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미의 얼굴에는 마지막 남은 핏기마저 사라졌다. 그녀는 정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만만한 줄 알았던 성혜인이 한마디 반박도 못 하게끔 말하리라 누가 감히 상상했겠는가.주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나도 일찍부터 말하고 싶었어. 윤단미의 행동은 불륜이 맞다니까.”“아내 앞에서 자기 목걸이 자랑이나 하고, 정말 천하기 짝이 없다니까.”“윤씨 집안은 재벌도 아니면서, 뭐가 저렇게 당당한 것인지.”윤단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이 못생긴 게 감히 나를 비웃어? 천한 년, 죽어 마땅할 년!’버티기 어려웠던 윤단미는 당장이라도 성혜인의 뺨을 내리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참아야만 했다.이런 중요한 타이밍에, 김경자가 나서서 윤단미를 위해 주변의 분위기를 풀었다.“됐습니다. 오늘 밤은 그림을 감정하기 위해 모인 자리인데, 불필요한 말은 해서 뭐합니까?”성혜인은 가볍게 웃더니 감정사를 바라보았다.감정사는 기침을 몇 번 해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윤단미는 난감함과 어색함에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지난번 그녀가 반태승에게 당한 일은 포레스트에서 벌어진 일이라 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지만 오늘 못난이같이 보이는 성혜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사실을 폭로해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다짐했다.‘반드시 기회를 찾아 네년에게 복수하고 말 거야.’한편, 긴 책상 앞에서 감정사는 자세하게 관찰을 시작했다.10분 정도가 지나고, 그는 두 그림에 대한 관찰을 끝냈다. 그러고는 윤단미를 힐끗 쳐다보았다.“윤단미 씨의 그림이 진짜이고 찢긴 그림은 가짜입니다.”성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결과는 그녀가 예상한 대로였다.감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경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성혜인, 할 말 더 있어?”김경자도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운 게 조금 창피하긴 했다. 자신은 성혜인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주영훈은 두 그림을 동시에 내려놓더니 찢긴 그림만 들어 올리며 말했다.“누가 찢은 겁니까? 내가 한 달 넘게 그린 건데. 정말 보는 눈도 없군요.”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성혜인을 바라보았다.“누가 찢은 거냐?”성혜인은 김경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김경자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선생님, 무슨 뜻입니까? 설마 이 그림이 진짜라는 말씀입니까?”주영훈은 눈살을 찌푸렸다.“제가 직접 그린 그림인데 어떻게 가짜일 수 있겠어요? 사모님, 제 그림을 찢어버렸으니 당연히 배상하셔야죠. 이 그림은 지난번 경매에서 600억을 준다는 사람한테도 주지 않은 겁니다.”그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그림을 말았다.“이렇게 안목이 없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왜 고소를 당했는지도 이제야 알겠네요. 위조품을 진품으로 여기다니, 물고기 눈알을 진주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시고 말 겁니다!”김경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윤단미 역시 어리둥절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내가 산 게 가짜라고? 그럴 리가! 1200억이나 쓴 건데!’1200억은 윤씨 집안을 놓고 말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그녀는 김경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돈을 쏟아 받쳐 사들인 것이었다.“선생님, 다시 한번 잘 봐주세요.”주영훈은 그녀를 힐끗 째려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당시 너를 내 제자로 들이지 않은 것은 네 심술궂은 마음 때문이었다. 다행히 제자로 안 들였으니 망정이지,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려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가짜로 사람을 속여 내 피땀으로 만든 작품까지 훼손하게 하다니, 그건 너 역시 안목이 없다는걸 설명하는 거지.”주영훈은 그림을 들고 뒷짐을 진 채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앞으로 다시는 제 작품을 두 분께 팔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이내 그는 감정사를 가리켰다. 감정사는 하마터면 그의 손가락에 얼굴이 찔릴 뻔했다.“그리고 당신, 감히 내 작품이 위조품이라고 말해? 사기만 칠 줄 알면서 도대체 어떻게 감정사가 된 건지
목이 너무 강하게 졸리고 있는 탓에 성혜인은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반승제는 얼굴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갑자기 앞머리와 안경은 왜 꼈는지 따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녀를 싫어했다.또 평소와는 다른 촌스러운 옷차림까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모든 행동에, 이것 역시 그녀가 일부러 수작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재밌어?”그의 손목에는 선명한 핏줄이 솟아나 얼마나 큰 힘을 쓰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였다.목이 졸린 성혜인은 정말 금방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반승제의 고운 두 손을 보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감미로운 입술로 몸을 쓸어내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성혜인은 이대로 질식해버릴 것 같아 급히 그의 손을 때렸다.“성혜인, 네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있던데,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 동안 조용히 분수를 지키면서 사는 게 좋을 거야. 수작 부리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거든.”그는 전에도 보지 못했던 차가운 말투로 말하며 마치 죽은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목을 감고 있던 손이 풀리자, 성혜인은 힘이 풀려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심지어 목에서는 피 비린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콜록콜록...”반승제는 본체도 안 한 채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주영훈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김경자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었고 윤씨 집안 사람들은 손님들을 보내는 것을 책임졌다.윤단미는 줄곧 울고불고하고 있었다.그녀는 반승제가 온 것을 보고 마치 구세주를 찾은 듯 울며 그에게 달려갔다.“승제야, 흑흑...”그녀는 반승제의 품에 안기려고 했다.그러나 왠지 모르게 반승제는 성혜인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 미간을 구기며 몸을 옆으로 비켰다.그 바람에 윤단미는 허공에 돌진하고 말았다. 그때, 임경헌이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왔다.“형, 왜 이
