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엎드린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내 다리를 찬 바람에...”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작은 얼굴, 이마에는 멍이 들었고 입술이 갈라 터졌다.그가 차갑게 물었다.“누구 짓이야?”윤혜인은 당황한 나머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시 빈혈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느꼈고, 심지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송소미를 가리켰다.이준혁의 매서운 눈빛에 송소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그녀는 급히 해명했다.“그녀가 먼저 예의 없었고 더러운 짓을 한 거예요. 난 그저 따끔하게 일러주려던 것뿐이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할머니 뒤로 몸을 숨겼다.“그래?”이준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송소미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오빠가 이런 같잖은 여자에게 목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더욱이 그녀의 뒤에는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이준혁은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한 명씩.”송소미는 아직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보며 이준혁이 차갑게 지시했다.“손가락을 분질러버려.”평온한 말투였지만 소름이 끼쳤다.문밖에 있던 보디가드가 그의 목소리에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힘껏 구부렸다.‘으드득’ 소리가 몇 번 들렸다.“악-”비명소리가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너무 잔인한 수법에 윤혜인도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동정하지 않았다.그들은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해냈으니 자업자득이다.할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책상을 내리쳤다.“너!”화가 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기침하기 시작했다.그의 보디가드는 이미 할머니의 부하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이준혁은 할머니의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송소미를 노려볼 뿐이었다.단 한 번의 눈빛에 주변의 공기가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졌다.송소미는 그제야 비로소 그의 ‘한 명씩’의 의미를 깨달았다.다음은 그녀였다.그는 미쳤다. 단단히 미친 것이다.
찻잔은 이준혁의 발 근처에서 깨졌다.시선을 내린 그의 눈에 구슬이 보였다. 그리고 윤혜인의 이마 상처를 보았다.바로 이거였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보디가드에 명령했다.“할아버지께 할머니가 치매가 도져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오늘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전해.”“감히!”할머니는 고함을 질렀다.문현미의 부친보다 8살 어린 그녀라 이제 60대 초반에 불과했고, 한창 인생을 누릴 시기인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문씨 가문의 일을 결정하려 하는가.그녀는 윽박질렀다.“난 그저 예의를 가르치려던 거야. 꽃병을 깨트리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데 손 좀 봐주면 안 돼?”이준혁이 가볍게 웃었다.“혜인은 내가 허락해요. 오늘 어르신의 방을 엎었다고 해도 난 봐줄 거예요.”그의 말에 송소미와 할머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이 여자가 이준혁에게 그렇게 중요한 여자란 말인가?어떻게 이럴 수가?송소미가 제일 믿기지 않았다.이준혁이 어떻게 임세희를 대했는지 눈으로 지켜봤고 부러워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윤혜인도 고개를 돌렸다.옆에서 본 남자의 얼굴은 근사했다.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해 그녀는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이곳을 부순다고 해도 그녀를 감쌀 것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내 와이프는 누구도 건드릴 생각하지 말아요.”윤혜인의 가슴이 순간 차가워졌다.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고작 그의 와이프가 이씨 가문을 대표하는 얼굴이고 그의 와이프를 건드리는 것은 이씨 가문에 맞서는 거기 때문일 뿐인 것 같다.그래서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할머니는 너무 화가 나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이 망할 자식! 내가 너의 할머니란 건 알고 있는 거야?”이준혁이 냉소를 지었다.“잊었나 본데 내 할머니는 보향산에 모셨는걸요.”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 어린놈은 여직 그녀를 할머니라 부른 적 없다.역시 같은 피가 흐리지 않아 손을 타지 않는 것 같다.문현미는 그녀를 거들떠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를 안아 들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명령했다.“병원으로 가.”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머랏속이 백지상태였다.모든 것이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너무 혼란스러웠다.이준혁이 그녀를 안아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시선을 내린 이준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진찰실 문 앞에서 그는 부하에게 지시했다.“김성훈을 불러.”그제야 윤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몸부림쳤다.“걸을 수 있어.”이준혁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VIP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고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어주었다.