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동안 성혜인은 반승제가 매일 밤 몰래 외출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항상 일이 많아서 야근한다고 했다.오늘 밤도 어김없이 그렇게 나갔다.성혜인은 찜찜한 마음에 심인우에게 전화를 걸어 반승제가 오늘 밤 몇 시에 퇴근할 예정인지 물었다.심인우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사모님, 요즘 대표님께서 업무를 최대한 낮에 다 처리하고 계셔서 밤에 야근하신 적은 없었습니다.”순간 성혜인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승제와는 워낙 믿음이 두터워 크게 의심하지 않았지만 연이은 며칠 동안 그가 두 시간 넘게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야근이라고 둘러대는 것이 수상하게 여겨졌던 터였다.심인우의 말을 듣자마자 성혜인은 그동안 봐왔던 인터넷 뉴스들이 머릿속을 스쳤다.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바람날 확률이 높다는 내용의 기사들이었다.임신 중에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물론 성혜인은 반승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가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왜 거짓말을 했을까? 의심이 들기엔 충분히 수상했다.그녀는 심인우에게 반승제의 위치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위치는 고급스러운 한 카페로 나왔다.그곳은 도심 속에서도 꽤 유명한 고급 카페였으며 회원제 운영을 통해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지키는 곳이었다.성혜인은 운전기사를 불러 그 카페로 향했다. 그곳은 연예인들도 자주 모이는 곳으로 개인 공간이 철저하게 보호되는 장소였다.반승제가 왜 여기서 사람을 만나는 걸까?성혜인은 프런트 데스크에서 그의 최근 며칠간의 소비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연속으로 사흘간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순간 성혜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믿고 싶었지만 너무 의심스러웠다.성혜인은 복잡한 심경으로 반승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미 배가 많이 불러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도 그녀를 조심스레 대했다. 혹시라도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난리가 나면 임산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직원들은 불안해했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성혜인은 반승제가 왜 신예준을 몰래 만나러 다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강민지와 관련된 문제 때문에 성혜인이 신예준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반승제는 그녀의 감정을 배려한 것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에 성혜인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입가에 미소를 띠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결심했다.앞으로는 굳이 몰래 만날 필요 없으니, 두 사람은 좋은 아빠가 될 준비를 하며 아이 키우는 얘기나 함께 나누면 될 터였다.성혜인은 다른 출구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도착한 시간은 반승제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반승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시간에 혼자 밖에 나갔어? 위험한 거 몰라?”성혜인은 반승제가 신예준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감동적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나오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두 팔을 펼치며 그의 품에 안겼다.반승제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배가 불편한 거 아니야?”출산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성혜인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최근에는 성혜인이 한밤중에 자주 깨면서 반승제 역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아니요. 아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승제 씨, 난 당신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예전에는 성혜인이 이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둘이 함께 있고, 심지어 아이까지 생겼지만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반승제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나야말로 운이 좋았지. 혜인아, 예전부터 하고 싶던 말이 있어. 미안해.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할 줄 알았다면 처음 결혼할 때 도망치지 않았을 거야.”결혼을 확정 짓고 반태승의 명령에 따라 혼인신고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승제는 도망쳤고 두 사람은 무려 3년 동안이나 엇갈렸었다.성혜인은 그런 반승제의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감동적인 말도 잠깐이면 충분했다. 너무 오래 이어지면 그녀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만실 밖에서 반승제는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었다.안에서는 성혜인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로 옆에 있던 의사에게 끊임없이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제발 잘 좀 확인해 주세요. 혜인이 목소리가 너무 달라졌어요. 혹시 힘이 다 빠진 거 아닌가요?”“혜인아? 혜인아!”반승제는 밖에서 몇 번이나 소리쳤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의사들이 그를 제지했다.복도에는 설씨 가족들도 앉아 있었다. 설의종, 설기웅, 그리고 최근 소개팅에 지쳐버린 설우현도 있었고 사라도 함께였다.사라는 반승제보다도 더 긴장한 듯 보였다. 평소 신을 믿지 않던 사람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안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반승제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그는 복도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다.“정 힘들면 제왕절개라도 해주세요. 제일 좋은 약을 써서 혜인이가 고통받지 않게 해주세요.”더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진 그는 거의 쓰러질 것 같은 상태였다.그때 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의 눈에 기쁨이 번졌다. 얼마 후 성혜인이 밖으로 실려 나왔다.성혜인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얼굴은 몹시 창백해 보였다.반승제는 먼저 아이를 보지 않고 성혜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혜인아, 괜찮아?”성혜인은 말하려 했지만 목이 잠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아 보였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반승제의 눈가가 붉어지며 말했다.“다음엔 절대 애 낳지 마. 미안해.”옆에 있던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와서 말했다.“축하합니다. 쌍둥이, 남매예요.”이미 몇 번의 산전 검사에서 쌍둥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반승제와 성혜인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몰래 상의한 결과로는, 두 아이가 모두 아들이거나 모두 딸일 거라 예상했지만 남매 쌍둥이라니 예상 밖의 결과였다.반승제는 이미 아빠가 될 준비를 하며 교육을
