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마디를 마친 뒤 장하리는 잔 속의 술을 깨끗이 비웠다.빈 술잔을 예의 바르게 한쪽 쟁반에 올려놓고 주변을 향해 웃어 보였다.“실례했네요.”장하리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너무 논리정연한 말들이었으므로 주위 사람들이 곧 너도나도 귓속말하기 시작했다.맞는 말이지. 어머니가 정말 딸을 사랑한다면 음침하게 계획적으로 이런 중요한 자리에 나설까? 게다가 고의로 행패를 부려 일부러 장하리를 망신시켰다.여린 여자가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쉽지 않았다. 장하리가 S.M에서 유명한 워커홀릭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딸을 망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친어머니가 있다면 대체 누가 그 서러움을 견딜 수 있을까.장하리를 경멸하던 시선들이 슬픔과 동정으로 변했다.노임향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장하리가 이렇게 모질게 사람들 앞에서 저를 내칠 줄은 몰랐다.모두 빌어먹을 그 성혜인 때문이다.노임향은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고, 돌아서서 서주혁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그의 표정을 보곤 굳어버렸다.“나가세요.”서주혁이 곁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눈짓했다.노임향은 그의 눈빛이 마치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아 두려워졌다.그녀는 온몸을 덜덜 떨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보다 오히려 남편이 몸부림치려다 배를 심하게 걷어차였다.남편을 뼛속까지 사랑하는 노임향은 이건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받는 고통까지 모두 대신하고 싶었다.“이 천벌 받을 연놈들. 여보, 여보 괜찮아요? 장하리 그 미친 계집애가 돈 많이 버니까 우릴 모른 척하는 거 봐요! 여보 화내지 말아요. 제가 다른 방법 생각해 볼게요!”노임향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피가 섞인 친딸임에도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니. 보아하니 사석에서는 더 심하게 욕할 듯했다.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으면 저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할까.홀 안은 순식간에 찬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장하리가 아닌 장하리의 어머니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대체
곧이어 차와 부딪혀 몸이 날아가 옆 산비탈로 떨어졌다.차 안에 있던 운전자가 화를 내며 핸들을 쾅쾅 치며 침을 뱉었다.“시X. 밑으로 떨어졌어. 치어 죽어야 하는데!”“됐어. 비탈로 떨어졌으니 죽지 못했어도 만신창이가 됐을 거야. 일단 가자. 근처에 카메라가 많아. 수십억을 위해 우리까지 일에 가담될 수는 없잖아.”“내려가 볼까?”“보긴 뭘 봐! 가자고. 차 오겠어.”두 사람은 곧 황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비가 내렸으므로 도로는 질퍽했다.장하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하늘은 여전히 캄캄했고, 그녀는 온몸이 아팠다.겨우 몸을 뒤척였는데 뼈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얼굴에는 차가운 빗물이 사정없이 내리쳤고 너무 외진 곳이었으므로 아무도 그녀를 발견할 수도, 대신 신고해 줄 수도 없었다.장하리는 탐색을 위해 앞으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고, 극심한 고통에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수많은 바늘이 피부에 박힌 듯한 느낌에 장하리는 손가락을 덜덜 떨고 있었다.땅은 젖어있었고 습기가 몸에 스며들었지만 장하리는 추위도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싶다는 집념만 강했다.누군가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정말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감각이 없어진 다리를 질질 끌며 겨우겨우 가방 앞으로 기어간 장하리는 가방에 그대로 있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오직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무의식적으로 단축키를 누른 그녀는 자신이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진작 차단당했었다.통화 중이라고 뜨는 전화기에 장하리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손가락을 떨며 계속 전화를 걸었다.이때 서주혁은 병원에서 온시아를 거들고 있었다.금방 위세척을 한 의사는 중독이라고 했다. 노임향 외에 다른 용의자는 없었기에 서주혁은 즉시 사람을 보내 심문하도록 했다.그러나 노임향은 장하리가 시킨 일이라며 입을 다물었다.그는 고민하다 장하리의 차단했던 연락처를 풀었다.막 차단을 푸는 순간 장하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
이곳은 작은 비탈길로 사고를 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아래로 내려가려면 울퉁불퉁한 풀밭을 먼저 지나가야 했다.비로 인해 도로가 더욱 질퍽거렸지만 장하리는 이런 것들을 고려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머리를 지배했다.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렇게 쉽게 죽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앞으로 한 보 기어가자 온몸의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기어갔을까, 그녀가 기어간 곳을 따라 핏물이 고였으나 비에 의해 곧 지워졌다.시간의 흐름이 이렇게 고된 적은 없었다. 장하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시간관념도 없이 단지 조금 더, 조금 더 기어갈 생각만 했다.앞에 차가 지나다녔다. 길가에 도착한 것 같음을 느꼈지만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간절히 빌었다.누구든지 상관없었다.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한 검은 승용차의 뒷좌석에 강민지가 유리창에 기대어 있었다. 그 옆에는 신예준이, 앞에는 운전자가 타고 있었다.오늘 밤 신예준은 자비를 베풀어 드라이브한다고 했다.하지만 겨우 도로에서 바람을 쐬는 것뿐, 30분 후면 돌아가야 했다.강민지는 도로에 누워있는 한 여인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차 세워요.”차를 몰던 운전자는 멈추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사이드미러로 신예준을 바라보았다.이제 강민지의 명령은 명령이 아니게 되었다. 강씨 가문의 운명이 모두 신예준의 손에 달렸으니까.신예준이 화가 나면 강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쫓겨나야 했다.신예준은 무릎 위에 서류를 올려놓고 조용히 보고 있었다.그는 고오했으며 무심했다.아마 원래 이런 모습이었을 수도 예전의 모습이 가짜였을 수도 있다.운전사가 제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강민지가 신예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차 세워요.”신예준이 느릿느릿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하지 않은 채 물었다.“뭐 하게?”강민지가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사람 살려야죠
