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일찍 설우현이 또 주방에서 요리사에게 성혜인이 먹을 음식을 지시하는 소리가 들리자 반승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는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성혜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설우현이 이제 우리 집안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어. 이 인간도 자기 생활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당신 큰오빠는 그래도 곁에 그 여자아이라도 있잖아. 근데 설우현은 아무도 없으니 외로울 거야. 시환이가 아는 여자들이 많으니, 그쪽에서 좀 소개해 보라고 할게.”성혜인은 잠결에 별생각 없이 건성으로 대답했다.“알아서 해요.”이 말을 남기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반승제는 바로 온시환에게 전화를 걸어 설우현에게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온시환은 소문난 바람둥이로 그의 이름을 둘러싼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네 말은 설우현이 더 이상 네이처 빌리지에 찾아와 귀찮게 하지 말라는 거지? 알았어, 친구야. 이 일은 나한테 맡겨. 요즘 얼마나 심심한지 몰라. 서주혁이랑 술 마시러 갔더니 눈길도 안 주고, 밤이면 어디로 도망가는지도 모르겠어. 게다가 잡지도 못해. 설우현이라면 나랑 코드가 맞으니까 딱 좋아. 지금 당장 연락처 뒤져서 소개해 줄 만한 여자를 찾아볼게.”반승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시환은 구경거리를 좋아하고 종종 분위기를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일단 한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반승제가1층으로 내려올 때 설우현은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거실 TV는 이미 설우현에 의해 게임 전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끔 성혜인도 설우현과 함께 게임을 하곤 했다.며칠 전에는 성혜인이 설우현과 게임하느라 반승제를 거의 신경 쓰지도 않았다.다행히 성혜인은 임신 중이라 매일 반 시간 정도만 게임을 했지만 성혜인은 설우현과 어떻게 숨겨진 스테이지를 발견하고 완벽한 엔딩을 이룰 수 있을지 몇 시간씩 이야기하고는 했다.그 시간 동안 반승제는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되어버렸다.반승제는 무엇이든 잘하지만 유독 게임에는 소질이
설의종의 몸은 아직 회복 중이어서 지금까지 반승제와 정식으로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설우현의 말을 들은 반승제는 내심 불안했다. 특히 성혜인과 이혼했던 사실은 설씨 가문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반승제는 지금이라도 설우현을 내쫓고 싶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설의종의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그날 반승제가 퇴근 후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설우현이 설의종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버지, 몸 상태는 괜찮으세요? 정말 오셔도 괜찮겠어요?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알았어요. 언제 도착하시는 건가요? 제가 마중 나갈게요. 혜인이는 출산 예정일이 두 달 후라 직접 나가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요즘 집에서 잘 쉬고 있으니까 도착하시면 일단 여기에 있는 집에서 쉬세요. 그 후에 네이처 빌리지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설우현은 반승제에게 잠시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깜짝 놀라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장인어른이 오신다고요? 언제요?”설우현은 순간 멈칫했다. 반승제가 전화를 엿듣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다.“내일 오후 6시쯤. 미리 마음의 준비나 하세요.”이 소식에 반승제는 저녁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설의종이 자신을 책망하러 오는 게 아닌지 불안해했다.성혜인도 설의종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반승제가 너무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다독였다.“너무 걱정하지 마요. 아버지가 당신을 잡아먹으러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그러나 반승제는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가정부들에게 집 안 구석구석을 대청소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겨울이와 흰둥이까지 깨끗이 씻기고 겨울이에게는 털 손질도 시켰다.성혜인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과장된 게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자신을 아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성혜인은 정원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가지치기를 한 후 퍼지는 풀 향기를 맡았다. 반승제는 그녀 옆에 서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배현우는 결코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또다시 겨울이에게 보내는 선물이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목에 걸 수 있는 예쁜 방울이었다.반승제는 얼굴이 여러 번 어두워졌다. 화가 났지만 곧 설의종이 온다는 사실 때문에 더 이상 배현우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설의종의 비행기가 제원 공항에 도착했을 때 설우현과 설기웅이 함께 마중을 나갔다. 설의종은 아직 회복 중이라 얼굴은 여전히 창백해 보였지만 그의 기세는 여전했다.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지 못하자 설우현에게 물었다.“사라 박사는 어디 있지?”설우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박사님은 집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며칠 동안 잠을 잘 못 주무셔서요.”설의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잘생긴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설의종의 시선은 설기웅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설기웅 뒤에 숨어있는 작은 소녀에게로 향했다. 소녀는 마치 겁먹은 토끼처럼 고개만 살짝 내밀고는 다시 숨으며 설기웅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설기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설의종을 응시했다.설우현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섰다.“자, 다들 차에 타세요.”설우현이 운전석에 앉고 설의종은 조수석에, 설기웅과 소녀는 뒷자리에 탔다.차 안에서 설의종은 참다못해 물었다.“저 아이, 학교에 보낼 나이가 됐는데 아직도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설기웅이 답하려는 찰나 소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알아요. 기웅 오빠를 시원하게 해주는 거 알아요.”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설우현은 평소 그토록 침착하던 형이 서둘러 해명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마사지예요, 손목 마사지! 말을 끝까지 해야지.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말을 똑바로 하라고!”소녀는 “응”하고 작게 대답했다.설기웅은 백미러로 설의종과 눈을 마주치며 덧붙였다.“아버지, 얘는 성인이 되려면 아직 반년이나 남았어요. 전 그냥 가족처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설의종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겨우 한마
