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눈썹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턱을 어루만졌다.신은 그에게 은혜로웠다. 모든 곳을 훌륭하게 만들어주셨다.그녀의 손이 귀신에 홀린 듯이 그의 목젖을 만졌다. 그것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만져보고 싶었던 것이었다.높이 솟은 목젖은 굴곡이 예술적이었다.침대에서 그녀는 항상 고분고분했다.하지만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그때 갑자기 손에 닿아 있던 목젖이 움직였다.윤혜인이 손을 빼기도 전에 이준혁은 눈을 떴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남자의 동공은 흑진주처럼 짙었고 빠져들게 했다.윤혜인은 가슴이 겉잡을 수없이 뛰기시작했다.빼려던 손이 그에게 잡히고 말았다.“몰래 뭐 하는 거야?”날카롭고 또렷단 그의 목소리는 금방 깬 흔적이 없었다.당황한 그녀는 급히 둘러댔다.“벌레가 있었어요.”“벌레?”“제가 쫓았어요.”그녀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너무 긴장한 너머지 꽉 쥔 손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아.”윤혜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남자는 손을 들어 벨을 누르려 했고 그녀가 급히 제지하며 물었다.“뭐 필요해요? 내가 도와줄게요.”이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VIP 병실을 어떻게 청소했길래 벌레가 있냐고 물어봐.”윤혜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대답했다.“아마 내가 잘못 본 것 같아요. 이렇게 작은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억울함이 묻어있었다.그녀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아직도 어디가 불편해요?”“모든 곳이 불편해.”“그럼 내가 의사를 불러올게요.”막 몸을 일으키려는 윤헤인은 꽉 잡힌 손에 그대로 이준혁 품속으로 무너졌다.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냈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필요 없어. 네가 올라와 곁에 있어주면 돼.”그의 목소리는 머리 꼭대기에서 울렸고 아무런 감정이 담아있지 않았다.“아...”눈을 휘둥그레 뜬 윤혜인은
윤혜인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급히 그를 거부하려 했다.아마 상처를 건드린 것 같다. 이준혁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고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움직이지 마. 아직은 할 수 없어.”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녀는 너무 부끄러웠다.꾸짖고 싶었지만, 밖에 있는 주훈이 들을 것 같았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소리를 낮추며 그를 흘겼다.“또 날 괴롭히는 거예요?”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발그스름한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이준혁의 눈이 더욱 짙어졌다.그녀 말처럼 그가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밤새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속셈을 읽지 못했다.그녀는 그저 오늘 파티에서 있을 일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그가 그녀를 살려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나 그녀를 밀친 것도 사실이었다...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런 일들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찰싹-허벅지를 때리는 소리에 윤혜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뭐 하는 거예요?”“괴롭히는 거지.”이준혁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그리고 또다시 입술을 탐했다.그의 앞에선 그저 토끼처럼 반항해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하지만 여전히 거부하며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을 피했다.그러자 이준현은 그녀의 얼굴을 고정하고 날카롭게 물었다.“왜? 안 돼?”이준혁은 미소를 짓지 않으면 너무 차갑고 낯설었다.주위의 공기마저 차가워졌다.그때 마침 테이블에 놓은 휴대폰이 울렸고 그것은 윤혜인의 것이었다.그의 몸 위로 손을 뻗은 그녀는 혹시라도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 봐 각별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 행동이 거부감으로 보였다.그의 눈이 점점 차가워졌다.이준혁의 심리적 변화를 몰랐던 윤혜인은 걸려 온 전화가 소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통화를 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라고 느껴 끊으려 했다.그때 예상치 못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받아.”잠시 망설이던 윤혜인이 전화를 받았다.“혜인아, 집에 무사히
“셋째는...”망설이던 윤혜인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가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기 전에는 아이 같은 건 만들지 말아줘요. 나도, 할아버지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부디 안전 조치를 꼼꼼히 하길 바래요.”사실 말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입을 열었으니 명확히 해야 한다고 느꼈다.결혼 생활 중 다른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아버지였다고 하고 싶지 않았다.비록 그녀도 아기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이준혁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넷째는 없는 거야? 그럼 내가 대신 만들어줄까? 내가 너희들의 행복을 빌어줘야 한다. 어때?”윤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나와 선배는...”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말을 가로챘다.“할아버지가 어떻게 되실 거란 걸 생각해 봤어? 그 남자를 위해 할아버지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한순간.너무 나 큰 죄명이 쓰였다.정상적인 교제가 어떻게 할아버지의 안위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되어버렸는지 윤혜인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할아버지도 친구들과의 교제를 제한한 적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준혁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뿐이었다.