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시아는 너무 울어서 눈이 팅팅 부은 채 집에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대체 누가 이 동영상들을 올린 거야? 장하리에게 이럴 배짱이 있다고?! 그리고 성혜인 그년은 대체 뭐야! 지금 당장 그 여자의 계정을 지워버려, 빨리! 아니면 당장 그 여자를 고소해서 지위도 명예도 다 잃게 만들란 말이야!”그녀가 말을 마쳤지만, 온씨 집안에서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모두 숨죽인 채 있었다. 흠칫 놀란 온시아는 목소리가 불안해졌다.“왜 그래요? 그냥 평범한 여자 아니에요? 운이 좋아서 반승제를 휘어잡은 거잖아요.”“시아야, 이 일은 좀 복잡해.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성혜인 그 여자가 지금 반승제를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공주였어. 설씨 가문의 플로리아에서의 지위는 너도 알지? 설우현은 자신의 해외 SNS 계정을 통해 동생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어.”온시아는 믿을 수 없어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년이 어떻게 설씨 가문의 아가씨가 되었단 말인가?성혜인이 장하리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장하리는 S.M에서 평범한 직원이 아니었나?현장의 모든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혜인이 관여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때 누군가 제안했다.“아니면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시환 씨에게 성혜인의 연락처가 있지 않나요? 전화로 잘 얘기해 보면 오해가 풀릴지도 모르잖아요.”하지만 무슨 오해가 있단 말인가? 온시아가 장하리를 괴롭히는 영상은 여전히 인기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고, 성혜인은 분명 자신의 사람 편을 들어주고 있는 건데.온시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단 하루 만에 자신의 명성이 완전히 무너졌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업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온시아는 절망하며 얼굴을 감싸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사촌 오빠한테 연락해서 성혜인 연락처를 물어봐요. 내가 직접 얘기해 봐야겠어요. 장하리는 평범한 직원일 뿐인데, 성혜인이 정말 그 미천한 여자를 위해 온씨 가문과 적대적인 관
집안의 도우미가 와서 온시아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대표님, 들여보낼까요?”서주혁은 갑자기 온시아를 보는 것이 역겨워졌다. 다소곳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이런 상식 밖의 짓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아니요.”서주혁은 차가운 어조로 말한 후 코트를 집어 들고 뒷문으로 나갔다. 차가 한 펫샵 앞에 멈추고 나서야 저도 모르게 여기로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리가 죽었다. 이 일에 그도 어느 정도 책임이있으니, 마땅히 장하리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펫샵에 들어가서 매우 희귀한 품종견을 보자 왠지 그 회색의 믹스견이 더 귀엽고 예뻐 보였다.서주혁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새하얀 강아지를 골라 케이지에 넣고 장하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보았다. 장하리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서주혁은 곧장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반쯤 갔을 때, 서주혁은 문득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서주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 때문에 장하리가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며 계속 병원으로 향했다.열이 내린 후, 장하리는 깨어났다. 입술은 건조하고 갈라져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다. 장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고열에 시달리는 동안 그녀는 아리가 반갑게 작은 꼬리를 흔드는 꿈을 꾸고, 바지 끝을 물고 장난치는 꿈도 꾸었다. 그러다 다시 온시아가 아리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꿈을 꾸면서 동공이 삽시간에 수축하였다.그저 극심한 고통만 느껴졌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항상 이랬던 것 같았다. 그녀는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결코 지키지 못했다. 반려견조차도 지키지 못했고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유해은은 사골국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와 그녀의 옆에 놓았다.“지금 몸이 많이 약해졌으니 국물이라도 좀 마셔요.”장하리는 눈을 깜빡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녀는 기름이 살짝 떠 있는 국물을 보았지만 전
장하리는 “꺼져”라는 말조차도 하기가 귀찮아진 듯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마치 서주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서주혁의 머리는 국물로 온통 범벅이 되었고 이마는 맞아서 붉어졌다. 원래 불같은 성격을 지닌 그였지만, 이 순간에는 화를 억누르며 참고 있었다.서주혁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장하리의 수척해진 모습과 어젯밤 그녀의 뺨을 때렸던 일을 떠올리며 일시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강아지는 여기에 둘게.”서주혁이 막 말을 끝냈을 때, 장하리가 또 한 번 웃었다.“당신의 개랑 함께 꺼져요.”“장하리!”서주혁의 말투가 단호해지며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하지만 그는 장하리의 다음 말에 얼어붙었다.“또 제 뺨을 때리려고요, 서주혁 씨?”서주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은 마치 무언가에 심장을 관통당하는 것 같았다.둔탁한 통증 속에 날카로움이 약간 섞인 그런 느낌이었다.서주혁은 강아지 이동장을 든 채 일시에 무력함이 밀려와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어젯밤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장하리의 행동은 분명 미친 짓이었다. 또한 펄펄 끓는 물을 온시아에게 뿌린 후에 미쳐 날뛰었기에 만약 제재하지 않았다면 장하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서주혁은 단지 급한 마음에 그런 행동을 했을 뿐이다.그는 전에도 여자를 때려본 적이 없었다.서주혁은 갑자기 자신에게 반박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주혁의 마음속 장하리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도하고 교활한 그런 여자였기 때문이었다.서주혁은 심지어 장하리가 서씨 집안에 찾아간 이유가 자신에게 매달리기 위함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참지 않았었다.어젯밤과 같은 광경 속에서 장하리가 한 말은 정말 사람을 웃기는 소리였다. 온시아가 그녀를 찾아가서 아리를 빼앗아 갔다는 말을 내뱉었을 때 말이다.어릴 때부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온씨 집안 아가씨인 온시아가 어떻게 상식을 벗어난 그런 일
