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여기서?낯선 방에서, 할아버지의 생신날에 그녀를 겁탈하려 들수 있지?그녀의 몸부림은 너무나 비약해서 남자의 거대한 힘을 당할 수 없었다.“네가 자초한 거야.”이준혁이 눈빛이 짙어졌다.‘찌찍’소리와 함께 그녀의 옷이 남자에 의해 찢겼다. 희고 가느다란 다리가 드러났다.눈물이 적신 촉촉한 눈빛은 한 남자를 미치게 하고도 남았다.이준혁은 침을 삼켰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다른 남자가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살인 충동까지 느꼈다.윤혜인은 포악한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뭐 하는 거야?”“널 가질 거야!”이준혁은 그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그녀는 정신이 아득했다.이런 말을 어떻게 이리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지?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그는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에 고정하고 귓가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었다.“넌 내꺼야.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해!”그의 손이 그녀의 찢어진 치마를 위로 찢어 올렸다...그때 문밖에 인기척이 들려왔다.절망적인 것은 문은 그저 닫힌 상태였고 잠그지 않았다.지나가는 사람이 가볍게 밀기만 하면 그들이 무얼 하는지 볼 수 있었다...윤혜인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남자의 가랑이를 발로 찼다.준비가 없었던 이준혁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하지만 손은 여전히 그에게 잡혀 있었다.다시 이준혁에 잡히고 말았다.그는 담담하게 비꼬았다.“2년인데 나를 미워하기엔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닥쳐!”윤혜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항상 너무 쉽게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붉어진 눈, 흐트러진 머리에 화가 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는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을 가졌다.이준혁 다시 입을 다셨다.“아직 충분하지 않아...”화가 났다.임세희 한 명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여자를 품으려는 거야?꿈도 야무지네.그녀는 너무 역겨웠다.이준혁을 노려보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돌려 세게 깨물었다.손목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이준혁은 시선을 내리깔았다.새끼 고양이가
다행히 손바닥으로 지탱해 넘어지지는 않았다.“네가 준혁이의 와이프야?”약간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보니 60대 할머니 한 분이 험상궂은 얼굴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었다.그녀가 말하려는데 바람이 일었다.짝-그녀는 뺨을 맞았다.그 힘은 대단했다.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감히 할머니 물음에 대답을 안 해? 예의가 없는 걸 보니 시골에서 왔나 보네!”송소미는 따귀를 때렸던 손을 호호 불고 있었다. 그녀는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화가 치민 윤혜인이 반격하려 몸을 일으키려는데 뒤에 있던 집사가 다리를 걷어찼다.그녀의 다리가 휘어지고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앞으로 넘어졌다.그저 ‘쨍그랑’ 소리와 함께 꽃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세상에!”송소미는 소리 지르며 그녀를 가리켰다.“감히 할머니가 제일 아끼는 꽃병을 깨뜨려?”윤혜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송소미는 냉소를 지었다.“이렇게 많은 눈들이 지켜봤는데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윤혜인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옆에 있는 집사를 가리켰다.“이 사람이 나를 밀치지 않았다면 내가 꽃병을 건드리지도 않았어요.”송소미가 설계한 것이라고 확신한 그녀는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됐다.그 집사는 놀라며 말했다.“이봐요. 아가씨. 우리는 모르는 사이인데 왜 저를 모함하는 거죠? 방금 당신이 소미아가씨를 때리려다 스스로 넘어진 거잖아요.”“맞아요. 맞아요.”다른 한 집사가 거들었다.송소미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 하다니. 매를 맞아야 정신 차릴 텐 가보지? 승인 할 때까지 때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두 집사는 그녀를 제압하려 했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송소미는 말을 할때만다 그녀의 배를 쳐다보고 있었다.송소미가 어떻게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까?하지만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날 건드리지 마!”윤혜인은 그들을 뿌리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치마가 다 찢어진 걸 보세요. 분명 딴 놈과 역겨운 짓을 한 거예요. 할머니가 오빠를 대신해 혼을 내셔야 해요.”눈을 가늘게 뜨던 할머니가 소리쳤다.“감히 할아버지의 생신 파티에서 낯 뜨거운 짓을 해? 엄히 벌해야겠다.”