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준혁을 보며 말했다.“조금 더 옆으로 돌아봐요, 이렇게는 하기 어려워요.”그러자 이준혁은 순순히 옆으로 돌아섰다.앉은 높이로는 충분하지 않아 윤혜인은 무릎을 차 시트 위에 올렸다.이렇게 하면 상체를 세울 수 있어서 이준혁의 어깨높이와 맞출 수 있었으니 말이다.무릎이 시트에 가볍게 눌려서 가죽 시트가 조금 움푹 들어갔고 이준혁은 백미러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시선을 따라 거울을 보았다.거울 속에서 윤혜인은 이준혁 뒤에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그 자세는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내 얼굴이 뜨거워지며 윤혜인은 급히 해명했다.“무릎 꿇는 게 더 편해서 그래요...”이준혁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응, 편한 대로 해.”그 말 속에는 뭔가 숨겨진 의미가 있었다.윤혜인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지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그녀는 빨리 셔츠를 벗겨내고 싶었다.곧 남자의 등에 있는 깊은 척추와 선명한 근육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윤혜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남자의 등을 무시하고 상처를 확인했다.다행히, 유리 조각이 깊게 박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처 속에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길이보다 조금 짧은 유리 조각이 있었다. 윤혜인은 핀셋을 꺼내며 말했다.“조금만 참아요, 유리 조각 빼낼게요.”이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윤혜인은 조심스럽게 유리 조각을 제거하고, 상처에 ‘호’하며 입김을 불어 넣었다.이 행동은 그녀가 아름이에게도 해주는 습관이었다.잔뜩 긴장한 상태로 이준혁은 눈썹을 찌푸렸다.고통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지만, 계속 이렇게 한다면 더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윤혜인은 알코올로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이 과정은 이준혁에게 큰 인내심을 요구했다. 마지막 단계는 상처를 감싸는 것이었다.하지만 상처의 위치가
이준혁의 얇은 입술이 윤혜인의 부드러운 입술에 닿아 불꽃이 튀는 듯했다.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듯한 느낌의 심장, 몸속의 모든 세포가 그의 몸속에 있는 갈망을 전달하고 있는 듯했다.가슴속은 애틋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윤혜인을 이렇게 품에 안고 키스하는 순간을 얼마나 바라왔던가...그녀가 돌아온 후로 느꼈던 상실감과 허무함,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너무 많은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고 그녀를 자신의 뼈와 피에 녹여 넣고 싶은 정도였다.하지만 그는 자신을 억제하고 짧고 가벼운 입맞춤만을 나누며 그녀에게 애정을 표현했다.몇 초 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윤혜인은 남자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읍...”아프다는 듯이 이준혁이 소리를 냈다.아마도 어깨의 상처를 건드린 모양이었다.때문에 윤혜인은 자연스레 손에 힘을 뺏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부끄러움과 화가 뒤섞여 있었다.“혜인아...”이준혁은 아쉬운 마음으로 윤혜인의 입술에서 멀어지며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부드럽게 불렀다.“나 때리기 아까운 거지?”“누가 아깝대요?!”윤혜인은 다시 주먹을 들었지만, 이준혁이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결국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다.그러자 이준혁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었다.“네 입술은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어.”또다시 윤혜인의 얼굴이 빨개졌다.“정신 나간 거 아니에요? 헛소리 그만해요!”그러자 이준혁은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내가 증명할 수 있다면?”윤혜인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굴렸다.‘그걸 어떻게 증명하겠다는 거야?’하지만 말할 틈도 없이, 서로의 얼굴이 갑자기 가까워지며 이준혁은 다시 그녀에게 키스했다.“당신...”윤혜인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밀어냈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남자는 이로 그녀의 입술을 살짝 물었다.“읍...”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준혁은 윤혜인의 등을
