 앞으로 가서 호흡이 있는지 확인했다.한도하는 가까스로 호흡하고 있었다. 앞으로 촬영은커녕 사람 구실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성혜인의 노력 또한 헛되어 버리고 말이다.성혜인은 짧게 심호흡하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반승제는 곁에서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반승제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무엇이라 말하려고 입을 연 순간 반승제는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채며 밖으로 끌어당겼다.혼자 남아 뒷정리를 하게 생긴 임경헌은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 5분 안에 현장을 정리하도록 했다.반승제를 따라 밖으로 나간 성혜인은 단호하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잔뜩 화난 얼굴로 성혜인을 길가의 나무로 내밀면서 말했다.“넌 진짜 남자면 다 되는 거야? 어떻게 된 여자가 수치심도 없어!”성혜인은 그래도 반승제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가 계획을 망친 건 사실이지만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순간 얄팍한 고마움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대표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도 할 말이 없네요.”반승제는 순간 호흡을 멈추더니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성혜인을 끌고 차 안에 들어갔다.“저런 남자를 찾아갈 바에는 나를 찾아오지 그랬어. 내가 돈이 없어, 권력이 없어?”반승제는 성혜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성혜인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자존감은 반승제에 의해 짓밟히고 또 짓밟혔다. 성혜인으로서든, 페니로서든 반승제의 앞에서는 한치의 자존감도 남길 수 없었다.“질려서요. 대표님한테는 이제 관심 없어요.”성혜인은 시선을 떨구면서
성혜인은 머리를 숙여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이 늦은 것을 보고 그녀는 덤덤하게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대표님, 저는 이만 쉬러 돌아갈게요.”반승제는 닫힌 방문 밖으로 사라진 성혜인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호텔 로비로 내려간 성혜인은 서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눈물을 참아 보려고 머리를 들었다. 별로 소용이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이때 장하리가 건 전화가 핸드폰을 울렸다. 그녀는 하루에 적어도 세 번씩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이번은 법무팀의 일로 전화를 건 것이었다.“사장님, 윤씨 가문의 희생양이 누군지 알아냈어요. 희생양은 윤희선의 아들인데 이미 구속되었다고 해요. 이번 사건은 화제성이 높은 데다가 윗분들의 시선을 끌었거든요. 더구나 증거가 명확해서 바로 구속될 수 있었대요. 윤희선은 지금도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동네방네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근데 지금 같아서는 최소 10년 형을 선고받을 거예요.”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의 이름에 성혜인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굴을 탁탁 치면서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한 장하리와 통화를 계속했다.반승제는 걱정되는 마음에 성혜인을 쫓아 나왔다. 늦은 시간에 그녀 혼자 보내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자태로 호텔 대문에서 누군가와 화기애애하게 통화하고 있었다.한순간에 치밀어 오른 분노는 반승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하지만 성혜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장하리에게 말했다.“법무팀한테 계속 노력해 달라고 전해. 진짜 10년 형을 받을 수 있다면 윤희선은 아주 윤단미라면 치를 떨게 될 거야. 때가 되면 아주 흥미진진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겠지.”성혜인이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반승제는 마침 그녀의 말이 똑똑히 들리는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성혜인과 윤희선 사이의 원한이라면 반승제는 제원대학교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제는 윤단미까지 더해졌으니 그녀가 윤씨 가문을 증오하는 것도
성혜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더 이상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시선을 내린 채 이혼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더니 억지로 입을 열었다.“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반승제는 성혜인의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진 것을 보고 그나마 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덕분에 성혜인도 부드러운 방법을 쓰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태어난 그는 남에게 굴복하기에는 너무 잘났기 때문이다.“좋아, 그럼 날 차단한 것부터 풀어줘.”성혜인은 반승제가 보는 앞에서 차단을 풀었다. 그러자 반승제는 또 그녀를 벽에 밀치고 기나긴 키스를 시작했다.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승제가 왜 이토록 키스를 좋아하는지를 말이다. 이번에도 반승제는 그녀가 숨넘어갈 직전이 되어야 천천히 풀어줬다.“빨리 결정해.”성혜인은 급한 대로 선택을 뒤로 미뤘을 뿐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몰랐다.반승제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그와 계속 만나다가는 조만간 그 부드러운 키스에 넘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반승제에게 한 번 넘어가면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성혜인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해결하면서는 그의 기분을 무조건 생각해야 했다. 적어도 윤씨 가문의 일에 개입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또 이틀이 지나고 성혜인이 반승제와 이혼하기까지는 다섯 날이 남았다.윤희선의 아들이 감옥에 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이었다. 세간에 악명이 자자해진 세한그룹은 반승제의 6000억 원 투자금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계약일은 열흘 후라고 했다.인터넷에는 한도하가 술 먹고 싸움질하다가 불구가 되었다는 기사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만 싸움질의 상대가 반승제가 아닌 동네 조폭으로 나왔다.아침 식사가 끝난 다음 임경헌은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페니 씨, 한도하 씨의 일은 제가 깔끔하게 해결했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요.”임경헌은 이토록 진지한 일도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성혜인이 짧게 대답한 것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