경찰은 서주혁에게 이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서주혁은 약간 멍해졌다. 이 자리에서, 이 바닥에서 이미 인심의 사악함을 다 보았노라고 자신했다.하지만 자신을 망칠지언정 딸까지 함께 끌어 내리려 하는, 더군다나 이렇게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서주혁은 갑자기 자신이 장하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경찰이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서주혁은 장하리가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서주혁의 눈에 비친 장하리는 항상 그런 여자였지 않았던가?그러나 이제 서주혁의 인식은 서서히 뒤바뀌고 있었다.온시아가 직접 집에 찾아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장하리는 눈앞에서 자신의 강아지를 빼앗기는 장면을 지켜보며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그리고 용기를 내어 서씨 집안을 찾아가 시비를 벌이던 장하리가 이성을 잃고 온시아에게 손찌검을 하려 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을까?사랑하는 사람에게 뺨을 맞고 엉망이 된 모습으로 떠날 때 장하리의 세상은 틀림없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서주혁은 평생을 순탄하게 살아왔고, 유독 어린 시절의 그 사건만이 그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을 뿐이었다. 반면 장하리는 일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다.서주혁은 갑자기 다시 치솟는 짜증과 함께 후회의 감정이 밀려왔다. 어젯밤, 그는 침착한 마음으로 장하리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를 면밀히 살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장하리를 대할 때 좀 더 인내심을 가졌어야 했고, 따귀 같은 것은 때리지 말았어야 했다.서주혁은 항상 그 따귀와 함께 무언가 소중한 것이 부서져 버린 듯한 느낌을 가졌다. 그것은 필사적으로 주우려고 해도 도무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서주혁은 어떤 여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서 줄곧 동정심과 연민으로 여겼다.예를 들어, 그가 오늘 저녁 새로운 강아지를 데리고 장하리를 찾아간 것도 동정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서주혁의 예상대로라면, 장하리는 감격에 겨워 기꺼이 받아들였어야 했다. 무
온시아는 온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천천히 아래로 스크롤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온씨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시아야, 너 인터넷에 올라온 소식 봤어? 회사 주가가 또 하락했어. 이번 일은 네가 확실히 지나쳤어. 공개적으로 사과해.”“인터넷에 올라온 욕설만 해도 이미 오백만 개가 넘었어. 지금 주주들도 의견이 분분해. 더 이상 잠자코 있으면 위에서 우리 가문에 조사가 내려올 거야.”온시아는 다리를 감싸고 계속 어깨를 떨었다.“싫어요! 절대 그년한테 사과 못 해요!”문밖에 있던 사람은 이 말을 듣자, 분노가 치밀었다.지금 어떤 상황인데 아직도 애처럼 투정이나 부리다니.“그래. 사과 안 할 거면 온씨 가문에서 널 제명한다고 발표할 거야. 앞으로 너의 개인적인 행위는 온씨 가문과 상관없으니, 알아서 해.”이처럼 큰 가문에 어디 소위 말하는 혈육 간의 정이 존재하던가. 온시아에게는 친오빠가 있었다. 현재 그녀의 일 때문에 친오빠의 가문 내에서의 입지도 영향을 받았다. 온시아의 부모는 당연히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고 했다.온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그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방금 귀국했을 때만 해도 집안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었다.서주혁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모두가 축하해주더니 한순간 전부 돌아섰다.온시아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래층으로 달려가 보니 온씨 가문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고,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온시아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도도한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제가 사과할게요. 당장 사과하면 되잖아요.”온씨 가문에서 쫓겨나면 모든 카드가 정지당할 것이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욕하고 있는데 길바닥에 나앉으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계란 세례와 썩은 나뭇잎일 것이다.온시아가 말했지만 현장에 있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들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어머니의
사람들에 의해 온씨 집안에서 끌려 나갔을 때에도 온시아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무릎까지 꿇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오빠마저 시선을 회피하며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채 침묵을 지켰다.예전의 아름다웠던 전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처참한 진실이 드러났다.전에만 해도 온시아는 장하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모두에게 버림받고, 서주혁마저 장하리를 버렸다. 장하리가 아무리 애원해도 서주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도 장하리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온시아 역시 모두에게 철저히 버림받았다.온시아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차에 앉아 한 별장에 왔다.“아가씨, 빨리 짐 챙기세요. 3시간 뒤면 비행기가 이륙할 거예요. 앞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마세요.”