그러나 윤혜인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곽경천은 이준혁이 공격을 멈춘 틈을 타 망설임 없이 또 한 번 강력한 주먹을 날렸다.그 바람에 이준혁은 한바탕 피를 토해냈고 한쪽 얼굴은 얼얼하게 아팠다.입안에는 피 맛이 가득했다.하지만 윤혜인이 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며 그는 그저 참아냈다.이준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혀끝으로 뒤쪽 어금니를 누르며 곽경천의 연이은 공격을 참아냈다.솔직히 말해 진짜로 싸운다면 곽경천은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은 이준혁을 이길 수 없었다.심지어 현재 이준혁이 부상을 당한 상태라 해도 곽경천에게 밀릴 일이 없었다.그러나 만약 그가 곽경천을 때린다면, 윤혜인은 그를 더욱 싫어하고 무시할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이준혁은 참아야만 했다. 곽경천의 주먹이 자신의 몸에 하나씩 꽂혀도 그는 반격하지 않았다.곽경천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피를 보려고 작정한 듯 주먹 하나하나에 분노를 담아 때렸다.방금 막 비행기에서 내려온 그는 여은의 보고를 듣고 급히 달려왔다.도착했을 때, 그는 이준혁이 반쯤 벌거벗은 상태로 차 안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의 시점에서 볼 때, 이준혁은 윤혜인을 강제로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결국 망설임 없이 이준혁의 차를 부쉈다.지금 그는 이준혁의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자신의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일 뿐이었다.윤혜인은 두 사람이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주훈과 여은도 동시에 달려왔다.주훈은 상황을 보고 도와주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손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이준혁이 곽경천에게 수십 대를 맞아도 반격하지 않는 것을 보고 주훈은 당황했다.“사모님... 아니 혜인 씨! 빨리 곽경천 씨 말려주세요, 대표님께서는 다치셨다고요!”주훈이 급히 말하자 윤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오빠, 그만해!”하지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곽경천은 윤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주먹은 멈추지 않았다.윤
곽경천은 망설임 없이 윤혜인을 안고 차에 태웠고 여은은 앞에서 운전했다.차에 타기 전, 누구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이준혁을 돌아보지 않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이 서둘러 떠나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곽경천에게 맞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힘조차 없을 정도로 아팠다.몸이 마치 플라스틱 거품처럼 휘청거리며 차체에 의지할 수도 없었다.그러자 주훈이 급히 다가와 이준혁을 부축했다.이준혁의 눈에 드러난 깊은 슬픔을 보고 주훈은 가슴이 뜨거워졌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 겁니다...”위로하고 싶었지만 주훈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누구나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윤혜인이 이준혁의 죽음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조금 전 상황에서도 이준혁은 곽경천과 싸울 수 있었지만, 윤혜인의 말 때문에 참았다.그는 곽경천에게 맞으면서도 위기 상황에서 상처를 무릅쓰고 윤혜인을 보호하려 했다. 그런데 왜 윤혜인은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일까? 곧 주훈이 이준혁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준혁은 그의 손을 밀어내고 한 손으로 차 문을 지탱하며 일어섰다.그러고는 말없이 차에 다시 앉았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이준혁은 그 모든 고통이 가슴 속 깊은 어딘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육체적 고통보다도 마음이 아픈 것이 훨씬 더 컸다.오랜 시간 억눌려 왔던 감정이 터져 나와 그는 결국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남은 피는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고 그는 의자에 무겁게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대표님!”주훈은 놀라 차를 멈추고 이준혁의 상태를 확인했다.맥박이 어찌나 약한지 호흡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주훈은 떨리는 손으로 이준혁을 다시 운전석으로 옮긴 뒤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차 뒷좌석에 기대어 앉아 있는 윤혜인의 얼굴은 창백했다.그러자 곽경천은 따뜻한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네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아직도 불편해? 조금만 참아,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