“움직이면 안 돼. 성훈이 상태를 체크하러 여기로 오고 있어.”그는 다정하게 말했다. 방금 전 문씨가문에서 봤던 사람이 아니었다.윤혜인은 뛰어내릴 뻔했다. 그녀는 극도로 거부하며 말했다.“필요 없어요. 난 괜찮아요.”김성훈에게 걸리면 그녀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그녀는 이불을 들추며 일어나려 했지만, 남자에 의해 원상 복귀되었다.“검사받아야 하니 어디도 가지 마.”그는 강경하게 말했다.“난 정말 아무일도 없어요. 검사 받을 필요없어요.”윤혜인은 멀쩡하다며 팔을 휘둘러 보였다. 하지만 남자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그는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이준혁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타인의 눈이 부끄럽다면 내가 검사할 거야.”이게 웬 말이람?윤혜인은 얼굴이 뜨거워졌다.이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의사를 부르기 전에 얌전히 있어.”둘 사이는 너무 가까웠다.윤혜인은 그의 짙은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서슴없이 몸으로 막으며 그녀를 보호해 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순간,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지금까지도 윤혜인은 그가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솔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준혁이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아이의 존재를 절대 말할 수 없었다.그녀가 머리를
둥!뒤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윤혜인이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남자가 바닥에 누워있었고 움직임이 없었다.윤혜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나에게 저 정도의 힘이?지금 도망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하지만 결국 감성이 이성을 이겼고 윤혜인은 남자에게 다가갔다.근사한 얼굴이 창백해 보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흔들었다.“준혁 씨... 이봐요...”남자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윤혜인은 당혹스러웠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졌다.“왜 그래요? 눈 떠봐요. 이러지 말아요...”몸을 내린 그녀는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다 그녀의 손에 축축한 느낌이 전해졌다.피비린내가 점점 농후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손을 보니 피로 물들어 있었다!이 피는... 그 막대기에 묻어있던...“윽!”그녀는 필사적으로 헛구역질을 참으며 도움을 요청했다.“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김성훈이 달려왔고 바닥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더니 자리에 얼어붙었다.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지시했다.“교수님 콜해.”그리고 이준혁을 응급실로 옮겼다.윤혜인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눈물이 주체가 안 되었다.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다...후회, 자책. 분노가 한순간에 휘몰아쳤다.그녀가 발견했어야 했다...그녀를 안아 들던 그의 행동이 평소와 같지 않았다. 그래서 차 안에서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에게만 빠져서 그를 살피지 못했다.그녀를 대신해 매를 맞은 그에게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그녀는 자책하며 자신의 머리를 쳤다.윤혜인, 너 정말 이기적이다.마치 반세기가 지난 것 같았다.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리고 김성훈이 걸어 나왔다.윤혜인은 급히 다가갔다.“어떻게 됐어요?”“지금은 괜찮아졌으니 걱정하지 말아요.”윤혜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왜 쓰러진 거예요?”이준혁은 한대로 쓰러질 정도로 허
윤혜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눈썹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턱을 어루만졌다.신은 그에게 은혜로웠다. 모든 곳을 훌륭하게 만들어주셨다.그녀의 손이 귀신에 홀린 듯이 그의 목젖을 만졌다. 그것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만져보고 싶었던 것이었다.높이 솟은 목젖은 굴곡이 예술적이었다.침대에서 그녀는 항상 고분고분했다.하지만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그때 갑자기 손에 닿아 있던 목젖이 움직였다.윤혜인이 손을 빼기도 전에 이준혁은 눈을 떴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남자의 동공은 흑진주처럼 짙었고 빠져들게 했다.윤혜인은 가슴이 겉잡을 수없이 뛰기시작했다.빼려던 손이 그에게 잡히고 말았다.“몰래 뭐 하는 거야?”날카롭고 또렷단 그의 목소리는 금방 깬 흔적이 없었다.당황한 그녀는 급히 둘러댔다.“벌레가 있었어요.”“벌레?”“제가 쫓았어요.”그녀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너무 긴장한 너머지 꽉 쥔 손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아.”윤혜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남자는 손을 들어 벨을 누르려 했고 그녀가 급히 제지하며 물었다.“뭐 필요해요? 내가 도와줄게요.”이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VIP 병실을 어떻게 청소했길래 벌레가 있냐고 물어봐.”윤혜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대답했다.“아마 내가 잘못 본 것 같아요. 이렇게 작은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억울함이 묻어있었다.그녀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아직도 어디가 불편해요?”“모든 곳이 불편해.”“그럼 내가 의사를 불러올게요.”막 몸을 일으키려는 윤헤인은 꽉 잡힌 손에 그대로 이준혁 품속으로 무너졌다.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냈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필요 없어. 네가 올라와 곁에 있어주면 돼.”그의 목소리는 머리 꼭대기에서 울렸고 아무런 감정이 담아있지 않았다.“아...”눈을 휘둥그레 뜬 윤혜인은
