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차갑게 말했다.“그럼 안 꺼지고 뭐 하는 거죠?”“그건…”한구운은 잠시 멈칫하며 야망을 선명하게 드러냈다.“혜인이는 너무 훌륭하죠. 아주 마음에 들고요.”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노려보았다.“마음에 들어요? 스스로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는 게 어때요?”한구운은 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이 이렇게 해도 혜인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을 거예요.”이준혁은 화가 치밀어올라 하마터면 폭발할 뻔했다.그 말은 두 사람이 방금 그들 부부에 대해 말했단 거야?주먹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주먹을 풀었다.이 자식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그는 턱을 살짝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우리는 부부고 혜인이는 내 거예요.”한구운은 열받은 남자를 보며 더 자극해야 할 것 같아 장난스럽게 말했다.“주인이 있으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요?”퍽-힘 센 주먹이 한구운을 향해 날아갔다.순간, 한구운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얼굴은 감싸며 최후의 점잖음을 유지했다.이준혁의 분노는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광기로 가득했다. 그의 발이 한구운을 향했다.“그만!”급히 달려온 윤혜인이 두 팔을 벌려 한구운 앞에 막아섰다.“뭐 하는 짓이에요.”한구운을 보호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이준혁은 눈이 가늘어졌다. 심장이 아파왔다.그는 냉소를 지었다.“왜? 내가 너희들 달콤한 시간을 방해 했어?”“그게 무슨 말이에요?”윤혜인은 큰소리로 비난했다.다른 남자를 감싸 있는 그녀에 이준혁은 평온함을 잃었고 말이 날카로워졌다.“넌 부끄러운 줄도 모르면서 나한텐 말도 못 하게 하는 거야?”얼굴이 하얗게 질린 윤혜인은 숨을 쉬기 힘겨웠다.피곤, 무감각, 실망, 여러 감정들이 얽혀서 그녀는 너무 힘들었다.이미 너무 실망하고 있었다. 실망보다 더한 감정이 있을까?없다.그녀는 몸을 돌려 한구운을 부축했다.“선배, 우리 가요.”“멈추지 못해?”이준혁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는 윤혜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한구운이 막아섰다.
“힘으로 사람을 모욕하지 말아요.”윤혜인은 이준혁이 심했다고 생각했다.선배와 이미 거리를 두기로 했는데 이렇게 다시 그녀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했다.말리지 말고 그가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는가?이준혁은 차가운 눈으로 하찮게 여기며 말했다.“내가 괴롭혔다는 거야? 저 자식이 비겁한 거잖아.”주먹 하나도 못 받아치는 남자는 쓸모없는 놈이었다.그는 이 여자가 지금 뭘 감싸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두 눈은 그저 장식품인가?“선배, 가요.”윤혜인은 이준혁을 무시하며 몸을 낮추며 한구운을 부축했다.어차피 아무런 이유 없이 죄명을 씌우는 그에 익숙했고 그에게 논리적으로 말해도 아무 소용없었다.“못 가!”이준혁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그의 힘은 너무 강했다.“감히 내가 여기 있는데 다른 남자와 가겠다는 거야? 미쳤어?”이 순간, 이준혁의 얼굴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방금 웃으며 대화를 하고 서로 감싸는 행동에 그는 그녀를 꽁꽁 묶고 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를 거칠게 잡았다. 그는 혐오스러운 어조로 말했다.“남자 없이는 못 살겠어?”그 모욕적인 말에 윤혜인의 마음 너무 아파 경련을 일으켰다.그녀는 입을 벌렸지만, 여전히 숨을 쉴 수 없었다.살인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지만, 이 남자는 언제나 너무 쉽게 그녀의 마음을 짓밟았다.그녀의 몸이 떨렸다. 그녀는 손목을 비틀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놔!”이준혁은 이미 질투심으로 가득했고 자신의 말이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놔? 남자를 유혹하게 놔두라고? 꿈 깨!”짝-윤혜인의 다른 한 손이 이주혁의 뺨을 세게 때렸다.날카로운 마찰음에 주변은 갑작스러운 정적에 휩싸였다.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내가 그렇게 뻔뻔하고 더럽고 천박하다면서 그렇게 고상한 분께서는 왜 날 놔주지 않는 거죠? 왜 아직도 이혼서류
