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윤혜인은 몸이 떨렸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선배와 난 친구예요. 선배에겐 나는 그저 동생일 뿐이에요.”동생?이준혁은 콧방귀를 꼈다. 같은 남자로서 그가 잘못 짚었을 리 없다.한구운의 그 음흉한 눈빛은 절대 동생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윤혜인의 몸매를 바라보며 침을 흘렸고 드러난 허리에 흥분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더욱이 파티를 싫어하는 윤혜인이 오늘따라 정갈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났다.여러 가지 정황들은 그를 화나게 했다.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이글거렸다.“그래서 오늘 그 사람을 꼬시려는 거야?”윤혜인은 폭발할 것 같았다. 믿으려 하지 않으면 그뿐이지 이제는 모욕하려 든다.그녀는 왜 아직도 그가 자신을 믿어주길 바라고 있는 걸까?제멋대로 그녀를 판단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이제 함부로 집적거린다는 죄명을 붙이고 있다.그야말로 결혼 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질책하고 있는가.오랜 시간 참아왔던 것이 폭발할 것 같았다.그녀도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었다.“내가 선배와 연락한다고 뭐라 하는데 당신은? 당신이야말로 임세희랑 놀아나고 있잖아요!”“우리는 아주 정상적으로 만나요. 당신들처럼 숨어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는 않아요.”“당신은 그래도 되지만 내가 하면 안 된다는 법 있나요?”드디어 폭발한 윤혜민은 참았던 눈물까지 쏟아냈다.분명 잘못한 것은 그들인데 왜 항상 그녀가 죄인인지 알 수 없다.그녀가 그를 사랑한 이유인가?그녀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멋대로 괴롭혀도 된단 말인가?그런 거라면 이런 고통스러운 사랑, 이제 하고 싶지 않다.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차갑게 말했다.“만약 선배가 사라진다면 나도 함께 사라질 거야.”“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말하는 거야?”이준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독기는 가히 그녀를 찢어버리고도 남았다.윤혜인은 마음이 너무 시렸다.이준혁에게는 임세희와 가족의 생명 외엔 중요한 건 없을
어떻게 여기서?낯선 방에서, 할아버지의 생신날에 그녀를 겁탈하려 들수 있지?그녀의 몸부림은 너무나 비약해서 남자의 거대한 힘을 당할 수 없었다.“네가 자초한 거야.”이준혁이 눈빛이 짙어졌다.‘찌찍’소리와 함께 그녀의 옷이 남자에 의해 찢겼다. 희고 가느다란 다리가 드러났다.눈물이 적신 촉촉한 눈빛은 한 남자를 미치게 하고도 남았다.이준혁은 침을 삼켰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다른 남자가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살인 충동까지 느꼈다.윤혜인은 포악한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뭐 하는 거야?”“널 가질 거야!”이준혁은 그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그녀는 정신이 아득했다.이런 말을 어떻게 이리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지?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그는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에 고정하고 귓가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었다.“넌 내꺼야.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해!”그의 손이 그녀의 찢어진 치마를 위로 찢어 올렸다...그때 문밖에 인기척이 들려왔다.절망적인 것은 문은 그저 닫힌 상태였고 잠그지 않았다.지나가는 사람이 가볍게 밀기만 하면 그들이 무얼 하는지 볼 수 있었다...윤혜인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남자의 가랑이를 발로 찼다.준비가 없었던 이준혁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하지만 손은 여전히 그에게 잡혀 있었다.다시 이준혁에 잡히고 말았다.그는 담담하게 비꼬았다.“2년인데 나를 미워하기엔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닥쳐!”윤혜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항상 너무 쉽게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붉어진 눈, 흐트러진 머리에 화가 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는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을 가졌다.이준혁 다시 입을 다셨다.“아직 충분하지 않아...”화가 났다.임세희 한 명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여자를 품으려는 거야?꿈도 야무지네.그녀는 너무 역겨웠다.이준혁을 노려보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돌려 세게 깨물었다.손목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이준혁은 시선을 내리깔았다.새끼 고양이가
