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어 차가 고급 클럽 앞에 멈춘 것을 발견한 윤혜인이 경계하며 물었다.“여긴 왜 데려온 거예요? 난 안 들어갈 겁니다.”“걱정하지 마, 너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야. 안에 네가 관심 있어 할 사람이 있어.”“누군데요?”그러자 이준혁은 손을 조금 풀며 말했다.“들어가서 봐.”윤혜인은 그의 말에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그리고 물론 이준혁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정말 너한테 무슨 짓을 하려 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안 했을 거야.”윤혜인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준혁의 표정은 마치 그녀가 그에게 편견을 가졌다는 식이었으니 말이다.‘자꾸 나한테 손을 대고 말도 믿을 수 없게 하니까 그렇지.’그가 자꾸 손을 대고 말도 믿을 수 없게 하니까 그렇지.윤혜인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화를 낼 기색을 보이자 이준혁은 해명했다.“걱정하지 마, 만나고 나면 바로 집에 데려다줄게.”이 말에 윤혜인은 잠시 성질을 죽이기로 했다.‘집에 갈 수만 있다면야, 뭐... 만나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그리고 이준혁은 자신이 내뱉었던 말처럼, 언제나 마음대로 행동하려 하지만 그녀를 해치지는 않았다.그는 윤혜인을 데리고 클럽 위층에 있는 룸으로 향했다.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다과와 과일을 놓고 나가면서 문을 닫았고 그렇게 밀폐된 공간에는 그들 둘만이 남게 되었다.가까이 앉아 있는 남자의 은은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불편해진 윤혜인이 옆으로 조금 물러나려 했지만, 남자는 반대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그래서 윤혜인은 그를 밀어내며 화를 냈다.“대체 뭐 하는 거예요?”이준혁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천천히 말했다.“너에게 보여줄 게 있어.”말하는 사이, 큰 커튼이 열리며 옆방이 보였다.두 개의 방이 연결된 구조였고 맞은편 의자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긴 머리, 하얀 작은 원피스, 가늘고 긴 다리, 아주 불쌍해 보이는 듯한 모습
이준혁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 자신이 가장 잘 알겠지.”임세희는 마음속이 불안했지만, 이준혁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언제나처럼 무고한 척하며 말했다.“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이 여자가 나를 해친 거야. 그날 발표회에서 내 영상을 조작해서 나를 함정에 빠뜨렸어!”그녀는 손가락으로 윤혜인을 가리키며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준혁 씨, 이 여자가 얼마나 악독한지 알아? 곁에 두면 반드시 준혁 씨한테도 해를 끼칠 거야!”윤혜인은 임세희가 이렇게 처참한 상황에서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모함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뼛속까지 악랄한 여자군. 죽을 때까지 안 변할 것 같네. 이렇게 된 것도 다 자업자득인 거지.’뒤이어 이준혁이 냉담한 눈빛으로 임세희를 바라보며 말했다.“혜인이가 영상을 조작했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임세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눈을 굴리며 빠르게 대답했다.“나 믿어줘. 분명히 저 여자가 조작한 거야. 지난번 식당에서 다툰 후로 나를 미워하고 있었어. 기억 상실도 아마 연기일 거야...”임세희는 마치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듯 급히 이준혁의 팔을 잡고 말했다.“분명히 연기하는 거야. 준혁 씨가 나를 구하려다 그 아이가 죽은 것도 기억하는 걸 보면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거...”하지만 임세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우두둑’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준혁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비틀어 부러뜨렸다.“아아아!!!”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 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무릎을 꿇은 채 임세희의 손은 무력하게 늘어뜨려 져 있었다.손목이 부러진 고통이 즉시 심장으로 전달되었다. 너무나도 아팠다!이준혁은 혐오감이 가득 찬 눈빛으로 냉혹하게 말했다.“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은 바로 너를 구한 일이야!”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 터,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남자는 조