밖에는 여전히 비가 왔고 차는 멈춰 섰다.차 안의 모든 사람들은 침묵을 지켰고 강민지는 신예준이 아직 만족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손을 꼭 쥐자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강민지는 애써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신 대표님, 무릎이라도 꿇을까요?”강민지는 그저 해본 말이었으나 신예준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한 달여 만에 처음 마주친 것이었다.전에는 강민지가 늘 그를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시도해 보든지.”강민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예준의 속셈은 잘 알고 있다.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꿇으려는 강민지의 손목을 신예준이 확 잡아챘다.“너 자존심은 어디로 갔어?”강민지가 피식 웃었다.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신 대표님 말이 맞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은 적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신예준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불쾌감을 느껴 운전사를 바라보았다.“그 여자 상태 봐봐요.”운전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마다 공기는 죽은 듯 침울했고 분위기는 끝없이 가라앉았다.처음부터 그들과 같은 곳에 있고 싶지 않았으나 기회가 없었다.그는 해방되자마자 차 문을 열고 멀리 엎드려 있는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부상 상태를 확인한 후 빨리 되돌아왔다.“대표님, 심하게 다쳐서 병원으로 당장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그럼 앰뷸런스 불러요. 사람 시켜서 지키라고 하고.”불빛이 어두웠으므로 운전기사는 장하리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네. 대표님.”신예준이 다시 강민지를 바라보았다.“이제 만족해?”강민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어쨌든 그녀 역시 인생이 망해가는 중이었으니까.그녀는 대답 없이 아예 눈을 감았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심리상태에 도움 될 것 같았다.장하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사이 S.M의 직원들이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꺼진 상태였다.이틀 후, 병실에서 깨어난 장하리는 한서진과 송아현이 병실에
장하리는 자신이 미움을 산 사람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일을 이 지경까지 벌일 사람은 온시아 말고는 없습니다.비록 서수연도 그녀를 싫어하긴 하지만, 매번 서수연의 수법은 뻔히 보였기에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시아가 나타나는 자리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음흉한 수단으로 일을 벌이곤 했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이렇게까지...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장하리는 아무런 배경도 없고 심지어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온시아를 피해 최대한 앞에 나타나지 않을 수밖에.장하리는 극한의 무력감을 느꼈다. 서주혁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것은 온시아 쪽에도 조금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온시아 역시 이틀간 입원했으며 이 이틀간 노임향이 구속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하지만 노임향은 여전히 장하리가 시킨 일이라며, 장하리는 서주혁의 곁에 다른 여자가 나타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이 일이 터지니 온씨 가문은 당연히 화가 났고 그 즉시 경찰서로 가서 노임향을 더 엄히 대하라 언질 줬다.동시에 그들은 모든 것을 지시하는 장하리도 싫어했고 S.M에도 대항하려 했다.하지만 이를 온시환은 바로 차단했다.몇 년 동안 온씨 가문에 돌아가지 않은 그는 온씨 가문에 전화 한 통만을 했다.“반승제와 성혜인이 돌아오면 우리 가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세요.”제원에서는 아무도 반승제를 쉬이 건드릴 수 없었다.지금은 지명수배를 받은 상태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누가 알겠는가.그가 회사를 합병하는 것은 과자 한 조각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간단하고 손쉬웠다. 게다가 반승제는 어느 한번 관례대로 일 처리를 한 적이 없었다.애초에 이런 집안 배경도 없는 여자를 위해 이렇게까지 난동을 부렸는데 그런 그가 할 수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지금 반승제가 S.M을 지키고 있다고 하니 아무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하지만 회사를 건드릴 수는 없어도 장하리는 건드릴 수 있는 것 아닌가?이번에 온시환은 말리지 않
온시아는 장하리의 지난 7년간의 연애를 계속 언급했다. 한 여자에게 7년의 연애가 몇 번이나 있을 수 있을까? 서주혁이 정말 조금이라도 장하리에게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 그 7년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이것은 서주혁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온시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리는 것이다.“주혁 씨, 됐어요. 어차피 저 오늘 퇴원하잖아요.”하지만 이때 서씨 가문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지난번 노임향이 연회에서 난리를 치며 이미 서창환의 주의를 끌었던 탓에 어젯밤 서창환은 서주혁을 사무실로 불러 진지한 태도로 장하리와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다.서주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부인했다. 그와 장하리는 실제로 사귄 적이 없었고, 전에도 진진한 관계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몇억 원 때문에 그녀를 욕보였을 뿐,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애인이라고 할 수조차 없었다.서주혁은 오래전부터 서씨 집안의 후계자로서 발언권이 가장 컸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를 매우 존경했다.