다행히 손바닥으로 지탱해 넘어지지는 않았다.“네가 준혁이의 와이프야?”약간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보니 60대 할머니 한 분이 험상궂은 얼굴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었다.그녀가 말하려는데 바람이 일었다.짝-그녀는 뺨을 맞았다.그 힘은 대단했다.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감히 할머니 물음에 대답을 안 해? 예의가 없는 걸 보니 시골에서 왔나 보네!”송소미는 따귀를 때렸던 손을 호호 불고 있었다. 그녀는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화가 치민 윤혜인이 반격하려 몸을 일으키려는데 뒤에 있던 집사가 다리를 걷어찼다.그녀의 다리가 휘어지고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앞으로 넘어졌다.그저 ‘쨍그랑’ 소리와 함께 꽃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세상에!”송소미는 소리 지르며 그녀를 가리켰다.“감히 할머니가 제일 아끼는 꽃병을 깨뜨려?”윤혜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송소미는 냉소를 지었다.“이렇게 많은 눈들이 지켜봤는데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윤혜인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옆에 있는 집사를 가리켰다.“이 사람이 나를 밀치지 않았다면 내가 꽃병을 건드리지도 않았어요.”송소미가 설계한 것이라고 확신한 그녀는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됐다.그 집사는 놀라며 말했다.“이봐요. 아가씨. 우리는 모르는 사이인데 왜 저를 모함하는 거죠? 방금 당신이 소미아가씨를 때리려다 스스로 넘어진 거잖아요.”“맞아요. 맞아요.”다른 한 집사가 거들었다.송소미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 하다니. 매를 맞아야 정신 차릴 텐 가보지? 승인 할 때까지 때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두 집사는 그녀를 제압하려 했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송소미는 말을 할때만다 그녀의 배를 쳐다보고 있었다.송소미가 어떻게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까?하지만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날 건드리지 마!”윤혜인은 그들을 뿌리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치마가 다 찢어진 걸 보세요. 분명 딴 놈과 역겨운 짓을 한 거예요. 할머니가 오빠를 대신해 혼을 내셔야 해요.”눈을 가늘게 뜨던 할머니가 소리쳤다.“감히 할아버지의 생신 파티에서 낯 뜨거운 짓을 해? 엄히 벌해야겠다.”말이 끝나자 한 사람이 긴 나무 막대기를 가져왔다.팔뚝만 한 두께에 피가 묻을 것을 보니 수많은 사람들을 때린 것 같다.윤혜인은 눈을 크게 떴다.“미친 거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그렇게 두꺼운 막대기는 그녀가 견딜 수 있다고 해도 배 속의 아이는 견딜 수 없었다.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송소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때리지 않고 뭐 하는 거야!”이것은 송소미가 오랫동안 계획한 것이다.우선 할아버지가 윤혜인을 만나고 싶다고 물꼬를 텄고 그녀와 어머니는 할머니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해 자연스럽게 환심을 샀다.그런 다음 윤혜인을 할머니 앞에 데려오면 되었다.그런데 서프라이즈가 숨어있었고 그것은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이다.하늘도 송소미를 돕고 있는 것이다.일거양득, 완벽했다.할머니에게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면 돈을 써 두 집사에게 뒤집어씌우면 된다.그들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했었다. 나무막대기가 떨어지려는데 윤혜인이 발을 뻗어 한 명의 손을 걷어찼다.“고의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감방 가게 된다는 걸 몰라?”꽃병이고 낯 뜨거운 짓이고 모두 핑계다.이 방의 사람들은 분명히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었다.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준혁 씨에게 먼저 알려 그가 결정하도록 해야죠.”“흥!”할머니 손에 들려있던 구슬이 날아와 윤혜인의 이마에 부딪혔다.이마는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가르치려 드는 거야!”그녀는 다시 윽박질렀다.“움직이지 않고 뭐해?”할머니의 지시에 둘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었다.둘은 윤혜인은 누르고 막대기를 높이 들었다.마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마치 몸에 보호막이 씌여진 것 같았다.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이준혁이 그녀 대신 맞은 것이었다.그녀가 다치게 될까 봐 그는 팔꿈치를 땅에 댄 상태였고 그 바람에 피부가 긁혀 피가 흘렀다.그리고 몸을 일으킨 그는 무서운 기운을 뿜어냈다.탁!