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서주혁에게 이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서주혁은 약간 멍해졌다. 이 자리에서, 이 바닥에서 이미 인심의 사악함을 다 보았노라고 자신했다.하지만 자신을 망칠지언정 딸까지 함께 끌어 내리려 하는, 더군다나 이렇게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서주혁은 갑자기 자신이 장하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경찰이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서주혁은 장하리가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서주혁의 눈에 비친 장하리는 항상 그런 여자였지 않았던가?그러나 이제 서주혁의 인식은 서서히 뒤바뀌고 있었다.온시아가 직접 집에 찾아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장하리는 눈앞에서 자신의 강아지를 빼앗기는 장면을 지켜보며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그리고 용기를 내어 서씨 집안을 찾아가 시비를 벌이던 장하리가 이성을 잃고 온시아에게 손찌검을 하려 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을까?사랑하는 사람에게 뺨을 맞고 엉망이 된 모습으로 떠날 때 장하리의 세상은 틀림없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서주혁은 평생을 순탄하게 살아왔고, 유독 어린 시절의 그 사건만이 그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을 뿐이었다. 반면 장하리는 일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다.서주혁은 갑자기 다시 치솟는 짜증과 함께 후회의 감정이 밀려왔다. 어젯밤, 그는 침착한 마음으로 장하리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를 면밀히 살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장하리를 대할 때 좀 더 인내심을 가졌어야 했고, 따귀 같은 것은 때리지 말았어야 했다.서주혁은 항상 그 따귀와 함께 무언가 소중한 것이 부서져 버린 듯한 느낌을 가졌다. 그것은 필사적으로 주우려고 해도 도무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서주혁은 어떤 여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서 줄곧 동정심과 연민으로 여겼다.예를 들어, 그가 오늘 저녁 새로운 강아지를 데리고 장하리를 찾아간 것도 동정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서주혁의 예상대로라면, 장하리는 감격에 겨워 기꺼이 받아들였어야 했다. 무
온시아는 온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천천히 아래로 스크롤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온씨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시아야, 너 인터넷에 올라온 소식 봤어? 회사 주가가 또 하락했어. 이번 일은 네가 확실히 지나쳤어. 공개적으로 사과해.”“인터넷에 올라온 욕설만 해도 이미 오백만 개가 넘었어. 지금 주주들도 의견이 분분해. 더 이상 잠자코 있으면 위에서 우리 가문에 조사가 내려올 거야.”온시아는 다리를 감싸고 계속 어깨를 떨었다.“싫어요! 절대 그년한테 사과 못 해요!”문밖에 있던 사람은 이 말을 듣자, 분노가 치밀었다.지금 어떤 상황인데 아직도 애처럼 투정이나 부리다니.“그래. 사과 안 할 거면 온씨 가문에서 널 제명한다고 발표할 거야. 앞으로 너의 개인적인 행위는 온씨 가문과 상관없으니, 알아서 해.”이처럼 큰 가문에 어디 소위 말하는 혈육 간의 정이 존재하던가. 온시아에게는 친오빠가 있었다. 현재 그녀의 일 때문에 친오빠의 가문 내에서의 입지도 영향을 받았다. 온시아의 부모는 당연히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고 했다.온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그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방금 귀국했을 때만 해도 집안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었다.서주혁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모두가 축하해주더니 한순간 전부 돌아섰다.온시아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래층으로 달려가 보니 온씨 가문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고,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온시아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도도한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제가 사과할게요. 당장 사과하면 되잖아요.”온씨 가문에서 쫓겨나면 모든 카드가 정지당할 것이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욕하고 있는데 길바닥에 나앉으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계란 세례와 썩은 나뭇잎일 것이다.온시아가 말했지만 현장에 있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들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어머니의
사람들에 의해 온씨 집안에서 끌려 나갔을 때에도 온시아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무릎까지 꿇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오빠마저 시선을 회피하며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채 침묵을 지켰다.예전의 아름다웠던 전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처참한 진실이 드러났다.전에만 해도 온시아는 장하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모두에게 버림받고, 서주혁마저 장하리를 버렸다. 장하리가 아무리 애원해도 서주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도 장하리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온시아 역시 모두에게 철저히 버림받았다.온시아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차에 앉아 한 별장에 왔다.“아가씨, 빨리 짐 챙기세요. 3시간 뒤면 비행기가 이륙할 거예요. 앞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마세요.”이 말은 운전기사가 온시아에게 한 말이며, 온씨 가문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온씨 가문은 이 결정을 인터넷에 공표하고 그 유가족에게 20억 원을 배상했다.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았다. 비난은 계속되었고, 온씨 가문과 관련된 모든 것이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짐을 모두 정리한 후, 온시아는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쏟았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어떻게... 잘못했다고요. 장하리를 찾아간 것도, 강아지를 빼앗은 것도 정말 잘못했어요.”하지만 이제 와서 사과해 봤자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눈이 팅팅 부어오른 온시아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서주혁을 한 번만 더 만나보고 싶었다.“주혁 씨의 별장으로 데려다주세요. 부탁할게요.”운전기사도 그녀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인터넷에 폭로된 영상의 내용이 너무나 심각해서 조금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온시아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온시아는 얼굴이 뜨겁고 아팠다. 그녀의 눈에 운전기사는 하인이나 다름없었다. 예전에는 이런 하인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눈치까지 봐야만 했다. 얼굴이 일그러진 온시
