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희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미친년! 자기가 뭔데 나를 때려?!’그녀는 윤혜인을 비웃으며 계속해서 도발했다.“네 딸 어릴 때 병도 있었지? 말도 안 하고 그랬다며? 이게 다 네 업보야. 네가 그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땅해. 몇 년 지나면 그 아이도 너처럼 더러운 여자가 될 거야!”임세희는 모든 것을 걸고 윤혜인을 자극했다. 이준혁에게 윤혜인의 본성을 보여주려고 말이다. 어떻게든 그녀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었다.“짝! 짝! 짝!”윤혜인은 임세희의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었는지라 그녀의 얼굴을 세 차례나 강하게 때렸다.너무 화가 나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어린아이를 저주하는 사람은 인간 이하의 존재나 다름없다.곧이어 윤혜인이 다시 손을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를 뒤에서 잡아당겼다.이준혁이었다.윤혜인은 흥분한 상태에서 그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짝!”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윤혜인은 조금도 자비를 베풀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때렸다.“이거 놔!”화가 난 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준혁의 하얀 얼굴에는 다섯 개의 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윤혜인의 차가운 눈빛은 오직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윤혜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마치 모든 가시가 곤두선 고슴도치처럼 누구라도 그녀의 딸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을 태세였다.“걱정돼요?”그녀는 피식 냉소하며 물었다.“이 독한 여자가 걱정 되냐고요!”이준혁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뭐 하고 있어?”그러자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이더니 한 명은 임세희를 누르고, 다른 한 명은 임세희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이준혁의 표정이 여전히 차가운 것을 보고, 경호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임세희의 얼굴을 때렸다.경호원의 힘은 훨씬 더 강했다.몇 대 맞고 나자, 임세희의 입술은 피투성이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단지 고통스러운 듯 신음 소리만
그런 임세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섬뜩하고 역겨웠다.경호원들도 이제는 더 이상 때릴 곳이 없었다.이준혁은 윤혜인의 어깨를 감싸 안고 바닥에 누워 있는 임세희를 한번 바라본 뒤 말했다.“저 웨이터도 데리고 경찰서로 보내.”겁에 질린 웨이터의 얼굴을 창백해져 있었다.조금 전의 그 장면을 본 그는 차라리 경찰서에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그 말을 듣고 당황한 임세희는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았다.만약 경찰서에 가게 된다면, 재벌집 사모님들은 소식을 듣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약물 사건은 좋은 변호사를 찾으면 판결이 길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경찰서에 가는 순간 그녀의 인생은 끝장날 것이다.임세희는 윤혜인을 향해 독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그러고는 곧 이준혁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구걸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이번에는 윤혜인이 임세희에게 다가가 차갑게 말했다.“인제 와서 억울한 척하는 거야?”임세희는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의 몸은 마치 수많은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고통스럽고 가려웠다.떨리는 입술로 뒤이어 임세희가 힘겹게 두 단어를 내뱉었다.“악녀...”약이 드디어 효과를 발했다는 것을 윤혜인은 알아차렸다.그러자 곧 그날 밤 장 대표에게 끌려가며 느꼈던 절망감이 떠올랐다.몸속에 수많은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순간 윤혜인은 조금도 임세희를 동정하지 않았다.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 당신이 느끼는 고통이 내가 겪었던 고통이야. 잘 느껴봐.”‘그날 밤 구해지지 않았다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을지 몰라...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 똑같을 거야. 지금 임세희 당신이 겪는 고통은 그저 인과응보일 뿐이야.’임세희는 입을 떨며 계속해서 “악녀... 악녀...”라고 반복했다.그러나 윤혜인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나한테 감사해야 할걸? 난 당신처럼 독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당신이 만든 음료를 마시게 했을 뿐이거든.”이 말을 끝으로