서주혁은 늘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온시환마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상황이 심각한 게 분명했다.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여전히 몸을 회복 중인 성혜인을 힐끗 보았다.이 일은 성혜인에게 절대 알릴 수 없었다. 알게 되면 또 오랫동안 눈물을 흘릴 게 뻔했다. 그녀는 아직 회복 중이었기 때문이다.반승제는 설서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성혜인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회사에 문제가 좀 생겼어. 잠깐 나갔다 올게. 몸이 불편하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무슨 일인데요?”“회의가 있어서. 별일 아니야. 금방 다녀올게.”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서 자고 있는 남자아이의 이름은 반진율, 여자아이는 설서율이었다.결국 한 아이는 반승제의 성을, 또 다른 한 아이는 설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됐다.성혜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출산으로 몸이 많이 상했지만 일주일 동안 잘 쉬었기 때문에 이젠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그동안 반승제는 매일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 주느라 바빴다.한밤중에 아이들이 울 때마다 성혜인이 일어나려 하면 반승제가 그녀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넌 푹 쉬어. 내가 애들 데리고 옆방에 가서 달래줄게.”성혜인은 잠이 덜 깬 채로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일주일이 지나면서 반승제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웠지만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성혜인은 옆에 누워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잠들었다.반승제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액셀을 힘껏 밟으며 온시환이 보낸 주소로 향했다.서주혁의 아이는 여전히 위급한 상태였고 아이가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화재가 발생한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산 절반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여전히 불을 끄고 있었고 사람과 차량의 접근이 금지된 상태였다.장하리가 머물며 태교하고 있던 곳은 산속에 위치한 작은 집이었다. 그곳에는 오혜수가 보낸 사람들이 그녀를 돌보고 있었다.오혜수는 상부에서 벌을 받아 잠입
목소리가 너무 쉰 탓에 서주혁이 맞는지 한동안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서주혁 말고 누가 이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죽으려고 할까.반승제는 그쪽으로 급히 달려가 서주혁의 등 뒤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외쳤다.“서주혁!”반승제는 서주혁을 재빨리 땅에 눕히고 그의 등에 붙은 불을 껐다.서주혁의 등 뒤에 있던 양복은 거의 다 타버렸고 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서주혁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이 불길 속에서 장하리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걸까?그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아이는 어떻게 태어났고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서주혁의 머릿속은 너무 혼란스러워서 어느 순간 주위의 큰 불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더 깊이, 더 깊이 걸어가면 장하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반승제는 그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그의 등이 심하게 화상을 입은 것을 보고 깊은숨을 내쉬었다.“아무리 죽고 싶어도 지금 인큐베이터에서 간신히 살아 있는 그 아이는 생각해야지.”서주혁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마치 혼란 속에서 누군가 그를 끌어낸 것처럼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반승제는 그를 일으키며 더 이상 그의 등 상처를 보지 않으려 했다.“아이를 누가 데리고 나왔는지, 장하리는 어떤 상황에서 아이를 낳았는지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서주혁은 목이 잠겨 말할 수 없었고 얼굴은 그을린 연기로 까맣게 변해 있었다.화재 현장에서 연기 속에 타버린 재가 떠다니며 서주혁의 얼굴을 덮었다. 지금은 눈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반승제가 밖을 내다보니 소방관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먼저 병원부터 가자. 감염되면 어쩌려고 그래? 지금 병원에서 아이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네가 무너지면 어떻게 해.”서주혁은 이미 이성을 잃고 제어할 능력을 잃은 상태였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닦았다. 다행히 얼굴은 다치지 않았다. 다만 등은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그는 너무 혼란스러워 아이가 자신에게 넘겨졌을 때의 놀람과 공포조차