말이 끝나자 한 사람이 긴 나무 막대기를 가져왔다.팔뚝만 한 두께에 피가 묻을 것을 보니 수많은 사람들을 때린 것 같다.윤혜인은 눈을 크게 떴다.“미친 거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그렇게 두꺼운 막대기는 그녀가 견딜 수 있다고 해도 배 속의 아이는 견딜 수 없었다.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송소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때리지 않고 뭐 하는 거야!”이것은 송소미가 오랫동안 계획한 것이다.우선 할아버지가 윤혜인을 만나고 싶다고 물꼬를 텄고 그녀와 어머니는 할머니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해 자연스럽게 환심을 샀다.그런 다음 윤혜인을 할머니 앞에 데려오면 되었다.그런데 서프라이즈가 숨어있었고 그것은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이다.하늘도 송소미를 돕고 있는 것이다.일거양득, 완벽했다.할머니에게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면 돈을 써 두 집사에게 뒤집어씌우면 된다.그들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했었다. 나무막대기가 떨어지려는데 윤혜인이 발을 뻗어 한 명의 손을 걷어찼다.“고의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감방 가게 된다는 걸 몰라?”꽃병이고 낯 뜨거운 짓이고 모두 핑계다.이 방의 사람들은 분명히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었다.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준혁 씨에게 먼저 알려 그가 결정하도록 해야죠.”“흥!”할머니 손에 들려있던 구슬이 날아와 윤혜인의 이마에 부딪혔다.이마는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가르치려 드는 거야!”그녀는 다시 윽박질렀다.“움직이지 않고 뭐해?”할머니의 지시에 둘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었다.둘은 윤혜인은 누르고 막대기를 높이 들었다.마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마치 몸에 보호막이 씌여진 것 같았다.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이준혁이 그녀 대신 맞은 것이었다.그녀가 다치게 될까 봐 그는 팔꿈치를 땅에 댄 상태였고 그 바람에 피부가 긁혀 피가 흘렀다.그리고 몸을 일으킨 그는 무서운 기운을 뿜어냈다.탁!막대기를 든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나머지 둘도 한 명씩 차버렸다.“악...아악...”세 사람은 순식간에 저 멀리 나가떨어졌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그 소리는 너무 공포스러워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게 했다.이준혁은 윤혜인을 일으키고 입에 물고 있던 헝겊을 떼어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의 혀끝이 뺨에 닿자, 뒤통수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그는 시선을 내리며 비꼬듯 말했다.“내 앞에서만 드센 거야?”때리고, 발로 차고, 물어뜯기까지.아무도 감히 그에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그녀가 하고 있었다.다른 이라면 이미 예견된 결과인데 말이다...즉 그는 그녀를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일 지도 모른다.그의 목소리에 날이 선 신경이 느슨해졌다.하늘은 그녀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알 것이다.그녀는 아이가 그들에게 맞아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무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구하러 온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어떻게 그 사람인지, 왜 그 사람인가?그에게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방금전, 여지없이 흔들리고 말았다.그가 그녀를 보호했고 그들의 아이를 구한 것이다.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이준혁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이다.허리를 놓아준 그가 그녀를 자세히 살피면서 물었다.“어디 다친 곳 없어?”윤혜인은 머릿속이 백지상태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격력하게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눈이 짙어졌다.“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야?”다친 곳은 없었지만 너무나도 아팠다. 마음이 조금 더 아팠던 것 같다.련 며칠 억눌렀던 감정이 한순간 폭발했다.그는 그녀를
