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은 다시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난 영호의 길을 잘 몰라. 내비가 있다고 해도 여긴 운전대가 반대 방향이라 익숙하지도 않고. 게다가 네가 아침에 도착하게 되면 난 그때 눈을 뜨지도 못했을 거야.”“그렇긴 하네.”연바다는 웃으며 강하랑의 말에 대답했다.“그럼 이렇게 하자. 내일 점심에 미리 자리 잡아줘. 내가 네 새 친구를 데리고 그곳으로 갈게, 어때?”“응, 그래. 그럼 내일에 보는 거로?”“응, 내일 봐.”전화는 끊겼다.화면 속에 있던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도 사라졌다. 핸드폰이 자동으로 잠금 되자마자 남자는
차 문이 닫혔다.열어두었던 창문도 스르륵 올라가고 연바다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다.“황소연 씨가 내가 하는 일에 최대한 협조했으면 좋겠네요. 비록 황소연 씨 목숨은 보장할 수 있지만, 피를 보지 않을 거라곤 보장 못 하거든요.”그가 손을 휘젓자 창문이 바로 닫혔다.차 안에 있던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연바다는 부하와 함께 자리를 떴다.황소연이 지금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그와 상관없는 일이었다.“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남자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방금 자신에게 태블릿을 건넨 부하를 빤
저녁.강하랑은 단원혁과 함께 정씨 가문으로 갔다.연바다의 일은 그녀가 간단하게 설명했었기에 단원혁과 단유혁은 그녀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연바다가 그녀를 데리고 갈까 봐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그저 지금 연바다가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인질로 잡고 있어서 두려운 것이었다.황소연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그러나 지금은 먼저 정수환을 만나 뵙는 일이었다.선물은 단원혁이 미리 준비해 두었다.강하랑은 원래 오후에 나가서 정수환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러 가려고 했었다
“가자.”정씨 가문 본가는 보일러를 틀고 있었기에 추운 바깥과 달리 집안은 아주 따듯했다.너무도 따듯하여 창문엔 뽀얀 김이 한층 생겼고 꼭 일부러 반투명한 유리를 설치한 것처럼 보였다.도우미는 얼른 달려 나와 그들의 겉옷을 받아들었다. 이내 거실에선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이지 자기가 무슨 연예인인 줄 아나? 몇 년 동안 한 번도 오지 않다가 갑자기 찾아오고 말이야. 오랜만에 한 번 찾아왔다고 모든 집안사람이 움직이고. 허, 아주 대단한 인물 납셨네, 납셨어!”그러자 누군가가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오죽하
사실 강하랑은 약간 어색했다.방에 들어오기 전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 어색한 친척이라고 해도 예의는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비꼬는 말을 듣고 나니 잘 해보려는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렸다. 어차피 인사를 하더라도 맏이인 단원혁부터 하는 것이 맞았기에 그녀는 뒤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하늘이 무너져도 키 큰 오빠가 막아줄 거야.’단원혁은 정희연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에서 가져온 선물을 내려놓기 바쁘게 정희연을 힐끗 노려보더니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안에서 강하랑은 그를 따라가
정수환은 잠깐 강하랑을 바라보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나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더니 진짜 요리 안 한 지 한참 된 모양이구나. 괜찮아, 요리 솜씨는 안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가끔 주방에 들어가 보렴. 가족들이 좋아할 거다.”이렇게 말하며 정수환은 주방에 갔던 두 사람을 불러왔다.장이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정수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음식은 어디에 두고 와서 앉아?”“저도 할아버지 손녀예요. 이 자리에서는 손님이라고요. 손님한테 일 시키는 게 어디
“이혼하자.”결혼 3년 만에 연유성이 두 번째로 그녀에게 건넨 말이었다.첫 번째로는 신혼 첫날밤이었다.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한 바퀴 빙 돌더니 방긋 웃으며 그에게 예쁘지 않으냐고 물었다.그러자 그가 답했다.“결혼식은 이미 끝났으니 내가 보낸 사람이 널 공항까지 바래다줄 거야.”그렇게 그녀는 결혼식 끝나자마자 3년간 홀로 해외에 나가 살게 되었다.다만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이혼하자는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혼이라. 오늘은 그들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굳이 꼭 이혼해야 해?”
강하랑은 잠깐 침묵에 잠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후련한 어투로 말했다.“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 그 덕에 운 좋게 오빠도 찾고 말이야. 그 사람들은 나를 키워주기도 했으니까 그냥 여기서 그만하자.”그녀는 그간 키워준 은혜로 이번 사건을 눈감아 줄 생각이었다.“막내야...”남자가 뭐라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그러나 강하랑은 문밖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오빠, 나도 오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지금은 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래. 난 어차피 곧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