그 후 이틀 동안 서주혁은 인큐베이터 옆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듣지 않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등에는 심각한 화상이 있었지만 서주혁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온몸이 먼지와 재로 뒤덮여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가 미세하게나마 움직일 때만 서주혁의 눈동자가 따라 반응하며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그 외의 시간에는 생기를 잃은 사람 같았다.반승제는 며칠째 병원을 자주 오가며 성혜인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계속 일이 많아서 야근한다고 둘러댔다. 그러던 중 여전히 지저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서주혁을 보고 반승제는 망설임 없이 그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내리쳐 기절시켰다.“이 사람 좀 데리고 가서 등의 상처를 치료해 주세요. 이러다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이러는지.”의사들은 이미 여러 차례 서주혁에게 치료를 권했지만 서주혁은 무감각한 상태로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반승제가 나서자 서주혁은 마침내 치료를 받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서주혁을 부축해 화상 치료실로 데려갔다.반승제는 인큐베이터 앞에서 아기를 지켜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숙아인 이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작았고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의사는 이 아이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심장은 거의 멈출 뻔했다고 한다.반승제는 만약 아이가 잘못되면 서주혁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며 의사에게 아이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의사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반승제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다시 서주혁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서주혁의 등은 옷과 살이 엉겨 붙어 있었고, 천을 떼어낼 때마다 살점이 함께 벗겨져 나갔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 보는 것만으로도 아플 정도였다. 서주혁은 잠결에도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했다.반승제는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좀 더 자게 두세요. 최대한 깨지 않게 하세요.”그렇지 않으면 또 인큐베이터 앞에
아기는 여전히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서주혁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아기를 지켜보았다. 그때 복도 밖에서 서씨 집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사람은 명희정이었다.그동안 명희정은 계속 서주혁에게 선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는 결혼했다고 하며 거절해 왔다. 명희정은 서주혁의 아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혼인신고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최근 서주혁이 산불이 난 곳에서 사람을 미친 듯이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지며 사람들 입에서 장하리가 그 화재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가 서주혁에게 아이까지 낳아주었다는 소문도 함께였다.“주혁아, 밖에서 떠도는 소문이 다 사실이니? 네게 진짜 아이가 생겼다고? 내가 듣기로는 그 아이가 조산아라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던데, 심장에도 문제가 있다고 들었어. 엄마 말 좀 들어. 너 아직 젊잖아. 앞으로 만날 여자도 많을 텐데 장하리 같은 여자는 네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야. 너는 그저 속은 거야. 그 여자는 우리한테 필요 없어. 그리고 이 아이도 말이야. 엄마가 너에게 더 좋은 여자를 찾아줄 테니, 건강한 아이를 가져야지.”명희정은 서주혁의 지금 상태가 너무 두려웠다.서주혁은 그동안 항상 차분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의 결정에는 늘 확신이 있었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평소처럼 말이 없었으나 그를 감싸는 공기가 무언가에 집착하는 듯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듣고 싶지 않다는 듯했다.서주혁은 명희정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명희정은 그의 단호한 눈빛에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엄마, 장하리는 내 혼인신고서에 이름이 오른 여자예요. 그리고 저 아이는 내 핏줄이에요. 나는 저들을 외면할 수 없어요.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내 아내는 오직 장하리 한 명뿐이에요. 만약 장하리가 죽었다면, 나는 평생 재혼하지 않을 거예요.”명희정은 그 말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서주혁이 이렇게
두 달 후 의사는 아이가 이제 괜찮아졌다고 했지만 타고나길 몸이 약하니 앞으로 모든 면에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서주혁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건장한 몸으로 작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이의 존재가 너무나도 연약하고 작게만 느껴졌다.그는 아예 움직이기를 두려워하며 아이와 눈을 맞췄다.아이는 남자아이로, 눈이 크고 속눈썹이 길어 서주혁의 어린 시절과 똑 닮아 있었다.의사는 서주혁을 보며 다시 한번 당부했다.“서 대표님, 등 쪽에 생긴 흉터에 대해 당장은 특별한 치료제가 없지만 필요하시다면 연구해 보겠습니다.”“괜찮습니다.”서주혁은 담담하게 말하며 아이를 소중히 안았다. 그의 눈빛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의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병원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병원 문을 나섰을 때 서주혁은 성혜인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두 달 동안 반승제가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고 성혜인은 결국 장하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서주혁이 아이를 안고 나오자 성혜인은 이미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서주혁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반격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아이는 서주혁이 맞는 것을 보더니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그저 서주혁이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았던 것 같았다.성혜인은 화가 나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이 부어오른 채 장하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기 어려워하고 있었다.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이내 무력감이 밀려왔다.이제 와서 서주혁에게 책임을 물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장하리의 아이는 살아남았고 이제 서주혁이 돌봐야 할 상황이었다.곁에 있던 반승제가 성혜인을 말리며 부드럽게 말했다.“혜인아, 그만해. 아이를 안고 있잖아. 아이가 놀라.”성혜인은 입을 꾹 다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서주혁이 아이를 안고 차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자동차는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