장하리는 온시아가 둘째 날에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유해은은 장하리가 펄쩍 뛰며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장하리는 한참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그래.”장하리는 살이 홀쭉 빠져서 턱선이 날카로워 자고 얼굴이 작아졌다.저녁에 잠잘 때 저도 모르게 아리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아리가 어떻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 걸지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무능한 자신이 싫었다.장하리가 걱정된 유해은은 정신과 전문의를 불러주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몸이 안 좋은 것뿐이라 좀 휴식하면 괜찮아질 거예요.”얼마 후 장하리는 집으로 보내졌고 집에는 아리의 사료와 물이 고스란히 그릇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리만 없었다.유해은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장하리는 얼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해은 씨, 며칠 동안 저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어요. 저는 집에서 몸조리를 잘할 테니까 먼저 가서 촬영해요.”유해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장하리에게 당부했다.“S.M그룹의 연예인이 아니면 반복적으로 신분 확인 후 업주의 허락을 받고 들여보내라고 관리실에 얘기해 뒀어요.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장하리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네. 알겠어요.”장하리의 웃음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보다 더 슬퍼 보였다.유해은이 떠난 후, 장하리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낯설게만 느껴졌다.몸이 아직 낫지 않은 장하리는 집에서 쉬어야 했다.장하리는 침대에 누워 폰을 봤다. 서주혁의 게시물을 본 장하리는 서주혁이 그녀한테 걸었던 차단을 푼 것을 발견했다.그전까지 장하리는 서주혁의 게시물을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서주혁도 게시물을 잘 올리지 않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서주혁은 글과 함께 하얀 강아지 사진을 게시했다.[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30분 전에 올린 게시물에 장하리와 서주혁의 친구인 온시환과 협력업체 몇 곳에서 그에게 댓글을 달아 조언을 해주었다.그중
아리카.성혜인은 줄곧 인터넷에 접속해 국내의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에 온시아의 욕으로 도배된 것을 본 후에야 성혜인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장하리한테 전화해 봤자 미안하다고 사과할 게 뻔해서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지금 누구도 선뜻 장하리한테 연락하지 못했다. 모두 장하리가 혼자 조용히 쉴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두었다.성혜인은 눈이 시려서 눈을 비비적대며 컴퓨터를 내려놓았다.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여자는 성혜인에게 말했다.“임신했으니 되도록 전자제품을 멀리하세요.”성혜인은 이내 욕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고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붉은 핏줄이 서려 있었다.반승제가 아무런 소식도 없자 성혜인은 한 주일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다. 한밤중에 악몽을 꾸다 놀라서 깨나는 경우가 빈번했다.국내 여론을 잠재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성혜인은 피로가 밀려왔다.그 뒤, 또 하루를 기다렸지만 반승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성혜인은 먼저 설우현한테 연락해 혹시 발견한 단서가 없는지 물었다.“아직 발견된 건 없어. 혜인아. 너무 급해하지 마. 연구기지의 구조가 워낙 복잡해서 당분간 걔네와 연락이 닿긴 힘들 거야.”“구금성에 무슨 일이라도 난 거예요?”성혜인은 나하늘이 아직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꺼린다고 예측했다.구금성 얘기만 나오면 설우현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전처럼 똑같아. 접촉만 하면 소리 지르기 바쁘고 도저히 소통이 안 돼. 작업팀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지하실이 너무 교묘하게 설계된 탓에 몇 개월은 걸려야 할 것 같아.”얘기를 들은 성혜인은 마음이 무거워져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전화를 끊었다.반승제가 아무리 걱정되어도 성혜인은 호텔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한편 연구기지에서 반승제는 몇 날을 거쳐 드디어 구금성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아직 설기웅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최용호와 많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어느새 어두워진 저녁, 반승제는 또 약물을 한 움큼
