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천은 망설임 없이 윤혜인을 안고 차에 태웠고 여은은 앞에서 운전했다.차에 타기 전, 누구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이준혁을 돌아보지 않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이 서둘러 떠나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곽경천에게 맞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힘조차 없을 정도로 아팠다.몸이 마치 플라스틱 거품처럼 휘청거리며 차체에 의지할 수도 없었다.그러자 주훈이 급히 다가와 이준혁을 부축했다.이준혁의 눈에 드러난 깊은 슬픔을 보고 주훈은 가슴이 뜨거워졌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 겁니다...”위로하고 싶었지만 주훈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누구나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윤혜인이 이준혁의 죽음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조금 전 상황에서도 이준혁은 곽경천과 싸울 수 있었지만, 윤혜인의 말 때문에 참았다.그는 곽경천에게 맞으면서도 위기 상황에서 상처를 무릅쓰고 윤혜인을 보호하려 했다. 그런데 왜 윤혜인은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일까? 곧 주훈이 이준혁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준혁은 그의 손을 밀어내고 한 손으로 차 문을 지탱하며 일어섰다.그러고는 말없이 차에 다시 앉았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이준혁은 그 모든 고통이 가슴 속 깊은 어딘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육체적 고통보다도 마음이 아픈 것이 훨씬 더 컸다.오랜 시간 억눌려 왔던 감정이 터져 나와 그는 결국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남은 피는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고 그는 의자에 무겁게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대표님!”주훈은 놀라 차를 멈추고 이준혁의 상태를 확인했다.맥박이 어찌나 약한지 호흡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주훈은 떨리는 손으로 이준혁을 다시 운전석으로 옮긴 뒤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차 뒷좌석에 기대어 앉아 있는 윤혜인의 얼굴은 창백했다.그러자 곽경천은 따뜻한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네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아직도 불편해? 조금만 참아,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
윤혜인은 곽경천의 태도를 생각하며 조금 마음이 불편해졌다.그래서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냥 일어나서 좀 걸으려고.”그러자 곽경천은 아무 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먼저 밥부터 먹자.”곽경천은 집에서 홍 아줌마가 특별히 끓인 위에 좋은 죽과 몇 가지 가벼운 반찬을 준비해왔다.테이블에 한 상 차려놓은 뒤 그는 윤혜인에게도 앉으라고 했다.그녀는 테이블로 다가가 준비된 죽과 반찬을 보았다.맛은 담백해 보였지만 모두 그녀의 입맛에 맞춰 준비된 것들이었다.곽경천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직접 윤혜인에게 죽을 떠주며 그녀가 싫어하는 생강을 다 골라냈다.윤혜인은 생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위에 좋은 재료이기 때문에 곽경천은 그것을 죽에 넣으라고 분부했었다.그래서 다 끓인 후에 생강을 하나하나 골라낸 뒤 그는 윤혜인의 앞에 갖다 놓았다.“오빠,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윤혜인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곽경천은 언제나 그녀에게 너무 잘해줬고 항상 그녀를 소중하게 여겼다.“응, 이 죽 꼭 다 먹어야 해.”그가 단호하게 명령하자 윤혜인은 순순히 말을 듣고 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곽경천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뒤이어 윤혜인은 곽경천이 건네준 휴지로 입을 닦으며 물었다.“오빠, 근데 왜 갑자기 돌아온 거야? 아빠는 괜찮으셔?”“많이 좋아지셨어. 아빠도 너랑 아름이가 걱정되셔서 나더러 빨리 가보라고 하신 거야.”“아, 다행이다.”윤혜인은 안도하며 말했다.매일 아빠와 통화를 했지만 아빠는 항상 그녀에게 괜찮다고만 했다.괜히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 윤혜인은 아름이와 함께 아빠를 보러 갈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아름이가 막 유치원에 입학한 상황에서 휴가를 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다.이미 이곳에서 아름이가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이리저리 이동하지 말라면서 말이다.“그 남자랑 무슨 일 있었어?”곽경천이 물었다.여은에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은도 자세히는 몰랐기 때문에 그는 윤혜인에게 직접
곽경천은 윤혜인의 마음이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만 그는 그녀가 이준혁에게 감동받을까 봐 걱정했다.단순히 칼을 대신 맞아줬다고 해서 죄를 속죄받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로 보였으니 말이다.“알았어.”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조각난 기억 속에 윤혜인은 그 남자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자신을 위해 칼을 막아준 것을 떠올렸다.최근 들어 그녀는 과거의 일들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어떤 순간에는 선명하게 기억나고 또 다른 순간에는 완전히 잊어버리곤 했다.그녀는 곽경천이 걱정할까 봐 이러한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이준혁이 걱정되면서도 오빠인 곽경천이 또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오빠가 충동적으로 이준혁 씨를 때린 것 때문에 영향을 받으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내가 반드시 지금 그 남자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봐야 해.’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소원이 들어왔다.“혜인아, 괜찮아?”소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응, 괜찮아.”