임세희는 온몸이 떨며 목소리는 쉰 상태로 울부짖었다.“아니야, 정말 아니야. 준혁 씨, 윤혜인이 그렇게 말했어? 어떻게 저 여자 말을 믿을 수 있어? 준혁 씨도 잘 알잖아, 저 여자가 나를 미워하는걸...”윤혜인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임세희, 당신 정말 구제 불능이구나?’그녀는 차갑게 말했다.“나도 방금 알았어요. 당신이 나한테 약을 탔다는 걸.”함정에 빠진 것 같은 느낌에 임세희는 휘청거리며 일어나 윤혜인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이년이! 감히 날 모함해?!”그러나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쾅' 소리가 났다.임세희가 반짝이는 가죽 구두에 무참히 차인 것이었다.“아악...”임세희는 바닥에 엎드려 배를 움켜쥐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그리고 이준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냉혹하게 말했다.“끝을 보기 전까지는 인정 안 하겠다는 거야?”뒤이어 그가 사람을 부르자 작은 체구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윤혜인은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그날 술자리에서 일하던 웨이터였다.이준혁은 웨이터에게 차갑게 물었다.“이 여자 맞습니까?”웨이터는 남자의 기세에 겁을 먹고 몸을 떨며 바닥에 있는 임세희를 보고는 흥분하며 말했다.“맞아요! 바로 이 여자가 약을 음료에 넣으라고 시켰어요. 그리고 그 중년 남성분에게도 약을 탔습니다!”임세희는 그날 장 대표에게 흥분제를 사용하자고 제안했고 웨이터에게 윤혜인의 음료에 약을 타라고 시킨 후, 장 대표에게도 몰래 약을 타 먹였다.악한 마음으로 장 대표가 윤혜인을 해치거나 장 대표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바라며 그런 짓을 한 것이었다.그 사건 후, 그녀는 이 웨이터에게 6000만 원을 주고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웨이터는 한 달 급여가 200만 원도 안 되었기 때문에 그 많은 돈을 보고 덥석 제안을 수락했다.그러나 이준혁은 영리했다.그는 사건 후 퇴직한 직원들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이 웨이터를 찾아냈다.이제 모든 증거가 명백해졌다.마치 깊은 얼음 구덩이에 빠져드는 것처럼 그 남자를 보자
이준혁의 눈빛은 차가웠고, 바닥에 있는 여자를 언급할 때 얼굴에는 조금의 온정도 없었다.과거 이천수가 임세희에게 보호막을 마련해주지 않았다면, 이준혁은 그녀가 서울에서 다시 재기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꼬리를 내리고 살기는커녕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정말이지 죽어 마땅했다.윤혜인은 이준혁이 자신의 첫사랑에게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식당에서 임세희를 쫓아낼 때, 그녀는 이준혁이 단지 쇼를 하는 줄 알았다.하지만 오늘 그는 임세희의 손목을 실제로 부러뜨렸고 그 ‘우두둑' 소리는 그녀에게 생생하게 들렸다.윤혜인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정말로 그렇게 하실 수 있어요? 이 여자가 그쪽 첫사랑 아니었나요?”곽경천이 그녀에게 준 기사에서는 이준혁이 그의 첫사랑을 많이 봐주었다고 나와 있었다.뒤이어 이준혁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첫사랑 아니야.”윤혜인은 눈을 깜빡였다.‘아니라고? 지금 누구를 속이는 거야?’그녀는 웃으며 물었다.“뭐든 다 괜찮아요?”그러자 이준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하고 싶은데? 말해봐.”이 말에 윤혜인은 불만스러운 듯 콧방귀를 뀌었다.“왜요, 내가 너무 지나치게 굴까 봐 겁나요?”임세희는 이준혁이 여전히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믿었다.그래서 그를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준혁 씨, 제발... 정말로 내가 한 게 아니야... 이 모든 게 이 여자의 음모야... 이 여자가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야...”한쪽 손목은 부러지고 얼굴의 화장은 모두 번진 채로 임세희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마치 상처 입은 작은 강아지처럼 불쌍한 모습이었다.이준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윤혜인은 그가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말했다.“그쪽이 아까워해도 별수 없습니다.”어차피 곽경천이 돌아오면 절대 임세희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그녀도 괜히 이준혁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임세희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 찼다!그녀는 울며 소리쳤다.“안 돼! 안 돼!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안 마실 거야... 으으... 꿀꺽꿀꺽...”경호원들은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려 음료를 모두 마시게 했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경호원이 손을 놓자 임세희는 죽은 물고기처럼 바닥에 쓰러졌다.약은 아직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그녀는 절망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이준혁을 올려다보았다.“저 여자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내가 준혁 씨를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지 알아? 준혁 씨의 그 마음은 돌로 만들어진 거야?”그러자 이준혁이 임세희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네 20살 생일 때 내가 했던 말 기억 나?”임세희의 얼굴은 창백해졌다.20살 생일에 그녀는 이준혁의 집 문을 두드려 자신을 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남자의 무정한 대답이었다.이준혁은 그녀에게 다시 한번 그 말을 상기시켰다.“나는 너 한 번도 좋아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그 마음은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았어. 