날카로운 유리잔 손잡이가 윤혜인의 목에 몇 밀리리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대동맥을 쉽게 찌를 수 있었다.뒤에서 두 명의 경호원이 깜짝 놀라 달려왔지만, 거리상 도저히 제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었다.다행히 윤혜인은 해외에서 배운 호신술로 찰나의 순간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임세희의 그 사악한 얼굴이 다가오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여러 장면이 번쩍였다.“기억해, 너는 그냥 버려진 들개일 뿐이야...”“너랑 네 배 속에 있는 잡종, 준혁 오빠는 전혀 원하지 않아...”“준혁 오빠가 날 구하려고 널 버리지 않았다면, 네 아이는 지금쯤 잘 살아있겠지...”여러 여성들의 목소리와 함께 이 말들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널 정말 신경 쓰고 있나 봐. 1000억을 줄 의향까지 있다니...”“임세희가 나를 오해하게 만들어서 널 납치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준혁이가 널 더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윤혜인은 갑자기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귓속에서는 ‘윙' 소리가 나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그러고는 마치 마비된 듯 그 자리에 멈춰서서 다가오는 유리 ‘단검'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뒤이어 ‘퍽’하는 소리가 났다. 살이 뚫리는 소리였다.그러나 윤혜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그녀는 이미 이준혁의 품에 안겨 목구멍으로 뛰쳐나올 듯 쿵쾅거리는 그의 심장 소리를 느끼고 있었다.또 그녀의 몸은 이준혁의 팔에 단단히,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꽉 안겨있었다.윤혜인은 살짝 눈을 들어 자신을 보호해준 그를 바라보았다.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담긴 그 검은 눈동자는 정말이지 윤혜인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을 조금 풀어주고 몇 번이나 그녀를 훑어본 후에야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괜찮아.”그는 여전히 멍해 있는 윤혜인을 보고 겁에 질린 줄 알고 넓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윤혜인은 입술을 다물며 조용히 말했다.“난 괜찮아요...”“
임세희는 자유를 향한 강한 집착으로 눈물을 쏟으며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옥에만 가지 않으면, 언젠가 기회를 잡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이준혁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그 완벽한 얼굴에 음산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건 네가 선택한 거야. 내가 이뤄줄게.”그러더니 이준혁은 고개를 돌려 명령했다.“이 여자 금란 뒷골목에 던져.”금란 뒷골목.손발이 순간 얼어붙으며 임세희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찼다.그곳은 불법 매매의 중심지로, 법의 손이 미치지 않는 서울의 유일한 장소였다.이준혁은 그녀를 바로 이런 곳에 보내려는 것이었다.“아아아아!”극도의 공포에 빠져 임세희가 말을 잇지 못했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녀를 빠르게 끌고 나갔다.임세희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바닥에 긴 핏자국을 남겼지만 모든 것이 헛된 몸부림이었다.윤혜인은 임세희의 반응을 보고 금란 뒷골목이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임세희가 자초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이내 그녀도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때, 밖에서 여은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아가씨, 괜찮아요?”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온 주훈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곧 반쪽 얼굴이 부어있는 주훈을 발견한 윤혜인이 여은을 바라보자 그녀가 즉시 대답했다.“이 사람이 제 가슴을 만지려고 해서 제가 단단히 혼 좀 내줬습니다!”이 말에 모두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붓지 않았던 주훈의 다른 한쪽 얼굴도 빨갛게 물들었다.‘아니 이런 말을 어떻게 공공연히 할 수 있지?!’이준혁의 차가운 시선이 주훈을 향하자, 그는 서둘러 해명했다.“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냥 데려오던 중에 갑자기 핸들을 잡아서...”여은은 차갑게 말했다.“날 데리고 계속 길을 빙빙 돌기만 했잖아요! 제 스승님께서 그랬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빙빙 돌면 좋지 않은 의도가 있는 거라고!”그러자 주훈은 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단지 이준혁과 윤혜인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려고 했을 뿐이었으