막대기를 든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나머지 둘도 한 명씩 차버렸다.“악...아악...”세 사람은 순식간에 저 멀리 나가떨어졌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그 소리는 너무 공포스러워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게 했다.이준혁은 윤혜인을 일으키고 입에 물고 있던 헝겊을 떼어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의 혀끝이 뺨에 닿자, 뒤통수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그는 시선을 내리며 비꼬듯 말했다.“내 앞에서만 드센 거야?”때리고, 발로 차고, 물어뜯기까지.아무도 감히 그에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그녀가 하고 있었다.다른 이라면 이미 예견된 결과인데 말이다...즉 그는 그녀를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일 지도 모른다.그의 목소리에 날이 선 신경이 느슨해졌다.하늘은 그녀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알 것이다.그녀는 아이가 그들에게 맞아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무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구하러 온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어떻게 그 사람인지, 왜 그 사람인가?그에게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방금전, 여지없이 흔들리고 말았다.그가 그녀를 보호했고 그들의 아이를 구한 것이다.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이준혁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이다.허리를 놓아준 그가 그녀를 자세히 살피면서 물었다.“어디 다친 곳 없어?”윤혜인은 머릿속이 백지상태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격력하게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눈이 짙어졌다.“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야?”다친 곳은 없었지만 너무나도 아팠다. 마음이 조금 더 아팠던 것 같다.련 며칠 억눌렀던 감정이 한순간 폭발했다.그는 그녀를
바닥에 엎드린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내 다리를 찬 바람에...”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작은 얼굴, 이마에는 멍이 들었고 입술이 갈라 터졌다.그가 차갑게 물었다.“누구 짓이야?”윤혜인은 당황한 나머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시 빈혈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느꼈고, 심지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송소미를 가리켰다.이준혁의 매서운 눈빛에 송소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그녀는 급히 해명했다.“그녀가 먼저 예의 없었고 더러운 짓을 한 거예요. 난 그저 따끔하게 일러주려던 것뿐이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할머니 뒤로 몸을 숨겼다.“그래?”이준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송소미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오빠가 이런 같잖은 여자에게 목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더욱이 그녀의 뒤에는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이준혁은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한 명씩.”송소미는 아직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보며 이준혁이 차갑게 지시했다.“손가락을 분질러버려.”평온한 말투였지만 소름이 끼쳤다.문밖에 있던 보디가드가 그의 목소리에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힘껏 구부렸다.‘으드득’ 소리가 몇 번 들렸다.“악-”비명소리가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너무 잔인한 수법에 윤혜인도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동정하지 않았다.그들은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해냈으니 자업자득이다.할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책상을 내리쳤다.“너!”화가 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기침하기 시작했다.그의 보디가드는 이미 할머니의 부하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이준혁은 할머니의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송소미를 노려볼 뿐이었다.단 한 번의 눈빛에 주변의 공기가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졌다.송소미는 그제야 비로소 그의 ‘한 명씩’의 의미를 깨달았다.다음은 그녀였다.그는 미쳤다. 단단히 미친 것이다.
