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는 “꺼져”라는 말조차도 하기가 귀찮아진 듯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마치 서주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서주혁의 머리는 국물로 온통 범벅이 되었고 이마는 맞아서 붉어졌다. 원래 불같은 성격을 지닌 그였지만, 이 순간에는 화를 억누르며 참고 있었다.서주혁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장하리의 수척해진 모습과 어젯밤 그녀의 뺨을 때렸던 일을 떠올리며 일시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강아지는 여기에 둘게.”서주혁이 막 말을 끝냈을 때, 장하리가 또 한 번 웃었다.“당신의 개랑 함께 꺼져요.”“장하리!”서주혁의 말투가 단호해지며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하지만 그는 장하리의 다음 말에 얼어붙었다.“또 제 뺨을 때리려고요, 서주혁 씨?”서주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은 마치 무언가에 심장을 관통당하는 것 같았다.둔탁한 통증 속에 날카로움이 약간 섞인 그런 느낌이었다.서주혁은 강아지 이동장을 든 채 일시에 무력함이 밀려와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어젯밤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장하리의 행동은 분명 미친 짓이었다. 또한 펄펄 끓는 물을 온시아에게 뿌린 후에 미쳐 날뛰었기에 만약 제재하지 않았다면 장하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서주혁은 단지 급한 마음에 그런 행동을 했을 뿐이다.그는 전에도 여자를 때려본 적이 없었다.서주혁은 갑자기 자신에게 반박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주혁의 마음속 장하리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도하고 교활한 그런 여자였기 때문이었다.서주혁은 심지어 장하리가 서씨 집안에 찾아간 이유가 자신에게 매달리기 위함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참지 않았었다.어젯밤과 같은 광경 속에서 장하리가 한 말은 정말 사람을 웃기는 소리였다. 온시아가 그녀를 찾아가서 아리를 빼앗아 갔다는 말을 내뱉었을 때 말이다.어릴 때부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온씨 집안 아가씨인 온시아가 어떻게 상식을 벗어난 그런 일
경찰은 서주혁에게 이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서주혁은 약간 멍해졌다. 이 자리에서, 이 바닥에서 이미 인심의 사악함을 다 보았노라고 자신했다.하지만 자신을 망칠지언정 딸까지 함께 끌어 내리려 하는, 더군다나 이렇게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서주혁은 갑자기 자신이 장하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경찰이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서주혁은 장하리가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서주혁의 눈에 비친 장하리는 항상 그런 여자였지 않았던가?그러나 이제 서주혁의 인식은 서서히 뒤바뀌고 있었다.온시아가 직접 집에 찾아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장하리는 눈앞에서 자신의 강아지를 빼앗기는 장면을 지켜보며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그리고 용기를 내어 서씨 집안을 찾아가 시비를 벌이던 장하리가 이성을 잃고 온시아에게 손찌검을 하려 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을까?사랑하는 사람에게 뺨을 맞고 엉망이 된 모습으로 떠날 때 장하리의 세상은 틀림없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서주혁은 평생을 순탄하게 살아왔고, 유독 어린 시절의 그 사건만이 그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을 뿐이었다. 반면 장하리는 일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다.서주혁은 갑자기 다시 치솟는 짜증과 함께 후회의 감정이 밀려왔다. 어젯밤, 그는 침착한 마음으로 장하리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를 면밀히 살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장하리를 대할 때 좀 더 인내심을 가졌어야 했고, 따귀 같은 것은 때리지 말았어야 했다.서주혁은 항상 그 따귀와 함께 무언가 소중한 것이 부서져 버린 듯한 느낌을 가졌다. 그것은 필사적으로 주우려고 해도 도무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서주혁은 어떤 여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서 줄곧 동정심과 연민으로 여겼다.예를 들어, 그가 오늘 저녁 새로운 강아지를 데리고 장하리를 찾아간 것도 동정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서주혁의 예상대로라면, 장하리는 감격에 겨워 기꺼이 받아들였어야 했다. 무
온시아는 온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천천히 아래로 스크롤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온씨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시아야, 너 인터넷에 올라온 소식 봤어? 회사 주가가 또 하락했어. 이번 일은 네가 확실히 지나쳤어. 공개적으로 사과해.”“인터넷에 올라온 욕설만 해도 이미 오백만 개가 넘었어. 지금 주주들도 의견이 분분해. 더 이상 잠자코 있으면 위에서 우리 가문에 조사가 내려올 거야.”온시아는 다리를 감싸고 계속 어깨를 떨었다.“싫어요! 절대 그년한테 사과 못 해요!”문밖에 있던 사람은 이 말을 듣자, 분노가 치밀었다.지금 어떤 상황인데 아직도 애처럼 투정이나 부리다니.“그래. 사과 안 할 거면 온씨 가문에서 널 제명한다고 발표할 거야. 앞으로 너의 개인적인 행위는 온씨 가문과 상관없으니, 알아서 해.”이처럼 큰 가문에 어디 소위 말하는 혈육 간의 정이 존재하던가. 온시아에게는 친오빠가 있었다. 현재 그녀의 일 때문에 친오빠의 가문 내에서의 입지도 영향을 받았다. 온시아의 부모는 당연히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고 했다.온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그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방금 귀국했을 때만 해도 집안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었다.서주혁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모두가 축하해주더니 한순간 전부 돌아섰다.온시아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래층으로 달려가 보니 온씨 가문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고,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온시아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도도한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제가 사과할게요. 당장 사과하면 되잖아요.”온씨 가문에서 쫓겨나면 모든 카드가 정지당할 것이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욕하고 있는데 길바닥에 나앉으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계란 세례와 썩은 나뭇잎일 것이다.온시아가 말했지만 현장에 있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들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어머니의