이 말은 운전기사가 온시아에게 한 말이며, 온씨 가문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온씨 가문은 이 결정을 인터넷에 공표하고 그 유가족에게 20억 원을 배상했다.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았다. 비난은 계속되었고, 온씨 가문과 관련된 모든 것이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짐을 모두 정리한 후, 온시아는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쏟았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어떻게... 잘못했다고요. 장하리를 찾아간 것도, 강아지를 빼앗은 것도 정말 잘못했어요.”하지만 이제 와서 사과해 봤자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눈이 팅팅 부어오른 온시아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서주혁을 한 번만 더 만나보고 싶었다.“주혁 씨의 별장으로 데려다주세요. 부탁할게요.”운전기사도 그녀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인터넷에 폭로된 영상의 내용이 너무나 심각해서 조금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온시아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온시아는 얼굴이 뜨겁고 아팠다. 그녀의 눈에 운전기사는 하인이나 다름없었다. 예전에는 이런 하인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눈치까지 봐야만 했다. 얼굴이 일그러진 온시
장하리는 온시아가 둘째 날에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유해은은 장하리가 펄쩍 뛰며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장하리는 한참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그래.”장하리는 살이 홀쭉 빠져서 턱선이 날카로워 자고 얼굴이 작아졌다.저녁에 잠잘 때 저도 모르게 아리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아리가 어떻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 걸지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무능한 자신이 싫었다.장하리가 걱정된 유해은은 정신과 전문의를 불러주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몸이 안 좋은 것뿐이라 좀 휴식하면 괜찮아질 거예요.”얼마 후 장하리는 집으로 보내졌고 집에는 아리의 사료와 물이 고스란히 그릇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리만 없었다.유해은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장하리는 얼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해은 씨, 며칠 동안 저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어요. 저는 집에서 몸조리를 잘할 테니까 먼저 가서 촬영해요.”유해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장하리에게 당부했다.“S.M그룹의 연예인이 아니면 반복적으로 신분 확인 후 업주의 허락을 받고 들여보내라고 관리실에 얘기해 뒀어요.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장하리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네. 알겠어요.”장하리의 웃음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보다 더 슬퍼 보였다.유해은이 떠난 후, 장하리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낯설게만 느껴졌다.몸이 아직 낫지 않은 장하리는 집에서 쉬어야 했다.장하리는 침대에 누워 폰을 봤다. 서주혁의 게시물을 본 장하리는 서주혁이 그녀한테 걸었던 차단을 푼 것을 발견했다.그전까지 장하리는 서주혁의 게시물을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서주혁도 게시물을 잘 올리지 않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서주혁은 글과 함께 하얀 강아지 사진을 게시했다.[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30분 전에 올린 게시물에 장하리와 서주혁의 친구인 온시환과 협력업체 몇 곳에서 그에게 댓글을 달아 조언을 해주었다.그중
아리카.성혜인은 줄곧 인터넷에 접속해 국내의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에 온시아의 욕으로 도배된 것을 본 후에야 성혜인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장하리한테 전화해 봤자 미안하다고 사과할 게 뻔해서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지금 누구도 선뜻 장하리한테 연락하지 못했다. 모두 장하리가 혼자 조용히 쉴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두었다.성혜인은 눈이 시려서 눈을 비비적대며 컴퓨터를 내려놓았다.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여자는 성혜인에게 말했다.“임신했으니 되도록 전자제품을 멀리하세요.”성혜인은 이내 욕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고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붉은 핏줄이 서려 있었다.반승제가 아무런 소식도 없자 성혜인은 한 주일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다. 한밤중에 악몽을 꾸다 놀라서 깨나는 경우가 빈번했다.국내 여론을 잠재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성혜인은 피로가 밀려왔다.그 뒤, 또 하루를 기다렸지만 반승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성혜인은 먼저 설우현한테 연락해 혹시 발견한 단서가 없는지 물었다.“아직 발견된 건 없어. 혜인아. 너무 급해하지 마. 연구기지의 구조가 워낙 복잡해서 당분간 걔네와 연락이 닿긴 힘들 거야.”“구금성에 무슨 일이라도 난 거예요?”성혜인은 나하늘이 아직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꺼린다고 예측했다.구금성 얘기만 나오면 설우현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전처럼 똑같아. 접촉만 하면 소리 지르기 바쁘고 도저히 소통이 안 돼. 작업팀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지하실이 너무 교묘하게 설계된 탓에 몇 개월은 걸려야 할 것 같아.”얘기를 들은 성혜인은 마음이 무거워져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전화를 끊었다.반승제가 아무리 걱정되어도 성혜인은 호텔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한편 연구기지에서 반승제는 몇 날을 거쳐 드디어 구금성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아직 설기웅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최용호와 많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어느새 어두워진 저녁, 반승제는 또 약물을 한 움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