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이 돈을 챙겨 나가려는 순간 그의 허리에 총구가 겨눠졌다.“처음 와서 이렇게 큰돈을 따면 쉽게 나갈 수 없는 게 이 바닥의 룰이야, 학생.”원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오늘 밤 그가 겪은 모든 일은 그의 상식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산더미처럼 쌓인 현금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나 총을 들이대는 남자.아마도 이미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인지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날 여기 데려와서 도박을 하게 만든 건 당신들이고 지금 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도 당신들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난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어.”남자는 원진의 담담한 반응에 놀란 듯 보였다.산골 마을에서 자란 이 소년은 비범한 침착함을 보였고 심지어 그들과 협상을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원진은 천천히 몸을 돌리며 여전히 그의 허리에 겨눠진 총을 무시했다.“며칠 전부터 날 따라다닌 것도 당신들이었지?”매번 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면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처음엔 김성진의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지만 김성진이라면 벌써 행동에 나섰을 것이 분명했다.남자는 원진의 얼굴을 응시하며 그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찾아내려 했으나 원진은 너무도 차분했다.몇 분 후 남자는 총을 거두었다. 그의 반응에 매우 만족한 듯 보였다.만약 오늘 원진이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보였다면 그는 살아서 이곳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네 아버지가 널 보고 싶어 한다.”원진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의 아버지? 그 강간범?수년 전 수많은 죄를 저질러 이미 사형당한 사람이 죽지 않았다니?게다가 이제 와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니?원진의 눈가에 순식간에 혐오감이 스쳤다. 그의 인생 모든 불행은 바로 그 아버지 때문에 시작되었다.“만나고 싶지 않아.”“네 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야. 넌 아버지를 만나볼 필요가 있어. 너 지금 돈이 필요하지 않나? 우리에겐 돈이 그저 가벼운 종이 쪼가리일 뿐이야.”“만나지 않을 거야.”원진은 간신히 지금의 생활을 이루어냈고
소년은 이미 키가 185cm가 훌쩍 넘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에게 기대는 모습은 마치 위로를 구하는 어린아이 같았다.당시연은 그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아직 저녁 안 먹었지? 음식 데워났으니까 가서 좀 먹어.”원진은 결국 4억 원을 손에 넣었지만 현금 대신 수표를 받았다. 현금을 들고 다니면 눈에 띌 수 있었기에 때문이다.그러나 그 수표를 당시연에게 바로 줄 수는 없었다. 만약 당시연이 그 수표의 출처를 알게 된다면 그녀는 원진의 안전을 계속 염려하게 될 테니까.그래서 그는 그 수표를 홍영란에게 보냈다. 아마도 지금쯤 그녀는 그 수표를 받았을 것이다.홍영란은 정말 수표를 받았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인 줄 알았지만 편지에는 자신이 예전에 가르쳤던 한 제자라고 적혀 있었다. 홍영란과 당지석은 모두 교사였기 때문에 가르친 학생이 너무 많아 정확히 어느 학생인지 떠올리지 못했다.그녀는 반신반의하며 은행에 가서 수표를 환전해 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4억 원이 있었다.이제 6억 원만 남았다.홍영란은 무척 흥분했지만 이 소식을 당시연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편지에 분명히 당시연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당시연은 요즘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집이 팔린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제 아무런 저축도 없기에 빠르게 돈을 벌지 않으면 자신과 원진도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당지석의 빚은 아직 10억 원이 남았다. 설령 그가 감옥에 간다 하더라도 법원에서 형을 감경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그 후 일주일이 지나면서 원진이 집에 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연은 당지석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깜짝 놀란 당시연은 눈동자가 흔들렸다.“정말인가요?”“지금 병원에 이송된 상태입니다. 아직 위기를 넘기지 못했지만 어머님이 이미 병원에 와 계십니다.”당시연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홍영란을 보았다.2주 만에 보는 홍영란의 머리카락은 눈에 띄게 하얗게 변해 있었다.당시연은 그 자리에
당시연은 김성진의 품에 안겨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그러다 문득 멀리 서 있는 원진을 보자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원진은 책가방을 메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아마도 방금 막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당시연은 밤새 병원에 있었고 그 시각 원진은 당연히 집에서 쉬고 있을 줄 알았지만 새벽 4시에 두 사람은 아파트 아래에서 마주쳤다.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김성진을 밀어내고 원진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그의 입가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팔에도 여러 곳에 상처가 보였다.“진아, 대체 무슨 일이야?”원진의 시선은 그녀를 지나 김성진에게 향했다.두 사람이 조금 전까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시연 누나가 김성진을 다시 만나려는 걸까?’원진은 갑자기 강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까까지는 아프지 않았던 몸이 이제는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다. 심지어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당시연은 걱정이 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원진의 팔을 잡아당기며 집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때 김성진이 말을 꺼냈다.“시연아, 잘 생각해 봐.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 다 네가 필요해.”당시연은 발걸음을 주춤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그녀의 마음은 오로지 원진이 다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었다.집에 돌아가는 동안 원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당시연이 집 안의 불을 켜자 밝은 빛 아래서 원진의 상처가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옷 벗어봐.”방금 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채 원진은 눈가가 시큰거렸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못 들은 척했다.그러자 당시연은 다가와 그의 옷을 들추어 올렸고 그의 몸에 퍼진 멍 자국을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이 상처들은 오늘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미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고 최소한 일주일 전부터 생긴 상처들이 분명했다.하지만 그녀는 지난 일주일 동안 너무 바빠서 원진이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이유를 묻지 않았다.“진아, 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너를 때린 거야? 왜 이렇게 심