마음이 조금 설렌 이준혁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 네가 약만 발라주면 돼.”“그럼 가시죠, 차에 약이 있다면서요?”윤혜인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그녀에게 있어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약을 발라주는 것이 큰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갔다. 여은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주훈이 그녀를 막았다.“눈치 좀 챙겨요.”주훈이 그녀를 나무라자 여은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우리 아가씨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닙니다. 당신네 대표가 아가씨를 차에 데려가서 뭘 하려는 건지 모르잖아요.”그 말에 주훈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사실 이준혁은 윤혜인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그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고 싶어 했다.그러나 주훈은 충성스러운 그의 비서로서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주훈은 가볍게 기침하며 말했다.“저희 대표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정직하고 바르게 행동하시는 분이에요. 게다가 대표님께서는 어깨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아가씨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겁니다.”주훈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사실 어깨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 정도 상처는 이준혁에게 있어 아무렇지도 않았다.그러나 주훈은 여은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를 약하게 보이게 했다.뒤이어 그는 여은을 뒤에 있는 차로 데려가며 말했다.“여기 앉아서 지켜봐요. 안심해도 됩니다.”차 안에서, 윤혜인은 피에 젖은 셔츠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래서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무래도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요.”“정말 괜찮아, 약만 바르면 돼.”이준혁은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상처로 병원에 갈 필요는 없었다.그러자 윤혜인이 불만스럽게 말했다.“왜 이렇게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요?”이준혁에게는 그녀의 말이 천상의 음악처럼 들렸다.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신호였다.“근데... 손이 불편해서 네가 셔츠를 벗겨줘야 할 것 같아.”“이...”얼굴이 빨개지며 윤혜
윤혜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준혁을 보며 말했다.“조금 더 옆으로 돌아봐요, 이렇게는 하기 어려워요.”그러자 이준혁은 순순히 옆으로 돌아섰다.앉은 높이로는 충분하지 않아 윤혜인은 무릎을 차 시트 위에 올렸다.이렇게 하면 상체를 세울 수 있어서 이준혁의 어깨높이와 맞출 수 있었으니 말이다.무릎이 시트에 가볍게 눌려서 가죽 시트가 조금 움푹 들어갔고 이준혁은 백미러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시선을 따라 거울을 보았다.거울 속에서 윤혜인은 이준혁 뒤에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그 자세는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내 얼굴이 뜨거워지며 윤혜인은 급히 해명했다.“무릎 꿇는 게 더 편해서 그래요...”이준혁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응, 편한 대로 해.”그 말 속에는 뭔가 숨겨진 의미가 있었다.윤혜인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지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그녀는 빨리 셔츠를 벗겨내고 싶었다.곧 남자의 등에 있는 깊은 척추와 선명한 근육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윤혜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남자의 등을 무시하고 상처를 확인했다.다행히, 유리 조각이 깊게 박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처 속에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길이보다 조금 짧은 유리 조각이 있었다. 윤혜인은 핀셋을 꺼내며 말했다.“조금만 참아요, 유리 조각 빼낼게요.”이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윤혜인은 조심스럽게 유리 조각을 제거하고, 상처에 ‘호’하며 입김을 불어 넣었다.이 행동은 그녀가 아름이에게도 해주는 습관이었다.잔뜩 긴장한 상태로 이준혁은 눈썹을 찌푸렸다.고통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지만, 계속 이렇게 한다면 더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윤혜인은 알코올로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이 과정은 이준혁에게 큰 인내심을 요구했다. 마지막 단계는 상처를 감싸는 것이었다.하지만 상처의 위치가
