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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소매치기

성혜인은 지영호와 함께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지영호는 갈수록 그녀의 해설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업계와의 다리를 놓아주고자 성혜인을 부른 것도 사실이다.

“HS그룹의 신 대표를 압니까? 그 댁 아들도 디자이너인데, 꽤 유명세를 탔다더군요. 나이도 제법 비슷해보이는데, 소개해줄게요. 같은 업계에 있으니 할 얘기가 있지 않겠어요?”

성혜인은 거절의 표시를 내비추고자 입을 뗐다. 바로 그때, 지영호의 목소리가 말허리를 잘랐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이한아. 너도 전시회 보러 왔니?”

성혜인은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신이한이 있었다.

안색을 보니 이미 다 회복한 듯 했다. 신이한은 웃으며 다가왔다.

“삼촌. 온다고 말씀하셨으면 제가 도슨트 해드렸을 텐데요.”

신이한의 시선이 성혜인에게 향했다. 마치 이글이글 타오를 듯한 눈빛이었다.

“예전에 찾으셨던 디자이너도 페니 씨였나요?”

“물론이지.”

신이한은 성혜인에게 다가와 친숙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반승제 일까지 해서 페니 씨가 제 일을 두 번이나 가로챘네요. 우리 정말 인연이기는 한가봐요.”

성혜인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렸다.

“젊은이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가 있겠지요. 마침 오늘 봐야할 그림은 모두 다 봤네요. 이한아, 페니 씨 따뜻하게 잘 대해주렴.”

그 말의 뜻은, 미래 여자친구처럼 잘 지내라는 말.

신이한은 씩 웃었다. 지영호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웃음기를 거두었다.

“이따가 밥 한 끼 할까?”

끝까지 발차기 사건을 꺼내지 않다니, 성혜인의 눈에 신이한은 뻔뻔함의 끝판왕이었다.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인 듯 했다.

성혜인의 시선이 마침 아래로 향했다. 내려간 시선 만큼 깔보는 듯한 그런 눈빛으로.

”금세 회복하셨네요?”

이 말 만큼은 어떠한 의미도 담지 않았지만, 듣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신이한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다 회복했는지는, 직접 확인해보면 되지.”

“...”

그때, 옆에서 젊은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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