원진은 소파에 기대어 당시연의 억눌린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떨리는 손길을 가만히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당시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자꾸만 기침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는 꾹 참았다.“당시연.”당시연이 눈물을 닦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원진의 눈은 반짝였고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순간 당시연은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지 의아해했다. 시연 누나라고 부르던 아이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다니.“왜 그래?”“누나가 울면 내가 더 힘들어져요.”그 말이 나오자 집안은 더욱 고요해졌다.당시연은 김성진 외에는 다른 남자와 교제한 적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 서툴렀다. 그래서 눈앞의 소년이 아무런 가림 없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그리고 눈물 한 방울이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진아, 아프지 않아?”원진의 몸 곳곳에 남은 심한 상처 자국들을 보며 누군가가 그를 얼마나 잔인하게 때렸는지를 생각하니 당시연은 마음이 아팠다.“정말 안 아파요.”원진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당시연의 얼굴은 눈물로 축축했다. 분명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무력해 보였다.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불안감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원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였다.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는 정말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원진은 그저 당시연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당시연은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코를 훌쩍였다.“그러니까 누구한테 맞았는지 말해줄래?”“그냥 우연히 시비가 붙은 불량배들일 뿐이에요. 오늘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래
쿠당탕.원진은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옆에서 그를 훈련시키던 이들은 냉혹한 표정으로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이 정도로는 어림없어. 네가 상대할 적은 훨씬 더 강할 테니까.”원진은 피를 내뱉으며 천천히 일어섰다.온몸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는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원진은 보통 사람들보다 고통을 참아내는 능력이 뛰어났다.그의 팔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했는지 알 수 있었다.“쿨럭쿨럭.”그러나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음에도 얼굴만은 멀쩡했다. 이는 원진이 그들에게 내건 조건 덕분이었다. 얼굴에 상처가 나면 당시연이 알아챌까 봐 그들에게 얼굴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공격해.”원진이 휘두른 주먹은 상대의 방어에 막혔고 상대방의 눈빛에는 희미한 만족감이 스쳤다.처음 원진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원진이 별 볼 일 없는 아이일 거라 생각했다. 산골에서 자란 아이가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생각이었다. 아마 돈 몇 푼만 봐도 바로 욕심을 드러내며 비굴하게 굴 거라 믿었다.만약 그랬다면 그저 총 한 방이면 해결될 일이었다.하지만 원진은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잘 성장하고 있었고 모든 면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을 흥분시킬 정도로 말이다.이대로 잘 키우면 원진은 어르신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그것이 그들이 원진을 찾아낸 목적이었고 2년 뒤 결정될 상속자 자리에 그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다.원진의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아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라졌고 이들은 원진이 상속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키워내야만 했다.하지만 상속을 둘러싼 싸움은 말 그대로 피를 보는 전쟁이었다. 산골에서 자란 아이가 하루아침에 그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원진을 비밀리에 훈련시키고 있었다.다행히도 원진은 그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강한 반응 속도와 타고난 능력으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쿵.원진은 또다시 바닥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약점이 있어야 쉽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원진이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그를 다루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남자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원진의 두 손을 떼어냈다.“그 기세 좋아. 계속 그렇게 해. 네가 가문으로 돌아오는 걸 기대하고 있겠다.”원진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이제 겨우 열여덟도 되지 않은 그가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니.그는 뒤로 물러서서 1억 수표와 가방을 들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갔다.그때 한 남자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다가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저 자식은 자기 아버지보다 더 독하군.”