찻잔은 이준혁의 발 근처에서 깨졌다.시선을 내린 그의 눈에 구슬이 보였다. 그리고 윤혜인의 이마 상처를 보았다.바로 이거였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보디가드에 명령했다.“할아버지께 할머니가 치매가 도져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오늘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전해.”“감히!”할머니는 고함을 질렀다.문현미의 부친보다 8살 어린 그녀라 이제 60대 초반에 불과했고, 한창 인생을 누릴 시기인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문씨 가문의 일을 결정하려 하는가.그녀는 윽박질렀다.“난 그저 예의를 가르치려던 거야. 꽃병을 깨트리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데 손 좀 봐주면 안 돼?”이준혁이 가볍게 웃었다.“혜인은 내가 허락해요. 오늘 어르신의 방을 엎었다고 해도 난 봐줄 거예요.”그의 말에 송소미와 할머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이 여자가 이준혁에게 그렇게 중요한 여자란 말인가?어떻게 이럴 수가?송소미가 제일 믿기지 않았다.이준혁이 어떻게 임세희를 대했는지 눈으로 지켜봤고 부러워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윤혜인도 고개를 돌렸다.옆에서 본 남자의 얼굴은 근사했다.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해 그녀는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이곳을 부순다고 해도 그녀를 감쌀 것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내 와이프는 누구도 건드릴 생각하지 말아요.”윤혜인의 가슴이 순간 차가워졌다.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고작 그의 와이프가 이씨 가문을 대표하는 얼굴이고 그의 와이프를 건드리는 것은 이씨 가문에 맞서는 거기 때문일 뿐인 것 같다.그래서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할머니는 너무 화가 나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이 망할 자식! 내가 너의 할머니란 건 알고 있는 거야?”이준혁이 냉소를 지었다.“잊었나 본데 내 할머니는 보향산에 모셨는걸요.”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 어린놈은 여직 그녀를 할머니라 부른 적 없다.역시 같은 피가 흐리지 않아 손을 타지 않는 것 같다.문현미는 그녀를 거들떠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를 안아 들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명령했다.“병원으로 가.”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머랏속이 백지상태였다.모든 것이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너무 혼란스러웠다.이준혁이 그녀를 안아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시선을 내린 이준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진찰실 문 앞에서 그는 부하에게 지시했다.“김성훈을 불러.”그제야 윤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몸부림쳤다.“걸을 수 있어.”이준혁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VIP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고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어주었다.“움직이면 안 돼. 성훈이 상태를 체크하러 여기로 오고 있어.”그는 다정하게 말했다. 방금 전 문씨가문에서 봤던 사람이 아니었다.윤혜인은 뛰어내릴 뻔했다. 그녀는 극도로 거부하며 말했다.“필요 없어요. 난 괜찮아요.”김성훈에게 걸리면 그녀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그녀는 이불을 들추며 일어나려 했지만, 남자에 의해 원상 복귀되었다.“검사받아야 하니 어디도 가지 마.”그는 강경하게 말했다.“난 정말 아무일도 없어요. 검사 받을 필요없어요.”윤혜인은 멀쩡하다며 팔을 휘둘러 보였다. 하지만 남자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그는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이준혁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타인의 눈이 부끄럽다면 내가 검사할 거야.”이게 웬 말이람?윤혜인은 얼굴이 뜨거워졌다.이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의사를 부르기 전에 얌전히 있어.”둘 사이는 너무 가까웠다.윤혜인은 그의 짙은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서슴없이 몸으로 막으며 그녀를 보호해 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순간,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지금까지도 윤혜인은 그가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솔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준혁이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아이의 존재를 절대 말할 수 없었다.그녀가 머리를