이준혁의 얇은 입술이 윤혜인의 부드러운 입술에 닿아 불꽃이 튀는 듯했다.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듯한 느낌의 심장, 몸속의 모든 세포가 그의 몸속에 있는 갈망을 전달하고 있는 듯했다.가슴속은 애틋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윤혜인을 이렇게 품에 안고 키스하는 순간을 얼마나 바라왔던가...그녀가 돌아온 후로 느꼈던 상실감과 허무함,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너무 많은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고 그녀를 자신의 뼈와 피에 녹여 넣고 싶은 정도였다.하지만 그는 자신을 억제하고 짧고 가벼운 입맞춤만을 나누며 그녀에게 애정을 표현했다.몇 초 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윤혜인은 남자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읍...”아프다는 듯이 이준혁이 소리를 냈다.아마도 어깨의 상처를 건드린 모양이었다.때문에 윤혜인은 자연스레 손에 힘을 뺏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부끄러움과 화가 뒤섞여 있었다.“혜인아...”이준혁은 아쉬운 마음으로 윤혜인의 입술에서 멀어지며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부드럽게 불렀다.“나 때리기 아까운 거지?”“누가 아깝대요?!”윤혜인은 다시 주먹을 들었지만, 이준혁이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결국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다.그러자 이준혁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었다.“네 입술은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어.”또다시 윤혜인의 얼굴이 빨개졌다.“정신 나간 거 아니에요? 헛소리 그만해요!”그러자 이준혁은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내가 증명할 수 있다면?”윤혜인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굴렸다.‘그걸 어떻게 증명하겠다는 거야?’하지만 말할 틈도 없이, 서로의 얼굴이 갑자기 가까워지며 이준혁은 다시 그녀에게 키스했다.“당신...”윤혜인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밀어냈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남자는 이로 그녀의 입술을 살짝 물었다.“읍...”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준혁은 윤혜인의 등을
그러나 윤혜인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곽경천은 이준혁이 공격을 멈춘 틈을 타 망설임 없이 또 한 번 강력한 주먹을 날렸다.그 바람에 이준혁은 한바탕 피를 토해냈고 한쪽 얼굴은 얼얼하게 아팠다.입안에는 피 맛이 가득했다.하지만 윤혜인이 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며 그는 그저 참아냈다.이준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혀끝으로 뒤쪽 어금니를 누르며 곽경천의 연이은 공격을 참아냈다.솔직히 말해 진짜로 싸운다면 곽경천은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은 이준혁을 이길 수 없었다.심지어 현재 이준혁이 부상을 당한 상태라 해도 곽경천에게 밀릴 일이 없었다.그러나 만약 그가 곽경천을 때린다면, 윤혜인은 그를 더욱 싫어하고 무시할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이준혁은 참아야만 했다. 곽경천의 주먹이 자신의 몸에 하나씩 꽂혀도 그는 반격하지 않았다.곽경천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피를 보려고 작정한 듯 주먹 하나하나에 분노를 담아 때렸다.방금 막 비행기에서 내려온 그는 여은의 보고를 듣고 급히 달려왔다.도착했을 때, 그는 이준혁이 반쯤 벌거벗은 상태로 차 안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의 시점에서 볼 때, 이준혁은 윤혜인을 강제로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결국 망설임 없이 이준혁의 차를 부쉈다.지금 그는 이준혁의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자신의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일 뿐이었다.윤혜인은 두 사람이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주훈과 여은도 동시에 달려왔다.주훈은 상황을 보고 도와주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손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이준혁이 곽경천에게 수십 대를 맞아도 반격하지 않는 것을 보고 주훈은 당황했다.“사모님... 아니 혜인 씨! 빨리 곽경천 씨 말려주세요, 대표님께서는 다치셨다고요!”주훈이 급히 말하자 윤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오빠, 그만해!”하지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곽경천은 윤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주먹은 멈추지 않았다.윤
육경한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이었다. 침대에 누운 육경한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지 아직 창백했고 입술 색도 참담하기 그지없었다.안으로 들어온 소종은 육경한이 문 쪽을 보며 멍때리는 걸 발견했다. 육경한이 멍때리는 건 아주 드문 장면이었기에 소종은 순간 그런 육경한이 마음이 아팠지만 육경한이 실망할까 봐 어색하게 부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했다.“소원 씨 어제 병원에 같이 왔다가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니까 그때 갔어요. 많이 피곤해 보였는데 집에 가서 쉬는 게 맞을 것 같더라고요.”소종의 말은 내용은 사실이었지만 앞뒤 순서가 바뀌어 있었고 흐릿한 게 맥이 없었다. 