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한구운이 물었다.몸이 조금 회복된 그는 꼿꼿이 서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난 너를 사랑해, 난 너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어. 그런데 왜 넌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거야?”그러자 윤혜인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아니니까요.”이 세상 누구도 이준혁을 대신할 수 없었다.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생명까지 바칠 수 있었던 이준혁이었으니 말이다.이선 그룹 본사 밖으로 나온 후, 주훈은 걸어가며 보고했다.“사모님, 주진희 씨를 찾으러 갔었는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행방불명이 됐다고 합니다. 이전에 대표님께서 사람을 보내 주진희 씨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누군가 그 틈을 타 주진희 씨를 납치한 것 같습니다. 아마 상황이 좋지 않을 겁니다.”이 말에 윤혜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계속 찾아봐요.”차에 타기 전에 주훈은 갑자기 물었다. “사모님, 정말 대표님께서 아직 살아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곧이어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윤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준혁 씨는 돌아올 거예요. 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주훈은 그 순간, 한때 약하고 보호가 필요했던 윤혜인이 지금은 이준혁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강인하고 유연한 모습이 그와 흡사했다.그래서 주훈도 윤혜인의 말을 믿게 되었다.때로는 살아가는 데 있어 희망이 필요한 법이다.주훈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갑자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돌아보니 문현미였다.그는 급히 차에서 내려 인사를 건넸다.“사모님.”문현미는 손을 흔들었다.“혜인 씨와 잠시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윤혜인도 예의를 갖추며 차에서 내렸다.문현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며 조금 망설이는 듯했다.“손녀를 볼 수 있을까요?”윤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아직 소개해드릴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문현미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멀리서라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윤혜인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여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처치가 늦었어. 이미 독소가 몸에 주입된 상태에서 하루 밤낮을 바다에서 표류했으니 그로 인해 독소의 작용이 더 빨라졌을 거야.”“더 빨라졌다고?”김성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처음의 고비까지는 한 달의 시간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그렇지 않아.”약간의 유감이 담긴 표정으로 여의사는 고개를 저었다.“만약 깨어나지 못하면, 첫 번째 치료 단계를 침대에서 보내게 될 가능성이 커.”김성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는 믿기지 않는 듯 여의사의 팔을 꼭 잡았고 무릎에 힘이 풀리면서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그러자 여의사가 급히 김성훈을 부축하며 말했다.“아이고... 성훈아, 이러지 마...”김성훈은 간절하게 부탁했다.“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 줘. 준혁이 이제 막 아내랑 화해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던 참인데...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안 돼.”“성훈아...”여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김성훈과 오랜 친구 사이로 지냈어도 그녀는 그가 이렇게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너 나 잘 알잖아?”여의사가 말했다.“준혁 씨를 살릴 생각이 없었다면 난 내 실험실로 데려오게 하지 않았을 거야.”그녀는 남자의 깎아지른 듯한 야윈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신종 사례를 놓치고 싶지 않아.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나는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 하지만...”말을 멈칫하더니 여의사가 다시 말했다.“지금으로선 준혁 씨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 다음 단계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거야.”김성훈의 눈이 번쩍였다.‘이 말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인가...’그러나 다음 순간, 여의사는 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최선을 다해볼 테지만 결과는 하늘의 뜻에 달렸어.”김성훈은 깊은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 여의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처음 여기 왔을 때 ‘혜...’라고 했던 말을 들었어. 그 후로는 깊은 혼수상
이를 갈 정도로 원지민은 분노했다.‘이 늙은이가... 분명 나를 구치소에 더 오래 가두려고 작정한 게 틀림없어!’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원지민은 문현미와의 면회를 요청했다.그리고 문현미는 이에 동의했다.그녀도 원지민이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원지민은 문현미 곁에서 수년 동안 순종적으로 행동해왔고 문현미도 그녀를 아끼고 보살펴 왔다.그런데도 원지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문현미에게 독을 먹이고 심지어 이천수와 손잡아 그녀의 외아들까지 죽이려고 했다.이들이 생각하는 건 단순했다.자신들이 직접 저지르지 않은 일이라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 것이다.때문에 문현미는 분명히 그들에게, 특히 원지민에게 자신의 행동에 따른 대가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려줄 참이었다.구치소 면회실에서.원지민은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이고 얼굴에는 피곤함과 고통이 가득했다.“어머님...”그녀는 입을 떼자마자 목이 메었다. 