네가 네 분수를 알고 만족해하며 살아갔다면 최소한 지금처럼 비참해지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들은 윤혜인은 혼란스러웠다.‘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야?’임세희도 당연히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처음 이준혁을 본 순간부터 그녀는 깊이 빠져들었다.잘생긴 얼굴뿐만 아니라 그는 차갑고 고귀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그와 반대로 사업에 있어서는 냉혹하고 결단력이 강해 마치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는 신처럼 행동했다.이런 두 가지의 면모가 임세희를 깊이 끌어당겼다.넓은 세상을 본 사람이 어찌 어두운 골목을 다시 좋아할 수 있겠는가?임세희는 오직 이준혁만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남자라 여겼다.그러나 지금 그 남자는 그녀가 무시했던 여자에게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임세희는 완전히 무너졌다. 창백한 얼굴에는 분노와 질투가 가득했다.“이 여자를 완전히 보물처럼 여기는구나? 이
임세희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미친년! 자기가 뭔데 나를 때려?!’그녀는 윤혜인을 비웃으며 계속해서 도발했다.“네 딸 어릴 때 병도 있었지? 말도 안 하고 그랬다며? 이게 다 네 업보야. 네가 그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땅해. 몇 년 지나면 그 아이도 너처럼 더러운 여자가 될 거야!”임세희는 모든 것을 걸고 윤혜인을 자극했다. 이준혁에게 윤혜인의 본성을 보여주려고 말이다. 어떻게든 그녀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었다.“짝! 짝! 짝!”윤혜인은 임세희의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었는지라 그녀의 얼굴을 세 차례나 강하게 때렸다.너무 화가 나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어린아이를 저주하는 사람은 인간 이하의 존재나 다름없다.곧이어 윤혜인이 다시 손을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를 뒤에서 잡아당겼다.이준혁이었다.윤혜인은 흥분한 상태에서 그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짝!”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윤혜인은 조금도 자비를 베풀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때렸다.“이거 놔!”화가 난 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준혁의 하얀 얼굴에는 다섯 개의 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윤혜인의 차가운 눈빛은 오직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윤혜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마치 모든 가시가 곤두선 고슴도치처럼 누구라도 그녀의 딸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을 태세였다.“걱정돼요?”그녀는 피식 냉소하며 물었다.“이 독한 여자가 걱정 되냐고요!”이준혁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뭐 하고 있어?”그러자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이더니 한 명은 임세희를 누르고, 다른 한 명은 임세희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이준혁의 표정이 여전히 차가운 것을 보고, 경호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임세희의 얼굴을 때렸다.경호원의 힘은 훨씬 더 강했다.몇 대 맞고 나자, 임세희의 입술은 피투성이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단지 고통스러운 듯 신음 소리만
그런 임세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섬뜩하고 역겨웠다.경호원들도 이제는 더 이상 때릴 곳이 없었다.이준혁은 윤혜인의 어깨를 감싸 안고 바닥에 누워 있는 임세희를 한번 바라본 뒤 말했다.“저 웨이터도 데리고 경찰서로 보내.”겁에 질린 웨이터의 얼굴을 창백해져 있었다.조금 전의 그 장면을 본 그는 차라리 경찰서에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그 말을 듣고 당황한 임세희는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았다.만약 경찰서에 가게 된다면, 재벌집 사모님들은 소식을 듣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약물 사건은 좋은 변호사를 찾으면 판결이 길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경찰서에 가는 순간 그녀의 인생은 끝장날 것이다.임세희는 윤혜인을 향해 독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그러고는 곧 이준혁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구걸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이번에는 윤혜인이 임세희에게 다가가 차갑게 말했다.“인제 와서 억울한 척하는 거야?”임세희는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의 몸은 마치 수많은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고통스럽고 가려웠다.떨리는 입술로 뒤이어 임세희가 힘겹게 두 단어를 내뱉었다.“악녀...”약이 드디어 효과를 발했다는 것을 윤혜인은 알아차렸다.그러자 곧 그날 밤 장 대표에게 끌려가며 느꼈던 절망감이 떠올랐다.몸속에 수많은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순간 윤혜인은 조금도 임세희를 동정하지 않았다.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 당신이 느끼는 고통이 내가 겪었던 고통이야. 잘 느껴봐.”‘그날 밤 구해지지 않았다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을지 몰라...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 똑같을 거야. 지금 임세희 당신이 겪는 고통은 그저 인과응보일 뿐이야.’임세희는 입을 떨며 계속해서 “악녀... 악녀...”라고 반복했다.그러나 윤혜인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나한테 감사해야 할걸? 난 당신처럼 독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당신이 만든 음료를 마시게 했을 뿐이거든.”이 말을 끝으로