그래도 소종은 음울해 보이는 육경한이 걱정되어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졌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대표님, 소원 씨 그래도 많이 감사해하더라고요. 그때 그 산길에서도 목숨 걸고 대표님을 끌어올린 걸 보면...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됐어. 너 나가.”육경한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는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고 소원이 어떤 태도인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10번, 100번을 더 구해도 소원은 전혀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소원이 육경한에 대한 원한은 육경한을 깊숙한 지옥에 빠트려도 모자랄 정도의 그런 원한이었다.게다가 산길에서 만약 소원이 육경한을 알아봤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소원이 육경한을 해치려 한다는 게 아니라 살려야 하는 사람이 육경한이라면 아마 망설였을 것이다.소원은 늘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육경한을 죽일 듯이 원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구한 육경한을 나 몰라라 하지는 못했을 테고 육경한을 살리면 그런 자신이 밉겠지만 살리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기에 어떤 선택을 하든 소원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육경한은 왜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소원이 영원히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런 일로 엮일 때마다 서로 힘들어했지만 육경한은 소원을 아직 놓아주기
그렇다는 건 서현재가 더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으면 행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일단은 다시 계획을 짜보기로 다짐하고는 소종과 함께 차에 올랐다.차에는 함께 따라온 의사가 육경한에게 간단한 구급 조치를 하고 있었다.육경한은 의사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지만 소종까지 그럴 수는 없었기에 가정 주치의를 불러 같이 왔다. 의사는 육경한의 상처를 처치해 주며 지혈했지만 빨갛게 물든 셔츠가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소종이 나지막한 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소원을 노려봤다. 가는 길에 적어도 백번은 소원을 째려보더니 뭔가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병원에 도착하자 응급 의사가 허둥지둥 달려와 육경한을 데리고 들어가며 상처를 확인했다. 새로운 상처가 새로 난 상처와 겹쳐 너무 흉측해 의사가 놀란 나머지 신고할 뻔했지만 소종이 제때 해석하며 산에서 입원했던 증명과 사건 기사를 의사에게 보여준 덕분에 의사는 비로소 신고할 생각을 버리고 육경한을 응급실로 데려갔다.소종은 마음이 답답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른 의사에게 소원도 검사해달라고 했지만 소원이 거절했다.“나는 됐어요. 지금 바로 돌아가 봐야 해요.”소원이 말했다.“어딜 돌아간다는 거예요?”소종이 경계하며 말했다.“서씨 가문에 제 발로 죽으로 들어가려고요?”소종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젠장, 애초에 당신을 구하는 게 아니었는데. 대표님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당신이 다시 서진태에게 잡히면 정말 서진태 손에 죽을지도 몰라요.”소원이 그런 소종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까는 고마웠어요. 하지만 내가 죽으러 가든 아니든 소종 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소종은 도무지 소원이라는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 그때 소원이 한마디 덧붙였다.“육경한 깨어나면 고마워하지는 않을 거라고 얘기해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예전에 저지른 일들이 잊히는 것도 아니고 원한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아무는 것도 아니니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고요.
서진태는 여전히 느긋한 표정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소 비서, 소원 씨가 우리 집 액세서리를 훔친 건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이렇게 데려가면 안 되죠.”“어르신, 후과는 생각해 보셨어요?”소종은 육경한을 꽤 오래 따라다녔기에 표정을 굳히면 육경한의 모습이 살짝 보였고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서진태는 살짝 겁이 났지만 소종은 하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만약 육경한의 비서가 아니면 이렇게 눈길을 줄 일도 없이 바로 혼내주고 내쫓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침착한 척했다.“어르신, 저는 일개 서민일 뿐이라 어르신이 무슨 꿍꿍이를 펼치려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 대표님은 아니에요. 우리 대표님 앞에서 그런 얕은수를 썼다고 생각해 보세요, 승산이 얼마나 될 것 같으세요?”소종이 차갑게 웃으며 말하자 서진태가 화들짝 놀라며 식은땀을 흘렸다. 육경한은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 누구보다 총명할뿐더러 수단도 좋았다.