사람들에 의해 온씨 집안에서 끌려 나갔을 때에도 온시아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무릎까지 꿇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오빠마저 시선을 회피하며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채 침묵을 지켰다.예전의 아름다웠던 전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처참한 진실이 드러났다.전에만 해도 온시아는 장하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모두에게 버림받고, 서주혁마저 장하리를 버렸다. 장하리가 아무리 애원해도 서주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도 장하리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온시아 역시 모두에게 철저히 버림받았다.온시아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차에 앉아 한 별장에 왔다.“아가씨, 빨리 짐 챙기세요. 3시간 뒤면 비행기가 이륙할 거예요. 앞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마세요.”이 말은 운전기사가 온시아에게 한 말이며, 온씨 가문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온씨 가문은 이 결정을 인터넷에 공표하고 그 유가족에게 20억 원을 배상했다.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았다. 비난은 계속되었고, 온씨 가문과 관련된 모든 것이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짐을 모두 정리한 후, 온시아는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쏟았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어떻게... 잘못했다고요. 장하리를 찾아간 것도, 강아지를 빼앗은 것도 정말 잘못했어요.”하지만 이제 와서 사과해 봤자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눈이 팅팅 부어오른 온시아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서주혁을 한 번만 더 만나보고 싶었다.“주혁 씨의 별장으로 데려다주세요. 부탁할게요.”운전기사도 그녀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인터넷에 폭로된 영상의 내용이 너무나 심각해서 조금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온시아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온시아는 얼굴이 뜨겁고 아팠다. 그녀의 눈에 운전기사는 하인이나 다름없었다. 예전에는 이런 하인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눈치까지 봐야만 했다. 얼굴이 일그러진 온시
장하리는 온시아가 둘째 날에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유해은은 장하리가 펄쩍 뛰며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장하리는 한참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그래.”장하리는 살이 홀쭉 빠져서 턱선이 날카로워 자고 얼굴이 작아졌다.저녁에 잠잘 때 저도 모르게 아리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아리가 어떻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 걸지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무능한 자신이 싫었다.장하리가 걱정된 유해은은 정신과 전문의를 불러주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몸이 안 좋은 것뿐이라 좀 휴식하면 괜찮아질 거예요.”얼마 후 장하리는 집으로 보내졌고 집에는 아리의 사료와 물이 고스란히 그릇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리만 없었다.유해은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장하리는 얼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해은 씨, 며칠 동안 저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어요. 저는 집에서 몸조리를 잘할 테니까 먼저 가서 촬영해요.”유해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장하리에게 당부했다.“S.M그룹의 연예인이 아니면 반복적으로 신분 확인 후 업주의 허락을 받고 들여보내라고 관리실에 얘기해 뒀어요.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장하리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네. 알겠어요.”장하리의 웃음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보다 더 슬퍼 보였다.유해은이 떠난 후, 장하리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낯설게만 느껴졌다.몸이 아직 낫지 않은 장하리는 집에서 쉬어야 했다.장하리는 침대에 누워 폰을 봤다. 서주혁의 게시물을 본 장하리는 서주혁이 그녀한테 걸었던 차단을 푼 것을 발견했다.그전까지 장하리는 서주혁의 게시물을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서주혁도 게시물을 잘 올리지 않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서주혁은 글과 함께 하얀 강아지 사진을 게시했다.[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30분 전에 올린 게시물에 장하리와 서주혁의 친구인 온시환과 협력업체 몇 곳에서 그에게 댓글을 달아 조언을 해주었다.그중