날카로운 유리잔 손잡이가 윤혜인의 목에 몇 밀리리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대동맥을 쉽게 찌를 수 있었다.뒤에서 두 명의 경호원이 깜짝 놀라 달려왔지만, 거리상 도저히 제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었다.다행히 윤혜인은 해외에서 배운 호신술로 찰나의 순간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임세희의 그 사악한 얼굴이 다가오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여러 장면이 번쩍였다.“기억해, 너는 그냥 버려진 들개일 뿐이야...”“너랑 네 배 속에 있는 잡종, 준혁 오빠는 전혀 원하지 않아...”“준혁 오빠가 날 구하려고 널 버리지 않았다면, 네 아이는 지금쯤 잘 살아있겠지...”여러 여성들의 목소리와 함께 이 말들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널 정말 신경 쓰고 있나 봐. 1000억을 줄 의향까지 있다니...”“임세희가 나를 오해하게 만들어서 널 납치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준혁이가 널 더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윤혜인은 갑자기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귓속에서는 ‘윙' 소리가 나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그러고는 마치 마비된 듯 그 자리에 멈춰서서 다가오는 유리 ‘단검'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뒤이어 ‘퍽’하는 소리가 났다. 살이 뚫리는 소리였다.그러나 윤혜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그녀는 이미 이준혁의 품에 안겨 목구멍으로 뛰쳐나올 듯 쿵쾅거리는 그의 심장 소리를 느끼고 있었다.또 그녀의 몸은 이준혁의 팔에 단단히,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꽉 안겨있었다.윤혜인은 살짝 눈을 들어 자신을 보호해준 그를 바라보았다.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담긴 그 검은 눈동자는 정말이지 윤혜인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을 조금 풀어주고 몇 번이나 그녀를 훑어본 후에야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괜찮아.”그는 여전히 멍해 있는 윤혜인을 보고 겁에 질린 줄 알고 넓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윤혜인은 입술을 다물며 조용히 말했다.“난 괜찮아요...”“
원진우가 점점 다가오자 윤혜인은 마지막 기회를 잡고 숨겨둔 막대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했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원진우가 맨손으로 막대를 가볍게 붙잡아 꽉 쥐었기 때문이다.윤혜인은 막대를 빼앗으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소용없었다.그 순간, 원진우는 다른 손으로 윤혜인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고 그녀를 다락방 유일한 창틀 가장자리로 밀어붙였다.목이 졸려 말을 할 수 없었던 윤혜인은 두 손으로 창틀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이 다락방은 지상에서 족히 10미터는 넘게 높았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죽지 않아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이 순간, 원진우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그의 눈에 더 이상 딸이라는 개념은 없었다.처음에는 딸에게 보상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윤혜인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난 것은 원진우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누구든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는 심지어 친자식이라도 용서받지 못한다.윤혜인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자 원진우는 냉소를 띠며 말했다.“아직도 말 안 할 거냐?”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이 말과 함께 윤혜인의 몸 반쯤이 창밖으로 나갔다.“멈춰!”갑자기 아래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윤혜인은 몸이 거꾸로 매달려 있어 피가 거꾸로 흐르고 있었고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간신히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곽경천이 그곳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오빠가... 오빠가 드디어 왔어...’원진우가 서둘러 나왔던 탓에 데려온 네 명의 경호원은 이미 곽경천이 데려온 사람들에게 제압당한 상태였다.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본 원진우도 곽경천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는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오늘 무슨 날인가? 죽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모였군.”“이 미친놈! 내 여동생 당장 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곽경천이 외쳤다.원진우는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곽경천을 겨누며 말했다.“뭐? 날 죽