“됐어. 민아 너는 얼른 가. 좋은 시간 방해하지 말고.”방민기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단추를 마구 풀어제끼기 시작했다.방민아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정신이 몽롱해서도 억지로 버티는 여자를 보며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더니 이렇게 말했다.“그래.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재밌게 놀아.”방민아는 이 말만 남기고 문을 닫고 나갔다. 옷을 입었을 땐 몰랐는데 윗옷을 벗으니 가려졌던 뽀얀 속살과 볼록한 배가 드러났다. 딱 봐도 운동한 적이 별로 없는, 향락에만 빠져있는 몸 같았다.방민기가 앞으로 다가가 소원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흐트러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음침하게 웃었다.“우리 예쁜이, 재밌는 놀이 좀 해볼까?”소원은 머리가 윙 했고 의식이 끊겼다 이어지는 게 너무 흐리멍덩해서 방민기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보지 못한 채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뭐, 뭐 하는 거예요?”소원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챘고 유진을 죽여버리겠다던 그 여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아니, 절대 안 되지. 누구든 유진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야.’바닥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주어 손에 꽉 움켜쥔 소원은 피와 고통으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했다. 방민기가 쓰레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방민기는 약을 탄 음료수를 소원의 턱을 잡고 억지로 먹이더니 이렇게 말했다.“마셔. 이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 있다 재밌는 구경 좀 시켜줘.”방민기도 직접 즐기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 여자를 가지고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아무 반응이 없는데 놀려고 해도 놀 수가 없었다.소원이 얌전하게 협조할 리가 없었기에 일단 얌전해지게 하려면 ‘뽕’을 먹일 수밖에 없었다. 손을 든 소원이 음료수를 엎지르려는데 이를 눈치챈 방민기가 소원의 손을 잡고 뒤로 꺾는 바람에 손에 힘이 풀려 잡고 있던 유리 조각마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방민기가 대수롭지 않
방민아는 가벼운 말투로 비웃었다.“어쨌든 오빠는 경한 씨의 매형인데 그 사람이 이런 하찮은 여자 때문에 오빠를 곤란하게 하겠어?”방민기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네 말이 맞아. 내가 육 대표님의 매형이니 그분이 날 곤란하게 하면 네가 책임지고 해결해야겠지.”하지만 방민기는 방민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예전에도 소원 때문에 육경한이 사람을 보내 자신을 협박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로 인해 몸에 문제가 생겼던 방민기는 아무리 육경한 측에서 부정한다고 해도 분명히 그의 짓이라고 확신했다.다른 누가 그런 일을 벌였을 리 없었다.그저 소원을 두어 마디 농담 삼아 희롱했을 뿐인데 육경한이 미친 듯이 사람을 보내 협박한 것이다.만약 이번에 소원을 건드린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그 남자는 진짜 건드려선 안 돼. 이건 내가 겁이 많아서가 아니야.’방민기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육경한 같은 사람은 군중 속에서도 한눈에 돋보이는 사람이었다.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마치 오랜 배고픔에 시달린 늑대처럼 사람을 단숨에 집어삼킬 것 같은 위협감을 주었다.방민아는 비웃으며 말했다.“오빠, 겁쟁이라더니 진짜로 겁먹었네. 이 여자가 뭔데? 경한 씨가 놀다 버린 여자잖아. 오빠가 진지하게 볼 가치가 있어?”그녀의 말은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육경한이 이 여자를 버렸다는 사실에 방민아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그저 소원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내고 싶을 뿐이었다.그녀는 계속해서 생각했다.‘다 이 여자 때문이야. 이 여자가 없었다면 경한 씨가 아이에 대한 혐오감을 갖지 않았을 거야. 아니면 왜 아이를 싫어해서 정관수술까지 받겠어?’점점 이런 생각에 방민아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곧 방민기가 천천히 말했다.“민아야, 오늘 네가 한 말 기억해둘 거야.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께 네 계획이라고 보고할 거야. 내 비서가 다 듣고 있으니까 발뺌하지 마.”방민아는 방민기의 지나친 신중함에 화가 치밀었다.“오빠, 왜 그
소원은 비록 초췌하고 기진맥진했지만 강한 의지로 벽에 기대며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방민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확신에 찬 웃음을 지었다.“보아하니 겁먹은 모양이구나? 아니, 겁먹었을 뿐 아니라 내가 네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믿고 있는 것 같아.”소원의 평온한 말투는 방민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금씩 무너지던 심리적 방어벽을 드러내게 했다.‘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방민아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소원은 그저 허세를 부리는 거라고, 자신을 겁주려는 것뿐이라고.그녀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경한 씨가 저런 여자를 받아들일 리 없어.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결혼식에서 난동을 부린 여자를 원한다고? 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그런 수치를 감수할 리 없잖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방민아는 마음을 다잡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 속이려고 하지 마. 너 같은 게 그럴 힘이 어디 있겠어.”그러자 소원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내가 허세를 부리는지 아닌지,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내게 그 힘이 있는지 없는지도 네가 더 잘 알 거야.”