“주혁아,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면 돼. 이미 온시아 그 아이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으니, 밖에 여자가 있든 없든 모두 정리해. 게다가 장하리의 집안은...”여기까지 말한 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날 밤 노임향의 행동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서창환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서씨 가문 같은 집안이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사돈을 맺을 수 있단 말인가.“잘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지금 어르신이 다시 전화한 것은 온시아의 부상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서씨 가문에서 주최한 연회에서 발생한 일이었기에 서씨 가문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다.온시아의 눈이 반짝이더니 곧바로 어르신께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할아버지, 저는 괜찮아요. 곧 퇴원할 거예요. 주혁 씨가 데리러 왔어요. 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추궁할 생각이 없어요. 주혁 씨가 처리할 거예요. 네, 안녕히 계세요.”전화를 끊고 나서
유해은은 장하리를 위해 반찬 세 가지와 국 하나를 가져왔다.병실에는 한서진과 송아현이 있었고, 이 둘은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유해은은 저녁쯤에 떠나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장하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저는 다음 달부터 휴일이 없어요. 의사 선생님이 이젠 음식을 천천히 씹어서 드셔도 된다고 하셨어요. 아현 씨와 제가 부축해서 일으킬게요. 이런 일은 남자인 한서진 씨가 하기에는 불편할 테니까요.”한서진은 헛기침을 두 번하더니 복도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제가 밖에 나가 있을까요?”순간 송아현이 눈을 굴리더니 한서진의 팔을 잡았다.“아저씨, 저랑 같이가요.”말을 마친 그녀는 필사적으로 유해은에게 눈짓을 보냈다.유해은은 그녀가 한서진을 좋아해서 그를 줄곧 쫓아 다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서른이 넘은 남자가 그 감정을 눈치채지 못할 수 있을까?그녀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그럼 둘 다 나가실래요?”송아현은 기쁨에 가득 차 장하리에게 다가가 손을 잡은 뒤, 과장된 동장으로 두 번 쪽쪽, 거렸다.“하리 언니, 해은 씨가 음식을 먹여드리면 될 거예요. 저는 잠시 후에 들어올게요.”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한서진을 밀며 나갔다. 한서진은 다소 불편해 보였다.장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해은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목이 아파서 담백한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조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서주혁과 온씨 집안 아가씨를 만났는데, 둘이 딱 붙어있더라고요.”말을 마친 그녀는 장하리의 표정을 관찰했다.당분간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장하리는 입을 열게 되면 목이 아플 것 같아서 속눈썹을 내린 채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유해은은 순간 가슴이 아팠다. 유해은은 이미 남자에게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고, 장하리도 같은 실수를 겪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하리 씨, 제가 하는 말이 듣기 싫을 수도 있지만 당신도 보았잖아요. 백현문 씨를 좋아한 제가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를요. 집안은 파산되고 가족들은 목숨을 잃었죠.
오후에 차를 타고 지방으로 가야 했던 유해은은 고민 끝에 성혜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성혜인 쪽은 그녀와 시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해은 씨?”“대표님.”“무슨 일이에요? 촬영 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아니요, 대표님. 하리 씨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 일은 온씨 집안에서 저지른 거라고 의심되는데 아마 하리 씨에게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아요. 하리 씨 성격상 대표님에게 전화해서 먼저 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전화 드렸어요.”성혜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감았다. 그녀는 항상 장하리가 뭔가 숨기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제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호텔에서 반승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심각한가요?”“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성혜은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말했다.“해은 씨 지금 급히 촬영하러 가야 하나요?”“네, 그래서 대표님께 전화드려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살 수 있었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해은 씨는 얼른 촬영하러 가봐요. 하리 씨의 일은 걱정하지 말고요. 내가 다른 사람에서 전화해서 물어볼게요.”“알겠어요, 대표님. 건강 조심하세요.”성혜인은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온시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온시환은 성혜인의 전화번호를 확인하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다.온시환은 성혜인의 보호 본능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성혜인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면 반승제도 기겁할 것이다.게다가 성혜인은 설씨 집안의 아가씨인지라 집안의 힘을 동원한다면 일이 훨씬 복잡해진다.온시환은 모르는 척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 번 연속 걸려 온 성혜인의 전화를 모두 받지 않았다. 그러자 성혜인은 즉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시환 씨, 온씨 집안에서 장하리에게 무슨 짓을 하든, 한번만 더 장하리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 집안 그 분께 어설픈 행동은 하지 말라고 전해요. 난 성격이 그녀들과 달라요.]장하리의 성격이 사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