익숙한 호칭을 사용해 문현미의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것이었다.하지만 문현미는 그 호칭을 듣자마자 원지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어머님이라고 부르지 마!”그녀는 독하게 말했다.“연극은 그만둬. 할 말 있으면 빨리해!”“어머님... 저한테 이러시면 안 돼요...”하지만 원지민은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울먹였다.“제 배에는 아직도 준혁이의 아이가 있다고요...”곧 문현미는 벌떡 일어나 원지민의 뺨을 세게 때렸다.“네 배 속의 그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쓰라린 뺨에 원지민은 눈앞의 문현미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다.이때, 교도관이 개입하여 상황을 중재했다.“주의하세요! 면회를 계속할 건가요?”결국 원지민은 억울함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교도관은 엄격하게 경고했다.“첫 번째 경고입니다.”원지민은 이를 갈았지만 애써 참으며 계속해서 자신을 불쌍하게 보이도록 했다.“어머님, 저를 믿어주세요. 그 여자는 어머님을 속이고 있어요. 그 여자가 낳
말을 하면서 그녀는 몸을 숙여 여자의 상처를 간단히 응급처치로 지혈하려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피가 여전히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상처가 매우 깊은 게 분명했다.곧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들어와 원지민을 구급차에 실었다.사이렌 소리와 함께, 꽉 쥐고 있던 원지민의 손이 마침내 천천히 풀렸다.그녀의 입가에는 힘겹게 억지로 얹은 듯한, 희미하지만 만족스러운 미소가 살짝 번졌다....윤혜인이 이 소식을 들은 건 이미 다음 날 정오였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달밤 스튜디오에 큰 문제가 생겼으니 말이다.원자재부터 생산 라인까지 모든 공급망이 중단되었고 대량의 주문이 제때 납품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더 심각한 것은 회사 내 이미 완성된 제품들이 밤중에 두 명의 좀도둑에 의해 모두 파손되어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다.많은 고객이 주문 재촉을 하고 있는 가운데, 윤혜인은 급히 공동 고객 서비스 부서를 설립하여 환불 협상을 진행했다.하지만 많은 문제들이 단순히 환불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일부 고객들은 연회나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라 현장에서 즉석 제작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심지어 두 배의 보상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고객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윤혜인은 할 수 없이 구지윤과 고위 임원들과 함께 나눠서 직접 고객들을 찾아가 사과하고 보상해 주었다. 스튜디오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더불어 그녀는 보상액을 세 배로 올리기로 결정했다.즉, 1억 원의 주문에 대해 3억 원을 보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대략적으로 계산해 본 결과, 스튜디오의 현재 파손된 주문 가치는 약 400억 원에 달했다.하지만 그녀들은 총 1200억 원을 보상해야 했다.‘달밤’이 개업한 이래 총 수익은 겨우 300억 원에 불과했기에 이 구멍을 메울 방법은 전혀 없었다.경찰서 쪽에서는 좀도둑들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하지만 그 둘은 너무 가난해서 보상할 돈이 전혀 없었고 자발적으로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사실 윤혜인은 오늘 송아영 외에도 여러 까다로운 상대를 만났다.그래서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송아영 씨, 저희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보상이고 다른 하나는 대체품을 제공하는 것입니다.”윤혜인은 태블릿을 꺼내 건네며 덧붙였다.“Vserand도 국제적인 브랜드입니다. 그쪽 제품을 구입해서 응급 상황에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사실 Vserand는 흠잡을 데 없는 명성 있는 브랜드였는데 달밤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브랜드였다.그러나 애초에 윤혜인을 고의로 곤란하게 하려 했기 때문에 송아영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그녀는 머리를 저으며 무시하듯 말했다.“혜인 씨, 말은 참 잘하시네요. 그런데 이미 저희 회사에서는 공식 발표를 했어요.”송아영은 바로 핸드폰에서 한 이미지를 내밀었다.날카로운 눈썰미로 윤혜인은 그 발표 시간이 정오였음을 알아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송아영 씨, 저희는 오전 9시에 이미 귀사에 전화로 모든 상황을 알렸습니다. 이미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오에 발표를 하신 이유가 뭡니까?”순간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송아영은 곧 침착하게 변명했다.“제가 몰랐던 거죠. 아마 전화는 저에게 걸린 게 아닐 겁니다...”그녀는 명백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이성을 잃은 송아영은 이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당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짜증스럽게 말했다.“명백히 당신들이 잘못했는데 왜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지 않는 거냐고요. 달밤 스튜디오는 항상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해왔나요?”“저희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윤혜인은 담담하게 물었다.“그럼 송아영 씨는 어떻게 해결하고 싶으신지 방안을 제시해 주시겠어요? 제가 들어보고...”하지만 윤혜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송아영은 날카롭게 말했다.“이미 말했잖아요. 나한테 무릎 꿇으라고!”그녀는 귀 옆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후에 제 기분을 봐서