바닥에 엎드린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내 다리를 찬 바람에...”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작은 얼굴, 이마에는 멍이 들었고 입술이 갈라 터졌다.그가 차갑게 물었다.“누구 짓이야?”윤혜인은 당황한 나머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시 빈혈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느꼈고, 심지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송소미를 가리켰다.이준혁의 매서운 눈빛에 송소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그녀는 급히 해명했다.“그녀가 먼저 예의 없었고 더러운 짓을 한 거예요. 난 그저 따끔하게 일러주려던 것뿐이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할머니 뒤로 몸을 숨겼다.“그래?”이준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송소미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오빠가 이런 같잖은 여자에게 목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더욱이 그녀의 뒤에는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이준혁은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한 명씩.”송소미는 아직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보며 이준혁이 차갑게 지시했다.“손가락을 분질러버려.”평온한 말투였지만 소름이 끼쳤다.문밖에 있던 보디가드가 그의 목소리에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힘껏 구부렸다.‘으드득’ 소리가 몇 번 들렸다.“악-”비명소리가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너무 잔인한 수법에 윤혜인도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동정하지 않았다.그들은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해냈으니 자업자득이다.할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책상을 내리쳤다.“너!”화가 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기침하기 시작했다.그의 보디가드는 이미 할머니의 부하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이준혁은 할머니의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송소미를 노려볼 뿐이었다.단 한 번의 눈빛에 주변의 공기가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졌다.송소미는 그제야 비로소 그의 ‘한 명씩’의 의미를 깨달았다.다음은 그녀였다.그는 미쳤다. 단단히 미친 것이다.
찻잔은 이준혁의 발 근처에서 깨졌다.시선을 내린 그의 눈에 구슬이 보였다. 그리고 윤혜인의 이마 상처를 보았다.바로 이거였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보디가드에 명령했다.“할아버지께 할머니가 치매가 도져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오늘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전해.”“감히!”할머니는 고함을 질렀다.문현미의 부친보다 8살 어린 그녀라 이제 60대 초반에 불과했고, 한창 인생을 누릴 시기인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문씨 가문의 일을 결정하려 하는가.그녀는 윽박질렀다.“난 그저 예의를 가르치려던 거야. 꽃병을 깨트리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데 손 좀 봐주면 안 돼?”이준혁이 가볍게 웃었다.“혜인은 내가 허락해요. 오늘 어르신의 방을 엎었다고 해도 난 봐줄 거예요.”그의 말에 송소미와 할머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이 여자가 이준혁에게 그렇게 중요한 여자란 말인가?어떻게 이럴 수가?송소미가 제일 믿기지 않았다.이준혁이 어떻게 임세희를 대했는지 눈으로 지켜봤고 부러워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윤혜인도 고개를 돌렸다.옆에서 본 남자의 얼굴은 근사했다.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해 그녀는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이곳을 부순다고 해도 그녀를 감쌀 것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내 와이프는 누구도 건드릴 생각하지 말아요.”윤혜인의 가슴이 순간 차가워졌다.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고작 그의 와이프가 이씨 가문을 대표하는 얼굴이고 그의 와이프를 건드리는 것은 이씨 가문에 맞서는 거기 때문일 뿐인 것 같다.그래서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할머니는 너무 화가 나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이 망할 자식! 내가 너의 할머니란 건 알고 있는 거야?”이준혁이 냉소를 지었다.“잊었나 본데 내 할머니는 보향산에 모셨는걸요.”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 어린놈은 여직 그녀를 할머니라 부른 적 없다.역시 같은 피가 흐리지 않아 손을 타지 않는 것 같다.문현미는 그녀를 거들떠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를 안아 들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명령했다.“병원으로 가.”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머랏속이 백지상태였다.모든 것이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너무 혼란스러웠다.이준혁이 그녀를 안아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시선을 내린 이준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진찰실 문 앞에서 그는 부하에게 지시했다.“김성훈을 불러.”그제야 윤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몸부림쳤다.“걸을 수 있어.”이준혁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VIP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고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어주었다.“움직이면 안 돼. 