방금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 모두 비교적 차분해 보였다.설의종은 1인용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혜인이 몸은 괜찮아? 전에 입덧이 심했다던데?”“지금은 괜찮아요. 그건 이미 다 지난 일이에요.”설우현이 대답한 후 시선을 사라 박사에게로 돌리며 말했다.“박사님, 앉으세요.”이어진 대화는 최근 함께 겪은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설의종의 건강 상태와 반승제의 회복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설씨 가문의 세 남자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박사가 대화에 끼지 못해 불편해할까 봐 배려한 것이다.그 순간 그들은 서로 뜻이 잘 맞았다.한편, 네이처 빌리지에서는 반승제가 성혜인 옆에서 설우현이 그린 숨겨진 스테이지 그림을 연구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참다못한 반승제가 성혜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장인어른께서 곧 오실 텐데, 내가 준비한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실까?”반승제는 명화부터 귀한 술까지 준비했으며 BH그룹 지분만 넘기지 않았을 뿐 온 정성을 쏟았다.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하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그러나 반승제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잠시 후 문지기가 손님이 도착했다고 알려오자 반승제는 바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설우현이 운전하는 마이바흐가 천천히 대문 앞에 도착했다.설의종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성혜인을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늘 엄격하고 무뚝뚝했던 그가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 말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결국 설우현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아버지, 안으로 들어가시죠.”설의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승제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고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반승제는 그의 불만을 눈치챘다. 특히 재혼 문제는 누구에게나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반승제는 긴장했지만 여전히 침착하고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식탁에 앉은 후 반승제는 먼저 성혜인에게 국을 떠주고 이
그는 아버지를 끌어들여 반승제의 기세를 눌러 앞으로 설씨 집안에서 스스로 한 발 뒤로 물러나게 만들고 싶었다.하지만 앉자마자 설의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현아, 네 앞으로 곧 소개팅을 준비할 거야. 모레 나랑 같이 플로리아로 돌아가자. 네 형은 지금 회사 전체를 관리하느라 바쁘니 시간이 없지만 넌 빈둥거리며 놀기만 하잖아. 네 결혼은 3개월 안에 마무리 짓는 게 좋겠어. 한번 제대로 된 사람 만나봐.”설우현은 순간 머릿속이 윙윙 울리며 멍해졌다.“아니, 아버지. 형도 아직 결혼 안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서둘러야 해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의종이 탁자를 탁, 치며 말했다.“네가 네 형을 언급할 자격이 있어? 네 형이 그동안 회사에서 죽도록 일할 때 넌 밖에서 여자 때문에 돈을 펑펑 쓰고 다녔잖아. 3개월이면 이미 너한테 충분한 시간을 줬어. 얌전히 내 말대로 결혼 준비해.”설우현은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설기웅을 바라봤지만 설기웅은 그의 구조 요청을 못 본 척했다. 설우현이 소개팅에 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나가야 할 상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설우현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고 성혜인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반승제를 노려보았다. 바보라도 이 상황이 반승제의 계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설의종이 말을 꺼낸 이상 설우현은 따라야만 했다.소개팅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날 저녁, 설우현을 제외한 모두가 만족한 상태에서 식사가 끝났다.설의종과 박사는 제원을 구경하겠다며 함께 떠났고 성혜인은 임신 중이라 피곤해져 식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잠 들었다.하지만 설우현은 불안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뜨면 소개팅, 눈을 감아도 소개팅만 떠올랐다. 그는 설기웅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설기웅은 그 대신 설우현이 소개팅에 나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 전화를 받지 않았다.설우현은 성혜인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반승제가 대신 받았고 성혜인 앞에서 일부러 다른 이야기를 하며 소개팅 이야