젊은 남성은 잔뜩 들떠서 사라를 바라보았다.“박사님 진세운한테 불만이라도 있나 봐요? 진세운은 저희가 다음 타자로 올려보낼 사람인데 말이죠.”사라는 계속 시험관을 만지작거리며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딱히 제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에요.”임원들은 모두 사라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반승제는 사라의 맞은편에 서서 스크린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임원들의 회의실은 그들이 있는 곳과 다른 구역에 있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도 다르고 연구 기지와 완전히 다른 색의 페인트를 했다.가장 큰 의문점은 임원들의 뒷배경은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한참이 지나도록 그 뒷배경을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연구기지 내부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관찰했다.자세히 관찰한 끝에 임원들이 연구기지에도 칸다에도 없을 거라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다.연구 기지에서 7명의 임원의 신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임원이기에 마스크를 쓰며 신분을 숨겨야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혹은 임원들끼리도 서로의 신분을 모른 채 비즈니스만 하고 있을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반승제는 손 한쪽을 부들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그가 만약 임원중 한 명이었다면 절대 혼자 아리카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아리카에 오면 사람들의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최근 플로리아 지역에 큰 회의가 자주 열려 여러 나라의 임원들이 참여했기에 이때만큼 절호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이 몇 명의 임원들이 현재 플로리아에 있을 것이다.임원 중 유일하게 얼굴을 내놓은 젊은 남자는 아마 다른 나라에서 직위가 비교적 낮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당당하게 얼굴을 내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반승제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러자 사라는 이미 회의를 끝마치고 조용히 계속 연구에 몰두했다.반승제는 손에 든 시약을 무심코 바라보며 아마도 그들의
‘뭘 축하한다는 거야?’진세운은 옛날부터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배지를 지금은 손을 뻗어 만질 수 없었다.오히려 진백운은 배지를 가지고 놀다가 정중하게 진세운의 품에 던졌다.진세운은 갑자기 돌덩이가 가슴에 얹힌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그때 무언가가 굳게 닫힌 철창 사이를 뚫고 나왔다.진세운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가슴팍으로 떨어진 배지를 내려다보며 진백운을 밀어냈다.진백운은 조심스럽게 그를 힐끔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켜 방에서 나갔다.문이 닫히고 진세운은 문득 짜증이 몰려왔다. 이윽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다시 진세운을 뒤덮었다.진세운은 심호흡 깊게 하고 담배 한 대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밖에서 갑자기 큰 고함이 들려왔다.그 소리는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진세운은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고 홀에 가서 상황을 살폈다.그가 도착했을 때 홀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8번 실험체가 누군가에 의해 풀려나와 총성이 귀를 울려댔다.총성과 함께 흰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홀을 자욱하게 뒤덮었다.홀 안의 연구원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저 살인 무기의 눈에 띄어서 살이 갈기갈기 찢길까 봐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살인 무기는 연구원을 가장 싫어했다. 그의 손에서 죽어 나간 연구원만 최소 10명이었다.유리 벽의 보호에서 벗어난 연구원은 살인 무기의 눈에는 땅거미가 따로 없었다.어떤 이들은 필사적으로 다른 곳으로 도망쳐보려 했지만 이미 혼란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사람들 사이에 숨어 함께 도망가려던 반승제는 갑자기 최용호의 목소리를 들었다.“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실험체를 가둬둔 작은 방마다 디지털 도어락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살인 무기들은 주먹 한 번으로 도어락을 부수고 짐승처럼 달려들었다.반승제는 눈이 반짝이더니 8번 실험체에게 다가갔다.실험체가 최용호를 밀치자 그는 몇 발짝 뒤로 밀려났다. 최용호는 단 한 번도 힘이 이렇게 센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실험체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
소리를 듣자마자 반승제는 소리의 주인공이 그날 홀에서 제복을 입은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반승제의 예측대로라면 남자는 플로리아에서 회의에 참석했어야 했다. 연구 기지 곳곳에 CCTV가 널려있어 언제든지 들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이렇게 빨리 발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두뇌 회전이 빠른 반승제는 짐승을 가둬둔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굶주린 짐승들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옆에서 지켜보던 최용호는 물었다.“이 방법이 소용이 있어요? 저희가 겨우 혼란을 만들었는데 이상한 벨 소리 하나로 단번에 해결되었어요. 이곳 사람들이 이미 최면에 걸려 그 벨 소리만 들으면 어떤 상황이든지 바로 정신을 차릴 것 같아요.”“소용 있을 거예요. 이 짐승들은 길들었기에 풀어주면 미쳐 도망치려고 할 거예요. 저놈들은 여태까지 철창 안에 버려진 사람만 먹었었기에 철창 밖의 사람은 무서워할 거예요. 두려움이 극치에 다다르면 저놈들은 미쳐버릴 거예요. 저희는 저놈들이 미쳐버려 혼란스러운 틈을 타 설 대표님을 찾는 거예요.”설기웅은 최용호와 같은 날에 들어왔지만 여태껏 설기웅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반승제는 점점 걱정이 밀려왔다. 임원들 사이에 설기웅이 없다면 실험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실험체가 되어 매일 실험을 당하면 살아남기에 힘들 것이다.얼마 후, 모든 짐승이 철창에서 나왔고 반승제가 말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짐승들은 벽에 부딪히고 울부짖으며 탈출구를 찾으려 애썼다.안정을 되찾았던 연구원은 철창에서 나온 짐승들이 실험기구와 약병들을 뒤엎는 모습을 보고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한편, 반승제와 최용호는 세 구역을 찾아보고 유리 상자에 갇힌 실험체도 일일이 확인했지만 설기웅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도 없다면 설기웅이 어디에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반승제가 고개를 들어 사방으로 둘러보다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결국 반승제는 발길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고 최용호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홀에 도착한 후, 반승제는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