방민아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그녀의 눈에 육경한은 마치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소원 같은 여자에게 계속해서 모욕당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곧 방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원의 손을 힐 신은 발로 짓밟으며 꾹 눌렀다.소원은 손끝에 힘을 줄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소원, 내가 너를 위해 선물 하나 준비했는데, 알아?”고통에 찡그린 얼굴로 소원이 자신을 쳐다보자 방민아는 비웃으며 말했다.“내 오빠가 널 좀 갖고 놀고 싶다더라. 잘 해줘 봐. 오빠 기분만 잘 맞춰주면 네 아들 죽기 전에 한 번쯤 볼 수 있게 해줄게. 어때?”소원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방민아의 이복오빠, 방민기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방민기는 몇 년 전 일이 터진 뒤로 몸이 망가져 본래의 기능을 잃었지만 그럴수록 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쪽으로 빠져
방민아의 눈빛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너무 오래 억눌린 감정이, 희망이 무너지고 절망으로 변하면서 그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방민아는 소리쳤다.“그런 사생아는 세상에 나와선 안 됐어! 가장 큰 잘못은 네 뱃속에서 태어난 거야!”이어 소원의 귀에 대고 하나하나 똑똑히 말했다.“소원, 모든 건 네 잘못이야!”이 순간 육연주는 이미 술에 취해 방민아의 또 다른 면모를 알아챌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눈엔 오직 소원만 보였고 그저 소원을 미친 듯이 괴롭히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방민아!”갑자기 소원이 머리에 씌워진 쓰레기봉투를 확 벗어던졌는데 눈은 피로 물든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네가 모든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유진이 건들 생각도 하지 마!”거의 고함치듯 외쳤다.그 말을 듣고 놀란 방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술병을 집어 들어 소원의 머리에 세게 내리쳤다.그 순간 소원의 이마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얼굴 위에 핏빛 꽃처럼 퍼졌다.핏자국과 함께 소원의 초췌한 모습은 더욱 처절하면서도 기묘하게 아름다워 보였다.방민아는 손에 든 술병을 천천히 소원의 얼굴에 대고 내렸다. 병 끝이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찌르며 고통을 가했다.소원은 얼굴이 분명 엉망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이미 오래전부터 지쳐 있던 소원은 더는 저항할 힘이 없었고 바닥에 무기력하게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이 모습을 본 방민아는 기고만장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소원, 네가 날 벌하겠다고? 대체 어떻게? 부모도 죽었고 권력도 없고 배경도 없잖아. 돈이 좀 있겠지. 하지만 네 돈이 우리 방씨, 육씨 가문의 재산보다 많을 것 같아? 네가 날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네.”소원은 천천히 말했다.“궁금해?”방민아는 코웃음을 쳤다.“흥미 없어. 너 같은 건 내 눈에 그냥 개미야. 잡아 죽이거나 살려두거나 그건 내 마음이지. 네가 감히 뭘 어쩌겠어?”그녀는 입꼬리를 비틀며 덧붙였다.“내가 경한 씨랑 결혼한 후엔 더 봐줄
육연주는 정말로 소원을 죽이고 싶어 했다.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은 채 소원은 머리에 씌워진 쓰레기봉투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았다.손바닥에 힘을 실어 머리 주변에 약간의 공간을 만들며 숨을 고르려고 애썼다.그 와중에 방민아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소원은 속으로 방민아가 나서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직접 나서서 분노를 폭발시키고 자신을 때릴 것을 기대했다.하지만 방민아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소원은 실망스러웠다. 방민아가 나서지 않는다면 오늘 이 모든 고통이 헛된 일이 되어버릴 터였다.다행히 소원은 방민아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두 가지 대비책을 준비했다. 바로 이 방에서 벌어진 일을 몰래 촬영하는 것이었다.방민아보다 소원은 이곳이 더 익숙했고 카메라를 눈에 띄지 않게 숨길 방법도 알고 있었다.방민아가 한 번이라도 직접 손을 댄다면 그걸 증거로 삼아 이 여자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는 걸 증명할 계획이었다.그러던 중 소원은 희미하게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를 들었다.방민아가 일어나 방을 나가 전화를 받으러 간 모양이었다.겨우 2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날카로운 하이힐 소리가 바닥을 울리며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방민아는 소원에게 다가오더니 발끝으로 그녀의 손을 세게 짓밟으며 말했다.“소원 씨, 왜 안 죽어요?”그녀의 목소리엔 증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소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조금 전까지도 여유롭게 보고만 있더니 왜 전화를 받은 뒤에 갑자기 이렇게 분노에 찬 모습이 된 거지?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거야?’사실 방민아는 병원에 있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내용은 육경한이 정관수술을 예약했다는 것이었다.정관수술이라는 말에 그녀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왜 정관수술을 하기로 결심한 거야? 그럼 난 이제 평생 경한 씨의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만약 아이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육경한이 곧 자신에