윤혜인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급히 그를 거부하려 했다.아마 상처를 건드린 것 같다. 이준혁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고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움직이지 마. 아직은 할 수 없어.”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녀는 너무 부끄러웠다.꾸짖고 싶었지만, 밖에 있는 주훈이 들을 것 같았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소리를 낮추며 그를 흘겼다.“또 날 괴롭히는 거예요?”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발그스름한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이준혁의 눈이 더욱 짙어졌다.그녀 말처럼 그가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밤새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속셈을 읽지 못했다.그녀는 그저 오늘 파티에서 있을 일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그가 그녀를 살려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나 그녀를 밀친 것도 사실이었다...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런 일들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찰싹-허벅지를 때리는 소리에 윤혜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뭐 하는 거예요?”“괴롭히는 거지.”이준혁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그리고 또다시 입술을 탐했다.그의 앞에선 그저 토끼처럼 반항해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하지만 여전히 거부하며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을 피했다.그러자 이준현은 그녀의 얼굴을 고정하고 날카롭게 물었다.“왜? 안 돼?”이준혁은 미소를 짓지 않으면 너무 차갑고 낯설었다.주위의 공기마저 차가워졌다.그때 마침 테이블에 놓은 휴대폰이 울렸고 그것은 윤혜인의 것이었다.그의 몸 위로 손을 뻗은 그녀는 혹시라도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 봐 각별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 행동이 거부감으로 보였다.그의 눈이 점점 차가워졌다.이준혁의 심리적 변화를 몰랐던 윤혜인은 걸려 온 전화가 소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통화를 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라고 느껴 끊으려 했다.그때 예상치 못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받아.”잠시 망설이던 윤혜인이 전화를 받았다.“혜인아, 집에 무사히
“셋째는...”망설이던 윤혜인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가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기 전에는 아이 같은 건 만들지 말아줘요. 나도, 할아버지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부디 안전 조치를 꼼꼼히 하길 바래요.”사실 말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입을 열었으니 명확히 해야 한다고 느꼈다.결혼 생활 중 다른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아버지였다고 하고 싶지 않았다.비록 그녀도 아기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이준혁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넷째는 없는 거야? 그럼 내가 대신 만들어줄까? 내가 너희들의 행복을 빌어줘야 한다. 어때?”윤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나와 선배는...”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말을 가로챘다.“할아버지가 어떻게 되실 거란 걸 생각해 봤어? 그 남자를 위해 할아버지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한순간.너무 나 큰 죄명이 쓰였다.정상적인 교제가 어떻게 할아버지의 안위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되어버렸는지 윤혜인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할아버지도 친구들과의 교제를 제한한 적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준혁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뿐이었다.“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할아버지도 모를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과 임세희의 일도 제가 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절대 비밀 지킬게요.’이준혁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그녀의 착한 모습이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윤혜인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에 그의 상처에 대한 김성훈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내려갈게요.”몸을 일으키려는데 이준혁이 그녀를 확 잡아당겨 품속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돌려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내 침대에 오르고 마음대로 내려가려고 해?”그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윤혜인의 등이 그의 가슴에 닿아있었지만, 그녀의 턱은 돌아가고 힘겹