아리카.성혜인은 줄곧 인터넷에 접속해 국내의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에 온시아의 욕으로 도배된 것을 본 후에야 성혜인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장하리한테 전화해 봤자 미안하다고 사과할 게 뻔해서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지금 누구도 선뜻 장하리한테 연락하지 못했다. 모두 장하리가 혼자 조용히 쉴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두었다.성혜인은 눈이 시려서 눈을 비비적대며 컴퓨터를 내려놓았다.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여자는 성혜인에게 말했다.“임신했으니 되도록 전자제품을 멀리하세요.”성혜인은 이내 욕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고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붉은 핏줄이 서려 있었다.반승제가 아무런 소식도 없자 성혜인은 한 주일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다. 한밤중에 악몽을 꾸다 놀라서 깨나는 경우가 빈번했다.국내 여론을 잠재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성혜인은 피로가 밀려왔다.그 뒤, 또 하루를 기다렸지만 반승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성혜인은 먼저 설우현한테 연락해 혹시 발견한 단서가 없는지 물었다.“아직 발견된 건 없어. 혜인아. 너무 급해하지 마. 연구기지의 구조가 워낙 복잡해서 당분간 걔네와 연락이 닿긴 힘들 거야.”“구금성에 무슨 일이라도 난 거예요?”성혜인은 나하늘이 아직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꺼린다고 예측했다.구금성 얘기만 나오면 설우현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전처럼 똑같아. 접촉만 하면 소리 지르기 바쁘고 도저히 소통이 안 돼. 작업팀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지하실이 너무 교묘하게 설계된 탓에 몇 개월은 걸려야 할 것 같아.”얘기를 들은 성혜인은 마음이 무거워져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전화를 끊었다.반승제가 아무리 걱정되어도 성혜인은 호텔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한편 연구기지에서 반승제는 몇 날을 거쳐 드디어 구금성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아직 설기웅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최용호와 많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어느새 어두워진 저녁, 반승제는 또 약물을 한 움큼
젊은 남성은 잔뜩 들떠서 사라를 바라보았다.“박사님 진세운한테 불만이라도 있나 봐요? 진세운은 저희가 다음 타자로 올려보낼 사람인데 말이죠.”사라는 계속 시험관을 만지작거리며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딱히 제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에요.”임원들은 모두 사라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반승제는 사라의 맞은편에 서서 스크린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임원들의 회의실은 그들이 있는 곳과 다른 구역에 있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도 다르고 연구 기지와 완전히 다른 색의 페인트를 했다.가장 큰 의문점은 임원들의 뒷배경은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한참이 지나도록 그 뒷배경을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연구기지 내부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관찰했다.자세히 관찰한 끝에 임원들이 연구기지에도 칸다에도 없을 거라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다.연구 기지에서 7명의 임원의 신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임원이기에 마스크를 쓰며 신분을 숨겨야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혹은 임원들끼리도 서로의 신분을 모른 채 비즈니스만 하고 있을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반승제는 손 한쪽을 부들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그가 만약 임원중 한 명이었다면 절대 혼자 아리카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아리카에 오면 사람들의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최근 플로리아 지역에 큰 회의가 자주 열려 여러 나라의 임원들이 참여했기에 이때만큼 절호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이 몇 명의 임원들이 현재 플로리아에 있을 것이다.임원 중 유일하게 얼굴을 내놓은 젊은 남자는 아마 다른 나라에서 직위가 비교적 낮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당당하게 얼굴을 내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반승제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러자 사라는 이미 회의를 끝마치고 조용히 계속 연구에 몰두했다.반승제는 손에 든 시약을 무심코 바라보며 아마도 그들의
‘뭘 축하한다는 거야?’진세운은 옛날부터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배지를 지금은 손을 뻗어 만질 수 없었다.오히려 진백운은 배지를 가지고 놀다가 정중하게 진세운의 품에 던졌다.진세운은 갑자기 돌덩이가 가슴에 얹힌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그때 무언가가 굳게 닫힌 철창 사이를 뚫고 나왔다.진세운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가슴팍으로 떨어진 배지를 내려다보며 진백운을 밀어냈다.진백운은 조심스럽게 그를 힐끔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켜 방에서 나갔다.문이 닫히고 진세운은 문득 짜증이 몰려왔다. 이윽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다시 진세운을 뒤덮었다.진세운은 심호흡 깊게 하고 담배 한 대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밖에서 갑자기 큰 고함이 들려왔다.그 소리는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진세운은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고 홀에 가서 상황을 살폈다.그가 도착했을 때 홀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8번 실험체가 누군가에 의해 풀려나와 총성이 귀를 울려댔다.총성과 함께 흰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홀을 자욱하게 뒤덮었다.홀 안의 연구원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저 살인 무기의 눈에 띄어서 살이 갈기갈기 찢길까 봐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살인 무기는 연구원을 가장 싫어했다. 그의 손에서 죽어 나간 연구원만 최소 10명이었다.유리 벽의 보호에서 벗어난 연구원은 살인 무기의 눈에는 땅거미가 따로 없었다.어떤 이들은 필사적으로 다른 곳으로 도망쳐보려 했지만 이미 혼란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사람들 사이에 숨어 함께 도망가려던 반승제는 갑자기 최용호의 목소리를 들었다.“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실험체를 가둬둔 작은 방마다 디지털 도어락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살인 무기들은 주먹 한 번으로 도어락을 부수고 짐승처럼 달려들었다.반승제는 눈이 반짝이더니 8번 실험체에게 다가갔다.실험체가 최용호를 밀치자 그는 몇 발짝 뒤로 밀려났다. 최용호는 단 한 번도 힘이 이렇게 센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실험체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