성훈이 상태를 체크하러 여기로 오고 있어.”그는 다정하게 말했다. 방금 전 문씨가문에서 봤던 사람이 아니었다.윤혜인은 뛰어내릴 뻔했다. 그녀는 극도로 거부하며 말했다.“필요 없어요. 난 괜찮아요.”김성훈에게 걸리면 그녀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그녀는 이불을 들추며 일어나려 했지만, 남자에 의해 원상 복귀되었다.“검사받아야 하니 어디도 가지 마.”그는 강경하게 말했다.“난 정말 아무일도 없어요. 검사 받을 필요없어요.”윤혜인은 멀쩡하다며 팔을 휘둘러 보였다. 하지만 남자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그는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이준혁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타인의 눈이 부끄럽다면 내가 검사할 거야.”이게 웬 말이람?윤혜인은 얼굴이 뜨거워졌다.이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의사를 부르기 전에 얌전히 있어.”둘 사이는 너무 가까웠다.윤혜인은 그의 짙은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서슴없이 몸으로 막으며 그녀를 보호해 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순간,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지금까지도 윤혜인은 그가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솔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준혁이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아이의 존재를 절대 말할 수 없었다.그녀가 머리를
둥!뒤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윤혜인이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남자가 바닥에 누워있었고 움직임이 없었다.윤혜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나에게 저 정도의 힘이?지금 도망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하지만 결국 감성이 이성을 이겼고 윤혜인은 남자에게 다가갔다.근사한 얼굴이 창백해 보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흔들었다.“준혁 씨... 이봐요...”남자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윤혜인은 당혹스러웠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졌다.“왜 그래요? 눈 떠봐요. 이러지 말아요...”몸을 내린 그녀는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다 그녀의 손에 축축한 느낌이 전해졌다.피비린내가 점점 농후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손을 보니 피로 물들어 있었다!이 피는... 그 막대기에 묻어있던...“윽!”그녀는 필사적으로 헛구역질을 참으며 도움을 요청했다.“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김성훈이 달려왔고 바닥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더니 자리에 얼어붙었다.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지시했다.“교수님 콜해.”그리고 이준혁을 응급실로 옮겼다.윤혜인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눈물이 주체가 안 되었다.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다...후회, 자책. 분노가 한순간에 휘몰아쳤다.그녀가 발견했어야 했다...그녀를 안아 들던 그의 행동이 평소와 같지 않았다. 그래서 차 안에서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에게만 빠져서 그를 살피지 못했다.그녀를 대신해 매를 맞은 그에게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그녀는 자책하며 자신의 머리를 쳤다.윤혜인, 너 정말 이기적이다.마치 반세기가 지난 것 같았다.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리고 김성훈이 걸어 나왔다.윤혜인은 급히 다가갔다.“어떻게 됐어요?”“지금은 괜찮아졌으니 걱정하지 말아요.”윤혜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왜 쓰러진 거예요?”이준혁은 한대로 쓰러질 정도로 허
육경한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26년이든 36년이든 내 지시에 따르지 않고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은 오래 함께한 사람이라도 내겐 쓸모없는 사람이야.”소종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육경한은 소종의 주인이었고 소종은 늘 육경한을 하느님처럼 높이 받들며 오랫동안 충성을 다했지만 결국 그 여자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자줏빛으로 물든 소종의 손이 감각을 잃어갈 때쯤 육경한이 차창을 다시 내렸다. 소종의 손은 이제 완전히 감각을 잃었기에 다른 손으로 겨우 옮겨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다음은 없어.”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더니 차에 시동을 걸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소종은 떠나가는 차를 보며 바닥에 털썩 꿇어앉았다.소종은 아직도 자기가 정말 잘못한 게 맞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악독하기 그지없는 소원은 안 그래도 매일 육경한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고 있을 텐데 아이까지 뺏겼으니 더 독하게 의지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소종은 그저 육경한을 위해 미리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육경한은 아직도 소원을 잊지 못해 끙끙 앓고 있었다.