“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할아버지도 모를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과 임세희의 일도 제가 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절대 비밀 지킬게요.’이준혁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그녀의 착한 모습이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윤혜인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에 그의 상처에 대한 김성훈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내려갈게요.”몸을 일으키려는데 이준혁이 그녀를 확 잡아당겨 품속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돌려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내 침대에 오르고 마음대로 내려가려고 해?”그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윤혜인의 등이 그의 가슴에 닿아있었지만, 그녀의 턱은 돌아가고 힘겹
이게 무슨 말인가?윤혜인은 그가 임세희랑 침대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해외는 뭐 하러 갔단 말인가?이준혁과 2년을 함께한 그녀이기에 그가 혈기가 왕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순수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굳이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다. 이혼도 그녀에게 통보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이준혁은 그녀의 얌전한 모습을 좋아했다. 그는 그녀를 넘어뜨리고 품속에 안았다. “화나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윤혜인은 그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임세희랑 잔 적 없다고요?”이준혁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리게 말했다.“그래.”“진짜요?”윤혜인은 다시 한번 물었다.이준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의 입술을 만졌다.“뭘 의심하는 거야?”“하지만...”그녀의 말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몸을 내렸다.“이리 와.”그의 입술이 그녀의 귀를 괴롭혔다.유난히 부드러웠다.저도 모르게 움츠러든 윤혜인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이제는 더욱 혼란스러워 다정한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피하려는 그녀를 눈치챈 그가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헙...”깜짝 놀란 그녀는 신음을 뱉어냈다.“하고 싶어?”그녀가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무방비 상태인 그녀 속으로 마구 침입한다.VIP 병동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너무나 조용해서 두 사람의 얽힌 신음소리가 특히 선명하게 들렸다.윤혜인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고 심장이 터질 듯 조여왔다.그녀는 문밖의 주훈에게 들릴까 봐 노심초사했다.그러나 구름 속을 걷는 듯한 느낌에 제대로 사고 할 수 없다.이준혁은 그녀를 너무 잘 다뤘다. 정확했고 거침이 없다.경험이 없는 그녀에겐 비교 대상이 없었다. 이 방면에서 이준혁은 마스터레벨일 거라 생각했다.훌륭한 비주얼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그녀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졌다.부상에도 불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아마 그가 그녀에게는 유일했기에 그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거의 도망치다시피 화장실로 달려갔다.‘탕!’ 문이 닫혔다.이준혁의 눈빛이 짙어졌다. 그는 손을 뻗어 물티슈를 꺼내 손에 묻은 그녀의 흔적을 닦았다.그녀는 즐겼지만, 그는 아직이다...화장실에 나온 그녀는 감히 침대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이리 와.”머뭇거리고 있는 그녀에 남자가 명령조로 말했다.“나, 아직 피곤하지 않아요. 먼저 쉬어요.”“실컷 즐겨 놓고 책임은 지지 않으시겠다?”다소 격한 그의 말투는 금욕적인 그의 이미지와 완전 달랐다.방금 찬물로 세수 한 그녀지만 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대로 거기에 서 있기도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이준혁은 서두르지 않고 침대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이 상태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윤혜인의 얼굴이 다시 화르륵 달아올랐다.두 사람은 아직 부부이기에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은 불법도 아니었다.거기에 이준혁은 부상을 입었고 자신도 임신한 상태인데 이대로 의자에서 밤을 보낼 순 없다.그녀가 침대에 오르자 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으며 물었다.“아까 좋았어?”귓가에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 유혹적이었다.그녀의 얼굴이 또다시 빨개졌다.그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끌었다.“이준혁, 그만해요.”이준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이렇게까지 모셨는데 호칭 바꿀 수 없어?”그의 뜻은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그들은 지금 무슨 사이일까?“피곤해요.”그녀는 못 들은 척하며 화제를 돌렸다.허리에 놓인 그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뜨겁던 열기도 조금 식은 듯하다.그가 화 났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그녀였지만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다.그녀는 무서웠다...이준혁이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도 그녀의 심장은 겉잡을 수없이 요동쳤다.상처가 아문 후에는 고통을 잊어버린다는 말이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인듯하다.가까스로 억눌렀던 마음이 또다시 흔들릴 것
