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산이 문미정을 언급하자 문씨 가문에서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그제야 알게 된 건데, 문미정의 아버지는 그녀의 어머니와 이혼을 해서 문미정의 할아버지가 송수미를 포함한 세 여인을 문씨 가문 호적에서 지워버린 것이다.문미정 할아버지가 이 정도로 매정하게 내친 걸 보면 이 세 여인은 심각할 정도로 추잡한 짓을 저질러서 문씨 가문에게 버림을 받은 게 분명하다.애초부터 문씨 가문의 힘에 빌붙기 위해 문미정과 결혼한 송태산은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문미정을 곁에 남겨둘 필요가 없었다.결국, 문미정과 송소미는 송씨 가문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두 모녀는 문씨 가문으로 돌아와 애원했지만 거기서도 경호원에게 쫓겨나고 말았다.두 사람은 이내 이씨 가문까지 찾아갔지만 집을 지키고 있던 개에게 쫓겨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더 이상 갈 데가 없게 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며칠 묵으려고 했지만 카드마저 전부 정지당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송태산의 발길질에 심하게 맞은 문미정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기에 자신이 차고 있던 귀걸이를 팔아서 그 돈으로 작은 여관으로 들어갔다.송소미는 작고 냄새가 나는 여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단 한번도 이렇게 누추한 곳에 몸을 담근 적이 없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밖에서 빙빙 돌아다니던 송소미는 친구들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자 결국 임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임세희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하던 임씨 아주머니가 임세희에게 물었다.“아가씨, 받으실 건가요?”조금 전에 집으로 돌아온 임세희는 얼굴에 팩을 붙인 채 꽤 기분이 좋은 듯 대답했다.“주세요.”“송소미 씨는 이제 하수구에 빠진 강아지 신세입니다. 최대한 송소미 씨와 엮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다가 준혁 도련님이 눈치라도 채면 큰일입니다.”임씨 아주머니가 잠시 머뭇거리면서 타이르자 임세희가 가볍게 웃었다.“괜찮아요. 스피커 좀 켜주세요.”임씨 아주머니가 스피커를 켜자 전화기 너머 송소미의 애절한 목소리가
송소미의 말은 꽤 위협적이었다. 정 안 되면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임세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송소미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때, 임씨 아주머니가 나서서 송소미의 말을 끊었다.“송소미 씨, 그런 말씀은 거둬주세요. 우리 아가씨가 송소미 씨에게 윤혜인 씨를 괴롭히라고 시킨 건 아니잖아요? 우리 아가씨는 그때 당시 그저 윤혜인 씨가 임신하지 않았을까 의심했던 것뿐입니다. 송소미 씨를 친한 동생으로 생각해서 속마음을 털어놓은 건데 윤혜인 씨 뱃속의 아이에게 못된 짓을 저지르라고 한 적은 없잖아요?”흠칫하던 송소미는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임세희는 확실히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하지만 임세희가 그녀에게 울면서 고자질하고 암시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절대 윤혜인을 잡고 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이때, 임세희가 온화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아주머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전 소미를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소미가 이렇게 힘든 상황인데 전 당연히 도와야죠.”임세희가 임씨 아주머니에게 눈치를 주자 임씨 아주머니는 방에서 현금을 잔뜩 들고 나왔다. 임세희가 송소미의 손을 덥석 잡고는 눈시울을 붉혔다.“소미야, 내가 널 돕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야. 준혁 오빠가 분명하게 경고를 했거든. 너희 집안을 돕는 사람은 이선 그룹에 도전장을 내미는 거라고 했어.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언니도 마음이 안 좋아. 여기 현금 1200만 원 있으니까 일단 가져가서 써. 내가 갖고 있는 돈을 전부 투자에 넣어서 현금이 많이 없어. 나중에 현금이 생기면 또 줄게.”송소미의 얼굴이 확 굳어버렸다. 1200만 원으로 국내에서도 며칠 버티지 못할 텐데 이 돈으로 해외에 나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임세희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일이 터지고 나서 내가 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어. 윤혜인 씨 할머니는 애초부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대. 근데 그 죽음을 너에게 뒤집어씌울 정도로 독한 사람일 줄은 몰랐어. 거기에