방민아는 정말 여러모로 완벽한 선택지였다. 육경한의 사업에 도움이 될뿐더러 일편단심이었다. 방민아에 비하면 소원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다.소종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육경한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소원이어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소종의 눈빛이 점점 더 또렷해졌다....소원의 차는 안지철의 차와 충돌하고 전복된 상태였지만 다행히 옆에 있는 진흙탕에 빠지면서 폭신한 진흙이 일부 충격을 흡수했고 에어백도 제대로 터졌고 안전벨트도 제대로 하고 있은 덕분에 심각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그래도 소원은 큰 충격에 잠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척수뼈가 부러졌는지 온몸이 찢어질 것처럼 너무 아파 미간을 찌푸리고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기어 나오려 했다.차창이 깨지긴 했지만 완전히 깨진 건 아니었기에 맨손으로 깨진 유리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원을 더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소원이 육경한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독단적으로 행동한 건 소원이 하루가 멀다 하게 육경한을 무너트리려고 악을 쓰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소송에서 지고 유진이 육경한의 손에 들어갔으니 소원도 얌전해지겠거니 했지만 패소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감정소로 가서 조사하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감정소에 입사까지 하면서 증거를 찾아내려 했다.이런 시련을 겪고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소원을 보며 소종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원의 끈기에 놀랐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소원이 육경한을 해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궁지에 몰린 안지철이 전화했을 때 성급하게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소종은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육경한이 어떻게 처벌할지는 두렵지 않았다. 일이 성공하지 않는다 해도 후회는 없었다. 그저 소원이 육경한을 무너트리려고 날뛰는 게 너무 싫어서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이를 들은 육경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그런 지시를 내린 거야, 아니면 누가 그렇게 지시하라고 한 거야?”소종은 심장이 철렁했다. 육경한이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육경한이 소종의 목숨을 구해준 뒤로 소종에게 육경한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데 절대 배신할 리가 없었다.“대표님,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소종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육경한은 인내심을 잃었다.“어디야?”소종은 육경한이 무엇을 묻는지 알고 얼른 이렇게 답했다.“저도 잘 모릅니다. 안지철은 저와 통화한 뒤로 자취를 감췄고 다시 전화해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실종된 지점과 녹음파일 나한테 보내.”육경한이 말했다.소종의 핸드폰은 특수 제작이라 통화 내용이든 문자든 클릭 한 번에 저장할 수 있었고 돌발 상황이 생기면 클릭 한 번에 삭제할 수도 있었다. 그 과정은 고작 몇초밖에 걸리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육경한이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방민아를 바라봤다.방민아가 싱긋 웃으며 얌전하게 말했다.“웨딩드레스랑 턱시도는 미리 피팅해봐야 하는데 바쁘면 혼자 다녀올게요.”육경한이 눈꺼풀을 들어 방민아의 표정을 살폈다. 방민아는 이 말을 하면서도 눈부시게 웃고 있어 억울한 티는 전혀 나지 않았다.이에 육경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그래요. 나는 바쁘니까 알아서 시간 정해서 가요.”“그래요. 조심해서 다녀와요.”육경한이 떠났지만 방민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약혼녀의 친절함을 드러내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눈으로 배웅했다. 육경한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방민아의 부드럽던 미소가 싸늘하게 식어갔다.쨍그랑.테이블에 올라온 요리들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쏟아졌다.방민아는 육경한이 또다시 소원을 찾으러 갔다는 걸 알고 속이 뒤집어졌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떼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법정에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유진을 방민아에게 맡기지 않을 걸 봐서는 아직 방민아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방민아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니 아이를 맡기기 꺼리는 것이었다.