최근 한 달 동안 성혜인은 반승제가 매일 밤 몰래 외출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항상 일이 많아서 야근한다고 했다.오늘 밤도 어김없이 그렇게 나갔다.성혜인은 찜찜한 마음에 심인우에게 전화를 걸어 반승제가 오늘 밤 몇 시에 퇴근할 예정인지 물었다.심인우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사모님, 요즘 대표님께서 업무를 최대한 낮에 다 처리하고 계셔서 밤에 야근하신 적은 없었습니다.”순간 성혜인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승제와는 워낙 믿음이 두터워 크게 의심하지 않았지만 연이은 며칠 동안 그가 두 시간 넘게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야근이라고 둘러대는 것이 수상하게 여겨졌던 터였다.심인우의 말을 듣자마자 성혜인은 그동안 봐왔던 인터넷 뉴스들이 머릿속을 스쳤다.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바람날 확률이 높다는 내용의 기사들이었다.임신 중에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물론 성혜인은 반승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가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왜 거짓말을 했을까? 의심이 들기엔 충분히 수상했다.그녀는 심인우에게 반승제의 위치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위치는 고급스러운 한 카페로 나왔다.그곳은 도심 속에서도 꽤 유명한 고급 카페였으며 회원제 운영을 통해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지키는 곳이었다.성혜인은 운전기사를 불러 그 카페로 향했다. 그곳은 연예인들도 자주 모이는 곳으로 개인 공간이 철저하게 보호되는 장소였다.반승제가 왜 여기서 사람을 만나는 걸까?성혜인은 프런트 데스크에서 그의 최근 며칠간의 소비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연속으로 사흘간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순간 성혜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믿고 싶었지만 너무 의심스러웠다.성혜인은 복잡한 심경으로 반승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미 배가 많이 불러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도 그녀를 조심스레 대했다. 혹시라도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난리가 나면 임산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직원들은 불안해했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성혜인은 반승제가 왜 신예준을 몰래 만나러 다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강민지와 관련된 문제 때문에 성혜인이 신예준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반승제는 그녀의 감정을 배려한 것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에 성혜인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입가에 미소를 띠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결심했다.앞으로는 굳이 몰래 만날 필요 없으니, 두 사람은 좋은 아빠가 될 준비를 하며 아이 키우는 얘기나 함께 나누면 될 터였다.성혜인은 다른 출구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도착한 시간은 반승제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반승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시간에 혼자 밖에 나갔어? 위험한 거 몰라?”성혜인은 반승제가 신예준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감동적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나오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두 팔을 펼치며 그의 품에 안겼다.반승제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배가 불편한 거 아니야?”출산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성혜인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최근에는 성혜인이 한밤중에 자주 깨면서 반승제 역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아니요. 아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승제 씨, 난 당신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예전에는 성혜인이 이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둘이 함께 있고, 심지어 아이까지 생겼지만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반승제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나야말로 운이 좋았지. 혜인아, 예전부터 하고 싶던 말이 있어. 미안해.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할 줄 알았다면 처음 결혼할 때 도망치지 않았을 거야.”결혼을 확정 짓고 반태승의 명령에 따라 혼인신고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승제는 도망쳤고 두 사람은 무려 3년 동안이나 엇갈렸었다.성혜인은 그런 반승제의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감동적인 말도 잠깐이면 충분했다. 너무 오래 이어지면 그녀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만실 밖에서 반승제는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었다.안에서는 성혜인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로 옆에 있던 의사에게 끊임없이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제발 잘 좀 확인해 주세요. 혜인이 목소리가 너무 달라졌어요. 혹시 힘이 다 빠진 거 아닌가요?”“혜인아? 혜인아!”반승제는 밖에서 몇 번이나 소리쳤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의사들이 그를 제지했다.복도에는 설씨 가족들도 앉아 있었다. 설의종, 설기웅, 그리고 최근 소개팅에 지쳐버린 설우현도 있었고 사라도 함께였다.사라는 반승제보다도 더 긴장한 듯 보였다. 평소 신을 믿지 않던 사람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안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반승제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그는 복도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다.“정 힘들면 제왕절개라도 해주세요. 제일 좋은 약을 써서 혜인이가 고통받지 않게 해주세요.”더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진 그는 거의 쓰러질 것 같은 상태였다.그때 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의 눈에 기쁨이 번졌다. 얼마 후 성혜인이 밖으로 실려 나왔다.성혜인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얼굴은 몹시 창백해 보였다.반승제는 먼저 아이를 보지 않고 성혜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혜인아, 괜찮아?”성혜인은 말하려 했지만 목이 잠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아 보였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반승제의 눈가가 붉어지며 말했다.“다음엔 절대 애 낳지 마. 미안해.”옆에 있던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와서 말했다.“축하합니다. 쌍둥이, 남매예요.”이미 몇 번의 산전 검사에서 쌍둥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반승제와 성혜인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몰래 상의한 결과로는, 두 아이가 모두 아들이거나 모두 딸일 거라 예상했지만 남매 쌍둥이라니 예상 밖의 결과였다.반승제는 이미 아빠가 될 준비를 하며 교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