어린 나이임에도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나 혹독할 수 있는 사람은 남에게는 얼마나 더 독하게 굴 수 있을지 모른다.다행히 지금은 원진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가 더 이상 소중히 여길 사람이 없어진다면 그는 통제 불가능한 야수가 될 것이다.다른 한 남자는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하지만 원진의 약점이 너무 명확합니다. 어르신께서는 후계자가 약점을 가지는 걸 용납하지 않으시겠죠. 원진이 지금부터 미래를 한 여자에게 묶어두는 건 큰 감점 요인이 될 겁니다. 제 생각엔 차라리 당시연을 잡아두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원진이 가문의 후계자가 되면 그때 당시연을 없애버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원진은 감정 없는 기계가 될 거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겁니다.”원진을 상대했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자신의 손에 난 상처를 만지작거리며 원진이 잠시 보여줬던 강한 보호 본능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절대 당시연을 죽이면 안 돼. 오히려 잘 살게 해둬야 해. 그 여자는 원진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야. 너무 똑똑한 척 앞서가면 일을 그르칠 거다. 저 아이가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성장한 걸 보면 앞으로가 기대돼. 만약 저 아이에게 아무 일이 없다면 다음 후계자는 분명 저 아이가 될 거야
원진은 집 안의 의료 상자를 침대 밑으로 걷어차고 옷을 입은 다음 방문을 열었다.당시연은 현관에 서서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고 반쯤 하다만 시험지가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고는 안도했다.“이 선생님이 최근에 네가 다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압력이 높아서 그런가? 요즘에는 늦게 들어오네.”“아뇨, 저 시험 잘 볼 거예요.”당시연은 책상으로 걸어가 그가 푼 다른 시험지들을 살펴봤다.각 시험지의 필체는 깔끔했고 심지어 스스로 채점까지 한 상태였다.안심한 그녀는 뒤돌아서서 코끝으로 냄새를 맡았다.방에서 연고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그녀는 그것이 단지 자신의 착각인지 궁금했다.“시연 누나, 누나도 피곤한 것 같으니 가서 쉬세요.”당시연도 최근 야근이 많았고 어머니를 위로해야 했었다. 일찍 퇴근하고 늦게 돌아오니 원진과의 시간이 모두 엇갈리게 되었다.오늘 밤 그녀는 너무 불안해 결국 물어보러 온것이었다.원진이 무사하게 있는 것을 보자 당시연은 손을 들어 자기 머리를 끄적이었다.그녀가 떠나자마자 원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하고 자신의 옷을 입으며 연고를 계속 발랐다.피부는 불타는 듯 너무 고통스러웠고 조금만 만져도 따끈했다.이마는 식은땀 범벅이 되었고 샤워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수건으로 몸을 닦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다.하지만 그는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뒤척이다 보니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는 심지어 중간에 일어나 피를 한 입 뱉어내기도 했다.*다음 날 아침 일찍 홍영란은 당시연에게 연락하여 돈을 거의 다 갚았고 당지석이 감옥에 갈 필요가 없다고 알렸다.“어머니, 그 돈은 다 어디서 났어요?”“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나에게 보냈는데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어. 네 아버지가 오늘 밤 집에 도착할 거고 네가 사는 곳으로 함께 갈 거야. 그리고 간 김에 원진도 정식적으로 만나 보고 싶어. 이것 때문에 관계가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당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둘의 관계는 이미 오래
당시연은 조용히 채소를 고르고 있었다. 요즘 아버지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저축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바쳤지만 누구에게도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다.예전부터 이렇게 아버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자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 같았다.그녀는 전에 김성진과 다시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했고 홍영란은 그녀를 지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음을 바꾸었고 그녀의 입에는 김성진의 선함이 가득했다.홍영란은 채소를 볶기 시작했지만, 당시연은 식욕을 잃은 듯 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오고 나면 두 사람이 함께 김성진과 결혼하도록 자신을 설득할 것이라고 이미 상상할 수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손에 든 접시를 내려놓았고 지금 어머니를 쫓아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그녀는 아직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아버지가 오자 두 사람은 김성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당시연은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두 사람이 서로 짠 듯이 맞장구를 쳐가면서 말하는 것이 어색한지 그들은 결국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났다.당시연은 혼자 설거지를 한 다음 소파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았다.저녁 12시가 되어서야 거실 문이 열렸다.이번에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몸에 새로운 상처가 많이 생긴 원진이 돌아왔다.원진은 방의 불을 켜고 그녀가 여전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물었다.“시연 누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당시연은 외동딸이었지만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사실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원진을 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원진은 책가방을 옆으로 던져버리고 몸의 고통을 억지로 참아냈다.“무슨 일이죠? 부모님께 또 무슨 일 있었어요?”그는 지금까지 당시연 어머니에게 보낸 돈이 김성진에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당시연은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닦아냈고 원진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그는 이미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공부가 가장 중요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