육경한은 정말 유진을 끔찍이 아꼈고 그건 소원도 마찬가지였다.방민아는 한꺼번에 두 사람의 약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육씨 가문 사모님이 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할 바에는 이 약점을 잘 잡아 다시는 걱정할 일이 없게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생각을 마친 방민아는 도우미에게 어질러진 주방을 치우라고 하더니 자기 전에 집사에게 리스트를 주며 내일 아침 육경한에게 국을 끓여줄 수 있게 제일 좋은 식재료를 사 오라고 지시했다.입에 대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마음만 알아준다면 그걸로도 만족했다....육경한이 집을 나서자 소종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얼른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육경한에게 문을 열어줬다.육경한은 소종이 화면을 끄지 않은 채로 좌석에 놓아둔 핸드폰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눈빛을 돌리고는 소종에
윤혜인은 너무 감동해 마음이 따듯해졌다.“잘 다녀와. 비행기에서 최대한 한잠 자고.”윤혜인은 이준혁은 요즘 시차 적응하느라 잠도 잘 자지 못하면서 살인적인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 마음 아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것뿐이었다.“그래. 알았어. 이 프로젝트 끝나면 길게 휴가 내고 너희들 옆에 꼭 붙어있을 거야.”결혼한 뒤로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이준혁은 거의 출장 가지 않았다. 아이가 어려 시터도 많고 홍 아줌마와 문현미도 같이 돌보고 있었지만 이준혁은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게다가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이준혁은 최대한 업무를 줄이고 윤혜인 곁을 지키려 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해외 시장 개척이 걸린 중요한 프로젝트라 어쩔 수 없었다.외국에서 여러 가지 기술로 한국의 경제 발전에 제한을 걸 때마다 이준혁은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했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면 국가의 영향력을 높여주는 데 보탬이 될뿐더러 회사에서 진행하는 에너지 산업에 대한 외국의 의존도도 높일 수 있었기에 이준혁은 이 프로젝트를 매우 중시했고 여러 번 외국에 출장을 나갔다.하지만 매번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어떤 때는 착륙한 지 12시간 만에 아이와 윤혜인의 안전을 걱정해 다시 돌아오기도 했지만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점이었기에 전화를 끊으면 시간을 쪼개 회의를 마치고는 비행기가 준비되자마자 바로 국내로 돌아오는 걸 반복했다.이준혁에게 프로젝트도 중요했지만 윤혜인의 정서도 중요했다. 결혼식을 올리며 윤혜인이 슬프고 힘들 때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곡 지키고 싶었다....육경한은 밥에 입도 별로 대지 않고 갑자기 나가봐야 한다며 일어났다.방민아는 수화기 너머로 소원이라는 이름이 들리자 기분이 잡쳤고 이내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경한 씨.”방민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육경한의 팔을 덥석 잡았다. 육경한은 그 자리에 우둑 선 채 방민아를 바라보며 방민아가 입을 열
이준혁의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윤혜인은 전화가 오자마자 단 한 번의 신호음도 지나기 전에 받았다.“준혁 씨, 어떻게 됐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소원이 무슨 나쁜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주 비서에게 최고의 인력을 동원해서 수색을 맡겼고 경찰에도 신고했어. 하지만 소원 씨가 실종된 장소에서는 소원 씨를 찾지 못했어. 아직 계속 수색 중이야.”이준혁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윤혜인의 성격상 무언가를 숨기려 해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만약 소식이 계속 닿지 않는다면 그녀는 직접 나서서 소원을 찾으러 갈 것이었고 그러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윤혜인은 이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소원이... 정말 위험한 상황인 건가요...”“걱정하지 마. 내가 경한이에게도 연락했거든. 경한이가 있으면 곧 소원 씨를 찾을 수 있을 거야.”이준혁이 차분히 말했다.“뭐라고요?!”그러자 깜짝 놀란 윤혜인이 소리를 질렀다.“어떻게 육경한한테 그걸 말할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이 바로 그 살인자잖아요! 소원이가 서울에서 무슨 원한을 산 적이 있겠어요? 예전에 소원이네 아버지 회사가 망했을 때도, 빚을 내서 직원들에게 보상금까지 준 사람이에요. 서울에서 소원을 해치려는 사람은 육경한 말고는 없다고요!”“경한이가 아니야.”이준혁은 냉정하게 말했다.“혜인아, 나 믿어봐. 소원 씨는 경한이의 애 엄마야. 절대 소원 씨를 해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지금 소원 씨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경한이뿐이고.”1분, 아니 1초라도 더 지체하면 위험이 커질 수 있었다.그러나 이 말을 윤혜인에게 직접 전하면 그녀가 더욱 불안해할 것이 뻔했다.“육경한 같은 사람이 정말 순수하게 유진이를 자기 아이로만 생각할 것 같아요?”하지만 윤혜인은 그를 신뢰하지 못했다.육경한은 항상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였다.그가 저지른 많은 행동들은 너무나 지나쳤고 윤혜인은 그가 유진이의 엄마라