반승제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을 그녀는 처음 보았다.성혜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신이한의 뒤를 따라나섰다.불빛이 밝은 곳에 이르자, 신이한은 그녀의 목에 난 자국을 발견했다.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반 대표가 조른 거예요?”성혜인은 차에 올라탔다. 목 안이 마치 불타오르는 듯해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네.”“아내한테 너무 잔인하네요.”성혜인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로 사람들을 압도하던 그녀는 갑자기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씁쓸할 뿐.“페니 씨, 제가 일찍 알려주지 않은 걸 탓하지 마세요. 반 대표 평소에는 고고한 자태를 하고 있어도, 사실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아요. 지금 제원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목을 만지고 있었다.“3년 안에 해외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곳에는 미치광이들도 정말 많고 서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반 대표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 섞어 들었어요. 사실, 저랑 몇몇 친구들은 그가 밖에 거액의 재산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추측하기도 해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한테도 모질고 다른 사람한테는 더 모질게 굴어요. 페니 씨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며 그 후과는 엄청날걸요?”신이한은 비록 다른 속셈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전혀 함부로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조금 전에도 하마터면 목을 졸라 죽일 뻔했는데, 나중에 그녀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목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아파 급히 뭐라도 마셔 통증을 완화하고 싶을 뿐이었다.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 신이한은 결국 길가에 차를 세워 약방에서 약을 사 왔다.차에서 내린 성혜인은 곧바로 한 덩이의 피를 토해냈다.목이 극한으로 심하게 졸리면 이렇게 될 수 있었다.신이한이 건네준 약
로즈가든에 돌아온 성혜인은 주영훈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온통 반승제에 대한 욕을 쏟아내고 있었다.“빌어먹을 자식! 찢어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럽다, 한스러워! 화가 나 죽겠어. 너랑 결혼한 걸 감사하게 여기지는 못할망정, 밖에서 헛짓거리하고 돌아다녀?! 내 제자의 명성이 바닥을 치게 하네! 바닥을 치게 해!”성혜인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스승이 제원에 딱 하루, 그것도 일이 있어서 갑자기 돌아온 것뿐인데, 자신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주영훈이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반승제를 욕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서둘러 사과를 건넸다.“스승님, 죄송합니다.”주영훈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였다.“어떻게 할 생각이냐? 계속 속일 작정이야?”“모르겠어요.”핸드폰 너머로 주영훈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목은 또 왜 그래? 다 쉬어버렸네. 혹시 우는 것이냐?”성혜인은 두 번 기침을 하더니 너무 아파 조금 전의 약을 또 두 모금 마셨다.“아뇨, 목이 조금 아파서요.”“페니야, 너는 반승제를 좋아하냐?”성혜인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좋아한대도 사귈 수는 없을 것 같았다.아마도 그 미미한 설렘은 단지 그들이 매일 밤 친밀한 스킨쉽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끌어당기고 몸을 부딪치지 못해 안달 나 하는 반승제의 모습이 떠오르면 여전히 얼굴이 뜨겁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이게 좋아하는 건가? 아닐 거야. 이혼에 대한 결심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으니까.’“그럼 반승제 그 녀석은 너를 좋아하냐?”“아뇨.”그녀의 대답은 빨랐다. 반승제의 옆에는 윤단미가 있으니 말이다.“그럼 너도 좋아하지 말렴. 찾으려면 일편단심인 남자를 찾아. 승제는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 맞긴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들 네 것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알겠습니다, 스승님.”“너도 네 생각이 다 있을 테니 나도 더 말은 하지 않겠다. 이 그림은 내가 친
반승제가 들어오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온시환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술 한잔을 건넸다.“너 오늘 너무 늦게 왔어. 가장 재밌는 장면도 다 놓치고 말이야. 승제야, 네 아내 정말 대단하더라.”반승제는 겨우 반씨 집안의 일을 모두 처리했다. 김경자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윤씨 집안에서는 계속 울며 간절히 하소연했다.성혜인은 모두가 평온할 수 없어 잔뜩 헤집어 놓았다.온시환은 반승제의 어깨를 토닥였다.“생긴 건 그저 그래도 말솜씨가 좋더라고. 그런 사람하고 결혼할 수 있는 것도 네 복이야.”오늘 내내 일이 순탄치 못해 예민했던 반승제는 시선을 떨군 채 차갑게 말했다.“이 복 너한테 줄게. 가질래?”온시환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예쁜 여자를 좋아했으니까 말이다.반승제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뒤로 살짝 기댔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목에 있는 단추를 몇 개 풀었다.그러자 온시환이 또 위로하며 말했다.“됐어, 그 여자 말은 하지 말자. 그나저나 윤단미는 어떻게 할 작정이야? 오늘 밤 이후로 많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텐데. 윤단미를 더 좋아하는 거면 빨리 이혼해서 명분을 줘.”반승제는 손에 들려있는 술잔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는 내가 성혜인하고 결혼하기를 바라고, 할머니는 내가 윤단미하고 결혼하기를 바라고. 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없는 거지?”목소리가 너무 낮은 탓에 오직 온시환과 서주혁만이 그의 말을 들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재벌가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믿는 사람들은 아직 이 무리를 접한 사람이라 할 수 없었다.대부분의 재벌가 사람들은 집안과 타협하여 집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아내를 선택하고 밖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몇 명 두었다.집안에서는 잘 따르고 밖에서는 찬란하게 놀았다.그리고 대중들 앞에서는 쇼윈도 부부를 연기를 하는 것이 회사의 주가 상승에도 도움이 되었다.