더 이상 이준혁을 상대하기 싫었던 윤혜인은 그의 소원대로 병실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몇 발작 떼기도 전에, 갑자기 뒤에서 끌어당기는 느낌과 함께 들어 올려졌다. “이거 놔요!”먼저 꺼지라고 했던 건 이준혁인데, 왜 붙잡는지 윤혜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우리가 법적으로 부부로 남아 있는 이상, 넌 절대로 날 벗어날 수 없어.”윤혜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준혁은 그녀를 놓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분노한 윤혜인이 발버둥 치며 그의 팔뚝을 물었다. 하지만 이준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꾸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혼날 각오해야 할 거야.”철컥하고 병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윤혜인은 그제야 상황이 파악됐다. 그녀의 눈빛이 경계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문은 왜 잠갔어요?”“혼날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지.”그 말과 함께 윤혜인을 침대에 던져 놓은 이준혁이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 윤혜인은 순식간에 양손이 결박된 채 침대 머리맡에 고정되었다. 곧이어 이준혁이 몸을 숙이며 입 맞춤을 하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윤혜인은 움직임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그의 키스를 피하려 고개를 돌렸지만, 턱을 잡는 억센 손길에 강제로 고개가 돌려졌다.“뱃속 아기가 무사하길 바란다면, 협조 잘해야 할 거야.”윤혜인은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여자를 이렇게 험하게 다루다니,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단추를 풀던 이준혁의 손이 멈칫했다. 곧이어 그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렸다.“내가 남자인지 아닌지, 또 증명해 줘야겠어?”윤혜인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이준혁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나마 자유로운 발로 발차기를 날리며 이준혁을 떼어놓으려 노력했다.“이 나쁜 놈!”하지만 그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윤혜인이 그의 긴 다리에 깔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아직도 내가 남잔지 모르겠으면, 오늘 제대로 보여줄게.”한편, 한구운은 병실 밖에서 둘이 엎치락뒤치락 사투를 벌이는 소리를
“당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죠.”윤혜인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화를 내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방귀 뀐 놈이 도리어 성을 내니, 억울했다. 윤혜인은 이준혁과 닿아 있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이준혁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녀가 팔을 휘두른 순간, 한발 앞서 이준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준혁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얌전하게 굴라고 했지? 아직도 부족해?”윤혜인의 답을 바라며 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준혁은 이 말과 함께 또다시 키스를 몰아붙였다. 거의 혀뿌리가 뽑힐 듯 깊고, 거친 키스가 이어졌다.배 속의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고, 윤혜인은 이제 그를 거부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그렇게 한참, 질척이는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윤혜인의 입술 감각이 거의 사라질 때쯤, 드디어 이준혁의 키스가 멈췄다. 그제야 그녀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당신, 미쳤어요?”틈만 나면 키스하고, 침대에 눕히고, 윤혜인은 발정난 짐승처럼 구는 이준혁이 버거웠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굴었어야지.”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경고였다. 감히 딴 남자를 따라가려고 하다니, 좀 전의 상황을 떠올린 이준혁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다음에 또 처신 잘못하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목줄 차버릴 거야.”“….”“그러게 왜 함부로 딴 남자를 유혹해?”딴 남자를 유혹하다니, 윤혜인은 어이가 없었다.사실 이준혁도 그녀가 의도적으로 다른 남자의 눈길을 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윤혜인은 그저 너무 예뻤던 죄밖에 없었다. 윤혜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준혁의 모습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거 놔요.”윤혜인이 짜증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이준혁은 전혀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준혁은 또 한 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싫은데?”상황이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되긴 했지만, 사실 오늘 이준혁은 윤혜인에게 사과할 생각