윤혜인은 곽경천의 태도를 생각하며 조금 마음이 불편해졌다.그래서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냥 일어나서 좀 걸으려고.”그러자 곽경천은 아무 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먼저 밥부터 먹자.”곽경천은 집에서 홍 아줌마가 특별히 끓인 위에 좋은 죽과 몇 가지 가벼운 반찬을 준비해왔다.테이블에 한 상 차려놓은 뒤 그는 윤혜인에게도 앉으라고 했다.그녀는 테이블로 다가가 준비된 죽과 반찬을 보았다.맛은 담백해 보였지만 모두 그녀의 입맛에 맞춰 준비된 것들이었다.곽경천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직접 윤혜인에게 죽을 떠주며 그녀가 싫어하는 생강을 다 골라냈다.윤혜인은 생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위에 좋은 재료이기 때문에 곽경천은 그것을 죽에 넣으라고 분부했었다.그래서 다 끓인 후에 생강을 하나하나 골라낸 뒤 그는 윤혜인의 앞에 갖다 놓았다.“오빠,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윤혜인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곽경천은 언제나 그녀에게 너무 잘해줬고 항상 그녀를 소중하게 여겼다.“응, 이 죽 꼭 다 먹어야 해.”그가 단호하게 명령하자 윤혜인은 순순히 말을 듣고 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곽경천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뒤이어 윤혜인은 곽경천이 건네준 휴지로 입을 닦으며 물었다.“오빠, 근데 왜 갑자기 돌아온 거야? 아빠는 괜찮으셔?”“많이 좋아지셨어. 아빠도 너랑 아름이가 걱정되셔서 나더러 빨리 가보라고 하신 거야.”“아, 다행이다.”윤혜인은 안도하며 말했다.매일 아빠와 통화를 했지만 아빠는 항상 그녀에게 괜찮다고만 했다.괜히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 윤혜인은 아름이와 함께 아빠를 보러 갈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아름이가 막 유치원에 입학한 상황에서 휴가를 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다.이미 이곳에서 아름이가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이리저리 이동하지 말라면서 말이다.“그 남자랑 무슨 일 있었어?”곽경천이 물었다.여은에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은도 자세히는 몰랐기 때문에 그는 윤혜인에게 직접
곽경천은 윤혜인의 마음이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만 그는 그녀가 이준혁에게 감동받을까 봐 걱정했다.단순히 칼을 대신 맞아줬다고 해서 죄를 속죄받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로 보였으니 말이다.“알았어.”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조각난 기억 속에 윤혜인은 그 남자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자신을 위해 칼을 막아준 것을 떠올렸다.최근 들어 그녀는 과거의 일들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어떤 순간에는 선명하게 기억나고 또 다른 순간에는 완전히 잊어버리곤 했다.그녀는 곽경천이 걱정할까 봐 이러한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이준혁이 걱정되면서도 오빠인 곽경천이 또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오빠가 충동적으로 이준혁 씨를 때린 것 때문에 영향을 받으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내가 반드시 지금 그 남자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봐야 해.’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소원이 들어왔다.“혜인아, 괜찮아?”소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응, 괜찮아.”그러나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은 듯 그녀는 윤혜인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그렇게 두 눈으로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소원은 한숨을 내쉬었다.곽경천은 두 사람이 여자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자리를 피했지만 여은에게 문 앞을 지키며 윤혜인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했다.윤혜인은 곽경천이 나간 후, 소원에게 말했다.“소원아, 나 좀 도와줘.”소원은 윤혜인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물었다.“무슨 일이야?”그러자 윤혜인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잠시 생각한 후 소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국 너는 그 남자를 피할 수 없는 거구나?”윤혜인은 소원의 반응에 약간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이준혁 씨에 대해 잘 알아?”윤혜인은 때때로 이준혁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는 반면 소원은 그녀보다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소원은 웃으며 물었다.“그 사람이 궁금해?”그 말에 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졌다.“아니야.”더 이상 놀리지 않고 소원은