오늘은 소원을 어쩌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서진태는 얼른 기회를 잡았다.“소 비서, 오해에요. 우리가 소원 씨를 남긴 건 다 좋은 뜻이 있어서 그래요.”서진태가 억지로 웃자 얼굴에 잡힌 주름은 파리를 잡아도 될 만큼 깊었다.“그저 이 일을 확실하게 조사해서 소원 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거예요. 얼마나 큰일인데 소원 씨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할 수는 없잖아요.”짬밥은 무시하지 못한다고 서진태가 한 말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고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참 잘했다.소종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기에 서진태가 뭔가를 꾸민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정확히 뭘 꾸미는지 몰라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건 기억하고 차갑게 웃었다.“어르신, 그 말은 대표님이 깨어나시면 직접 하세요. 서씨 가문과 육씨 가문 사람이 결혼했다 해도 하고 싶은 대로 막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아직 우리 대표님을 몰라도 한참 모르네.”소종의 말에 서진태의 얼굴이 잿빛이 되더니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눈알이 뒤집힐 뻔했다. 비서
분풀이를 마친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눈이 멀어나. 감히 우리 대표님을 때려? 짐승 같은 것들, 내가 오늘 너희들 혼내주지 않으면 소종이 아니라 잡종이다.”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소종이었다.그때 소원의 옆으로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려보니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대표님.”소종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육경한을 부축했다. 육경한은 지금 꼴이 많이 처참했는데 하얀 셔츠는 피로 물들었고 전에 차 사고로 다친 상처가 지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덧난 데다가 소원 대신에 몽둥이까지 맞아 다 터지고 말았다.차 사고를 겪으면서 피를 많이 잃었는데 여기서 또 피를 흘리는 바람에 얇은 입술은 무서울 만큼 창백했고 극도로 허약해 보였다.소원은 육경한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몰라 아직도 멍한 상태였다. 보디가드가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그대로 쓰러질 줄 알았는데 육경한이 갑자기 튀어나와 대신 막아준 것이다.소종이 소원을 째려보며 말했다.“소원 씨 때문에 또 이렇게 다쳤네요. 대표님은 정말 소원 씨와 엮어서 좋은 일이 없어요.”소종이 이렇게 말하더니 허리를 숙여 육경한을 업으려 했지만 정신을 잃은 육경한은 소종에게 잘 업히지도 못했다. 이에 소종이 소원을 힐끔 째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좀 도와주면 안 돼요? 대표님이 소원 씨를 몇 번이나 구했는데, 피도 눈물도 없어요?”소원이 멈칫하더니 허둥지둥 육경한을 소종의 등에 업혔다. 그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서진태가 소종의 등에 업힌 육경한을 보더니 놀란 듯 연기하며 말했다.“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어르신, 제 앞에서는 연기하지 않아도 돼요.”소종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소 비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통 못 알아듣겠는데.”서진태가 얼굴을 굳히자 위엄은 여전했다.“허허.”소종이 콧방귀를 뀌었다.“제 기억으로는 대표님이 절대 이 여자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죠? 이 정도로 굵은 몽둥이를 가져왔다는
집사가 대답했다.“소원 씨는 지금 대기실에 갇혀 있습니다.”서진태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톡톡히 손봐주고 던져버려.”서진태는 독벌레가 진귀하지만 않으면 존재 자체가 화근인 소원에게도 한 마리 넣어 뇌를 남김없이 모조리 잠식당하길 바랐다. 엮이면 재수 없는 여자라 이가 바득바득 갈렸지만 다행히 몸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들었고 이번 기회에 쌍으로 지옥에나 보내버릴 생각이었다.상황이 종료되자 서진태가 손을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대기실.소원은 여기 갇힌 후로 도무지 나갈 방법이 없었고 서현재가 한 말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상했다. 그 모습은 마치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영혼을 뺏긴 사람 같았고 생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고민하는데 대기실 문이 다시 열렸고 까무잡잡한 보디가드 두 명이 들어오더니 몽둥이를 들고 험악한 표정으로 소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소원이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뭐 하려는 거야?”“뭐 하긴 뭐해? 위쪽 지시를 받고 너 혼내주러 온 거지.”“이거 불법인 거 알아, 몰라.”소원이 매섭게 쏘아붙였다.몽둥이를 잡은 기세를 봐서는 소원을 때려죽이기라도 할 것 같았다. 서진태는 보면 볼수록 음침하고 교활한 노인네였다.“우린 그냥 명령을 받고 결혼식에 물건을 훔치러 온 도둑을 혼내줬을 뿐이야.”보디가드가 한마디 덧붙였다.“결혼식에서 20억짜리 액세서리가 사라졌는데 그 범인이 너야. 지금은 잡힌 거고.”보디가드가 이렇게 말하며 액세서리 몇 개를 바닥에 던졌다.서진태는 소원을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한 것 같았다. 소원은 바닥에 떨어진 액세서리를 보며 넋을 잃었다.“나 아니야. 나는 훔친 적 없어. 이건 모함이야.”보디가드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더니 말했다.“인증도 있고 물증도 있는데 네가 아니라고 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보디가드는 그저 서진태가 시키는 대로 죄명을 소원에게 덮어씌우고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앞으로 그 누구도
