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했더니 일꾼 노예찬이잖아? 드디어 돈 생겨서 인테리어 하는 거야? 아니, 돈이 있으면 물이 새는 지붕부터 고쳐야지. 안 그러면 지금처럼 옷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잖아. 다들 너랑 짝궁하기 싫어하는데 자존심 상하지 않아?”재벌 2세 하정우는 차 문을 열고 거만한 표정으로 트럭을 훑었다.“대출로 이 많은 걸 산 거야? 언제 다 갚으려고? 저 안에 있는 거지들을 다 팔아도 트럭 한 대 값도 못 벌 것 같은데?”하정우는 팔짱을 끼며 입꼬리를 올렸다.그의 시선은 마침내 성혜인에게 머물렀고 순간 눈이 반짝이더니 곧바로 싸늘하게 돌변했다.“네 얼굴에 반해서 들러붙은 여자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전에 우리 학교 퀸카가 너한테 조금 잘해줬다고 바로 러브레터를 썼잖아. 결국에는 어떻게 됐어? 걔는 그냥 널 갖고 논 거야. 성적만 좋아서 뭐 하냐?”하정우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한편으로는 질투심에 겨워 뚫어지라 노예찬의 목을 바라봤다.지난 몇 년 동안, 노예찬은 이 섬에서 상위 10위에 진입한 최초의 학생이었다.학교 측은 이 영광을 누리려고 며칠 동안 현수막을 걸었고 감사의 의미로 10만 원을 줬다고 한다.하정우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망설임 없이 성혜인을 만졌다.“너한테 들러붙은 여차 치고는 예쁘네? 어느 학교 퀸카야?”성혜인은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 어이가 없는 듯 곧장 하정우의 손을 내리쳤다.그러자 하정우는 순식간에 표정이 돌변했다.“X발. 네까짓 게 뭔데 나한테 이래? 좋아해 주면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나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내가 손 하나만 까딱해도 고마워하는 인간들이 널렸다고.”이때 또다시 차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저분이 마음에 드셨어요?”하정우는 ‘퉤’하며 바닥에 침을 뱉더니 수표 몇 장을 꺼내 던졌다.“이게 뭔지 알아? 이걸 보고도 저 거지 새끼랑 붙어먹는 건 아니겠지? 경고하는데, 내가 이대로 가잖아? 넌 내일 무조건 울면서 찾아와서 나한테 빌
성혜인은 노예찬이 돈을 주우려 하자 덥석 붙잡고선 먼저 허리를 굽혔다.“내가 주울게.”그녀는 오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는데, 바로 사람들의 월급이 대체로 너무 낮다는 것이다.그러니 1000억 정도의 몸값이라면 충분히 이 섬에서 큰소리 떵떵 치며 살 수 있다.하지만 성혜인이 부족한 건 돈이 아니다.그녀가 떠나기 전 설의종은 1000억에 비할 수 없는 금액이 담긴 카드를 줬다.심지어 제원에 있는 회사를 포함한다면 1000억은 비할 것도 없다.노예찬은 성혜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저 묵묵히 트럭에서 짐을 옮겼다.바로 이때 성혜인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1000억으로 하씨 가문 소유의 그룹을 살까?”노예찬은 그 말에 놀란 듯 짐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성혜인이 자극을 받아 흥분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성혜인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호화로운 고층 빌딩 몇 개를 발견했다.고층 빌딩은 아마도 이 섬의 소위 엘리트들이 일하는 곳이다. 어쩌면 섬 밖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지만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바다뿐이다.성혜인은 몸을 숙이며 짐을 안으로 옮겼다.“그런데 나 혼자만으로는 안돼. 심지어 아직은 인수 절차를 모르니까 며칠 정도는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거야.”노예찬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성혜인이 결코 장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짐들이 하나둘씩 안쪽으로 옮겨지자, 헛겊을 덧댄 옷을 입은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우르르 몰려왔다.“형, 이게 뭐야? 우리 오늘 저녁에 고기 먹는 거야? 너무 좋아.”“형아 짱이야. 맛있겠다.”노예찬은 미소를 머금고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 말고 저 누나한테 고마워해.”아이들이 하나같이 시선을 돌린 그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누나, 고마워.”“고마워요.”성혜인은 그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안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노예찬은 아직도 방을 치우고 있었다. 밤에 비가 살짝 내리자,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새기 시
다음 날 아침 일찍, 성혜인은 씻고 일어나서 대충 끼니를 때우다가 유난히 조용한 노예찬을 발견했다.“선생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이제는 아예 말조차 못 해요.”상태를 보니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더 버틸듯싶다.어떻게 위로할지 몰랐던 성혜인은 손을 들어 노예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그렇게 두 사람은 고등학교로 향했다.성혜인은 그 선생님의 자료를 챙겨 교무실에서 등록하고 간단한 테스트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별도의 사무실에 앉게 되었다.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단 둘뿐이라 누구도 결석해서는 안 된다.성혜인은 곧장 수업 시간표를 살펴봤다. 의외인 건 바깥세상보다 훨씬 뒤떨어진 구금성의 학생들은 피아노, 베이킹, 승마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비록 수업 횟수는 적지만 적어도 여러 분야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모두에게 있을법한 특별한 재능을 도출하려는 목적인가?어떤 사람은 국어와 수학 같은 전문 지식을 잘 배우지 못했지만, 베이킹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이런 여러 가지 수업에서 남들과 다른 재능을 보인 학생은 엘리트로 선발된다.성혜인은 이 시간표를 보고 처음에는 놀랐으나 곧이어 역겨움을 느꼈다.이곳의 학생들은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전문적인 기초 지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마치 쓸모가 없는 학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다른 무언가로 그들의 재능을 끌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어쩌면 어느 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성혜인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매년 졸업하는 대부분의 학생이 인체 실험에 이용된 건 아니겠지?’만약 그렇다면 BK와 연구 기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밀접한 사이일수도 있다.자리에 앉자마자 누군가 사무실의 문을 걷어찼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제 만났던 재벌 2세 하정우였다.“싸구려 교생 자리에 후임이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그게 너였어?”하정우는 더욱 대범하게 성혜인의 몸을 훑어보더니 사무실 문을 닫았다.밖에서는 그의 친구들이 소