룸 안에서.상석에 앉아 있는 남자는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목울대 부분을 단추로 딱 맞춰져 있었다.무표정한 얼굴의 그는 조금 금욕적이고 냉정한 느낌을 주었다.그러나 소원이 들어오자마자 그의 얼굴에 있던 냉정함이 순간 사라졌고 대신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누나.”그는 소원의 외투를 벗겨 잘 걸어두었다.“오래 기다렸어?”소원이 물었다.“아니요, 나도 방금 왔어요.”두 사람이 앉자마자 서현재는 음식을 주문했다.곧 음식이 나왔고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심해어를 좋아했던 소원은 참지 못하고 테이블에 있는 생선요리를 몇 조각 더 먹었다. 비록 맛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는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좋아했다.서현재는 그녀에게 야채를 집어주며 말했다.“소원 누나, 편식하면 안 돼요. 이거 다 먹어야 생선 한 조각 더 먹을 수 있어요.”소원이 위 수술을 받은 후, 서현재는 항상 이렇게 그녀를 달래며 먹였다.만약 좋아하는 음식이 전혀 먹지 못하게 한다면 그녀는 기분 나빠할 것이고 식욕도 잃게 될 것이니 말이다.소원은 그의 말대로 야채를 먹었다.아무 맛도 없었지만 그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그러자 서현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누나, 회사를 저희 셋째 삼촌 회사 명의로 올리는 게 어때요? 서울에서는 그 업종이 유명하지 않거든요.”소원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현재야, 그 일은 다시 말하지 마.”그녀는 서현재의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소원은 이제 더 그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소원의 결정이라면 거의 반대하지 않는 서현재였지만 이런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눈빛이 어두워졌다.“알겠어요. 하지만 타깃 작업에 대해서는 삼촌이 신뢰할 만한 사람을 보내서 도와줄게요.”“정말 필요 없다니까...”“누나, 이건 양보할 수 없어요.”곧이어 서현재는 테이블 너머로 그녀의 손을 잡고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이 일, 빨리 끝내고 싶어요.”소원은 손을 움직이지
육경한이 아무리 침착하게 말하려 해도 소원은 그 속에서 다가오는 폭풍을 느낄 수 있었다.소원의 붉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육 대표님, 분별 있는 사람은 이런 시간에 전화해서 남의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내가 분별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비록 병약해 보였지만, 육경한의 목소리 속 권위감과 잔혹함은 여전히 가볍게 볼 수 없었다.“대표님 전에는 EQ가 높아서 여자를 되게 잘 달래줬던 것 같은데. 왜, 나이를 먹을수록 퇴화하는 것 같아요? 이제 그런 것도 이해 못 하는 겁니까?”“소원!”육경한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었다. 그는 몇 초도 참지 못하고 어금니로 혀끝을 물며 말했다.“지금, 당장 나와!”그녀가 자신을 놀리든 조롱하든 상관없었다.하지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소원은 그의 말투에서 상황을 파악했다.‘날 따라온 건가? 내가 현재랑 호텔에 온 걸 알고 있는 거야.’이윽고 소원이 미소를 씩 짓자 그녀의 긴 속눈썹이 떨렸다.“정말 미안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어요.”그 말에 전화기 너머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심지어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통화 중이라는 표시가 아니었다면 소원은 그가 전화를 끊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소원은 냉소를 짓고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이내 낮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원, 너 내 화 돋우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떨리는 입술로 내뱉은 육경한의 그 말은 마치 애원하는 듯했다.“그런 거라면 성공했어, 나 정말 화났어. 내 오장육부가 다 아플 정도로. 제발, 내려와 줄래?”단순히 오장육부만이 아니었다.그는 지금 숨을 쉴 때마다 칼이 가슴에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녀가 자신을 무릎 꿇게 만들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어둠이 깔릴 때까지 무릎을 꿇고 버텼다.그의 상태가 심각해져 거의 죽기 직전에도, 소종은 그녀를 불러올 수 없었다.이 모든 것이 명확하게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육경한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