‘그래서 나한테 얌전히 기다리라고 한 거였어.’윤혜인은 창밖을 바라보며 푸른 섬에 눈길을 빼앗긴 윤아름을 돌아봤다.윤아름은 창밖의 풍경에 매료된 듯, 맑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이윽고 윤혜인은 마음을 굳히고 부드럽게 말했다.“엄마.”윤아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바라봤다.그러자 윤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게임 하나 해요...”원진우는 차 안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운전하는 경호원은 고속으로 차를 몰며 윤혜인이 타고 도주한 검은 차량을 추적했다.그러던 와중 차량이 눈에 보이자 경호원은 차를 세우며 보고했다.“대표님, 저 앞에 있습니다.”원진우는 차에서 천천히 내려 차량 앞으로 다가갔다.차 안을 들여다봤지만 이미 텅 비어 있었다.그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말 들을 애가 아니지.”딱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 관절을 꺾더니 원진우는 생각에 잠겼다.‘찾으면 어떤 벌을 줘야 할까. 다리 힘줄과 손 힘줄을 끊을까, 아니면 독을 써서 목소리를 없앨까... 아니면 둘 다 한꺼번에 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그는 특히 윤혜인이 윤아름을 데리고 도망치려 한 점에 분노했다.‘제 엄마를 유혹해 나를 떠나려 하다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어.’곧 원진우는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주변을 샅샅이 수색해.”차량의 전력 시스템을 끊은 뒤부터 지금까지 겨우 15분이 지났다.때문에 그녀들이 멀리 도망쳤을 리는 없었다.잠시 후, 경호원이 돌아와 보고했다.“대표님, 앞쪽에 사람이 없는 교회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주변에 흔적이 없는 걸 보니 교회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원진우는 교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가슴과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기도하듯 중얼거렸다.“주님, 제 죄를 용서하소서.”그 후 손짓으로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수색해.”건장한 경호원 네 명이 흩어져 교회 곳곳을 뒤졌다.그렇게 모든 곳을 수색한 후, 마지막으로 확인하지 못한 곳
게다가 원진우의 계획을 보니 해운성에서 그녀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할 생각인 듯했다.아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군데를 거쳐 이동하겠다는 의도였으니 그의 행방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윤혜인은 그제야 이해했다.그녀가 보낸 신호가 전송되었어도 곽경천 일행이 빠르게 도착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나라 하나를 건너야 하는 거리에서 아무리 빨리 와도 금방 닿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그녀는 차량에 내장된 스마트 시스템을 떠올리고 외국어로 시스템에 말을 걸어 보았다.“나 대신 신고 좀 해줘!”그러자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대답했다.“현재 해운성 해안경비대로 연결 중입니다.”돌아오는 답변에 윤혜인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대다수의 차량 시스템이 전화 통화는 불가능해도 긴급 신고는 가능할 것이라 짐작했다.‘해안경비대에 연락만 닿는다면 오빠가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어. 아무리 원진우가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든 나라에 그 세력이 미치게 할 수는 없을 거야.’윤혜인은 차를 멈추고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 연결을 기다렸다.삐빅 하는 두 번의 신호음 뒤에 전화가 연결되었다.통화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상담원이 물었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윤혜인은 다급히 말했다.“저와 제 어머니가 납치되었습니다.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범인이 저희를 추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상담원은 침착하게 물었다.“상대방이 누구인지,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세요.”윤혜인은 대답했다.“저희를 납치한 사람은 국제적으로 수배가 되어있습니다. 혐의도 한두 개가 아닐 겁니다.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고 주변에 바다밖에 없어요. 내비게이션에서는 블루섬이라고 나옵니다.”윤혜인은 상대가 국제 수배범이라는 말을 일부러 꺼냈다. 