잠시 머뭇거리던 윤혜인은 아주머니를 보며 물었다.“아주머니, 혹시 통화 좀 하게 핸드폰을 잠깐 빌려주실 수 있나요?”아주머니는 살짝 난감했다. 도련님은 사모님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으니 당연히 아무한테도 연락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하지만 아주머니는 요 며칠동안 매일 우울하고 말도 없는 윤혜인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통화로 기분이 좀 좋아질 수 있다면 전화 한 통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아주머니는 핸드폰을 윤혜인에게 건넨 뒤 주방으로 들어갔다.한편, 윤혜인은 한구운의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았지만 소원의 번호는 외우고 있었다.소원이 전화를 받자 윤혜인은 한구운에게 별다른 상황이 없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병원에서 아버지를 지키고 있던 소원은 이제야 윤혜인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은 원망하듯 말했다.“혜인아, 왜 나한테 아무것도 얘기 안 해? 우리가 제일 친한 친구인 건 맞아?”“미안해, 소원아. 내가 그때 당시 정신이 없어서 아무한테도 연락을 못했어.”윤혜인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소원은 당연히 그녀를 탓하는 뜻이 아니었기에 서둘러 대꾸했다.“혜인아, 네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네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서 그런 말 한 거야.”“알고 있어.”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였기에 소원의 뜻을 오해할 리가 없었다.전화를 끊은 윤혜인은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녀는 아주머니의 걱정을 덜기 위해 국을 조금 마신 뒤 위층으로 휴식을 취하러 올라갔다.날이 어두워지자 이틀 동안 사라졌던 이준혁이 나타났다. 그는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화들짝 놀란 윤혜인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내리더니 밖으로 잡아당겼다.다리에 힘이 풀린 윤혜인은 넘어질까 봐 이준혁의 손을 꽉 잡은 채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이준혁 씨, 또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의 말에 이준혁은 고개를 홱 들었고 싸늘하게 굳
화들짝 놀란 윤혜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옷소매를 꽉 잡았다. 그녀의 아이가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잡종은 아니다!“이준혁 씨, 함부로 말 하지 마요.”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뱃속의 아이가 그의 아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사랑을 주지는 못해도 상처만은 주지 말라고.하지만 그녀는 말 할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아이의 부양권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눈빛이 날카로워진 이준혁은 그녀를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꽉 주었다.“말 함부로 하지 않으려면 네 뱃속에 있는 물건은 반드시 사라져야 해.”이준혁은 자신에게 흠이 되는 존재가 이 세상에 나오는 걸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말을 하던 이준혁은 윤혜인을 어깨에 업은 채 별장 밖으로 나와 그녀를 차에 거칠게 꾸겨 넣었다.운전석에 올라탄 이준혁은 엑셀을 확 밟았고 갑작스러운 출발에 윤혜인은 몸이 뒤로 쏠렸다.“이준혁 씨, 우리 어디 가요?”윤혜인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바람을 가르는 소리밖에 없었다.이내 외제차는 한 고급 개인 병원 앞에 멈췄고 이준혁은 윤혜인을 차에서 끌어내렸다.그제야 이준혁의 의도를 눈치챈 윤혜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녀는 이준혁이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와 이혼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가 그녀 뱃속의 아이를 지워버리려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윤혜인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이준혁 씨, 전 싫어요! 당신은 내 뱃속의 아이를 지워버릴 권리가 없어요!”“날 배신할 땐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몰랐어? 내가 이 잘못된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내버려둘 거 같아?”이준혁이 서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윤혜인은 그의 손목을 잡고는 애원했다.“아이는 잘못이 없잖아요! 이준혁 씨, 제발 그러지 마요. 아이만은 지우라고 하지 마요!”하지만 이준혁은 냉랭한 표정으로 전혀 흔들림 없이 곁에 있던 의료진에게 명령했다.“얼른 데리고 들어가요.”병원 입구에 마중 나온 의료진들이