이준혁은 회의를 서둘러 마무리한 후 주훈의 보고를 기다렸다.30분 후, 주훈이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사고 현장에는 부서진 승용차 두 대가 있었지만 차 안이나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원 씨의 핸드폰은 차 안에서 발견되었고 다른 차량에서는 어떤 개인 물품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차량의 번호판은 위조된 것으로 차량 소유자의 신원을 당장은 파악할 수 없습니다.”이준혁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수색 범위를 넓혀 계속 찾아봐.”그러자 주훈은 즉시 알겠다고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후, 이준혁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내심 그는 육경한이 소원을 해치려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육경한과 소원의 관계는 복잡하기 그지없었지만 육경한이 소원을 향해 품은 감정은 미움보다는 사랑이 더 컸다.아무리 얽히고설킨 감정이라도 그는 소원을 죽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때문에 이준혁은 이 일이 단순한 오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하지만 자신이 국내에 없는 상황에서 소원을 가장 빠르게 찾는 방법은 바로 육경한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었다.망설임 없이 그는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었다.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육경한은 마침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로 방민아와 함께 야식을 먹고 있었다.그와 이준혁은 최근 거의 교류가 없었다.관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유년 시절의 인연을 붙잡고 있는 김성훈이 아니었다면 이미 멀어졌을 관계였다.육경한은 이준혁이 중요한 용건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방민아 앞에서 대놓고 전화를 받았다.“응, 준혁아.”“어디야?”이준혁의 말투는 간결했다.“방금 비행기에서 내려서 지금 밥 먹고 있어.”육경한이 대답에 이준혁은 그가 소원의 실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확신했다.그러나 분명 육경한 주변 사람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소원이 서울로 돌아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고 그녀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았다.때문에 육경한이나 그의 주변 사람 외에는 의심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소원 씨에게 일이 생겼어
“말해봐, 서두르지 말고. 괜찮으니까 일단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 내가 바로 갈게.”윤혜인은 애타는 목소리로 소원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러자 소원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그 사람이 잘 지내면 난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 나중에 기억이 돌아오더라도 이 일로 죄책감 느끼지 않았으면 해...”이 말은 서현재에게 꼭 전하고 싶은 소원의 진심이었다.그녀는 서현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언젠가 기억이 돌아오면 그는 자신을 원망하며 괴로워할 게 분명했다.그러나 지금 소원을 기억하지 못하는 서현재가 하는 행동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오히려 기억이 없기에 그는 복잡한 감정 없이 순조롭게 서진태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서진태 또한 그를 어렵게 만들지 않았다.소원은 유진을 되찾으려면 육경한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 싸움에 서현재가 엮이지 않는 편이 그녀에게 훨씬 수월했다.무엇보다 소원은 서현재가 이 모든 일로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랐다.그때 차에 간신히 시동이 걸렸고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통화가 끊어졌다.하지만 소원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차를 출발시켰다.오늘만 살아남으면 안지철의 무모한 행동만으로도 주석훈이 충분히 증거를 모아 재조사를 신청할 수 있을 것이다.한편, 윤혜인은 다급한 마음에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 제발 좀 도와줘요! 소원이 지금 위험해요! 누군가 소원이를 죽이려고 해요...육경한이에요. 틀림없어요. 그 나쁜 놈이 소원이를 죽이려고 하는 거라고요!”긴장한 나머지 윤혜인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진정해. 심호흡 한 번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차근차근 말해봐.”이준혁은 태평양 건너편의 지사에서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윤혜인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은 그는 손짓으로 회의를 멈추고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소원 씨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데?”그러자 윤혜인은 눈물이 맺힌 목소리로 대답했다.“나도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 소