경찰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다.게다가 이번 원진우에 대한 폭로로 곽경천 일행이 그의 과거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므로 국제 수배범이라는 표현이 적절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윤혜인의 손에는 스마트 디스플레이 키가 들려있었는데 조금 전 원진우에게서 몰래 훔쳐 온 것이었다.그녀는 단 1초 만에 시동을 걸고 곧장 대문을 향해 내달렸다.대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지만 멈출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그대로 부딪힐 각오인 듯 말이다.대문 앞에 서 있던 보안 요원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만약 차에 부딪혀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책임을 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급히 원진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선생님, 저기... 대문을 어떻게 할까요...”원진우는 차의 기세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멈출 기색이 전혀 없는 그 모습에, 겉보기에는 얌전해 보이는 윤혜인이 자신의 열정과 영리함을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그는 짧게 고심한 후 단호히 말했다.“문 열어!”아무리 비싼 슈퍼카라 해도 이 속도로 대문을 들이받으면 운전자의 안전이 100%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문을 열어주더라도 그녀가 도망칠 수는 없었다.슈퍼카가 대문에 닿기 직전, 대문이 위로 열렸다.순식간에 슈퍼카는 대문을 빠져나갔다.윤혜인은 눈 앞에 펼쳐진 넓은 도로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몇십 초를 기다린 끝에야 상황을 이해했다.“엄마, 우리 탈출했어요!”기쁨에 찬 외침이었다.윤아름은 아직도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딸의 말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탈출’이라는 말은 지하실에 수십 년 동안 갇혀 있던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었다.윤아름이 기뻐하며 창문을 두드리자 윤혜인은 곧바로 창문을 내렸다.하지만 안전을 위해 반 정도만 내렸다.그 작은 틈으로도 윤아름은 크게 기뻐했다. 손가락을 밖으로 조금 내밀어 바람을 느끼며 냄새를 맡았다.자유로운 바람이 스치는 윤아름의 얼굴은 완전히 행복해 보였다.윤혜인은 엄마 윤아름의 이런 모습을 보며 모든 게 다 가치 있다고 느껴졌다.긴장으로 땀이 찼던 손바닥도 이제는 차갑게 식었고 조금 전 그녀는 원진우에게 조금의
그녀가 당한 모든 불행은 전부 이 남자 때문이었다.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할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원진우 씨, 지금 무슨 헛된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쪽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떠날 거예요. 당신이 우리 엄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감금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절대 잊지 않았어요.”윤혜인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에나 가야 해요!”그러자 원진우는 분노가 가득 찬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이렇게는 대화가 안 되겠군.”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우리 세 식구에게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내가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지 천천히 알게 될 거야.”윤혜인은 경계심을 품고 원진우를 응시했지만 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곧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원진우는 손짓으로 도우미를 불러 들어오게 한 후, 지시를 내렸다.“아가씨의 짐을 챙겨서 비행기에 실어라.”윤혜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원진우는 느긋하게 설명했다.“우린 곧 떠날 거라서.”원진우가 윤아름과 자신을 데리고 떠나려 한다는 말에 윤혜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원진우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수십 년 동안 윤아름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던 걸 보면 그의 경계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이번에 끌려가면 아버지, 큰오빠, 아이들, 모든 가족과 친구들을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난 안 가요!”윤혜인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지고 온 힘을 다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문에 도달하자마자 윤혜인은 원진우에게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곧 원진우는 넥타이로 그녀의 손을 묶은 뒤 그대로 어깨에 들쳐 업었다.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이곳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즉시 떠나야 했다.바깥에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떠나기만 하면 전처럼 윤아름과 윤혜인 모두 꽁꽁 아무도 모르게 숨