그가 애원했다.“도와줘.”그날 밤, 윤혜인은 한순간 마음이 약해진 자신을 탓했다.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한 것보다 더 힘들었다.귀신도 속이려는 것이 남자의 혀인 것 같다....전날 밤의 피로 때문에 윤혜인은 10시가 되어서도 깨어나질 못했다.주훈도 그녀를 깨우지 못했다.주훈은 옷을 배달하러 온 것이다.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윤혜인은 이준혁의 품속에서 곤히 잠들어있었고 머리카락은 살짝 흐트러져 있었으며 어깨는 반쯤 드러나 있었다.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 너무 매력적인 한 쌍이었다.대표님이 부상당한 것이 아니었나?이 자세는 누가 누굴 보살피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하지만 그는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고 황급히 고개를 떨구었다. 테이블에 옷들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매우 낮은 인기척이었지만 윤혜인은 끝내 뒤척였다.비몽사몽한 상태로 이준혁의 품속을 파고들었다.그녀의 행동은 이준혁을 기쁘게 했다.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윤혜인이 눈을 떴을 때 이준혁의 한 손이 태블릿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그의 무릎을 베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다가 몸을 빼려 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더욱 가까이 감쌌다.그는 한 손으로 태블릿을 끄고 옆에 둔 후 몸을 내려 그녀의 머리에 입맞춤했다.“배고파?”이런 다정함은 너무 당황스러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이준혁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난 배고파.”그녀의 착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준혁의 ‘배고픔’은 다른 의미인 것 같았다.“먹을 것 좀 사 올게요.”그녀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자신은 남자의 셔츠를 입고있고 자신의 옷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어젯밤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이준혁은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남아있었다. 하여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주훈더러 옷을 가져오게 했고 식사도 곧 도착할 거야.”윤혜인은 황급히 환복하러 사라졌다.식사를 마친 후
“이혼 하지 않을 거야.”그가 말했다.윤혜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네?”“너에게 빠졌어.”간단한 한마디에 폭발적인 정보력이 숨어있었다. 윤혜인은 멍하니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그가 이혼을 물리며 그녀에게 빠졌다고 한다...그녀의 심장이 멈추었다가 다시 소생했다.그녀 앞에 어둠이 드리웠고 어느새 남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가 집은 포도가 그의 입으로 향했다.윤혜인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온몸이 무형의 충격에 당황하는가 싶더니 나른해졌다.이준혁의 입술이 그녀의 손가락을 삼켰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내렸다.다음의 목표는 그녀의 입술이다.그는 포도를 맛나게 먹으며 윤혜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잘생긴 얼굴은 욕망에 불타오르게 했다.윤혜인은 마치 전기충격을 맞은 것같이 발끝 마디마디까지 찌릿찌릿했다.그녀는 이대로는 잠식되어 죽을 것 같았다.포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입술을 뗀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달아.”윤혜인은 여전히 구름 속을 걷는 듯했다.혀가 마비되어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았다.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그녀의 긴장한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먹다 남은 음식을 정리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버리고 올게요.”이준혁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일하는 아줌마를 부르면 돼.”하지만 윤혜인은 이미 문을 연 뒤였다.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밖에 나가 열기를 가라앉혀야 했다.쓰레기를 버린 그녀는 베란다에서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했다.이준혁은 다른 여자와 키스한 적이 없다고 했다...그녀와 이혼하지 않겠다고 했다...임세희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임세희를 어떻게 할 작정인가?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녀는 자신을 경멸하기 시작했다.전에 얻은 교훈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남자는 육체와 감정을 이성적으로 분간한다. 하지만 여자는 항상 뜨거운 스킨쉽이 더욱 가까
주훈이 앞으로 다가섰다. 전에 얻은 교훈을 잊지 않았던 그도 임세희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정중하게 말했다.“제가 모실게요.”임세희는 당연히 원치 않았다.그녀는 울며불며 애원했다.“여기에 있게 해줘. 난 괜찮으니까 내 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야.”이준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난 이혼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그러니 너도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나를 찾아오지 마.”“뭐? 오빠 지금 뭐라고 했어?”임세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환청인 줄 알았다.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녀는 더욱 통곡했다.“잠시 이혼하지 않는 거잖아.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우리는 어울리지 않아.”눈살을 찌푸린 이준혁은 결심을 내린 듯했다.“난 널 동생 그 이상으로 생각한 적 없어. 널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동생은 싫어! 난 오빠의 와이프가 될 거라고!”임세희는 그에게 매달렸다.“내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고칠게.”“그만해. 돌아가서 내가 한 말을 곰곰히 생각해 봐. 너만 원한다면 너를 남주처럼 대해줄 수 있어.”“싫어! 여동생은 싫다고! 오빠 난 오빠의 동생은 하고 싶지 않아.”이준혁은 담담하게 말했다.“싫다면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금전으로 보상해 줄 수도 혹은 다른 요구도 들어줄게.”흥분한 듯한 임세희는 이준혁의 팔을 잡고 실성한 듯 소리쳤다.“나에게 오빠 하나면 된단 말이야!”“진정해!”이준혁은 성질을 죽이고 있었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어릴 적부터 이선그룹의 후계자로 자라왔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했고 감정에 대해서도 시간 낭비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임세희에 대해선 책임감이 있었기에 그의 옆자리를 원하는 그녀를 만족시켜 주려 했었다.하지만 요즘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예를 들면 윤혜인을 향한 그의 마음 같은..그것이 소유욕인지 질투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아직 이혼하기 싶지 않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