이게 무슨 말인가?윤혜인은 그가 임세희랑 침대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해외는 뭐 하러 갔단 말인가?이준혁과 2년을 함께한 그녀이기에 그가 혈기가 왕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순수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굳이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다. 이혼도 그녀에게 통보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이준혁은 그녀의 얌전한 모습을 좋아했다. 그는 그녀를 넘어뜨리고 품속에 안았다. “화나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윤혜인은 그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임세희랑 잔 적 없다고요?”이준혁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리게 말했다.“그래.”“진짜요?”윤혜인은 다시 한번 물었다.이준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의 입술을 만졌다.“뭘 의심하는 거야?”“하지만...”그녀의 말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몸을 내렸다.“이리 와.”그의 입술이 그녀의 귀를 괴롭혔다.유난히 부드러웠다.저도 모르게 움츠러든 윤혜인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이제는 더욱 혼란스러워 다정한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피하려는 그녀를 눈치챈 그가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헙...”깜짝 놀란 그녀는 신음을 뱉어냈다.“하고 싶어?”그녀가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무방비 상태인 그녀 속으로 마구 침입한다.VIP 병동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너무나 조용해서 두 사람의 얽힌 신음소리가 특히 선명하게 들렸다.윤혜인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고 심장이 터질 듯 조여왔다.그녀는 문밖의 주훈에게 들릴까 봐 노심초사했다.그러나 구름 속을 걷는 듯한 느낌에 제대로 사고 할 수 없다.이준혁은 그녀를 너무 잘 다뤘다. 정확했고 거침이 없다.경험이 없는 그녀에겐 비교 대상이 없었다. 이 방면에서 이준혁은 마스터레벨일 거라 생각했다.훌륭한 비주얼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그녀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졌다.부상에도 불
“난 그런 적 없어요... 경한 씨, 제발 믿어줘요. 나 아니에요.”방민아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 방민아가 유진을 해친 게 된다면 더는 육경한과 이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민아는 육경한이 유진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을 위해 정관 수술까지 하겠다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은 절대 따라올 수가 없었다.“그런 적 있는지 없는지는 경찰 조사에 맡기죠.”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려 걸음을 멈추고는 한마디 보충했다.“그리고 최근에 방씨 가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민아 씨 아버지가 80%의 수익을 가져갔어요. 그때 도와준 은혜를 수천조로 갚았는데 그걸로 부족해요?”방민아가 계속 따라붙으려는데 보디가드가 막아섰다. 그뿐만이 아니라 경찰이 오기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다.온몸에 힘이 풀린 방민아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빌어먹을 년이 어쩌다 경한 씨의 와이프가 된 거지? 그 자리는 내 자리여야 하는데.’방민아는 새로 한 매니큐어가 부러질 정도로 바닥을 박박 긁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다시 육경한의 와이프 자리를 꿰찰지, 어떻게 빌어먹을 소원과 짐승만도 못한 유진에게 복수할지로 가득 차 있었다....유진이 이끄는 대로 걸어간 유진은 이내 아주머니를 가둬놓은 방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머니는 누렇게 뜬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소원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침대맡으로 다가가 통곡했다.“아주머니...”유진이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더니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연신 불러댔다.“할머니... 할머니... 일어나봐요...”“아직 숨은 쉬고 있어.”뒤에 나타난 육경한이 이렇게 귀띔했다.소원이 고개를 들어 손을 아주머니의 코밑에 갖다 댔다. 호흡이 약하긴 했지만 확실히 숨은 쉬고 있었다. 흥분한 소원이 유진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유진아, 엄마 구급차 불렀어. 아주머니 선한 사람이니까 하느님
방민아가 육경한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말했다.“경한 씨,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소원 씨 안 건드릴게요. 다 질투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주면 안 돼요? 소원 씨가 경한 씨 마음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자꾸만 경한 씨를 뒤흔드는 게 질투 나서 그랬어요. 이제 잘못한 거 알았고 앞으로 소원 씨 존재도 묵인할 테니까 제발 나 버리지 마요...”방민아의 말에 소원은 넋을 잃고 말았다. 육경한만 동의하면 일부다처제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처럼 들렸다.다만 방민아는 원할지 몰라도 소원은 싫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역겨운 상황이었다. 조선시대가 망한 지 언젠데 있는 집 딸인 방민아가 남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구시대의 여인상을 보이는 게 너무 우스웠다. 게다가 소원은 한평생 육경한 곁에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육경한이 언짢은 표정으로 다리를 들자 방민아는 어쩔 수 없이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나 와이프 있는 남자예요. 방민아 씨, 앞으로 말 가려서 해요.”육경한의 눈매는 여전히 차갑기만 했지만 ‘와이프’라는 말을 내뱉는 육경한의 말투에서 방민아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온도를 느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갑자기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는 늘 차분하고 덤덤하고 감정 기복이 없었는데 말이다.