하정우는 성혜인에게 복수할 생각보다는 자신의 소중한 그곳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지 더 걱정이었다.“병원!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 줘.”한바탕 고함을 지르자 친구들은 그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의자에 앉은 성혜인은 옆에 있는 컴퓨터를 켠 뒤 회사 인수 과정을 온라인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그러다가 이곳은 다른 데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투박하다는 걸 깨달았다. 복잡한 중간 과정 없이 돈만 주면 끝이다.간단히 말해서 돈이 많은 사람이 왕이 되는 곳이다.다른 곳에서 여기로 온 사람들은 거의 다 법을 어겼던 범죄자였기에 주머니에 돈이 거의 없었다. 성혜인처럼 카드에 수천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예 찾을 수가 없다.그녀는 고민에 잠긴 듯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반승제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바로 여기서 유명해지는 것이다.아직 이곳이 BK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만 만약 구금섬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게 BK 쪽 사람이었다면 들어온 첫날부터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노예찬의 문신을 보면 아직 BK가 이 섬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심지어 BK는 섬 학생들이 문신을 신처럼 모시도록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갑자기 노트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상냥하게 말했다.“새로 오신 혜인 씨 맞으시죠? 교장 선생님이 부르십니다.”40대 중반의 여선생이 말을 전하러 왔는데 그녀를 힐끗 보고선 싸늘하게 시선을 돌렸다.성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교장실로 향했다.교장 선생님 앞에는 그림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방금 성혜인이 그린 것이다. 비록 10밖에 투자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앉을만한 충분한 자격조건을 보여줬다.“혜인 씨, 실력이 아주 뛰어나시네요.”하정우의 일로 따지지 않는 교장 선생님을 보니 참 현명하고 고상한 분이라는 칭찬이 목젖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가라앉았다.곧이어 들려온 말 한마디에 성혜인은 기분이 언짢았다.“혜인 씨는 방금 이 학교에 오셔서 아직 잘 모르실 것 같은
노예찬은 키가 아주 컸다. 그런 사람이 떡하니 문 앞에 서 있자 여학생들은 손해를 볼까 봐 부랴부랴 도망쳤다.그 사이에 연지아가 불러온 또 다른 경호원 두 명은 노예찬을 사정없이 때렸고 어느새 얼굴이 빨갛게 부어올랐다.그러나 그는 끝까지 문을 지키며 그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그렇게 한 시간 동안 끈질기게 버틴 끝에 성혜인은 자신의 지분율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역시나 간단하고 깔끔한 규칙들은 많은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성혜인이 마우스를 내려놓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노예찬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고 목까지 꼬집힌 자국이 있었다.한 시간 동안 싸웠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은 걸 보니 두 경호원의 실력이 그닥 뛰어난 편은 아닌 것 같다.노예찬의 부상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는 기절하지 않기 위해 벽에 기댔다.그 모습에 성혜인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바보 같은 녀석.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시키는 대로 하다니.’두 경호원은 문 앞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성혜인을 향해 손가락질했다.“야. 너 우리랑 같이 하씨 가문으로 가자.”“싫어. 어차피 그 사람들이 곧 이곳으로 올 거야.”두 경호원은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당당한 거지?’이때 그들의 핸드폰이 울렸다. 연지아에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하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경호원들이 떠나자마자 성혜인은 노예찬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괜찮아?”노예찬은 이마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음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변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었는데 모두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구경했다.성혜인과 노예찬은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구경꾼들 사이에는 교장과 다른 선생님들도 있었다.교장은 여전히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콧등에 걸린 안경을 밀었다.“혜인 씨, 출근 첫날부터 사고를 많이 치시네요. 사무실 꼴이 이게 뭡니까? 어떻게 배상할 거예요?”노예찬은 코끝에서 느껴지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눈앞이 흐려지고 사
성혜인은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선을 그었을 텐데 노예찬은 되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어쨌든 수능까지 두 달이 남았고 문신이 있으니 현재로서는 보호 대상인 건 확실했다.그곳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그는 아마 주요 보호 대상일 것이다.“바보냐? 빨리 가서 상처부터 치료해.”노예찬은 모처럼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버텼다.“싫어.” 그 말 한마디에 감동한 성혜인은 마치 남동생을 보는 것처럼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때 교장이 입을 열었다.“학생, 많이 다쳤으니까 일단 양호실에서 치료받고 있어. 어차피 저 선생님은 오늘 아무 데도 못 갈 거야. 그 문신이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알지? 쉬운 일도 아닌데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을 이대로 포기할 거니?”