그러나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은 듯 그녀는 윤혜인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그렇게 두 눈으로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소원은 한숨을 내쉬었다.곽경천은 두 사람이 여자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자리를 피했지만 여은에게 문 앞을 지키며 윤혜인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했다.윤혜인은 곽경천이 나간 후, 소원에게 말했다.“소원아, 나 좀 도와줘.”소원은 윤혜인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물었다.“무슨 일이야?”그러자 윤혜인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잠시 생각한 후 소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국 너는 그 남자를 피할 수 없는 거구나?”윤혜인은 소원의 반응에 약간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이준혁 씨에 대해 잘 알아?”윤혜인은 때때로 이준혁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는 반면 소원은 그녀보다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소원은 웃으며 물었다.“그 사람이 궁금해?”그 말에 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졌다.“아니야.”더 이상 놀리지 않고 소원은
룸 안에서.상석에 앉아 있는 남자는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목울대 부분을 단추로 딱 맞춰져 있었다.무표정한 얼굴의 그는 조금 금욕적이고 냉정한 느낌을 주었다.그러나 소원이 들어오자마자 그의 얼굴에 있던 냉정함이 순간 사라졌고 대신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누나.”그는 소원의 외투를 벗겨 잘 걸어두었다.“오래 기다렸어?”소원이 물었다.“아니요, 나도 방금 왔어요.”두 사람이 앉자마자 서현재는 음식을 주문했다.곧 음식이 나왔고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심해어를 좋아했던 소원은 참지 못하고 테이블에 있는 생선요리를 몇 조각 더 먹었다. 비록 맛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는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좋아했다.서현재는 그녀에게 야채를 집어주며 말했다.“소원 누나, 편식하면 안 돼요. 이거 다 먹어야 생선 한 조각 더 먹을 수 있어요.”소원이 위 수술을 받은 후, 서현재는 항상 이렇게 그녀를 달래며 먹였다.만약 좋아하는 음식이 전혀 먹지 못하게 한다면 그녀는 기분 나빠할 것이고 식욕도 잃게 될 것이니 말이다.소원은 그의 말대로 야채를 먹었다.아무 맛도 없었지만 그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그러자 서현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누나, 회사를 저희 셋째 삼촌 회사 명의로 올리는 게 어때요? 서울에서는 그 업종이 유명하지 않거든요.”소원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현재야, 그 일은 다시 말하지 마.”그녀는 서현재의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소원은 이제 더 그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소원의 결정이라면 거의 반대하지 않는 서현재였지만 이런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눈빛이 어두워졌다.“알겠어요. 하지만 타깃 작업에 대해서는 삼촌이 신뢰할 만한 사람을 보내서 도와줄게요.”“정말 필요 없다니까...”“누나, 이건 양보할 수 없어요.”곧이어 서현재는 테이블 너머로 그녀의 손을 잡고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이 일, 빨리 끝내고 싶어요.”소원은 손을 움직이지
육경한이 아무리 침착하게 말하려 해도 소원은 그 속에서 다가오는 폭풍을 느낄 수 있었다.소원의 붉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육 대표님, 분별 있는 사람은 이런 시간에 전화해서 남의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내가 분별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비록 병약해 보였지만, 육경한의 목소리 속 권위감과 잔혹함은 여전히 가볍게 볼 수 없었다.“대표님 전에는 EQ가 높아서 여자를 되게 잘 달래줬던 것 같은데. 왜, 나이를 먹을수록 퇴화하는 것 같아요? 이제 그런 것도 이해 못 하는 겁니까?”“소원!”육경한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었다. 그는 몇 초도 참지 못하고 어금니로 혀끝을 물며 말했다.“지금, 당장 나와!”그녀가 자신을 놀리든 조롱하든 상관없었다.하지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소원은 그의 말투에서 상황을 파악했다.‘날 따라온 건가? 내가 현재랑 호텔에 온 걸 알고 있는 거야.’이윽고 소원이 미소를 씩 짓자 그녀의 긴 속눈썹이 떨렸다.“정말 미안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어요.”그 말에 전화기 너머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심지어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통화 중이라는 표시가 아니었다면 소원은 그가 전화를 끊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소원은 냉소를 짓고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이내 낮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원, 너 내 화 돋우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떨리는 입술로 내뱉은 육경한의 그 말은 마치 애원하는 듯했다.“그런 거라면 성공했어, 나 정말 화났어. 내 오장육부가 다 아플 정도로. 제발, 내려와 줄래?”단순히 오장육부만이 아니었다.그는 지금 숨을 쉴 때마다 칼이 가슴에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녀가 자신을 무릎 꿇게 만들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어둠이 깔릴 때까지 무릎을 꿇고 버텼다.그의 상태가 심각해져 거의 죽기 직전에도, 소종은 그녀를 불러올 수 없었다.이 모든 것이 명확하게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육경한이 죽