소원은 뒤에 있는 안지철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그동안의 조사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안지철은 잔머리를 잘 굴리고 이익을 좇는 성격이긴 하지만 대단한 악행을 저지를 용기는 없는 사람이었다.심지어 소원이 안지철의 이익을 건드렸다고 해도 그가 이렇게까지 목숨을 노릴 이유는 없었다.결국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쫓아오는 것은 분명 누군가의 지시 때문일 것이다.‘설마...육경한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나한테 해를 끼치려는 걸까?’이때, 차 안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을 확인해보니 윤혜인이었다.소원은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실수로 받기 버튼을 눌러버렸다.수화기 너머로 윤혜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원아, 너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육경한 그 쓰레기가 너랑 아이를 뺏으려고 한다는 걸 말이야!”윤혜인은 오늘 주석훈을 찾아가 개인적인 일을 물어보려다가 우연히 육경한의 소송장을 발견했다.주석훈은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소송 내용을 본 윤혜인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육경한이 소원과 아이를 두고 싸움을 벌이려 한다는 것이었다.그녀는 주석훈에게 따지지 않았다.소원이 자신을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숨겼을 것임을 짐작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윤혜인은 육경한의 뻔뻔함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쓰레기 같은 놈, 내가 가서 그 자식한테 한마디 해야겠어! 정말 너무 화나!”분노에 가득 찬 그녀는 소원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채 흥분해서 말했다.소원은 간신히 차분하게 대답했다.“난 괜찮아. 그 사람 찾아가봤자 아무 소용 없어. 네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을 거야. 괜히 속만 상할 뿐이지.”“그래도 가서 욕이라도 해야겠어! 안 그러면 나 속 터질 것 같아. 요즘 이렇게 나쁜 사람 처음 봤다니까!”윤혜인은 단단히 결심한 듯 보였다.그리고 소원은 그녀의 말에 약간 안심했다.오랫동안 이렇게 악랄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건, 그만큼 그녀가 이준혁에게서 잘 보호받고 있다는 뜻
“아직 성공하지 못했습니다.”안지철은 코피가 터져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병약한 여자 하나도 처리 못 해?”소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운전 실력이 꽤 좋아 보였습니다. 저보다 나은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을 들이받은 적이 없어서... 감을 못 잡겠어요.”“빨리 끝내.”상대방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안지철은 몸을 떨며 말했다.“저 그만두면 안 될까요?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저는 오늘 밤이라도 바로 떠나겠습니다.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게요. 안 될까요?”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안지철은 그저 몰래 도망치고 싶었다.다른 방식이면 몰라도 사람을 죽이라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다.처음에 그는 소종에게 돈을 받고 유시연을 통해 혈액 샘플을 빼돌리게 했다.그러고는 일이 끝나면 바로 해외로 떠나겠다고 약속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하지만 유시연과 이전부터 내연 관계였던 그는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그녀와 시간을 보내려다가 일이 지체되고 만 것이다.사실 안지철은 이미 내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정식 경로가 아니라도 은밀히 빠져나갈 방법까지 마련해 둔 상태였다.그런데 이런 일이 터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혼란스러워진 안지철은 소종에게 연락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소종은 그녀를 차로 들이받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라고요?”안지철은 살인을 저지를 용기가 전혀 없었다.그러자 소종은 말했다.“그래, 안 해도 돼.”안지철은 속으로 안도하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안심하세요. 저 절대 입도 뻥긋하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받은 돈은 전부 돌려줘야 할 거야. 잔금도 지급하지 않을 거고.”여전히 싸늘한 소종의 목소리에 안지철은 당황하며 외쳤다.“그건 안 됩니다!”“일은 제가 다 했잖아요. 약속을 어기시면 저도 입을 다물지 못할 겁니다!”안지철이 소종을 협박했다.“그럼 지금 당장 떠들어봐. 어차피 그 여자 오늘 죽지 않으면 당신 정체도 전부 탄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