살아났다는 말이 제일 맞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낸 것처럼 피가 있고 살이 있는 육경한으로 다시 태어났다.그런 육경한을 보며 방민아는 너무 불안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사랑과 전쟁을 패러디하는 걸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육경한이 살인미수범인 방민아를 감싸면 어쩌나 걱정할 뿐이었다.하지만 육경한의 생각 따윈 상관없었다. 아까 절대 끼어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소원은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안녕하세요. 경원 별장인데 신고 좀 하려고요. 누군가 제 아들을 해치려고 했어요. 네.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뺏어가려는 거죠. 어림도 없어요.”방민아의 머릿속엔 온통 소원이 육경한을 뺏어가는 장면으로 가득해 이성을 잃었다.“내 남편 뺏어갈 생각하지 마요. 소원 씨는 그저 뻔뻔한 세컨드일 뿐이에요.”“하하하...”소원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방민아 씨, 남편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요? 결혼 등기는 했어요? 왜 아는 사람이 없죠?”방민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자기가 미우 그룹 안주인이라고 생각해 차분하게 말했다.“곧 등기하러 갈 거예요. 경한 씨가 다음 주에...”“다음 주에도 등기는 못 할 거예요.”소원이 단칼에 잘라버렸다.“왜요? 소원 씨가 못한다면 못하는 거예요? 봐요. 내 남자 뺏어가려는 거 맞잖아요. 하하. 내가 잘 캐치한 거 맞죠?”이성을 잃은 방민아는 꼴이 우스워도 너무 우스웠다.“내가 오늘 등기했거든요.”소원이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마치 번개처럼 방민아에게 떨어졌고 방민아는 환청이라도 들리는 줄 알았다. 올해 들었던 중에 가장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소원이 왜 경한 씨랑 결혼 등기를...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방민아는 심장이 떨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민아의 얼굴이 잿빛이 되어가자 소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고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방민아가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많았다.소원이 말을 이어갔다.“그러니 방민기 씨 애인하라고 한 제안은 못 받아들이겠네요. 남편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방민아는 마치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거짓말하지 마요.”방민아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육경한의 팔을 부여잡고 캐물었다.“경한 씨, 진짜가 아니라고 해줘요. 소원 씨가 나 속이는 거라고 좀 말해줘요...”육경한의 침묵에 방민아의 마음도 점점 싸늘해졌다. 진실은 눈앞에 보이는 그
소원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방민아는 분명 소원의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소원을 때릴 때 보인 표정은 정말 소원을 죽이고 싶은 표정이었다.육경한은 여자가 이렇게 자주 변하는 동물인지 몰랐다. 방민아도 예전엔 이런 여자가 아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방민아 편을 든다고 생각해 바로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그 말은 경찰서 가서 얘기해요. 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방민아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너 따위가 뭔데 감히 이딴 식으로 말해? 그냥 못 넘어가? 못 넘어가면 어쩔 건데.’방민아는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이 약해진 거라고 생각해 얼른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했다.“소원 씨, 우리 원수라도 졌어요?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아니꼬운가 본데 나 소원 씨 아이 최선을 다해 보살폈어요. 나를 모함한 것도 뭐라 안 했는데...”방민아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소원 씨는 엄마라 그러겠지만 나도 누군가의 딸이에요. 내가 괴롭힘당하는 거 알면 우리 아빠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방민아는 방민수까지 끌어들였다. 방민수가 나온 이상 육경한도 방씨 가문의 은혜를 저버리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애초에 육경한이 사면초가의 처지에 빠졌을 때 방씨 가문이 없었다면 미우 그룹도 서울에서 자리를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일 어려울 때 손길을 건넨 사람을 저버릴 순 없는 일이었기에 이 점만으로도 육경한은 방민아를 너무 심하게 대하진 않을 것이다.소원이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우리 원수 진 거 없어요. 오히려 너무 열정적으로 대해줬죠.”방민아는 소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 멈칫하는데 소원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까도 오빠 방민기 씨의 애인이 되라고 열정적으로 소개해 줬잖아요.”“그...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방민아는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왜 헛소리에요?”소원이 말했다.“방민기 씨 애인으로 반년만 있으면 3개월 후에