유골은 소원이 떠나기 전 지시한 대로 아버지의 영정 옆에 합장되었다.비록 예상한 결과였지만 그 소식을 직접 듣게 되자 소원은 온몸이 심하게 떨렸다.그녀는 파산으로 인해 온 가족이 죽는다는 말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하늘이 이토록 잔인하다니, 왜 자신을 남겨두고 차라리 차가운 바닷속에서 잠들게 하지 않았을까? 왜 살아남게 해서 죄책감을 짊어지게 했을까?소원의 눈가는 붉게 물들었다.“육경한, 난 지금 혼자야. 당신이 나를 어떻게 위협할 수 있을까? 내 목숨? 상관없어. 육경한, 감히 나를 죽이려면 해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그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이제 소원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그날이 오면, 아마도 소원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그 순간, 육경한은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맨손으로 꺼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텅 빈 가슴에 가득 찬 고통이 그를 짓눌렀다.그가 다급히 말했다.“내가 어떻게 널 해치겠어, 소원아. 난 네 목숨을 원하지 않아. 단지 너를 돌아오게 하고 싶을 뿐이야. 돌아오면 정말 잘해줄 거야. 믿어줘. 네 어머니는...”하지만 육경한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맑고 깨끗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목욕물 다 됐어요.”짧은 한마디가 육경한의 얼굴을 순식간에 일그러지게 만들었다.다음 순간, 전화가 끊겼고 다급한 연결음이 소원이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육경한은 뜨거워진 핸드폰을 응시했다.1초, 2초, 3초...소종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이번 달에 이미 여덟 번째 교체한 핸드폰이었다.다음 순간, 육경한은 손에 점점 더 힘을 가했고 결국 핸드폰은 그 심한 압력을 견디지 못해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말았다!소종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라 했다.핸드폰이 아니라 육경한의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고 말이다.육경한의 손바닥은 부서진 핸드폰 화면에 찔려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억누를
소원은 유진을 혼수상태에서 출산한 후, 2년의 긴 회복 기간을 보냈다.절망에 빠져 생존 의지조차 없었던 그녀는 이제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서현재는 그런 그녀를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지금, 그는 소원이 자신을 향한 태도가 달라지길 바랐다.단순한 가족 간의 의존이 아닌 더 깊은 관계로 말이다.그 맑은 서현재의 눈빛에 소원은 항상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서현재는 달랐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소원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현재야, 나 정말 너한테 신세 많이 졌어. 난...”“그 얘기는 나중에 해요. 머리 안 말리면 나중에 감기 걸려요.”그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는지라 서현재는 부드럽게 피했다.그러고는 소원의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그들 사이에 있는 장벽을 깨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그는 그녀가 더 이상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비록 그 과정이 힘들겠지만 소원이라서 그는 기꺼이 할 수 있었다.소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거울 앞에 서 있었고 소원은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몰라 거울 속에 집중했다.‘현재 키가 많이 크구나...’그녀보다 한참 더 큰 그는 평소에 셔츠를 입고 있어 날씬해 보였다.그러나 호텔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지금, 그는 몸에 딱 맞는 흰 티셔츠를 입고 있어 단단한 허리선과 복근이 뚜렷이 드러났다.옷을 입으면 날씬해 보이지만 옷을 벗으면 근육질인 전형적인 타입이었다.소원의 얼굴은 드라이기의 열기 때문인지 붉어져 있었지만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서현재는 소원의 머리를 말린 후에도 그녀의 머리카락을 놓지 않고 거울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누나, 누나는 내게 영원히 짐이 될 수 없어요.”순간 소원은 멍해졌다.‘영원히'라는 단어를 여러 번 들어봤지만 오직 서현재의 이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미안해...”“미안해, 내 새끼. 엄마가 너무 몹쓸 짓을 많이 했어.”서현재가 들어와 보니 소원이 쪼그리고 앉은 채 유진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유진에게 손가락을 잡힌 채 잠들어 있는 소원의 속눈썹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서현재는 마음이 아팠다.서현재도 소원의 마음이 그렇게 모질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움은 항상 사람이 없을 때만 표출되었다.그녀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고 그 누구보다도 힘들었다.서현재는 소원을 깨우기 싫어 얇은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고는 유진의 이불을 꼭 여며주었다....밖으로 나온 서현재는 소원이 무음으로 설정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에 전화가 들어온 걸 발견했다.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상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구력 있게 계속 걸어왔다.서현재가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 그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이성을 잃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원아, 당장 나와! 내가 말하는데...”“누나 자요.”서현재가 남자의 말을 잘라버렸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조용하던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소원에게 전화 넘겨요.”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서현재가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못 들었어요? 누나 잔다고요.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대신 전달할게요.”수화기 너머로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빠드득빠드득 참으로 날카로웠다.“당신 누구야?”“젠장, 너 누구냐고?”서현재가 대답하기도 전에 육경한이 먼저 난폭하게 입을 열었다.“네가 누구든 경고하는데. 그 여자 함부로 건드릴 생각하지 마. 얼른 그 집에서 나와! 안 그러면 내가 죽여버린다!”서현재가 청아한 말투로 덤덤하게 물었다.“육경한 씨, 아직도 예전처럼 서울에서 잘 먹히는 줄 알아요?”최근 5년간, 명성이 자자하던 미우 그룹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육경한이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