한구운은 이준혁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이준혁 씨,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때리는 건 절대 안 됩니다.”곁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윤혜인은 한구운의 말에 얼른 대꾸했다.“아니에요, 선배가 오해한 거예요…”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면을 강하게 맞은 한구운이 뒤로 휘청거렸다. 입가에 흐르고 있던 피를 쓱 닦은 한구운도 이준혁을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이준혁은 몸을 살짝 돌려 피해버렸다.이준혁은 전문적인 복싱을 배운 적이 있다. 꾸준하게 운동한 한구운의 체형도 꽤 건장했지만 이준혁을 상대로 역부족이었다.화가 잔뜩 난 이준혁은 한구운의 옷깃을 잡더니 다시 주먹을 날렸고 한구운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한구운의 입가에서 피가 점점 더 많이 흘렀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그만해요!”이때, 윤혜인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더니 두 팔을 쫙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그만 싸워요!”이준혁이 휘두른 주먹은 순식간에 윤혜인 눈앞에서 멈추었다.“비켜.”“이준혁 씨, 이 일은 선배와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만 때려요.”“상관이 없다고?”이준혁은 코웃음을 피식 치면서 말을 이어갔다.“아무 상관이 없는데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보아하니 널 많이 걱정하고 있는데 어떡하지…”윤혜인을 품에 와락 껴안은 이준혁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넌 내 와이프잖아.”힘을 너무 세게 준 이준혁 탓에 윤혜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녀는 이준혁에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화가 잔뜩 난 이준혁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이준혁은 힘겹게 일어난 한구운을 향해 발길질을 하더니 윤혜인을 만졌던 한구운의 손을 빤히 쳐다보다가 지시를 내렸다.“저놈 손 하나 잘라버려.”뒤에 서있던 경호원들은 재빨리 달려와 한구운의 머리를 꽉 누르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오른손을 확 들어올렸고 철컥 소리와 함께 한구운은 눈살을 확 찌푸렸다.너무 놀란 나머지 넋이 나가버린 윤혜인은 심장이 찢어지듯이 아팠다.“저놈이 또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이준혁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반짝거렸다.그는 윤혜인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의사의 증언과 검사 보고서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저 남자까지 보고 있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이준혁의 망설임을 눈치챈 윤혜인은 마음에 큰 돌이 박힌 듯 너무 답답했다. 그녀가 진실을 얘기해도 역시나 그는 그녀를 믿지 않는다. 그래도 윤혜인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했다. 이러다가 한구운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윤혜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당신이 날 안 믿어주는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이 아이는 정말 당신 아이가 맞아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구운을 보며 울먹였다.“그러니까 제발 선배가 치료부터 받을 수 있게 해줘요.”윤혜인이 매번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구운이 그녀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지금은 그녀 때문에 이렇게 다치기까지 하다니.윤혜인은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한편, 이를 지켜보던 이준혁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는 윤혜인의 턱을 확 낚아채더니 그녀의 고개를 돌린 채 싸늘하게 말했다.“윤혜인, 지금 저 남자를 위해 또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야?”윤혜인은 이준혁을 힘껏 밀어내며 가까스로 말했다.“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한구운은 고통스러운 윤혜인의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그 손 놔요!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그래요, 그래요!”싸늘하게 웃던 이준혁은 곁에 있던 경호원에게 명령을 내렸다.“때려. 죽어도 내가 책임질 테니까 멈추지 말고 때려!”이준혁의 말에 경호원들은 한구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했다. 구타 소리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지만 한구운은 윤혜인이 걱정할까 봐 끝까지 이를 꽉 깨물고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참고 있었다.“그만해요! 제발 그만해요!”윤혜인은 오열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경호원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윤혜인은 고개를 돌려 이준혁에게 싹싹 빌었다.“이준혁 씨, 제발 그만하라고 해요