그 터전은 무당 일가의 집이었기에 채벌이 시작되면 더는 지금처럼 영기가 가득 찬 곳을 찾아 독벌레를 기르기 힘들었고 그렇게 되면 무당 일가가 몰락하고 대를 잇지 못하게 된다.독벌레를 만들려면 무당 일가인 그들이 첫 번째 숙주가 되어야 했고 유충을 몸에 넣고 천천히 부화해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까지 만들면 특수한 약초로 독벌레를 유인해서 빼내야 했다.독벌레가 몸에서 나오면 세상에서 가장 맑은 호숫가로 데려가 안개와 이슬,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비를 양분으로 일정한 크기까지 자라나야만 단향 단지에 넣어 다른 용도에 쓰일 수 있었다.게다가 여자가 들고 있는 단지에 담긴 독벌레는 이미 40년이나 산 독벌레였기에 독성이 상상 이상으로 더 독했다. 하지만 이내 서진태가 큰소리로 보디가드를 불렀고 보디가드가 노인네를 당장 밖으로 끌어냈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주저하자 서진태가 주름 잡힌 얼굴로 음침하게 웃으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월생이라고 했나? 약속한 걸 모르면 안 되는 거 알지? 아니면 너도 너희 사부님도 무사히 서울을 떠나지는 못할 거야.”서진태는 노골적으로 무당 월생을 협박하고 있었다.월생은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젊은이를 보며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묵념했다.‘미안해요. 당신 가족들이 당신을 죽이려 드는데 저도 달리 방법이 없네요.’월생이 손을 우산 모양으로 오므리자 작은 단지에서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더니 월생의 손에 앉았고 월생이 그 손을 남자의 눈에 올려놓았다. 5초쯤 지나 월생이 손을 떼자 하얀 벌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서진태가 약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이러면 벌레가 들어간다고?”월생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독벌레가 뇌로 들어가는 방법은 안구밖에 없습니다. 독벌레의 몸통은 안구의 모양에 따라 종잇장처럼 얇아져서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게 됩니다. 의학용 감마선을 쏘아봐도 사람의 신경처럼 보이기 때문에 절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서진태가 반신반의하는데 침대에 누워있던 서현재가 손가락을 움직이며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서현재의 상태를 확인하고 맥을 짚어보더니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네를 보며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노인네가 이를 듣고는 고개를 젓더니 손을 흔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답했다.서진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모습을 보아하니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사부님 말씀으로는 약을 너무 과다하게 사용해서 나온 합병증이라고 합니다. 뇌에 부하가 걸리는 바람에 약간만 외부의 자극을 받아도 머릿속에 두 가지 목소리가 싸우게 될 거예요. 이렇게 쓰러진 것도 다 몸이 좋아서 그런 거지 다른 사람이면 이미 뇌사 상태에 빠졌을 수도 있어요.”서진태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이 결혼은 어떻게든 완성해야 하니 방법은 알아서 생각해.”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말했다.“어르신, 지금으로서는 독벌레를 내려서 깨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몸을 많이 축내는 방법이라 매우 위험합니다. 독벌레는 사람의 뇌를 갉아 먹고 사는 거라 도련님...”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말끝을 흐렸지만 다들 서현재가 살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서진태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현재의 사활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직 외국으로 빼돌리지 못한 자산이 있는데 그 자산을 성공적으로 빼돌리려면 한국에 대신 죄를 뒤집어쓸 사람이 필요했다.서현재가 죽어도 괜찮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죽으면 서진태가 공들여 짜놓은 판이 다 무용지물이 되게 된다. 이 판을 위해 서진태는 육씨 가문을 끌어들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만약 육경한이 서진태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었다면 육연주가 아무리 죽고 못 산다 해도 절대 육연주를 시집보내지 않았을 것이다.애초에 육경한이 서씨 가문에 압력을 넣으며 육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밀어붙인 게 오히려 서진태에겐 도움이 되었다. 짬밥은 무시할 수 없다고 서진태는 능구렁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렸다. 잠깐 고민하던 서진태가 이렇게 말했다.“독벌레든 뭐든