육연주는 다짜고짜 소원의 머리채를 붙잡아 탁자 위로 내리눌렀다.힘껏 눌러대며 외쳤다.“오늘 반드시 내가 그날 느낀 굴욕과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해줄 거야!”하지만 소원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이 정도의 고통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방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약속은 지키셔야죠. 우리가 한 대로 이행해주세요.”방민아는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한 말은 꼭 지킵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이 거론될 일을 피하려고 애써 돌려서 말했다.소원은 방민아가 무슨 꾀를 부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약속만 지켜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렇지 않다면 육연주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었다.육연주는 샴페인과 맥주를 들고 소원의 머리 위로 들이부었다.그러고는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술 좋아한다며? 아니어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잘 마셔 봐!”알코올이 따갑게 소원의 머리와 얼굴을 적셨다.소원은 눈을 꼭 감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육연주는 더욱 흥분하며 소원의 뺨을 두 차례나 세게 때렸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술병을 집어 들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고까지 했다.그 순간, 방민아가 육연주의 손목을 꽉 잡아 멈췄다.“연주야, 내가 뭐라고 했어? 겉으로 티 나는 상처는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너한테도 안 좋아.”그들의 관심은 소원의 안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벌가 자제 이미지가 더러워질까 하는 것이었다.그렇게 육연주는 힘없이 손을 풀었고 술병은 바닥으로 떨어져 몇 번 굴러갔다.방민아는 처음부터 이렇게 경고했다. 목숨을 앗아가선 안 되고 모욕하고 짓밟는 건 가능하지만 눈에 띄는 외상은 절대 안 된다고.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육연주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소원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그날 결혼식에서 소원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는지, 모든 사람들에
“네, 괜찮아질 거예요...”잠시 충전한 덕에 상태가 많이 나아진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언니, 이제 가서 일 봐요. 저도 제 일하러 갈게요.”“응.”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갔다.소원은 방민아가 말한 그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민아가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고 옆에 육연주가 함께 앉아 있었다.소원은 무표정하게 다가가 물었다.“방민아 씨, 제가 뭘 하면 되죠?”방민아는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서 그쪽을 부른 게 아니에요. 연주가 보고 싶다고 해서요.”소원은 육연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갑자기 육연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들어 소원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며칠 못 봤더니 눈이 멀었나 봐? 나 못 봤어?”소원의 얼굴은 한쪽으로 젖혀졌고 귀가 웅웅거릴 정도로 아팠다.이 뺨 한 대를 때리기 위해 육연주는 며칠 동안이나 참아왔던 것이다.지난번 그녀가 결혼식에 난동을 부렸을 때 이미 목이라도 졸라 죽이고 싶었다. 당시 육경한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소원은 이미 서씨 가문 사람들에게 반쯤 죽도록 맞았을 것이다.그런데 육경한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소문에 따르면 그는 소원을 구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고 했다. 북쪽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들은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육연주와 같은 재벌 2세는 그들에게 단지 걸어 다니는 금고와 같았다.그런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 육경한이 앞으로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북쪽 사람들은 원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결혼식 후, 육연주는 소원을 제대로 혼내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소원이 육경한의 사람들에게 데려가져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그녀는 부모도 두렵지 않고 세상 무엇도 겁내지 않았지만 육경한만큼은 무서웠다.육경한은 냉혹하게 행동할 때 진정으로 냉혹했으며 혈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다행히 방민아가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사실 크게 다친 것도 없었고요.”