이준혁은 반드시 뒷동작을 벌인 범인을 잡아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윤혜인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 누구의 오해도, 모함도 없이, 그저 환영만을 받으면서 태어나길 바랐다.이준혁과의 관계는 이제 관심 밖의 일이었다.“이번 일 처리되면, 우리 이제 이혼할 준비 하죠.”좀 전에 둘이 그런 관계도 맺었는데, 이준혁은 윤혜인이 이렇게 차갑게 나올 줄은 몰랐다.속에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이준혁이 입을 열었다.“너 지금 먹뱉 하는 거야? 즐길 만큼 즐겼으니, 버리겠다?”“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예요. 강제로 밀어붙인 건 준혁 씨잖아요. 제가 하자고 했나요?”누굴 바보로 아나, 윤혜인은 이준혁의 말장난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때 이준혁이 갑자기 또 돌발 행동을 했다. 느닷없이 그녀의 목덜미에 화풀이하듯, 이빨 자국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크게 힘을 준 것은 아니라, 키스 마크 외에 피 보는 일은 없었다.“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다시는 이런 소리 꺼내지 마!”윤혜인이 그를 뿌리치며 담담히 말했다.“그럼 더 이상 얘기 나눌 것도 없겠네요. 바로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도록 할게요.”“감히!”이준혁이 분노하며, 그녀를 협박하듯 노려봤다.“할아버지가 놀라실 일 없도록 잘 말씀드릴 테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저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 분명히 알려드릴게요.”이준혁은 고집스러운 윤혜인의 태도에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너 자꾸 이렇게 제멋대로 굴래?”그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윤혜인은 다시 한번 할아버지한테 말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윤혜인의 단호한 모습에, 이준혁이 입술을 깨물었다.‘하, 그래. 이렇게 나오시겠다?’이준혁의 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앞으로 어디에도 나갈 생각하지 마.”윤혜인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절 또 가두기라도 하려고요?”
이준혁은 윤혜인이 임세희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러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임세희를 만나왔었다. 하지만 이준혁이 자기 입으로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니, 윤혜인은 그의 성의를 보고 싶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이유가 있으니까, 만나려는 거지.“임세희를 만나는 것에 무슨 사정이요?”이준혁은 임세희를 만나 물어볼 것이 있었다. “당신도 임세희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잖아요. 그 여자가 얼마나 당신한테 시집가고 싶어 하는지도요. 그런데도 끊지 않고 계속 만남을 가져왔죠. 이혼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요?”이준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한 번도 세희를 여자로 본 적 없어. 그저 입은 은혜가 있으니까, 돌봐줬던 것뿐이야.”“당신, 임세희가 어떤 여자인 줄은 알아요? 그 여자가 당신이 생각한 만큼 과연 순수할까요? 전에 그 여자가 저한테 뭐라 했는지 알려줄까요? 넌 그저 이준혁이 욕구를 푸는 장난감일 뿐이다. 절대로 너랑 아이 낳을 일 없을 거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자기랑 낳으려고 할거고, 넌 그저 할아버지를 잠잠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했죠.”이준혁이 사실 여부를 감별하듯, 말없이 윤혜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윤혜인은 그의 태도가 어이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예상했던 대로, 이준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임세희가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의 이런 태도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이준혁이 입을 열었다.“넌 아직도 외할머니 일 때문에 세희를 의심하고 있겠지만, 송소미가 말했듯이, 그 일은 세희와 연관이 없어.”“그만해요!”윤혜인이 그의 말을 잘랐다. 겨우 참고 있던 분노가 터져버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준혁이 조금이라도 임세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줄 알았다.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공평한 시선에서 그녀를 바라봐줄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오산이었다. 차라리 말이라도 꺼내지 않았더라면 덜 아팠을 텐데, 윤혜인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게