사회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신랑분, 큰 소리로 대답해 주세요.”서현재가 입술을 뻐끔거렸다.“저...”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돼.”서현재가 멈칫하더니 의문에 찬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고 하객들도 일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소원이 버진 로드로 올라가더니 남자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현재야, 이 결혼 하면 안 돼.”북적북적.하객들이 수군거리며 갑자기 나타나 결혼식을 중단시킨 여자를 놀라워했다.서현재는 멍한 표정으로 웨이터 복장을 한 여자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왜, 왜 똑같은 얼굴이지?’소원이 서현재의 팔을 잡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현재야, 우리가 한 약속 잊었어? 네가 결혼할 사람은 나야.”현재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마치 우레처럼 서현재의 머리를 강타했고 서현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게 산산이 조각났다. 과거의 조각들이 너무 하나씩 이어지며 파도처럼 몰아쳤다.“누나, 나랑 결혼해 주면 안 돼요?”“누나, 나 누나 좋아해요. 대답 안 해준다 해도 계속 기다릴 거예요.”“누나, 나 드디어 누나랑 사귀는 거예요?”“소원 누나, 누나.”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육연주가 먼저 반응하고는 소원의 귀싸대기를 날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저 미친년 당장 끌어내.”보디가드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다른 건장한 남성을 불러 소원을 끌어내려 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소원은 서현재의 팔을 꼭 잡으며 말했다.“현재야, 너는 육연주 사랑하지 않아. 날 믿어. 너는 육연주 사랑한 적 없어. 육연주랑 결혼하면 너 후회할 거야. 서씨 가문은 너를 이용해서. 아악.”머리채가 잡힌 소원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까만 옷을 입은 한 무리의 보디가드가 달려오더니 머리채를 잡는 사람 따로, 목덜미를 잡는 사람 따로, 팔과 다리를 잡는 사람 따로, 그리고 소원의 입을 막고 들어가는 사람 따로 있었다.“잠깐만요.”서현재가 갑자기 보디가드를 불러세웠
소원은 속았다는 생각에 머리가 윙 해졌다. 아니, 소원이 속은 게 아니라 서씨 가문이 너무 교활했고 혹시나 누군가 결혼식에 훼방을 놓을까 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캔디를 줍던 소원은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파티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아니 다 줍지도 않고 어딜 가는 거예요?”화가 잔뜩 난 웨이터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지금 바로 매니저님 찾아가서 덤벙거리기만 하는 당신을 자르라고 할 거예요.”결혼식 현장.서씨 가문과 육씨 가문이 공동으로 준비한 결혼식이었기에 호화롭기 그지없었고 축하해주러 온 사람도 많았다.사회자의 열정적인 소개와 함께 하얀 드레스를 입은 육연주가 친인척의 손을 잡고 서서히 등장했다.버진 로드의 끝에는 빨간 벨벳 턱시도를 입고 가슴에 꽃을 단 신랑이 보였다. 기다란 체구와 꼿꼿한 자세가 신랑을 더 도도하고 우아해 보이게 했다.육연주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만 드디어 이 남자를 손에 넣고 서씨 가문 사모님이 되었다.그렇게 신랑 앞까지 걸어간 육연주의 친인척이 육연주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줬지만 신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잘생긴 얼굴은 육연주의 손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현장의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사회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귀띔했다.“신랑분, 신부님 손을 잡아주세요.”사회자의 귀띔에도 서현재가 움직이지 않자 하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어떻게 된 거야. 혹시 신랑은 결혼하기 싫은 거 아니야?”“그러니까. 근데 신부가 약간 막무가내래. 성격이 오만하면서도 사납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서씨 가문 도련님이 후회한 게 아닌가 싶다.”“하기 싫은 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미리 파혼해야 할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성질부리면 양가 가문의 체면은 어떡해.”“허허. 억지로 결혼시킨 결과라고 봐야지...”“근데 신랑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어디가?”“예전에 신랑을 본적이 있는데 이렇게 멍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말이 좋아 멍하지 서현재는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