선배의 도움도 받지 말고 폭우속에서 죽을 때까지 서있으라는 건가?“그러니까 네 말은 저자가 네가 임신한 걸 알고 네 남편인 척했던 게 다 오해라는 거야?”이준혁은 어이없다는 듯이 비꼬았다. 윤혜인은 그런 이준혁을 보며 그가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이준혁 씨, 이 모든 건 처음부터 오해였어요. 선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믿지 않을 뿐이에요.”씁쓸하게 웃던 윤혜인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만약 이 말을 한 사람이 임세희 씨였다면 당신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바로 믿었겠죠.”임세희가 언급되자 이준혁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여기서 세희가 왜 나와?”밤은 깊었고 바람도 차가웠다. 윤혜인은 덜덜 떨리는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언제든지 날아갈 잎새 같았다.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궁금해서요. 왜 이준혁 씨는 임세희 씨를 그렇게 굳게 믿고 있으면서 내 말은 한마디도 믿어주지 않는 건지. 2년이에요. 이준혁 씨, 2년이라는 시간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엔 부족해요? 당신 눈에 내가 그렇게 더러운 사람이에요?”실망 가득한 윤혜인의 목소리에 이준혁은 가슴에 뭔가 박힌 듯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이준혁도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만약 상대방이 윤혜인이 아닌 임세희였다면 그는 그녀를 위해 혼수까지 챙겨줬을 것이다.하지만 윤혜인에 대해서만은 그럴 수가 없다.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몰래 보는 것만으로도 이준혁은 그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이 순간, 이준혁은 설마 이게 사랑이라는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그는 자신이 평생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고 살게 될 줄 알았다.한편, 눈앞에 있는 이준혁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윤혜인은 더 이상 그 어떤 기대도 생기지 않았다.지금까지 벌어진 일들로 그녀가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그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그녀가 바람을 피워서 창피하다고 생각된 것뿐이다. 윤혜
품에 안긴 윤혜인은 종이장 마냥 가벼웠으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순간 긴장한 이준혁은 겁이 나서 손바닥에 힘조차 주지 못했다.“왜 그래? 어디 아파?”윤혜인은 그의 손목을 잡더니 힘겹게 말을 꺼내며 애원했다.“배… 배가 너무 아파요… 제발 아이를 좀 살려주세요…”말을 하던 윤혜인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이준혁은 바로 그녀를 안아 들더니 병원안으로 들어갔다.“이준혁 씨.”바닥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한구운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혜인이 좀 잘 지켜줘요.”걸음을 멈춘 이준혁은 고개를 돌려 싸늘하게 대꾸했다.“당신 걱정이나 해요. 다시 한번 내 여자를 넘보면 그땐 손 하나 부러트리는 걸로 안 끝납니다.”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기에 곁에 서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이내 이준혁은 병원안으로 들어갔고 뒤따라가던 경호원은 상처투성이가 된 한구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그들은 죽일 각오로 때렸는데 한구운은 한쪽 팔이 빠진 것 말고는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다니. 경호원은 한구운이 자신의 진짜 실력을 숨긴 게 아닌가 의심됐다.하지만 한구운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한구운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운전할 사람 한 명 보내. 그리고 그 사람한테 얘기해. 내가 그 일을 동의한다고.”전화를 끊은 한구운은 다리를 쫙 뻗은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약점이 생긴 남자는 휘두르기 너무 쉽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준혁이 벌써 저렇게 미쳐 날뛰다니. 그럼 나중에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르면 과연 이준혁은 어떻게 될까?어두운 불빛속에 눈을 감고 있던 한구운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생각만 해도 너무 흥미진진했다.한편, 병원에서.응급실에 누워있는 윤혜인을 보며 주치의가 이준혁에게 물었다.“이준혁 씨, 몸에 부작용이 가장 적은 약물로 낙태를 진행할까요?”“일단 어른부터 살려요. 어른에게 문제없으면 그때…”말을 하던 이준혁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