윤혜인이 갑자기 손을 들자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안에 들어있던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윤혜인은 자료를 보고 싶은 생각보다는 하얀 나무젓가락을 들어 원진우의 목에 찔러넣고 싶었다. 두 사람은 신장 차이가 있었지만 원진우는 지금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고 있어 윤혜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뾰족하게 자른 나무젓가락이 그대로 원진우의 목에 들어갔다. 그러자 피가 나무젓가락을 타고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지는 피의 양에서 윤혜인은 글렀다는 걸 알아챘다. 동맥을 찌르지 못했으니 원진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원진우는 고개를 들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더니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윤혜인을 바라봤다.“나 죽이고 싶어요?”원진우가 차분하게 물었다. 까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요했다. 윤혜인이 뒤로 물러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곧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구하러 들이닥칠 거예요. 도망은 꿈도 꾸지 마요.;원진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연락이 됐나 보네요.”윤혜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윤혜인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원진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다. 아니면 윤혜인도 이렇게 무모하게 나가기보다는 계속 위장하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원진우는 목에 꽂혀있는 젓가락을 뽑지도 처리하지도 않은 채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제법인데? 역시 내 핏줄이라 그런가? 배짱이 커.”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간사하기로 소문난 원진우가 친자 감정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미 자기 핏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원진우는 윤혜인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나 속이려 했나 본데...”원진우가 허리를 굽혀 서류를 줍더니 윤혜인에게 건네줬다.“봐... 네 말이 맞아. 너 정말 내 딸이야.”“...”윤혜인은 원진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결과지에 적힌 숫자에 눈길이 갔다.99.99%.그럴
문이 삐걱 열리더니 원진우가 안으로 돌아왔다. 표정이 밝아진 윤아름을 보고 원진우의 표정도 살짝 풀렸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있는 시간을 연장해 주지는 않았다.“시간 됐어요.”원진우가 덤덤하게 말하더니 윤아름이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윤아름을 번쩍 안아 들고는 방에서 나갔다.다음날.윤아름이 제시간에 나타나자 윤혜인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줬다. 이야기가 결말까지 이어지자 윤아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성을 잃은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이거야?”윤아름이 마술을 부리듯 손목에 묶었던 레이스를 풀더니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헤헤 웃었다.“이거?”윤혜인은 원하던 물건이 윤아름 몸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손목에 묶여있는 레이스가 그저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윤혜인은 얼른 자수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치 추적기가 아직 들어있었다. 윤혜인은 자수를 더듬거리며 버튼을 찾더니 꾹 눌렀다. 그때 문 쪽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윤혜인이 얼른 자수를 윤아름의 손목에 묶어줬다.발신기의 발신 기회는 고작 두번이었다. 마지막 한 번을 사용했으니 이제 더는 기회가 없다. 윤혜인은 윤아름이 다시 끌려가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지만 곧 구출될 거라는 희망을 안고 꾹 참았다.한편, 곽경천과 배남준은 북안도를 이 잡듯이 뒤지며 윤혜인을 찾고 있었다. 원진우의 출입국 기록이 없는 걸 봐서는 아직 북안도에 숨어있다는 의미였다.이준혁도 온 힘을 다해 윤혜인을 찾았다. 꼬박 3일을 눈도 붙이지 못하고 돌아치던 이준혁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잠깐 휴식하려 했다.그때 문이 열리더니 주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안으로 들어왔다.“발신기... 발신기에서 또 한 번의 신호를 보내왔습니다.”이준혁이 얼른 외투를 집어 들더니 지하 차고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훈은 발신기 주변에 위험 물체가 있는지 탐색했다. 이준혁은 이 소식을 곽경천과 배남준에게 알렸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목표는 똑같이 윤혜인과 윤아름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아름아, 왜 그래?”