방민아가 아무리 울고 불쌍한 척해도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봐서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경한 씨, 아까 그 말 진심이 아니라 그저...”방민아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숨이 올라오지 않는 것처럼 한참 호흡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유진이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린 나이에 이렇게 모함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방민아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악독한 걸로 치면 유진이 자기보다 백배, 천배 더 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방민아가 모르는 게 있었다. 만약 그녀가 사람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면 유진처럼 어린아이가 꿍꿍이가 있다 해도 어쩌지는 못했을 것이다.유진은 총명한 아이였기에 모든 수모를 꾹 참으며 목숨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것밖에 없었다. 조금만 멍청했으면 진작 죽어서 뼈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방민아는 이를 악물고 해명했다.“경한 씨, 하늘에 맹세해요. 난 절대 그 누구에게도 유진이 해치라고 한 적 없어요. 게다가 유진이가 한 말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요. 유진이가 정말 거짓말한 거라면 어린 나이에 잘해준 사람 모함한 게 되잖아요. 그건 짐승이나 다름없는 짓이에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닌지 의심해야죠.”육경한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정말 잘해줬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죠.”“나는...”방민아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유진이 진실을 말했다 해도 방민아 손엔 피를 묻히지 않았으니 그들도 딱히 그녀를 어찌할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끝까지 발뺌하면 그만이다.육경한이 그런 방민아를 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그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 나요?”방민아가 멍한 표정으로 육경한을 바라봤다.육경한은 방민아가 진심으로 이 아이를 대해야만 결혼을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방민아도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방민아가 아닌 다른 여자라도 그 제안을 흔쾌히 동의했을 것이다. 대답할 때만 해도 유진을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고
시터도 사실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박으려 했다. 부잣집은 체면을 중요시했기에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니나 다를까 보디가드가 시터를 잡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자 시터가 펑펑 울며 억울하다고 아우성쳤다.그때 유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증거 있어요.”이 말에 모든 사람이 놀라고 말았다. 몇 살짜리 애가 증거를 확보했다고 큰 소리로 외치니 그게 뭔지 다들 의문이었다.유진은 목에 건 호루라기를 벗으며 말했다.“이 호루라기 사진 찍을 수 있는 호루라기에요. 시터가 두유에 약 타는 장면을 찍어서 남겼고 쓰레기통에 버린 약병에 적힌 진료소 이름도 찍어놨어요. 그리고 이모랑 둘이서 작은 방에 모여 있는 사진까지 전부 모아뒀어요.”이 호루라기는 서현재가 유진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 유진은 그 호루라기가 퍽 마음에 드는지 늘 목에 걸고 다녔고 소원마저 그 호루라기가 사실 작은 카메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총명한 유진이 시터가 약 타는 장면을 찍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유진은 줄곧 얌전하고 말이 별로 없어 누구든 쉽게 휘두를 수 있다는 착각을 줬지만 사실 총명함을 숨긴 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연기한 것이었다.사실 유진은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그 누구보다 총명했다. 반항하면 육경한은 오히려 화만 냈고 반항하면 할수록 방민아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할 때 그 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순종하며 겁이 많은 척 연기해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나쁜 여자의 민낯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시터는 이제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작은 몸집에 이렇게 많은 꿍꿍이가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을 생각을 다 하다니, 유진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입이 떡 벌어진 시터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이제 벽에 머리를 박겠다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육경한은 넋을 잃은 시터를 보며 힘껏 발로 걷어찼다.“감히 내
방민아는 부들부들 떨며 얼른 앞으로 나아가 육경한을 당겼지만 육경한이 매몰차게 뿌리쳤다.쿵.그 힘이 어찌나 센지 방민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경한 씨...”방민아는 육경한이 이렇게 세게 밀칠 줄은 몰랐기에 너무 억울했다.“잘 생각해 보고 얘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내 아들이 거짓말하는 건지 아니면 방민아 씨가 거짓말하는지 말이에요.”육경한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내뱉은 말도 하나같이 온도가 없어 가슴이 떨리게 했다. 그러더니 이미 혼비백산한 시터 앞으로 다가가 서늘하게 말했다.“누가 시켰어요?”시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육경한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고 혀에 쥐가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방민아도 너무 긴장해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시터는 진실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게 없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전 아무것도...”“다시 말할 기회 줄게요.”그러더니 한 걸음 한 걸음 시터에게로 다가가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경고했다.