송아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항상 강자에게 아부하고 약자에게 가혹한 태도를 취해왔다.원씨 가문에서 지시를 내렸는데 송아영이 윤혜인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더군다나 그녀의 본래 그런 성격이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것이었고 말이다.곧 송아영이 비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이 몇 마디 한다고 해서 나와 지민이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송아영 씨의 절친 원지민 씨가 벌써 이틀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거, 이상하지 않아요?”송아영은 살짝 의아해졌다.사실 요 이틀 동안 그녀와 연락을 취한 것은 원지민 본인이 아닌 원지민의 비서였다.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원지민을 찾을 수 없었다.“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윤혜인은 담담하게 말했다.“송아영 씨 절친이 지금 어디 있는지 조금만 알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결정할 수 있는 시간 5분 더 줄게요. 그때까지도 협상할 생각이 없다면 그만 끝냅시다.”원지민이 구금된 사실은 원씨 가문에서 철저히 숨기고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였다.송아영은 윤혜인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원지민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씨 가문의 예비 며느리이자 원씨 가문의 대표인 그녀의 편에 서는 것이 절대 실수일 리 없다고 여겼다.그러나 윤혜인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자 송아영은 약간 불안해졌다.곧바로 원지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송아영의 전화를 받는 것은 여전히 원지민의 비서였다.“채 비서, 지민이는 없어요?”상대방은 능숙하게 대답했다.“안녕하세요. 송아영 씨. 대표님께서는 현재 국제 회의에 참석 중이셔서 전화를 받기 어렵습니다.”송아영은 전화를 끊고 다시 업계 대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원지민의 상황을 물어봤다. 그쪽에서는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기다리는 동안 송아영은 고개를 높이 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당신이 헛소리하는 게 틀림없어요. 지민이는 지금 해외에 있다고요.”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5분이 지나
이천수의 말은 명백히 위협으로 들렸다.이제 윤혜인의 회사만이 아니라 곽씨 가문의 사업까지 건드리려는 의도였다.윤혜인은 냉담하게 대꾸했다.“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희 집의 현금 흐름은 현재 전혀 문제없습니다.”이천수는 그녀가 그저 강한 척한다고 생각했다.곧 그는 진심으로 충고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혜인아, 삼촌이 하나 충고해줄게. 차라리 준혁이의 사망을 인정하고 사건을 철회하는 게 어때? 그 주식 부분을 내가 현금으로 줄게.”물론, 사건이 철회된 후에 얼마나 주겠다는 건 결국 이천수의 마음대로일 것이다.그는 단순히 몇 가지 수를 써서 이선 그룹의 주가를 크게 떨어뜨린 다음, 적은 금액으로 보상할 생각이었다.윤혜인은 그의 진짜 의도를 깨달았다.그가 원하는 것은 이준혁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어 그의 야망을 실행에 옮기려는 것이었다.“삼촌, 준혁 씨는 죽지 않았어요.”윤혜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앞으로는 입조심해 주세요. 그 말 듣기 싫어요.”이천수는 분노로 폭발 직전이었다.‘고집이 왜 이렇게 세? 전혀 말을 듣지 않는군.’“곧 네가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두고 봐!”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몇몇 회사들은 달밤과의 협상을 어렵게 만들기 시작했다.분명 이천수가 손을 썼을 것이다.날이 어둑해질 무렵, 윤혜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스튜디오로 돌아왔다.이미 이틀째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돌아갈 시간도 없었다.다행히 집에는 홍 아줌마와 경호원이 있어서 그녀는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연이틀 동안 윤혜인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결과적으로 손실은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특히 가장 큰 주문이었던 SY 미디어에서는 한 푼도 보상금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대체 방안을 마련해 주었다.이 덕분에 윤혜인은 상당한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그녀는 성준에게 보상금을 송금했지만 성준은 이를 거절하며 너무 격식을 차리지 말라고 했다.성준은 또 이렇게 말했다.
윤혜인은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발끝에서부터 냉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천천히 앉으며 애써 자신을 진정시킨 후, 다시 한번 모니터 화면을 반복해서 확인했다.마침내, 그녀는 홍 아줌마와 아름이가 사라진 그 모퉁이로 갔다.이곳은 홍 아줌마가 평소에 다니던 경로가 아니었으며 화면 속에서의 아름이가 작은 손으로 홍 아줌마를 잡아당기듯 이끌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윤혜인은 좁은 골목 입구에 서서 주변을 살펴봤다.이곳에는 하나의 도로 감시 카메라만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는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있었다.만약 홍 아줌마와 아름이가 이 모퉁이에서 납치된 것이라면 카메라에 포착될 가능성은 없었다.분명히 상대방이 사전에 계획을 세운 것이 틀림없었다.‘그런데 왜 아름이는 왜 낯선 경로로 홍 아줌마를 이끌었을까?’수많은 의문이 윤혜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천수, 한구운, 원지민...’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쳐 갔다.윤혜인은 이들 모두를 증오했다.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사람들을 미워했다.‘도대체 누가 아름이를 데려간 거냐고!’그녀는 곧바로 차에 올라타 이선 그룹 본사로 돌진했고 이천수의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이천수는 넓은 사장 의자에 앉아 여비서와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여비서는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그의 무릎에 앉아 있었고 이천수는 여자의 탱탱한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입을 맞추고 있었다.“자기야, 날 너무 괴롭히지 마. 빨리 줘... 더 이상 참기 힘들겠어...”그때, 문이 ‘쾅’ 하고 열렸다.이천수는 깜짝 놀라 여비서를 밀쳐냈고 그녀는 ‘아야’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윤혜인은 이천수에게로 달려가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소리쳤다.“당신이야? 당신이 데려갔어?”좋은 시간을 방해받은 이천수는 화가 나 있었다.“미쳤어? 뭐가 나라는 거야? 데려가긴 뭘 데려가?”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