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없었던 노예찬은 끈기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런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낯선 사람 때문에 미래를 망친다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겠는가?교장의 말을 들은 노예찬은 그저 우스웠다.이 문신이 결코 명예를 상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아마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돼지우리에서 살찐 돼지가 가장 먼저 끌려가듯 때가 되면 노예찬도 뼈가 남지 않을 때까지 이용되다가 버려질 수 있다.교장은 지금까지도 소위 명예를 이용하여 모두를 속이고 있다.문신을 동경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질투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얻으려는 이 문신과 그에 관해 들어왔던 모든 소식이 엄청난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문신은 영광이 아니라 생사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했다.하지만 이 모든 진실을 노예찬은 말할 수 없었다.말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뻔하다. 이미 세뇌당한 그들은 노예찬을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이 모든 게 지어낸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심지어 주위에 널린 게 병원이니 어쩌면 정신 나간 행동을 한다며 정신 병원에 끌려갈 수도 있다. 그러니 침묵을 지키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노예찬은 마치 물에 빠진
현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평소에 얼굴한번 보기 힘든 하진표가 직접 고등학교에 찾아와 낯선 여자에게 굽신거리다니?성혜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진표는 경호원에게 눈치를 줬다.그러자 경호원은 재빨리 하정우를 밀어냈고 그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큰소리치며 건방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할아버지, 미쳤어요? 저한테 왜 이래요!”하정우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듯 얼굴에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그는 병원에서부터 묶인 채로 이곳까지 끌려왔고 오늘 길 내내 이유를 물어봤으나 다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하정우는 하씨 가문의 유일한 후손이었기에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든 하진표가 전부 눈감아줬다.“할아버지!”하정우가 다시 한번 소리쳤지만 하진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마치 성혜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러나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연지아가 이런 상황에 수치심이 밀려오는지 죽일듯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노려봤다.“빨리 저 미친X 잡지 않고 뭐 하는 거야?”하진표는 화를 내며 지팡이를 두 번 내리쳤다.“닥쳐! 그 입 다물어! 하씨 가문의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 혜인 씨다.”비즈니스에 몸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건 회사 전체의 생사를 결정하는 큰 권한을 갖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이제 누군가가 심기를 건드린다면 얼마든지 하씨 가문을 빈털터리로 만들 수 있다.연지아는 귀를 의심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말도 안 돼. 저 거지가 무슨 돈으로 주식을 산 거야?’연지아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고 성혜인과 눈을 마주치고선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성혜인은 노예찬을 일으켜 세우고 옆에 있던 학생에게 물었다.“양호실이 어디니?”학생은 손을 바르르 떨며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노예찬은 머리가 어지럽고
하진표는 순간 표정이 돌변하더니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바짝 줬다.아무리 하정우가 무능하다고 해도 애지중지하며 키운 손자인데 전혀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성혜인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현장에는 하정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사람들은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성혜인은 노예찬을 부축해 양호실로 데려갔다.그 시각 왁자지껄한 현장에서는 교장이 창백해진 얼굴로 부랴부랴 하진표에게 다가갔다.“어르신, 이번에는...”교장 역시 방금 전에 일어난 모든 것들이 믿기지 않은 듯 머릿속이 뒤직박죽되었다.그것보다도 성혜인에게 미움을 샀다는 생각에 자신의 앞날이 걱정되었다.불안함이 밀려오며 초조해진 그는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났다.“어르신,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정우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요. 심지어 어르신 앞에서 이렇게 날뛰다니 정말 무서운 게 없나 봅니다. 차라리 안쪽 섬으로 보내는 게 어떠실지요?”하진표는 지팡이를 짚은 채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교장의 뜻은 성혜인을 다른 섬으로 보내 아예 기를 죽여버리자는 뜻이었다.그쪽에는 4대 가문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혜인의 순자산은 아마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4000억을 적은 돈이라고 부르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하진표가 손자 바보인 건 맞지만 교장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눈치를 주자 그들은 즉시 교장을 잡았다.“어르신, 지금 이게 무슨 뜻이죠?”하진표는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이제 사람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혜인 씨가 누굴 교장으로 내세우고 싶은지 여쭤봐야지.”교장은 동공이 급격하게 움츠러들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하진표는 걸음을 옮기며 단호하게 말했다.“이만 가자고. 정우랑 교장 선생님은 경찰에게 넘겨.”하진표는 혈육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죽은 척하고 바닥에 누워있던 하정우는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더니 재빨리 다려가 하진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