“그래도 거짓말한다면 가족 모두 힘들어질 거예요.”깜짝 놀란 시터는 눈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던 터라 이 일만 마치면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돈에 눈이 멀어 육경한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간과한 것이다.밉보여서는 안 될 사람에게 밉보였으니 이제 모든 게 늦어버렸다.방민아는 시터가 주저하자 얼른 입을 열었다.“맞아요. 얼른 얘기해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는지 아니면 모함을 받았는지 얘기하라고요. 나이도 들었는데 아이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잘 얘기해야 할 거예요. 잘못하면 벌받아야겠지만 잘못하지 않은 사람을 핍박하지는 않을 거예요...”“방민아 씨, 그 입 다물어요.”육경한의 차가운 경고에 방민아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다시 진정하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해명했다.“경한 씨, 나도 혐의 벗고 싶어요. 경한 씨보다 더 진실을 원하는 사람은 나라고요. 그래야 나도 누명을 벗을 수 있을 테니까
방민아가 설득했다.“유진아. 이모랑 했던 약속 잊었어? 말 잘 듣고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사실 방민아는 유진에게 두 사람이 한 약속을 잊지 말라고 귀띔하고 있었다. 만약 유진이 말을 듣지 않으면 더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약속 말이다.‘어린아이가 알면 뭘 안다고. 겁만 줘도 고분고분해질 텐데.’방민아가 말했다.“거짓말하면 코 길어지는 거 알지? 그러니까 얼른 이모한테 와.”하지만 유진은 들으려 하지 않을뿐더러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점점 더 거세게 울었다.“왜 또 째려봐요...”유진이 소원의 품에 파고들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엄마, 저 여자 나 째려보기만 한 게 아니라 꼬집기도 하면서... 시켜준 대로 아빠한테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엄마 못 만날 거라고 했어요...”유진이 육경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빠, 이모가 한 말 사실이에요? 엄마 못 만날까 봐 하라는 대로 하긴 했는데 정말 너무 무서워요... 저 나쁜 아줌마가 그러는데 두유에 약 타라고 한 것도 이모가 시킨 거래요. 나 죽이려 드는데 고분고분 말 들어야죠...”이 말에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방민아는 목덜미에 칼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온몸에 오한이 몰려왔다.‘짐승 같은 놈이 다 연기한 거야? 이렇게 큰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방민아는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런 꿍꿍이를 꾸몄다는 게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육경한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더니 유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아니야. 엄마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아빠가 있는데 감히 누가 엄마를 건드리겠어.”“아빤 절대 그 누구든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할 거야.”유진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깜빡이며 물었다.“아빠, 정말 저 나쁜 이모가 유진이랑 엄마 해치지 못하게 지켜줄 거예요?”육경한이 대답했다.“너랑 엄마 다 무사할 거야. 아빠가 약속해.”유진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소원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의미심장한 눈빛으
시터가 퉁명하게 쏘아붙이며 유진을 뺏어가려는데 갑자기 날아든 발차기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아악.”힘이 잔뜩 들어간 발차기에 시터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두 번 뒹굴더니 배를 부여잡고 곡소리를 냈다.“누가 나를...”원망하던 시터가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대표님이 나를 왜.’켕기는 게 많은 시터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까먹었다.“대표님...”육경한이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매섭게 쏘아붙였다.“누가 도련님 쫓으라 했어. 도련님을 돌볼 때 어떤 수칙을 지켜야 하는지 잊었어?”유진은 체질이 별로 좋지 않아 노트에 명확하게 달리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으니 추격전을 벌이는 건 더더욱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게 아니라...”시터가 화들짝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기도 모르게 옆에 선 방민아를 바라봤다. 해명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육경한이 매섭게 말했다.“물건 정리해서 꺼져요.”이 말에 시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급을 이렇게 많이 주는 일이 없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방민아를 바라봤지만 방민아는 그저 화가 치밀어오를 뿐이었다.‘멍청하긴. 나는 왜 보는 거야. 내가 언제 사람들 앞에서 유진이 데리고 뛰라고 했나?’방민아는 시터의 눈알이라도 파내고 싶었지만 얼르 이렇게 암시했다.“경한 씨 더 화내기 전에 얼른 가요.방민아가 이렇게 말하며 시터에게 눈빛을 보내자 시터가 바로 알아들었다. 따로 두둑이 챙겨주겠다는 약속이었다.시터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지금 당장 짐 싸서 갈게요...”그때 유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아빠. 아줌마 이렇게 보내면 안 돼요.”육경한이 유진에게 물었다.“왜?”유진이 시터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나쁜 아줌마가 두유에 뭘 섞었어요. 할머니한테 준 약이랑 같은 건데 두유에 섞어서 유진이 먹이려는 거 내가 몰래 토했어요.”이 말에 시터와 방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