성혜인은 이력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음에 드는 듯 사무실로 불러달라고 청했다. 이력서의 주인 장하리는 올해 초에 입사한 21살의 예쁘장한 신입사원이었다.성혜인은 장하리를 훑어보며 단도직입으로 물었다.“장하리 씨, 제 개인 비서로 일할 생각 없어요?”장하리는 잠깐 멈칫하다가 바로 머리를 끄덕였다. 성혜인이 어떤 사장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이것은 분명 승진할 좋은 기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러면 인사부로 가서 수속을 밟고 오후에 다시 돌아와요. 제가 자리를 만들어 줄게요.”장하리는 또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말없이 순종적인 그녀의 모습이 성혜인은 아주 만족스러웠다.같은 시각, 어제 크게 창피를 당한 윤단미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김경자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를 만나러 갔다.김경자는 이미 반씨 저택으로 돌아갔다. 법원에서 아직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자칫 기절할 뻔하기도 했다. 분노는 성혜인의 피부 껍질을 찢어내고 싶을 정도로 솟아올랐다.“요망한 년 같으니라고, 콜록콜록.”“할머니, 저 이제 어떡해요?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파티에 참석해요...”김경자는 잠깐 기침하다가 백연서에게 물었다.“성씨 집안에서는 무슨 사업을 하니?”성씨 집안에 관한 일은 백연서도 당연히 몰랐다. 그저 BH그룹에서 많은 투자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적자를 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이때 윤단미가 먼저 대답했다.“성씨 집안에서는 페인트 사업을 해요.”김경자는 눈살을 찌푸렸다.“너희 집안은 부동산 사업을 한다고 했지? 페인트 회사를 인수해서 도움이 되려나?”“도움은 당연히 되죠. 근데 SY그룹을 인수하면 할아버지께서 화내지 않을까요? 그리고 승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장 중요한 건 SY그룹도 나름 큰 회사라 인수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만약 윤씨 집안이 재벌가의 문턱을 밟았다고 하면 성씨 집안은 재벌가의 ‘ㅈ’자도 본 적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인수는
성혜인의 사무실은 괴이한 정적에 휩싸였다. 그녀도 장하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 후 성혜인이 몸을 일으키며 장하리에게 말했다.“수고했어요, 이만 퇴근해요.”장하리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성혜인도 이만 퇴근해서 성씨 저택으로 돌아갔다. 윤단미에게 사과하는 것은 아예 선택지에 없었다. 아무리 이사회가 배신했다고 해도, 아무리 그녀의 편에 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그녀는 윤단미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 것이다.성혜인은 성휘의 방문 앞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손을 들어 노크했다. 방 안에서는 성휘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회사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이런 일로 찾아오게 되자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들어와.”성휘는 짧게 대답하고 또다시 기침하기 시작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성혜인은 침대 곁에 앉으며 말했다.“아빠, 저 이만 지분을 팔아버리려고요.”성휘는 눈초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약 일 분간 침묵한 끝에 겨우 대답했다.“네 마음대로 해, 콜록콜록.”“죄송해요.”“사과할 것 없어. 내가 변호사한테 연락, 콜록콜록...”성휘는 이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분을 파는 일은 변호사에게 맡기고 이만 꿈을 좇으라는 그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래도 속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시작해 회사를 세우는 것이 어디 쉬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성혜인도 속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영원히 팔아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잠깐일 뿐이에요. 제가 금방 되찾아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그냥 아빠가 놀라지 않게 미리 알려드리러 온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어떤 소식을 들어도 흥분하지 마세요.”성휘는 이제야 약간 안도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혜인이 너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니 무조건 잘 해낼 거다.”성혜인은 성휘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잠자코 있었다. 이미 벌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