원진우가 앞으로 다가와 윤아름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확인하려 했다. 뒤를 힐끔 돌아본 윤아름이 원진우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윤혜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윤아름이 오히려 애가 된 것 같았다.“삼촌, 일단 나가 계세요. 삼촌이 여기 있으면 오히려 자극만 받을 거예요.”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진우는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윤아름을 보고 한발 양보했다.“윤혜인 씨, 얌전하게만 있으면 절대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원진우가 타이름 반 협박 반으로 말했다. 얕은 수작을 부리면 벌을 내리겠다는 경고였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윤아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엄마, 엄마, 나 혜인이야...”원진우는 겨우 차분해진 윤아름을 보며 더는 자극하기 싫어 방에서 나갔다. 윤혜인은 방문이 닫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오전에 방안을 둘러보며 카메라가 없다는 건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새 거처를 바꿔서 그런지 아니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날 계획이라 그런지 여기는 카메라가 없었다.“엄마, 미안해요. 아팠죠?”윤혜인이 얼른 윤아름의 등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살짝 빨개진 정도였다. 이런 위험한 수를 둔 건 윤아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원진우가 신경 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윤아름의 정서를 이용해 원진우를 영향 주려 했다. 다행히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혔다. 윤아름이 아닌 윤혜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면 죽을 정도가 아니고서는 원진우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윤아름은 여전히 아무 감각이 없는 듯했지만 윤혜인이 친근하게 다가가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을 깜빡였다가 윤혜인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윤혜인은 윤아름의 팔을 잡고 눈물을 뚝뚝 떨궜다.“엄마...”윤혜인은 한참 동안 속 시원하게 울더니 울음을 그치고는 물었다.“엄마, 그때 그 자수는 어디에다 뒀어요?”윤혜인이 물은 자수는
윤혜인이 문 앞으로 다가가 힘껏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화들짝 놀란 도우미가 얼른 달려와 윤혜인을 막았다.“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만하세요.”도우미가 윤혜인을 안더니 힘껏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윤혜인은 문을 두드릴 수 없어 큰 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엄마. 엄마. 엄마.”윤혜인이 큰 소리로 외치자 바깥에서 들리던 웅얼거리는 소리가 달라졌다.쿵.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쿵. 쿵. 쿵.휠체어로 문을 힘껏 부수는 소리와 도우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사모님. 안 됩니다. 이러시면 안 돼요.”윤혜인이 더 높은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 엄마.”방 안에 있던 도우미가 윤혜인의 입술을 틀어막자 윤혜인이 팔다리를 마구 버둥대며 웅얼웅얼 소리를 냈다.문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망가졌다. 문이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안으로 쌩하고 들어왔다. 윤아름은 큰 꽃병 하나를 이고 들어와 윤혜인의 입을 막고 있는 도우미를 내리쳤다. 도우미는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더니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윤아름이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나 윤혜인을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윤혜인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다시 안아보는 거라 윤혜인도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도우미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다른 도우미를 보고 윤아름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긴 윤아름은 아까 정신이 살짝 나간 것 같았다. 게다가 원진우가 윤아름을 다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기에 과분하게 말렸다가 윤아름이 다치는 날에는 도우미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이때 소식을 들은 원진우가 다급하게 걸어왔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녀를 보게 되었다. 원진우는 멈칫하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윤혜인은 정상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멍하던 예전과 비기면 정서라는 게 생겼다. 윤혜인이 확실히 윤아름을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