그러나 사실 그녀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육경한만큼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녀도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각한 일을 겪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숙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작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영숙은 소원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여기 왜 온 건지 말해봐.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봐도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같은데?”“오늘은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제가 아는 단골 손님이 요청해서요.”소원이 답했다.“단골 손님?”영숙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누군데?”소원은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그녀의 손님은 대부분 영숙이 직접 배정해준 사람들이었다.때문에 소원이 말하는 ‘단골 손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영숙은 알 수 없었다.영숙의 걱정은 진심이었다.소원은 왜 영숙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영숙이 굳이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하지만 소원은 이번 일의 진실을 영숙에게 말할 수 없었다.방민아가 오늘 밤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밖에 흘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이를 어기면 아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었다.“괜찮아요, 언니. 정말 아는 손님이라니까요.”소원은 모호하게 대답하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그러자 영숙은 ‘그래’라고 짧게 대답하며 비웃듯 말했다.“넌 이제 네 멋대로 하는구나. 내가 상관할 수 없겠네.”소원은 피식 웃었다.“그럴 리가요. 언니가 저를 이 일로 이끌어주셨잖아요. 하루라도 스승이면 영원히 스승인데 제가 언제 영숙 언니 말 안 들은 적 있나요?”이 말을 듣고 영숙은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 이렇게 말재간이 좋은 애인 줄 몰랐네.”“스승이니 뭐니 하지 마. 내 밑에 평생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조금 안정되면 얼른 나가.”사실 영숙은 방민아와 관련된 일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래서 그는 방민아가 나중에 유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유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방민아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그녀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 믿었다.“필요 없어. 임 교수님에게 빨리 수술 일정 잡아달라고 해줘.”육경한이 결혼을 위해 결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속임수에 휘말려 또 다른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그는 다른 사람이 낳지 않은 아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소종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육경한은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는 이미 그의 마음이 완전히 굳었다는 것을 의미했다.육경한이 결정한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었다.다만 소종은 이런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종조차도 대를 이을 아이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별을 떠나 건강한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었다.어쩌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하지만 육경한의 방식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그럼에도 소종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전화를 걸기 위해 소종이 막 나가려다가 육경한이 불러 세웠다.“잠깐.”“무슨 일이세요?”육경한은 말했다.“이 소식을 민아 씨에게 알려.”소종은 잠시 멍해졌다.‘정관 수술 한다는 걸 예비 신부에게 알리라고? 이건 결혼하기 전에 도망가라고 부추기는 일 아닌가?’그러나 육경한의 목적은 방민아를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이전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 말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방민아더러 함께하자고 했다.그러자 방민아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육경한이 방민아에게 난관 수술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건 이것이 신체에 손상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결혼을 약속한 상대라면 충분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스스로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이번에 소종을 통해 이 소식을 흘린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