이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임세희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려 미소를 지은 채 다가갔다. 하지만 몸이 여전히 좋지 않았던 탓에 기침이 나오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오빠, 어서 와. 나 오빠를 위해 직접 요리까지 했는데, 한번 먹어볼래?”하지만 그녀의 애교 어린 말투에도 이준혁은 끄떡없었다. “아니, 금방 갈 거야.”임세희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그럼 조금만 같이 먹어줘.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그녀를 지긋이 쳐다보던 이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난 먹었으니까, 너 먹어. 곁에 있어 줄게.”그가 의도대로 움직여주자, 임세희는 매우 기뻤다.이준혁은 기본적으로 임세희한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매번 그녀가 울상을 지을 때마다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임향숙에게 차를 내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준혁이 중간에서 저지했다. 그의 박수 소리와 함께, 주훈이 한 사람을 끌고 와 바닥에 던져 놓았다.이준혁이 임세희의 얼굴을 탐색하듯 바라봤다.“세희야,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임세희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준혁 오빠, 송 비서는 왜 데리고 왔어? 뭐 잘못했어?”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송 비서가 회사 기밀문서를 빼돌렸는데, 들통나자 도망치려고 했어. 그런데 조사해 보니까 네가 송 비서한테 돈을 보낸 기록이 있더라고.”“난, 난….”임세희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무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그녀의 반응을 본 이준혁이 우아하게 밥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한 가지만 알려주면 돼. 너도 여기에 가담했어?”임세희의 공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출국하라고 돈까지 찔러줬는데, 어째서? 그것도 모자라 꼬리까지 밟히다니, 이 멍청한! 설마 날 불건 아니겠지?’임세희는 극심한 불안감에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이때, 갑자기 임향숙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며 무릎을 꿇었다.
임세희가 다시 울먹이며 애원했다.“이번 일은 아줌마가 지나쳤다는 거 나도 인정해. 하지만 그동안 날 돌본 정을 생각해서라도, 오빠가 한발 물러서 주면 안 돼? 이 연세에 감옥 가면 정말 큰일나!”하지만 이준혁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단호히 입을 열었다.“일개 가정부가, 무슨 능력으로 그 많은 돈을 송 비서한테 넘겨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예요.”5천만 원, 송휘재가 받은 돈은 절대 적지 않았다. 금액만 본다면, 임향숙이 노후 자금으로 모아뒀던 돈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임향숙이 임세희를 각별히 생각한다고 해도, 노후 자금까지 배팅한다는 건 지나쳐 보였다. 그러니 임세희의 지갑에서 돈이 나왔을 게 뻔했다. 이준혁은 처음부터 두 사람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믿지 않았다.임세희는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지며, 옥구슬 같은 눈물을 후드득 떨궜다.“난 정말 모르는 일이야. 내 꼴을 봐, 오빠. 일상생활도 하기 힘든데, 언제 그런 짓까지 꾸몄겠어?”이때, 옆에 있던 임향숙이 엉금엉금 임세희를 향해 걸어왔다.“아가씨,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몰래 아가씨 물건을 훔쳐다가 돈으로 바꿨어요. 저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정말 죄송해요.”둘의 장단을 지켜보던 이준혁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임세희에게 물었다.“세희야, 진짜야? 생각 잘하고 대답해야 할 거야. 이번이 너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어.”임세희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어떤 대답을 해도 지금 상황에 정답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주훈이 조사를 시작했다는 얘기는 어제 송휘재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5천만 원은 그가 임세희를 불지 않겠다는 대가로 받아 간 것이었다. 아무리 강도 높은 조사가 있더라도 굳게 입 다물겠다는 전제가 깔린 대가였다. 심지어 임향숙과 임세희는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 말을 맞추기까지 했다. 임향숙은 임세희에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면 될 것이라 말했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임세희는 사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